제378화
제3편 수도원 (1)
황자 일행은 온종일 쉬지 않고 말을 달렸다.
식사도, 잠도 자지 않고, 쉬는 시간도 없이.
덕분에 이틀이 걸릴 거리지만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들이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밤을 새운 다음 날 오전.
이들을 태웠던 말들은 거품을 물고 쓰러졌지만, 모두 말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3 황자와 두 여사제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영지 남부의 숲 외각.
높은 언덕 위에 홀로 서 있는 낡은 성채형 건물 앞이었다.
그들 앞에 있는 건물은 유적으로 보이는 건물도 아니었고, 방어가 잘된 건물도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낡은 수도원이었다.
일행이 의아해하는 사이, 수도원 안에서 사제들이 나와 황자 일행을 반겼다.
미리, 연락이 되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중년의 신관이 추살대장에게 인사를 했다.
“신께 영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신께 영광을, 다른 연락은 없었나?”
“네. 본단 외에는 아무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런가, 그럼 당했을 가능성이 크군.”
“네. 수도원도 이번 일을 끝으로 폐쇄하기로 했습니다.”
신관의 말에 추살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은 벌 수 있겠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좋아.”
추살대장의 표정을 확인한 뒤에, 신관은 3 황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게이트로 안내하겠습니다.”
마치, 외부 손님에게 수도원을 소개하는 것 같은 안내에 황자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설마, 여기가 교단의 비밀 신전이라는 건가?”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죠.”
황자의 물음에 신관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 수도원은 대륙 곳곳에 자리한 성전으로 향하는 문일 뿐입니다.”
“직접 보시는 편이 빠를 겁니다. 뒤를 쫓는 자들이 있을지 모르니, 이 자리에서 설명하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군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건물 안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황자 일행이 안으로 들어가자, 수도원의 문이 천천히 닫혔다.
쿠웅.
나무로 만든 문일 텐데, 닫는 소리가 두꺼운 철문을 닫는 소리처럼 들렸다.
수도원의 안도 밖과 다를 바 없었다.
오래되고 허름한 수도원일 뿐이었다.
일행은 신관을 따라 수도원 복도를 걸었다.
다만, 이 수도원은 허름한 건물 이상으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 입구에서 본 몇몇 사제들 외에는 사람이 아예 없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수도원 안에 들어서자, 사람들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여유를 되찾은 추살대장과 처음부터 여유로운 신관 때문일 터였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여유로운 두 사람이었지만, 속마음까지 그렇지는 않았다.
제일 앞에서 걷고 있는 두 사람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들은 추살대장이 펼친 방음벽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근방에서 추적자들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거리가 멀거나, 신전 기사분들이 막아주셔서 여러분을 놓쳤을 수도 있습니다.”
먼저 신관이 주변 상황을 추살대장에게 보고했다.
“확신하기는 어려운 일이야. 어제 습격을 당했을 때도, 갑자기 등장했던 거라…….”
“10대 검호가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이 신관도 낡은 수도원을 지키는 평범한 신관이 아니었다.
신관의 말에 추살대장은 표정을 굳혔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 처음부터 10대 검호를 투입했었다면 여기까지 도망쳤을 리도 없을 텐데…….”
“단순히 운이 나빴던 것일까요?”
신관의 말에 추살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글세, 아직 잘 모르겠네. 당장은 3 황자를 성전에 보내는 것이 우선이니까. 그 뒤에 윗분들에게 연락을 보내는 수밖에.”
“이해가 안 되네요. 교단이 하는 일에 10대 검호를 투입하다니, 조직이 이렇게 끝을 보겠다고 달려들 리가 없을 텐데요.”
“그렇게 따지면, 황태자가 황제 폐하를 죽인 것부터가 말이 안 되지. 아무리 상황이 안 좋아졌다고, 조직이 그런 일을 허락할 리가 없잖은가.”
추살대장의 말에 신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기도 하네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알 수가 없네요.”
“추살대도 문제야. 이번 일로 추살대 1대대가 날아갔어. 얼마 전에 2대대도 전멸해서, 이제는 3대대 하나밖에 남지 않았어.”
“대장님이 계시니, 1대대가 없어진 것은 아니지요. 거기다, 아직 장로님들도, 성기사님도 움직이지 않으셨으니까요.”
“성기사님이 움직이시지 않게 하는 게 우리가 할 일인데…….”
추살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황자를 이렇게 수도원까지 데려와 놓고 보니, 희생을 한 부하들이 떠올랐다.
그들을 뒤에 두고 온 것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많은 이들이 죽어서인지 지금도 마음속에 거리낌이 남아 있었다.
자신까지 모두 덤벼들었으면 막을 수 있었을까?
10대 검호를 쓰러뜨리고, 모두와 함께 돌아올 수도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자신이 10대 검호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고, 추살대도 그의 싸움에 도움이 되기는 어려울 터였다.
아. 추살대 말고도 한 명이 더 있긴 했었다.
실력을 파악하기도 어렵고, 남들보다 먼저 습격을 알아차렸던 어린 기사.
장래가 밝아 보이는 기사였긴 했지만, 그래도 10대 검호 앞에서는 별로 다를 바는 없을 터였다.
아마도, 마음에 남은 걸림은 그와 했던 약속 때문일 터였다.
그는 메시지를 보냈다.
[엘레나 사제 동생에게 약속했던 것들은 전부 이루어질 것이다. 황자가 주는 보상과 별도로 그의 영지에 교단의 축복이 내려질 것이다.]
교단의 신전이 세워지고, 훌륭한 신관과 사제들이 신전에 상주하게 될 터였다.
추살대장인 그도 이 정도는 충분히 약속해 줄 수 있었다.
그의 메시지에 대답은 없었다.
그도 대답을 원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 메시지를 끝으로 그 일은 관심을 끊었다.
확실히, 메시지를 보내니, 마음속에 남아 있던 걸림이 사라졌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만족하고, 다시 신관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장 신경 써야 할 일이 가득했다.
추살대장이 메시지를 보냈던, 사제 엘레나는 어두운 얼굴로 일행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녀는 추적대를 만난 이후로, 말없이 일행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특별한 의견도 말하지 않고, 힘들다는 말도 없이 계속 그림자처럼 일행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쫓기고 있던 사람들은 그런 엘레나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한 명을 제외하면.
툭툭.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살짝 두들겼다.
고개를 돌리니, 조아나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
엘레나가 돌아보자, 조아나가 그녀에게 손을 펼쳤다.
수화였다. 사제가 되기 위해 배웠던 수화.
엿듣는 사람이 있기에, 조아나는 평상시에는 자신의 능력을 잘 쓰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수화를 사용해서 주변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중에 제일 많이 이야기를 나눈 것은 엘레나였다.
수화로 나누는 대화는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화.
지금도 다르지 않았다.
‘괜찮아요?’
평범한 질문.
하지만, 조금 전 조아나가 전달한 메시지 때문에 그녀의 질문은 평범하게 들리지 않았다.
“네, 괜, 괜찮아요.”
엘레나의 대답도 내용과 달리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조아나는 엘레나에게 미소를 보여 주었다.
언제나처럼 괜찮다는 미소.
힘들고 외로운 사제 생활 동안 계속 그녀 옆에서 도와준 조아나였다.
조아나의 미소를 보고, 엘레나는 그녀에게 조금 속마음을 털어놓기로 했다.
엘레나가 작게 양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믿음이 많이 약해진 것 같아요. 아니,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내 부정한 마음을 풀어버린 것일지도 몰라요. 신을 빌려, 내가 동생을 죽게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수화를 하면서 점점 떨리던 손은 나중에는 수화를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였다.
유적에서 동생을 만난 이후,
그녀의 굳건한 믿음은 조아나와 같이 붙어 다니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점점 약해져 갔었다.
맹목적인 믿음 대신, 자신과 신에 관한 질문이 늘어나게 되었고, 깊숙이 눌러놓았던 감정이 다시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그 감정에는 아버지인 공작에 대한 증오와 죽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과 연관되었다는 동생에 대한 미움이었다.
이건, 조아나가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엘레나의 결정은 그 뒤로 조금씩 감정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황자가 동생을 찾을 때 끼어든 것도, 동생을 남겨 두고 도망칠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도, 모두 그 미움 때문이었다.
물론, 감정이 없었더라도 똑같은 결정을 했을 테지만, 이미 감정이 흔들린 그녀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그녀는 죄책감에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신에 대한 죄책감과 가족에 대한 죄책감이 뒤섞여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수화를 듣고, 조아나는 묘한 얼굴이 되었다.
그녀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목적은 어느 정도 이루었으니, 그녀는 수화로 엘레나를 위로했다.
‘아뇨, 엘레나 탓이 아니에요. 영주님은 엘레나가 죽이지 않았어요.’
그가 아는 셀린의 성기사는 10대 검호 따위에 죽지 않을 분이었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자신이 한 일을 칭찬해 주실 게 분명했다.
그때를 기다리며, 그녀는 열심히 엘레나를 위로했다.
신관은 그들을 수도원의 지하로 안내했다.
그들이 모두 지하로 들어서자, 커다란 철문이 활짝 열렸다.
모두 기대를 하고 안을 들려다 보았다.
하지만, 철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큰 지하 석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중앙에 커다란 제단과 바닥에 복잡한 방법으로 그려진 커다란 문양이 있을 뿐이었다.
* * *
황자 일행이 수도원 지하에 내려가던 그 시각.
수도원이 있는 언덕 아래쪽에서는 사람이 죽고 있었다.
푹.
주위를 살피던 사제가 풀숲에서 튀어나온 검에 목숨을 잃은 것이었다.
사제는 쓰러지면서도 들고 있는 호각을 불려고 했지만, 그 전에 검이 움직여 호각을 낚아챘다.
“세 명째. 전부 평범한 사제가 아닌데. 아무리 봐도 평범한 수도원은 아냐.”
검으로 호각을 낚아챈 남자는 황자를 추적하던 또 한 명의 10대 검호였다.
수도원에서는 실력 있는 사제들로 주위를 감시하고 있었지만, 사제들을 암살하는 것은 10대 검호였다.
싸움터에 있지도 않아 피 냄새도 나지 않으니, 사제들이 그의 암살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가, 손을 흔들자, 다른 사람들도 수풀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에는 요하힘 기사도 있었다.
“3 황자는 지하로 내려갔답니다. 다른 곳으로 옮기려는 기색이 없는 것을 보니, 저 수도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는 남자에게 추적 능력자의 말을 전해 주었다.
남자는 고개를 들어, 언덕 위 수도원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지하에 숨겨진 유적 같은 게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럼, 더 기다리시겠습니까?”
요하힘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여기에서 멈췄다는 건, 우리가 쫓고 있다는 것이 들켰던지, 저기에 뭔가 있다는 거겠지.”
그는 결정을 내렸다.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해. 바로 친다.”
“알겠습니다.”
요하힘이 대답하는 순간.
그는 바로 언덕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조직원들이 그를 따라 언덕을 달렸다.
달리는 조직원들 맨 앞에는 요하힘 기사가 질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