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7화
제2편 습격 (2)
갑작스러운 검격에 놀란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았고, 그를 본 이들은 모두 그를 알아보았다.
“맙소사. 예복을 입은 세검 귀족?”
“검호 샤프 공이다!”
추살대원들의 말에 예복 귀족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 별명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의 이름은 바르나비 폰 슈탈 백작. 샤프 공은 쇠꼬챙이 같은 세검을 쓰는 그에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그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대단한 귀족이라는 말이기도 했다.
“10대 검호가 어떻게 여길…….”
그리고, 제국의 10대 검호라면, 별명이 붙을 만했다.
그가 피를 털어내는 사이, 싸움이 시작되었다.
“막아!”
“죽여!”
10대 검호의 등장에, 흔들린 방어진은 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었고, 추살대원들은 덤벼드는 상대를 겨우 막아 낼 뿐이었다.
물론, 다가오는 10대 검호에게도 기사들이 붙었지만, 그들은 검을 섞어보지도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두 번의 찌르기에 모두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이었다.
다행히 그는 먼저 나서서 진형을 헤집지는 않았다.
천천히 걸어가며 앞을 막는 자의 가슴에 구멍을 뚫을 뿐이었다.
그런 간단한 행동이었지만, 막아서는 추살대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진형은 허물어지고, 황자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황자 옆에 서 있던 추살대장이 입술을 깨물었다.
추살대가 강하다고 하지만, 10대 검호가 포함된 상대를 막기는 어려울 터.
그는 급하게 주위를 둘러보더니,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먼저, 황자님을 모시고 빠져나간다. 추살대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적을 막아 내도록!”
그의 말은 죽음을 강요하는 명령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추살대는 다르게 받아들인 것 같았다.
“맡겨 두십시오!”
“신께서 함께하신다!”
추살대 모두가, 성호를 긋고, 적에게 달려든 것이다.
동시에 내 머릿속에도 추살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처음으로 내게 직접 말을 건넨 것이었다.
[영주도 최대한 저지해 주시오, 교단이 영지에 큰 보상을 내릴 것이오.]
그가 내게 처음 꺼낸 말은 내가 헛웃음을 짓게 했다.
내게 한 말 중간에는 ‘죽음으로’ 라는 말이 빠져 있었다.
처음 건넨 말이 적을 막으며 죽으라는 말이라니.
상대의 뻔뻔함에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일부러 실력을 어느 정도 숨기고 있었지만, 이런 취급을 받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나는 먼저 내게 달려든 자를 쓰러뜨리고, 두 번째 적을 상대하던 참이었다.
나는 대검을 휘두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추살대장은 몇몇 기사들과 함께 3 황자와 두 여사제를 데리고, 달아나는 중이었고.
남은 추살대원들은 적을 향해 몸을 던져대고 있었다.
확실히, 내 누이는 가족의 틀을 던져버린 모양이었다.
그녀는 황자 옆을 달리면서 내 쪽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조아나가 오히려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조아나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내 신호에 조아나는 안심을 하고 다시 말을 달렸다.
황자 일행이 멀어지자, 나는 다시 싸움을 지켜보았다.
사방에 피가 튀고, 몸들이 찢겨나갔다.
조금 전까지의 전투는 친선 대결이었던 것처럼 보이게 하는 험악한 전투였다.
팔이 잘리고, 창자를 쏟으면서도 추살대원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적을 향해 검을 내지르고, 몸을 던졌다.
“신을 위하여!”
그들의 마지막 외침이 내 귀에는 비명처럼 들려왔다.
몸을 던지는 험악한 싸움 때문인지, 적도 피해가 작지 않았다.
추살대원들이 모두 죽은 뒤, 멀쩡히 서 있는 적은 내가 상대하는 적 이외에는 세 명밖에 없었다.
다쳐서 주저앉은 이들이 몇 있었지만, 그들은 다시 일어나기도 어려워 보였고.
결국, 내 상대는.
서걱.
“크윽.”
세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
쓰러지는 상대를 버려두고, 나는 검을 털었다.
여유로운 내 모습에 예복 귀족, 샤프 공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 한눈에 실력을 알기가 어려운데. 뭔가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가?”
그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이번에는 실력을 숨기긴 했지만, 저번 삶에서는 10대 검호 셋이 동시에 달려들어 놓고, 지금은 저런 소리라니.
삶을 반복하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10대 검호 중 두 번째인가…….”
죽인 것은 두 명이었지만, 한 명은 없어진 삶에서 죽인 것이었느니, 이번에 두 번째였다.
내 말에 샤프 공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소리…….”
“쓸데없는 소리 말고, 죽기나 해!”
그가 눈살을 찌푸릴 때, 다른 이들은 참지 못하고 내게 달려들었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 벌겋게 달궈진 얼굴, 툭 튀어나온 핏줄들.
남은 저들은 죽은 추살대원들의 광기에 휩쓸린 모양이었다.
잘못하다가는 마나가 폭주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다만, 오늘은 폭주하지는 않을 터였다. 오늘, 그리고 앞으로 계속.
나는 달려오는 이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스팟!
대검이 크게 횡으로 그어지고, 보이지 않는 선이 달려오던 이들의 가슴에 길게 그려졌다.
한순간에 핏기가 사라졌다. 광기도, 마나의 폭주도 전부 지워져 버렸다.
서걱!
달려오는 세 사람 모두, 상하로 나누어져 바닥에 허물어졌다.
내 검에 쓰러진 이들을 보고, 샤프 공은 나를 다시 쳐다보았다.
“설마, 방금 전 말은 내가 10대 검호 중에 두 번째 상대라는 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시 한번 시체들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거짓말은 아니군. 하지만, 그래서 더 믿기 어려운데. 동안이라고 해도 그 나이에 그 실력이라니.”
상대의 예의를 갖춘 말에 나도 예의를 갖춰 대답해 주었다.
“동안이 아닙니다.”
“어이가 없군.”
그는 황당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더니,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검을 내린 채로 내게 말했다.
“아무리 봐도 교단 쪽 사람도 아닌 것 같고. 개인적으로 3 황자의 호위를 하는 것 같은데…….”
매너가 좋고, 머리도 좋은 귀족이라고 하더니, 거의 정확하게 맞췄다.
내 표정을 보고, 그가 말을 이었다.
“그 나이에, 이 정도 실력이라면 나와 싸울 이유가 없네. 나와 황태자님께 가세나. 황태자님의 말을 들으면 우리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걸세. 황태자님도 중히 쓰실 것이네.”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내 말에 그는 안타까운 얼굴이 되었다.
“정말, 아쉽군. 마음을 돌릴 생각은 없는가?”
“네. 이 정도 대답한 것도 충분히 예의를 지킨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연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그는 쇠꼬챙이 같은 검을 들어, 내게 쭉 뻗었다.
날카로운 기세가 쭉 뻗어왔다.
마나가 담겨 있지 않은 단순한 기세였지만, 몸에 있는 솜털이 전부 바짝 섰다.
동시에 나는 대검을 휘둘렀다.
캉! 캉! 캉!
대검에 뭔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상대의 눈을 보며, 나는 몸을 날렸다.
상대는 쏘아져 오는 나를 향해 빛나는 검을 내질렀다.
검이 다가오며 점점 숫자가 불어났다.
내 눈앞에 수십 개, 수백 개의 검이 솟아난 것 같았다.
당장 검들에 꼽혀 고슴도치가 될 것 같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대검을 굳게 잡고, 밀려오는 검들을 향해 힘껏 휘둘렀을 뿐이다.
콰과과광!
10대 검호와의 싸움은 우습게도 한 번의 격돌로 끝이 났다.
샤프 공이 펼친 ‘검의 숲’은 ‘마나 유형화’를 펼친 내 대검이 모두 베어 냈고.
잘려 나간 검의 숲을 파고든 나는 세검 하나만 든 그를 검과 함께 베어 낸 것이다.
막아선 세검 덕에 몸이 반으로 잘리지는 않았지만, 상대는 가슴이 반쯤 잘려 나간 채로 바닥에 쓰러졌다.
물론, 나도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대검으로 최대한 날려버렸지만, 그 많은 검을 모두 막기는 어려웠다.
나도 팔다리에 구멍이 송송 뚫려서 피가 줄줄 흐르는 중이었다.
나는 대검을 뒤에 매고, 신검을 꺼냈다.
신검을 쥐자, 상처가 빠르게 아물어갔다.
상처를 치료하고 있자, 발아래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떻게…….”
샤프, 아니 슈탈 백작의 목소리였다.
상처만 보면 예전에 죽었을 목숨이었지만, 그는 무엇이 궁금한지, 꺼져가는 목숨을 붙들고 나에게 묻고 있었다.
나는 그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알 것 같았다.
“어떻게 알았냐고요?”
내 반문에 그는 눈동자를 움직였고, 나는 그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전에 상대해 본 적이 있었으니까요.”
그는 내 말에 더 혼란스러워했다.
내 말이 이해가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해가 될 리가 없었다.
나만 기억하는 일이었다. 그에게는 존재하지도 않았었던 일.
조금 전 내가 깨부순 ‘검의 숲’은 내가 죽기 전, 그의 마지막 배려로 보여 준 기술이었다.
내 선전에 감동했다면서 자신의 최고 기술을 보여 준답시고, 내 몸에 직접 결과를 남겨 준 기술.
찌르는 모든 검이 전부 진검이 되는 그의 능력으로 펼쳐 낸 기술이었다.
죽은 뒤에, 지금까지 나는 그 기술을 항상 되새겨왔다.
어떤 식으로 펼쳐지고, 어떻게 막아야 할지.
한번 발동되면 지연 없이 계속 펼쳐지는 그 검들은 물러설수록 대책이 없어졌다.
물론, 오래 싸워나간다면 다른 방법이 있겠지만, 한번 싸워 본 이상 그럴 필요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저 기술을 깨는 법은 간단했다.
모든 검을 부수고, 다시 능력을 펼치기 전에 적을 죽이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게는 상대의 검 모두를 부술 능력이 있었다.
치료를 끝내고, 나는 그의 앞에 서서 검을 치켜들었다.
내게 여러 가지 도움을 주었으니, 나도 편한 죽음을 내려 줄 생각이었다.
내가 검을 치켜드는 것을 보고, 그는 목을 쥐어짜서 말을 만들어 냈다.
“우, 우리를, 막, 막으면 안 돼. 마물, 마왕이…….”
역시,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이었다.
죽어 가면서도, 조직과 제국, 남아 있는 사람들을 걱정하다니.
그런 그에게, 나도 예의를 다해 주기로 했다.
나는 검을 내리고, 그에게 말했다.
“내가 조직을 막아선 것은 조직의 목표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직의 목적은 마물들을 막고, 봉인을 풀 마왕을 막는 거죠.”
내 말에 백작의 눈이 커졌다.
“거기다, 그 마왕을 막기 위해 제국이 강성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다른 왕국들로 마물 왕들을 보내려 한다는 것도 알고 있죠.”
이어진 내 말에 백작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충격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죽어 가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카를로스 왕국의 영주이자, 카를로스 여왕의 기사. 그걸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마왕을 죽이기 위해 다른 왕국의 멸망이 필요하다면, 제국이 멸망하면 될 일이었다.
다른 왕국들이 제국의 힘에 미치지 못한다면, 내가 그만큼 강해지면 되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라…….
누가 ‘소’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말을 끝내고 보니, 백작은 이미 숨이 멈춰 있었다.
다만, 충격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보니, 내 이야기는 다 들은 모양이었다.
나는 만족한 얼굴로 몸을 돌렸다.
이제 나를 죽인 세 검호 중, 한 명만 남았다.
먼저 도망친 황자 일행을 몰래 따라가는 저 마나.
마지막 남은 검호의 마나가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