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6화
제1편 습격 (1)
나는 황자 일행과 함께 남동쪽으로 말을 달렸다.
내 영지 동쪽에 있는 영지에서 교단의 추살대와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쉬지 않고 말을 달려, 우리는 하루 뒤에 영지의 경계를 넘게 되었다.
여기서부터는 남작이 다스리는 시에라 영지라 부르는 작은 영지였다.
물아센 영지의 서쪽에 있는 영지, 시에라 영지.
그리고, 그날 낮 대로에서 교단의 기사단과 만날 수 있었다.
딱 봐도, 실전에 능한 기사들이었다.
갑옷에 흠집이 가득했고, 행동에는 허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만 보면, 관록 있는 신전 기사단으로 봐도 될 듯했지만, 그들의 눈은 무척이나 살벌했다.
살기와 피를 머금은 눈빛들.
눈빛과 달리 살기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것을 보니, 사람을 죽인 수만큼 실력도 출중한 듯했다.
역시, 이단 사냥꾼들, 교단 추살대였다.
우리와 함께 왔던 신관 기사가 기사단 앞에 걸어가 성호를 그었다.
“신께 영광을, 지체 높으신 분을 모셔왔습니다.”
“신께 영광을, 수고했다.”
중앙에 서 있던 기사가 성호를 그어 그의 인사에 화답했다.
인사를 받은 사람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날렵한 인상의 기사였다.
몸이 따끔거릴 정도로 마나를 흘리는 것을 보니, 실력도 대단해 보였다.
웬만한 기사단장 이상, 왕실 기사단 부단장과 싸워도 이길 것 같았다.
저 기사가 이 기사단, 추살대의 대장이었다.
나는 슬쩍 입술을 핥았다.
전에 다른 추살대장을 만났을 때는 이미 크게 다친 상태라서 제 실력을 알 수 없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멀쩡한 추살대 대장을 보게 되었으니, 잘하면, 추살대 대장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을 터였다.
그는 로브를 쓰고 있는 황자 앞으로 가서 성호를 그렸다.
“고생하셨습니다. 신전 선임기사 발츠입니다. 이제부터는 저희 호위로 편하게 움직이실 수 있으실 겁니다.”
“고맙네.”
편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말에 황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내 호위로 여기까지 달려온 시간은 일행에게는 상당한 강행군이었다.
더구나 제국에서부터 달려온 황자에게는 더 힘들었을 길이었다.
하지만, 황자를 위해 발걸음을 늦출 수는 없었다.
황자 일행은 추격이 있으리라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 누가 어디까지 따라오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레스티에게서 추격자들의 위치를 제대로 전해 들었다.
대단한 실력자가 포함된 조직의 추격팀이 한나절 이상 떨어진 곳에서 계속 따라온다는 것을.
너무 거리가 멀어서 눈에도 보이지 않고, 주변에 정찰을 보내도 알 방법이 없었다.
나도 셀린 교단의 교인들과 레스티가 없었다면 알 방법이 없을 터였다.
레스티는 생업에 종사하는 교인들을 움직여서 추적하는 이들을 살펴보았다.
그렇게 해서 오늘은 그들이 내 영지의 한 마을을 몰살시켰다는 말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소식을 듣고, 나는 바로 놈들에게 달려갈 뻔했다.
레스티가 말리지 않았으면, 정말 그랬을지도 몰랐다.
나는 레스티가 말린 덕에 겨우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아직, 추적자들을 죽일 수 없었다. 그들은 아직 쓸모가 있었다.
어쨌거나, 나와 셀린 교인 외에는 추적자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막연히 따라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정도.
그래서, 여기까지 달려오는 동안, 일행의 불만은 상당했다.
3 황자도 내게 꽤 실망한 듯했다.
(황자가 느끼기에) 있지도 않은 추격을 피해 미친 듯이 도망쳤으니, 실망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나는 황자가 실망하든 말든 간에, 발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그렇다고, 황자와 일행에게 추격자들의 정보를 알려 주지도 않았다.
모르면 모르는 채로 가는 게 좋았다.
내가 알려 줄 이유도 없었고, 이들이 아는 게, 내 계획에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이번에는 모두가 자신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편이 좋았다.
발츠 기사는 황자에게 인사를 한 뒤에 레스티에게 말했다.
“길은 우리도 알고 있으니, 용병은 보상을 받고 돌아가도록.”
그의 손짓에 다른 기사가 레스티에게 작은 주머니를 던졌다.
턱.
레스티가 날아오는 주머니를 낚아챈 뒤에 기사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 영주님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레스티의 말에 기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만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는 나를 본 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름 불만을 표시하는 방식인 듯했다.
레스티는 나나 스파이인 조아나 사제에게 시선도 돌리지 않고, 바로 일행을 떠났다.
어차피, 셀린 교단이 원하는 것은 들어 두었었다.
셀린 교단의 스파이인 조아나도 있으니, 셀린 교단의 일을 처리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추살대가 합류한 뒤에 추살대장의 말대로 일행의 속도가 늦춰졌다.
말을 조금 빠르게 걷게 하는 정도.
이 정도면 평상시 여행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확실히, 나중에 온 추살대도 추적자들에 대해 알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황자도 내게 실망하고, 추살대도 합류해서인지 일행들이 나를 따돌리는 게 느껴졌다.
내게 말을 붙이는 사람도 없었고, 기사들의 벽을 세워버려 황자에게도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하나밖에 없는 내 편인 조아나도 내게 말을 못 붙였다.
상황을 보니, 새로 텔레파시를 등록한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마도 추살대 대장일 듯했다.
뜻밖의 한가로운 시간.
나는 오랜만에 옆에서 말을 모는 내 누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목적지까지 얼마나 걸려? 영지를 너무 오래 비워놓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사제 누나가 허둥거렸다.
확실히, 이번에 다시 보았을 때 느꼈지만, 누님이 뭔가 고민이 있는 모양이었다.
거기다, 허둥거리다 나온 대답도 영 별로였다.
“아, 그건 나도 모르는데…….”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누이에게 물어본 말은 아니었다.
나는 슬쩍 누이 옆에 있는 조아나 사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 눈빛을 확인하고는 잠시 추살대장 쪽을 바라보았다.
이어서, 조아나의 음성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었다.
[이틀만 더 가면 된답니다.]
조아나 사제가 나 대신 추살대장에게 물어봐 준 것이다.
‘이 정도 속도로 이틀이라…….’
그렇다면, 왕국은커녕 이 영지를 벗어나기도 어려웠다.
설마, 이 영지에 교단의 비밀 신전이 있다는 건가?
왜 다른 길을 놔두고, 우리 영지 쪽으로 오게 되었는지는 이해가 되었지만, 이 영지도 제국과 그리 멀지 않았다.
내 영지보다 제국과 멀다고 하지만, 그건 오십보백보였다.
어떻게 된 건지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 그건 도착하면 알 일이었다.
더구나, 생각보다 일찍 도착할 것 같았다.
멀리 뒤쪽에서 마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반나절 이상 뒤쪽에서 좇아오던 추적자들이었다.
드디어 추적자들이 칼을 뽑은 것이다.
* * *
“잘 도망치더니 왜 이렇게 된 건지……. 너무 느려. 덕분에 이렇게 꼬리를 잡아버렸잖아.”
남자의 말에 요하힘이 물었다.
“간을 좀 볼까요?”
그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겁을 주려면 제대로 해야지.”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나서 주시겠습니까?”
그가 물어본 사람은 바로 뒤에서 말을 몰고 있는 귀족이었다.
갑옷도 입지 않고, 단정하게 귀족 예복을 차려입은 귀족은 허리에 가느다란 세검 하나만 차고 있을 뿐이었다.
차려입은 옷처럼, 멋지게 늙은 중년 귀족이 그의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도망치는 황자는 자네가 쫓아가고? 또, 좋은 것은 혼자 먹으려고 하는군.”
“하하, 나서기 좋아하는 성격이라…….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에 귀족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줄 생각으로 온 거니. 그렇게 하지.”
이 중년 귀족은 바로 어제 일행에 합류한 사람이었다.
그는 남자의 존대를 충분히 받을 만한 사람이었다.
그도 제국의 10대 검호였기 때문이었다.
이미 10대 검호가 한 명 따르고 있었지만, 조직은 추살대를 그 혼자 상대하게 두지 않았다.
조직은 급하게 다른 이를 불러, 추적대에 합류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10대 검호가 둘이나 있게 되었는데, 마냥 뒤를 따를 이유가 없었다.
제국에도 할 일이 산더미였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요하힘, 너도 나와 같이 간다.”
“알겠습니다.”
추적대는 둘로 갈라졌다.
인원 대부분은 중년 귀족을 따라 추살대를 향해 내달렸고, 나머지 인원은 남자를 따라 길옆으로 움직였다.
그들은 싸움이 벌어진 뒤, 도망치는 황자 일행을 따를 생각이었다.
* * *
마나가 둘로 갈라지더니, 한쪽이 빠르게 다가왔다.
‘양동인가?’
그런 생각도 해 보았지만, 다른 한쪽이 움직이는 방향이 조금 이상했다.
양동이 아니라, 마치 한곳에 숨어 대기하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 움직임을 보니, 저들이 어떤 생각인지 알 것 같았다.
‘둘이 덤빌 생각이 없다는 걸까?’
쫓아 오는 마나가 생각보다 강대해서 걱정되었는데, 알아서 한쪽만 공격해 올 모양이었다.
‘저러면, 저쪽도 황자가 목표가 아닌 것 같은데…….’
3 황자가 목표라면, 포위망을 펼친 뒤 덮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뒤를 따르는 모습을 보면, 황자를 잡는 게 아니라, 황자가 가는 목적지가 목표인 듯했다.
분명, 나와 같은 목표였다.
‘계획을 조금 바꿔야겠는데.’
저들 덕에 좀 더 좋은 기회가 나올 것 같았다.
다만, 그 전에 덤벼드는 놈들을 상대해야 했다.
지금 다가오는 마나는 내가 아는 마나였다.
죽기 전 마지막에 보았던 마나.
저번 삶에서 나를 죽였던 세 사람 중 하나가 저 마나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여유롭게 걷고 있는 기사들에게 소리쳤다.
“뒤에 적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뭐라고?”
기사들이 놀라 급하게 말을 멈추었다.
“거리 200보. 빠르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고함을 치며 나는 먼저 말에서 내렸다.
말 위에서 상대할 자들이 아니었다.
내 말에 기사들은 놀라 우왕좌왕했지만, 추살대장은 바로 명령을 내렸다.
“확인은 나중에 하면 된다! 방어진을 펼쳐라!”
역시, 관록은 무시 못 했다.
추살대장의 명령에 추살대는 빠르게 진형을 갖추었다.
황자와 두 사제를 가운데 두고, 방어진을 펼친 것이었다.
훌륭한 방어진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상대의 실력을 몰라, 말을 타고 방어진을 펼친 점이었다.
진형을 갖춘 순간, 길옆 숲에서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용병처럼 가죽 갑옷을 입은 사람들과, 멋진 예복을 차려입은 귀족이었다.
“막아! 적은 숫자가 적다!”
추살대장의 고함에 나는 혀를 차고 말았다.
확실히 쏟아져나온 적은 추살대보다 숫자는 적었다.
용병 차림이긴 해도 다들 기사급이었지만, 그래도 추살대보다 나을 것 없는 실력이었고.
다만, 그들과 함께 나온 예복 귀족이 문제였다.
허리에 차고 있던 세검이 빛을 뿌리자, 선두에 선 추살대 둘의 가슴에 구멍이 뚫렸다.
무너지는 기사들과 솟구치는 피.
한순간에 전세가 확 기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