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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372화 (372/563)

제372화

제22편 영주 알렉스 (1)

제국의 수도, 차르마니아.

대륙 제일의 도시답게 크고 웅장한 도시가 지금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도시 안에 쏟아져 나온 마물들이 수도를 엉망으로 만든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병사들과 기사들의 눈은 핏발이 섰다.

도시 곳곳에 모아놓은 마물들을 불태우는 연기가 사방에서 피어오르고 있었고.

급하게 세워진 치료소에서는 다친 사람들의 신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교단은 교단의 다친 귀족과 기사를 치료하기도 힘들어하고 있었다.

일반 병사와 평민들은 교단의 치료를 받지 못하고, 민간요법에 의지하고 있었다.

부상자들과 죽은 이들의 가족.

마물에게 수도를 유린당한 것을 본 시민들은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한 황궁을 보며 울분을 삭이고 있었다.

그렇게 수도의 공기가 흉흉한 때에 분노를 터트리는 사람이 또 있었다.

그 사람은 제국의 지배자인 황제였다.

그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자신의 아들에게 격하게 화를 내고 있었다.

집무실에는 그와 황태자밖에 없었다.

화를 내기 전에 황제가 다른 사람을 모두 집무실에서 내보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항상 말했을 텐데, 제국의 황제가 되기 위해서는 항상 중도를 지켜야 한다고!”

아들들에게는 한 번도 큰소리를 치지 않았던 황제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집무실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갈 정도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창밖을 내다봐라! 이게 다 네 녀석이 그 중도를 지키지 못한 결과다.”

황제가 닫힌 창을 가리키며 소리쳤지만, 황태자는 그의 말을 따르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어차피, 황제도 진짜 내다보라는 것은 아니었고, 보지 않아도 분위기가 어떻다는 것은 황태자도 잘 알고 있었다.

“조직이 제국의 한 축이라는 것은 너뿐만 아니라 나나 역대 황제가 모두 알고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황제도 너처럼 조직에 휘둘리지는 않았단 말이다!”

‘그거야, 그분들에게는 마왕의 봉인이 곧 풀린다는 예언이 없었기 때문이겠죠.’

그 예언이 없었다면 그도 황제의 말처럼 살고 있을지도 몰랐다.

“거기다, 그 맞지 않은 예언을 들먹이는 예언자와 그 집안에 이 거대한 제국이 휘둘리는 것도 용납 못 할 일이란 말이다!”

‘그건 아버지에게 안 좋은 예언을 했기 때문이고요.’

불행한 예언을 들은 뒤, 황제는 예언자와 조직을 의식적으로 멀리했다.

조직과 예언자는 멀어지는 황제 대신에 황태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황태자는 그들을 받아들였고, 이제 황태자와 조직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수도에 안 좋은 소문이 돌고 있는 것을 너도 알고 있을 거다. 그 소문 안에 황실에 대한 말이 포함된 것도.”

수도 안에 마물들이 튀어나왔는데, 그 원인에 대한 소문이 돌지 않을 리가 없었다.

당연히, 유적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을 테고, 그 이야기는 황실의 마물 사냥과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불온한 소문을 잠재우려면 누군가가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거기다, 이번에 벌어진 일은 유례가 없는 일이니, 황실에서 솔선수범할 수밖에 없다.”

황제의 말에 황태자는 눈을 감았다. 이어질 말이 무엇인지 예상이 갔기 때문이었다.

“황실 기사단을 감독하고 있는 것도 황태자인 너고, 수도 방위를 담당하고 있는 것도 황태자인 너다.”

이어진 황제의 말은 그의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일은 네가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다. 제국 회의에서 정식으로 결정되겠지만 한동안 너는 공직을 내려놓고 자숙하고 있어라. 소란이 가라앉으면 다시 복귀할 수 있을 거다.”

황제는 모든 책임을 황태자인 그에게 뒤집어씌워, 황제와 황실의 쏟아질 오물을 피할 생각이었다.

그와 함께 황태자와 함께 ‘조직’에도 경고를 보낼 생각일 터였다.

황태자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건, 황제 혼자 결정한 게 아니었다.

그의 반대 세력이 밀어붙인 결과였다.

기껏 동생들을 겁먹게 했건만, 이렇게 반격해 올 줄이야.

‘로마이어 재상과 교단 놈들 소행이겠지?’

온건파의 수장인 재상이야 자신과 조직이 하는 일에 언제나 반대 했었다.

하지만, 교단은 사안에 따라 조직에 협력하기도 하고, 반대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딴지를 걸 차례였던 모양이었다.

차르 제국은 나라가 세워진 이후로, 이렇게 두 세력이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이루어 왔었다.

예언이 아니라면 황태자도 수긍을 하고 한동안 자숙에 들어갔을 테고.

다만, 지금은 그때와 달랐다.

황태자는 아무 대답 없이 집무실을 나왔다.

집무실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의 인사도 무시하고, 그는 복도를 천천히 걸어갔다.

복도 한쪽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집사장이 옆으로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중년 귀족의 말에 그가 손을 들어 잠시 말을 막았다.

뚜벅뚜벅.

두 사람의 발소리만 복도를 울렸고, 잠시 뒤 황태자가 입을 열었다.

“계획을 당겨야겠다.”

“계획이라시면…….”

“아버지를 끌어내려야겠다.”

집사장이 놀라 황태자를 쳐다보았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책임을 지고, 관직을 내려놓으라고 하시더군. 한동안 자숙하라고 하셨지.”

집사장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지금은 그럴 시간이…….”

“맞아. 그래서야. 직을 내려놓으면, 조직 이외에는 움직일 수 있는 게 없어. 그렇게 되면, 그동안 준비해온 것도 다 틀어질 거야.”

황태자의 말에 집사장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예언과 방식은 달랐지만, 점차 사방에서 마물들이 날뛰고 있었다.

예언도 막혀 앞도 보이지 않았고, 조직이 행하던 일들도 계속 어그러졌다.

전부, 때가 가까이 오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래도, 평화롭게 승계를 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천하의 패륜아가 되어야 할 것 같아.”

황태자의 씁쓸한 말에 집사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황태자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이미, 조직과 함께하기로 했을 때부터, 천하의 악인이 될 작정이었다. 제국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내가 하지 못할 일은 없어.”

그렇게 말하는 황태자의 얼굴에는 굳은 의지만 남아 있었다.

* * *

내가 벌인 일 때문에 제국이 혼란에 빠졌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제국과 멀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 내가 무척이나 바빴기 때문이었다.

영지에 돌아오자, 나 대신 영주 대리를 맡고 있던 오헨이 이바나와 함께 모레나로 도망쳐버렸다.

이왕 잘해왔던 사람이 계속하는 게 어떻냐는 말을 꺼냈다가, 영주의 자각이 없다는 소리만 잔뜩 듣고, 일을 떠맡게 된 것이다.

두 영지를 가지고 있는 영주가 해야 할 일은 정말 많았다.

더구나, 한쪽 영지는 영주가 죽고, 한참 동안 방치된 영지였다.

영지를 제대로 굴러가게 하려면, 많은 일을 해야만 했다.

오헨이 잘해주기는 했지만, 영주 대리인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사람을 뽑고, 앉히는 것은 영주인 내가 해야 일이었다.

모레나 쪽이야 오헨에게 맡겨놓으면 그만이었지만, 물아센은 그렇지 않았다.

저택의 집사장과 기사들까지 써서 억지로 굴러가게 하고 있었지만, 계속 이렇게 할 수는 없었다.

물론, 사람을 쓰는 것도 전 영주 때의 관료들에게 다시 일을 맡기면 될 일이기도 했다.

마을의 촌장도 같은 사람들이니, 도시의 시장도, 서기관들도, 세금 징수원들도 전에 있던 사람들을 그대로 쓰면, 내가 할 일이 확 줄어들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전 영주 밑에서 일하던 자들은 영지를 관리하는 게 아니라, 영지민들을 뽑아먹는 데 특화된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좋은 입지를 가지고도, 영지의 상업도, 농업도 망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영지 경영 게임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단지, 내가 자리에 없어도 반란이 일어나지 않고, 영지가 무사히 굴러갈 수만 있으면 되었다.

내게는 영지보다, 영지에 계신 어머니의 안전이 더 중요했다.

거기다, 어머니가 영지민들에게 존경을 받게 된다면 좀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한참 동안 정신없이 바쁠 수밖에 없었다.

제국에 다녀온 지도 몇 달이 지나, 여름의 문턱이 코앞까지 다가온 날에도 나는 집무실에서 사람을 뽑고 있었다.

내 앞에는 후안이 데려온 두 남자가 서 있었다.

한 명은 얼굴에 윤기가 가득한 중년 남자였고, 다른 한 명은 눈을 반짝이는 젊은 남자였다.

“이번 면접이 마지막이지?”

“네. 세금 징수원은 이 면접이 마지막입니다.”

옆에 서 있던 집사장이 내 말에 대답했다.

나는 집사장을 흘겨보았다.

집사장은 요 몇 달간 나를 제일 많이 갈군 사람일 터였다.

영지에 대해 잘 알고, 처세도 잘하는 자라서 그런지, 나를 누구보다 잘 써먹었다.

덕분에 일 처리가 무척 빨라졌지만, 요 몇 달간은 수련도 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지금도 집사장은 내 말에 다음 일이 남아 있다는 듯이 말을 하고 있었다.

물론, 영주의 일이란 게 끝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이번 면접을 끝으로 한동안 업무를 집어던질 생각이었다.

집사장 문제는 제쳐두고, 나는 여태 해오던 대로 두 사람에게 말했다.

“그럼 우선 자기소개를 해 보도록.”

내 말에 두 남자는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하기야, 이들이 지금 같은 복수 면접을 받아봤을 리가 없었다.

다들, 영주의 마음에 들었거나, 줄이나, 돈을 써서 직위를 샀을 테니,

이런 면접이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가 저들의 입장을 생각해 줄 이유는 없었다.

“자네부터.”

나는 번들거리는 중년 남자를 가리켰다.

“저, 저는 오래전부터 세금 징수원 일을 해왔습니다. 이 영지에 대해 잘 알고 누구보다도 더 세금을 잘 걷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까지. 옆에 있는 자네도 말해보도록.”

“저는 세금 징수는 해 본 적이 없지만……. 여러 번 따라다녀 본 적은 있습니다. 맡겨만 주시면 잘 해낼 수 있습니다.”

젊은 남자도 의욕에 차서 열심히 자신을 소개했다.

젊은 남자의 소개를 들은 뒤, 나는 중년 남자에게 물었다.

“확실히, 오랫동안 세금 징수일을 해왔군. 비율은 어떻게 했지?”

“네? 비율이라 하심은…….”

“걷어드린 세금 중에 자네가 먹은 양은 얼마나 되느냐는 거야.”

“아……. 그건…….”

이쪽 세상도 세금 같은 면에서는 무척이나 낙후되어 있었다.

중세 시대처럼 세금 징수원에게 세금을 거둬들일 권리를 팔고, 추가로 걷는 세금은 모두 징수원이 갖도록 한 것이다.

당연히 징수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영지민들을 쥐어짜고 있었다.

“그……. 삼 할 정도를 더 걷었습니다.”

삼 할이라면 경비 같은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과하게 취하는 편은 아니었다.

“삼 할이라. 그 말에 거짓은 없겠지?”

“네. 정말입니다.”

말이 이어질수록 중년 남자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내 밑에서 일할 때도 이 할만 더 취할 건가?”

“네!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이제는 자신이 된 것처럼 큰 목소리로 다짐을 했다.

그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옆에 있던 젊은 청년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영주에게 거짓을 고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남자의 대답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책 아래 깔아놓았던 문서 뭉치를 꺼내 그의 눈앞에 흔들어 보였다.

“여기 적혀 있는 것을 보면, 이 할이 아니던데. 적어도 두 배, 네다섯 배까지 긁어낸 게 한두 번이 아니었어.”

내가 흔드는 서류를 보고, 중년 남자의 눈이 커졌다.

“그건 지하실 깊숙이 숨겨놓은 것인데 어떻게…….”

“자네는 귀족을 너무 얕보았군.”

귀족이라고 이런 자료를 바로 찾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내게는 발레아가 있었다.

“하, 하지만, 세금 비율은 세금 징수원의 권리입니다. 영주님이 원하는 세금만 바치면 그 이상은 세금 징수원의 것입니다!”

전 세금 징수원은 내 말에 바로 항의했다.

확실히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나도 전부터 그걸 알고 있었다.

“방금 내가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 된다고 했지?”

“네? 그게 설마…….”

내 말에 중년 남자의 입이 떡 벌어졌다.

조금 전, 내가 한 말은 함정이었다.

앞으로 약속을 지키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이 꺼낸 말을 책임지게 될 거라는 말이었다.

“그럼, 그 영주에게 거짓을 고했으니, 결과를 봐야겠지.”

나는 후안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이건 폭거입니다! 살려 주십시오! 전부 바치겠습니다!”

중년 남자는 후안에게 끌려 나가면서 계속 소리쳤다.

“하아, 다들 왜 이 모양인지. 각성한 귀족이 법을 무시하는 영주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다들 모르는 건가.”

“다들 영주를 직접 만날 일이 없었을 테니까요.”

하기야, 이 정도 큰 영지의 영주를 세금 징수원이 만날 이유가 없었다.

아래 관료들과 이리저리 말을 맞추고 끝내겠지.

전 징수원이 사라진 뒤, 나는 젊은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진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너무 긴장한 것 같아, 그에게 웃어주었다.

“자, 당신이 얼마나 착한지, 악당인지는 상관없어. 나와의 약속을 잘 지키는 게 중요할 뿐이야. 딱, 이 할만 먹고 잘 할 수 있겠지?”

“네, 넵! 잘, 잘하겠습니다.”

나는 계약서를 내밀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에 이름을 적었고, 나는 그날, 영지 순행을 선포했다.

드디어, 마물 사냥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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