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6화
제16편 지팡이를 묻다
해가 지고, 어둠이 덮였을 무렵.
정보를 얻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졌던 덩치들이 돌아왔다.
이야기를 듣고 온 덩치도 있고, 이리저리 급하게 적은 쪽지를 가지고 온 덩치에, 직접 사람을 데리고 온 덩치도 있었다.
“로마이어 재상 저택이 엄청나게 삼엄합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접근도 못 한다니까요.”
“치안대도, 황궁도 접근하기 어렵죠.”
“교단도 어렵고요.”
수도에서 제일 강력한 힘을 가진 귀족의 집에, 황궁과 교단을 예로 드는 어이없는 덩치들도 있었고.
“리벨 상가도 경계가 삼엄하죠.”
“투구단도 의심스럽습니다.”
덩치들과 싸움이 붙었던 상가와 다른 깡패 집단을 이야기하는 덩치도 있었다.
그런 곳들을 하나하나 제외하다 보니, 의심스러운 곳이 나왔다.
“교단의 수도원인데, 정말 이상하게 삼엄한 곳이었다니까요. 유령이 나오는 곳이라는 소문에 가까이 안 가기도 했지만, 진짜 그 주변에서 실종된 사람도 많았습니다. 밤이 되면, 이상한 사람들이 드나들기도 하고…….”
한 곳은 공포물에 나올 만한 교단의 수도원이었고, 다른 한 곳은 한 귀족의 장원이었다.
“무슨 자작이라고 하던데……. 우리끼리는 검은 자작이라고 부르죠.”
“아, 거기 말이야? 검은색 마차가 들락거리는 곳?”
“검은색 마차?”
“네, 가끔 검은 마차를 탄 귀족이 오거든요. 정말 가끔 와서 무슨 별장이 아닌가 하는 말도 있고.”
“그런데, 그 주변을 얼쩡거리면 이상한 놈들이 막아서는데……. 용병 갑옷을 입고 있지만, 평범한 용병이 아니었어요.”
나는 검은 자작의 장원이란 곳에 대해 더 물었다.
수도에 있다는 수도원도 의심스럽긴 했지만, 그쪽은 교단과 관련된 곳일 확률이 높았다.
교단 시설도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은 교단의 시설을 알아볼 때가 아니었다.
“그 수도원처럼 오가는 사람이 없어서 더 이상했죠. 사람도 없는 것 같은데, 그렇게 지키고 있으니, 이상한 소문도 많이 돌았죠.”
“나는 안에 미친 부인을 가둬 놓았다고 들었어.”
“마물을 숨겨 놓았다던데?”
“나는 수도의 사람들을 전부 마왕에게 바치기 위한 제단이 있다고 들었는데?”
황당한 이야기들이었지만, 직접 가 볼 만한 곳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발레아와 나는 덩치들의 환송을 받으며 그들의 아지트를 떠났다.
덩치들의 두목은 뭔가 사정이 있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어두워져서 더 음침하게 변한 빈민가를 지나, 우리는 수도의 북쪽, 쇠락한 귀족들의 거리로 향했다.
그곳은 제국의 수도를 세웠을 때, 귀족들이 처음 자리를 잡았던 곳이라고 들었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제국 수도가 확장된 덕에, 지금은 그곳의 집들은 반 이상 비어버린 모양이었다.
비지 않은 집들도 권세와 실권이 사라진 죽은 고목 같은 가문만 남은 모양이었다.
그곳에 도착한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혀를 찼다.
“귀족들이 사는 곳이라 확인할 생각도 못 했는데, 잘못 생각했네.”
제국 수도 안에 이렇게 한적한 곳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것도 귀족들이 지내는 곳인데.
현지 사정을 모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거리에 도착한 뒤에, 우리는 감각으로 사람들을 피하며 조심스럽게, 덩치들이 알려 준 귀족의 장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이 알려 준 장원으로 다가갈수록, 점점 주변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늦어져서도 있지만, 그곳이 그만큼 소외되고 외진 곳이라는 뜻이었다.
장원이 보이는 곳에 도착하니, 덩치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거리 곳곳에서 마나가 느껴졌다.
마나를 가진 경비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거기다, 평범해 보이는 주변의 저택들에서도 마나가 느껴졌다.
그곳에 사는 귀족들이 아니었다.
집에서 느껴지는 마나들은 숨어서 거리를 경계하는 자들과 같은 마나였다.
장원만이 아니라, 장원을 감싼 한 블록 전체를 같은 이들이 쓰고 있었다.
저들은 장원을 감싼 집들은 모두 경비용으로 쓰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삼엄한 경계였다.
하긴, 이곳이 조직의 아지트라면 이 정도로 삼엄한 게 당연했다.
제국의 황태자가 소속된 거대 세력인데, 귀족 장원 하나만 달랑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이렇게 삼엄한 곳이라면, 내 실력으로도 몰래 잠입하기 쉽지 않았다.
다만, 이곳에는 나 혼자 온 것이 아니었다.
거리 모퉁이에 숨어 있던 나는 고개를 돌려 발레아에게 말했다.
“부탁할게요.”
“맡겨주세요.”
내 부탁을 들은 발레아는 손으로 땅을 짚었다.
그녀는 잠시 영역을 펼치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지하에도 감시가 있는데요?”
“지하에도요?”
발레아의 말에 나도 난감한 얼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네. 지하에 복잡한 수로가 있는데, 장원 지하로 향하는 길목에는 감시자들이 배치되어 있어요.”
하수도가 아니라 수로가 있다고?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이곳 지하에는 옛 수로가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이 거리는 옛 도시 자리에 건물을 지었던 것 같은데요.”
제국 수도가 만들어질 때, 처음으로 세워졌다는 거리이니, 옛 도시와 겹쳐졌을 수도 있었다.
다만, 지하에도 감시라니…….
최대한 가깝게 가서 정보라도 더 얻어볼까 했는데, 어렵게 된 모양이었다.
하지만, 발레아는 난감해하는 내 표정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다만, 감시자들은 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말과 함께 발레아의 손에서 다시 마나가 뿜어져 나왔다.
출렁.
동시에 땅이 크게 꿀렁거렸고, 발레아와 나는 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탁. 탁.
잠시 뒤, 우리는 십여 미터 아래쪽에 있는 수로에 내려서게 되었다.
우리를 토해 낸 수로 천장이 원상태로 돌아가고, 어두운 수로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빛이 없어서 흑백으로 보이는 수로.
‘마나 감응력’이 없는 발레아는 짧은 거리밖에 보지 못하지만, 이미 영역을 펼쳐 놓은 덕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장원 쪽으로 가지 않고, 우선 수로를 살폈다.
유적 지하에서 본 수로와 같은 수로였지만, 그때와 느낌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오래된 시간의 흔적은 다르지 않았지만, 유적의 수로와 달리, 최근까지 사용한 흔적이 있었다.
그것도, 자주, 바로 어제까지 썼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왜, 오가는 사람이 없다고 했는지 알겠네요. 지하로 다닌 거군요.”
나는 아직 남아 있는 발자국들이 향한 방향을 보며 발레아에게 말했다.
내 말에 발레아도 영역을 펼쳐 수로가 어디로 향하는지 확인했다.
“수도 밖으로 나가는 길인 것 같아요. 이 조직 사람들은 지하 수로를 이용해서 수도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거군요.”
수로는 수도 밖으로만 이어져 있는 게 아닐 것이었다.
수도의 다른 곳과도 이어져 있을 터였다. 황궁과도 이어져 있을 수도 있었다.
내 말에 발레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들 지하로 다닐 수 있다면, 지상으로 다녔다는 검은 남작은 왜 지하로 안 다녔을까요?”
“지하로 다닐 필요가 없거나, 다닐 수 없는 사람이겠죠.”
그만큼 신분이 높은 사람일 터였다.
발레아도 나도 한 사람이 떠올랐다.
조직과 관련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이 제국의 황태자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잠시 더 수로를 살피던 우리는 다시 장원 쪽으로 다가가 보기로 했다.
심증적으로는 확실하다고 믿고 있었지만, 확실한 증거를 얻어야 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수로를 나아가다 보니, 멀리 불을 들고 서 있는 용병들을 보게 되었다.
아니, 용병처럼 입고 있었지만, 용병은 아니었다.
기사급의 마나를 지닌 용병이라니.
그건 제국이라도 어려운 일이었다.
“여기서, 벽을 통해서 나아가면 될 거예요. 재질이 단단해서 오래 걸릴 것 같지만, 천천히 나아가면 될 거예요.”
발레아가 벽에 손을 올리고, 말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더 접근하면 안 됩니다.”
여기까지 오니, 앞쪽, 장원이 있는 곳에서 마나가 느껴졌다.
강대한 마나, 전에 본 적이 있는 마나들이었다.
저번 삶 마지막에 보고 싸웠던 자들이 지녔던 마나들.
저 앞에 그 마나들이 느껴졌다.
저 앞, 귀족의 장원에는 저번 삶에서 나를 죽였던 제국의 실력자들이 있었다.
적어도 둘 이상.
감정적으로는 싸워보고 싶었고, 둘이라면 한번 붙어봐도 될 것 같았지만, 사절단으로 온 지금, 이곳에서 싸울 수는 없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직에는 공간 이동과 비슷한 능력도 있는 걸까?’
그때도 저들이 수도에 있었다면, 나와 싸웠던 제국 국경 근처까지 그렇게 빨리 올 수가 없었다.
근처에 있거나, 아니면 특별한 능력을 사용했거나.
그리고, 그런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안전했다.
덕분에 난이도는 더욱 높아질 것 같았지만, 방심해서 죽어버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내 말에 발레아는 벽에서 손을 뗐다. 그녀는 내게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다.
대신, 마나를 바꿔, 경계를 서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벽에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뭔 고생이야. 내가 지하 통로를 지키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별수 없잖아. 수로에서 마물들이 쏟아져나왔는데, 병사들보고 지키라고 할 수는 없잖아. 여기도 수로인데 감시를 해야지.”
“아니, 유적 지하 쪽으로는 완전히 막힌 것 아냐? 대전쟁 이후 그쪽으로 한 번도 마물이 넘어온 적이 없었잖아.”
“유적은 뭐 다른가. 거기도 백 년 동안 멀쩡했는데 뭐.”
상대방의 말에 한숨을 내쉰 남자가 주위를 둘러보며 작게 속삭였다.
“설마, 황태자님이 쓰신 물약 때문은 아니겠지?”
“어디서 그런 소리를!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네가 말 안 하면 누가 안다고.”
“그래도 조심해. 위쪽 분들이 날카로워진 것 같으니까.”
“위에서도 의심하고 있는 모양이구먼.”
“다른 이유가 없긴 하니까. 안에서 연구하던 귀족들은 오히려 기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지팡이 대신이야?”
“그렇지 뭐. 뭔가 대안을 찾아야 하니까.”
“아니, 그래도 그게 말이 돼? 마물을 피하는 물약을 만들다가 나온 부산물일 뿐이잖아. 기껏 옷에 묻혀서 쓰는 데다가, 유인하는 마물 종류도 한정되어 있던데.”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나는 유적 앞에서 내 어깨를 두들기고 떠났던 황태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설마, 그때 물약을 묻혔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변종 레드 마우스들이 왜 그렇게 덤볐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면, 두 왕자도 황태자에게 당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적이지만, 그래도 자기 나라를 생각하는 위정자로 보였는데…….
‘똑같은 권력자였군.’
나만이 세계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인간.
평범한 독재자였다.
황제가 될 자이니 당연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찝찝했던 마음이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직접, 나를 죽이려 했던 사람이었다. 이제 그는 언제가 되었던 내가 빚을 갚아 주어야 할 사람일 뿐이었다.
어쨌거나, 확인이 끝났다. 이곳은 조직의 지부, 혹은 본부였다.
더 접근하기 어려우니, 최대한 가까운 곳, 여기다 설치하면 되었다.
나는 지팡이를 잡고, 마나를 불어넣었다.
다만, 좀 전에 유적에서 지팡이에 마나를 불어넣을 때와는 달랐다.
지팡이를 수리한 뒤에 새로 얻은 기능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마나를 계속 불어넣지 않아도, 주변의 마나를 끌어들여 계속 가동되는 것과.
또 하나는 마나를 불어넣고, 일정 시간 뒤에 가동되게 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예약 기능.
부우우우우웅.
나는 지팡이에 마나가 잘 안착이 된 것을 확인한 뒤에, 발레아에게 지팡이를 넘겼다.
지팡이를 건네받은 발레아는 지팡이를 바닥에 꾹 눌렀다.
지팡이는 발레아가 누르는 대로 수로 바닥에 점점 잠겨갔다.
몸통부터 머리까지, 그리고, 보이지 않은 뒤에도 발레아는 계속 지팡이를 아래로 끌어내렸다.
“사람 키의 10배 정도 아래에 묻었어요.”
“충분해요.”
그렇게 지팡이를 묻고 우리는 황궁으로 돌아왔다.
외출이 너무 늦어 오해를 받았지만, 둘 다 개의치 않았다.
지팡이가 깨어날 시간은 내일 오전.
우리가 수도를 떠난 뒤였다.
나는 그 시간이 진심으로 기다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