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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365화 (365/563)

제365화

제15편 제국 수도에서 데이트를

당연히 데이트는 핑계였다.

수도를 떠나기 전날, 자유롭게 제국 수도와 주변을 돌아다니기 위한 핑계였다.

거기다, 지팡이를 숨겨놓을 자리를 찾으려면 발레아의 도움이 필요했다.

발레아도 내게서 조직에 대해 전부 들었고, 지팡이를 얻을 때는 나와 같이 있었다.

그녀도 지팡이를 제국의 수도에 숨겨놓는다는 내 생각에 찬성했다.

아니, 여태껏 발레아가 내 말에 반대하는 것을 본 적도 없긴 했지만…….

어쨌거나, 발레아에게도 미리 말하면서 사과를 했지만, 발레아는 개의치 않았다.

“상관없어요. 어쨌거나 데이트니까요.”

발레아의 말을 들으니, 아무래도 처음 생각대로 다니기는 무리일 듯했다.

나는 일정을 조금 조정하기로 했다.

좀 더 데이트에 어울리는 코스로…….

다음 날 아침. 사절단이 파티의 숙취로 퍼져 있을 때, 발레아와 나는 황궁을 나왔다.

황궁에서는 호위를 붙여 주려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발레아도 나도 안전에는 자신이 있었고, 오늘 할 일은 호위가 붙으면 곤란한 일이었다.

다행히, 황궁 집사는 둘만 다니고 싶다는 내 말을 이해해주었다.

그 덕에 나는 황궁에서 나설 때부터 제대로 발레아를 에스코트해야 했다.

하루 동안 열심히 마물을 소탕하고, 유적의 문도 닫는 데 성공해서, 오늘은 차르마니아의 성문이 활짝 열렸다.

물론, 만약을 대비해서 기사와 병력이 성문과 성벽에 쫙 깔렸지만, 성문이 열린 덕에 수도의 분위기는 꽤 좋아 보였다.

번잡한 시장과 아름다운 고급 주택, 그리고, 장엄한 교단 본부와 황궁.

대륙 제일의 도시답게, 제국의 수도는 크고 아름다웠다.

이 큰 도시를 하루 만에 돌아보기는 불가능했다.

돌아보는 동안, 그 조직의 근거지를 찾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었고.

솔직히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반쯤은 진짜 데이트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찾는 데 실패하면, 황궁 앞뜰이나, 교단의 제단 깊숙이 지팡이를 심어 놓을 생각이었다.

발레아와 나는 정말 데이트하는 것처럼 제국의 수도를 구경했다.

시장에서 물건들을 구경하고, 공원에서 조각과 분수를 감상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수로를 따라 걷기도 하고, 높은 망루에 올라 수도 전체를 구경하기도 했다.

물론, 그 구경들은 전부 조직이 있을 만한 곳을 찾기 위한 구경들이었다.

나는 거리를 걸으며 ‘마나 감응력’과 감각을 사용해서, 색다른 마나나 낯선 느낌을 확인했고.

발레아는 영역을 펼쳐서, 숨겨진 방이나 지하실, 혹은 그런 곳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해가 반 이상 넘어갔을 때까지, 우리는 의심할 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

특이한 마나를 사용하는 대장장이를 찾기도 하고, 귀족이 몰래 숨겨놓은 지하실 같은 것도 찾기는 했지만.

우리가 찾는 조직과는 관련이 없었다.

“역시, 무리였나 보군요. 뭐 예상한 대로였으니.”

나는 망루에서 제국의 수도를 둘러보며 발레아에게 말했다.

여기서 보니, 도시의 반이 아니라 반의반도 다니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해를 보니 더 다니기는 무리였다.

“이제 교단에 들렀다가, 황궁으로 돌아갈까요? 둘 중 어디에 숨겨놓을지 정해야 하니까요.”

너무 늦으면 교단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밤에 교단 본부의 담을 넘기도 그랬고.

이제 슬슬 가봐야 할 때였다.

내 말에 발레아가 양손을 펴고 쭉 기지개를 켰다.

“흐음……. 그럼, 첫 데이트는 여기까지군요.”

“그렇게 되겠죠?”

데이트치고는 한 일이 많아서 미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발레아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

“데이트가 끝났으니, 자, 이제 일하러 가죠.”

“네?”

“어서 가요.”

발레아가 내 손을 잡고, 망루를 내려갔다.

나는 그녀를 따라가며 물었다.

“갑자기 어디를 가는 건가요?”

“이런 도시에서 사람이나 장소를 찾으려면 평범한 방법 쪽이 오히려 나아요.”

“평범한 방법이라면…….”

“사람들에게 묻는 거죠.”

발레아의 말에 나는 눈을 끔벅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다.

“조직에 관해 묻는다고요?”

“네.”

“아니, 그걸 사람들이 알 리가……. 거기다 알아도 알려줄 리가 없을 텐데…….”

“조직이라고 물으면 알 리가 없죠. 하지만, 다른 식으로 물으면 돼요.”

나는 아직 잘 이해가 안 되었지만, 그녀를 믿고 뒤를 따랐다.

발레아는 나를 실망하게 한 적이 없었다.

발레아는 망루에서 내려와 길을 아는 것처럼 걸음을 옮겼다.

대로를 벗어나, 골목길로.

그리고, 더 으슥하고, 지저분한 곳으로.

그녀가 가는 곳은 이 도시의 낙후된 지역, 빈민가였다.

길가, 낡은 건물 벽에는 약에 절여지고, 삶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기대어 있었다.

여기까지 오게 되자, 나도 그녀가 뭘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전생에 책으로 본 적도 있었지만, 직접 닥쳐보니, 한 번도 떠올리지 못한 일이었다.

역시, 책이 아닌 진짜 경험이 중요했다.

아니, 잠깐, 그럼 발레아는 다 경험해봤다는 이야기인데…….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지워버리고, 유물 주머니에서 건틀릿을 꺼내 손에 끼웠다.

건틀릿을 끼우자, 멍하니 우리를 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탐욕에 가득 찬 눈.

늘어진 사람들의 몸에도 힘이 돌아오고 있었다.

발레아가 건틀릿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알렉스예요. 바로 알아차렸군요. 그 정도 화려한 건틀릿이면 딱이에요.”

여기서 검을 꺼내면 다가오지도 않았을 터.

그렇다고, 비싼 유물을 꺼내 보이는 것도 이상했다.

사람들이 다가오게 하려면, 무척 화려했지만, 어쨌거나 무기인 건틀릿이 딱 맞았다.

늘어져 있던 골목이 긴장으로 가득했다.

생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단도와 갖가지 무기들을 들고,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주변과 우리를 살피며, 다가오려 했다.

하지만, 그들이 접근하기 전에, 앞쪽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멈춰! 여기는 우리 붉은 전사단 구역이다. 죽고 싶지 않으면 우리 행사에 방해할 생각은 마라!”

그 말과 함께 건장한 남자들, 아니 깡패들이 모습을 보였다.

웬만한 남자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을 정도로 덩치가 큰 남자들이었다.

기사들과 비슷할 정도의 덩치들.

하지만, 아쉽게도 마나를 익힌 사람은 없었다.

나는 이야기에서나 볼 만한, 그림에 나올 듯한 깡패들을 보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건틀릿을 꺼낸 게 잘한 것 같았다.

나는 건틀릿을 들어 발레아에게 보여주었다.

“지금 상황에는 알맞은 무력이 필요하겠죠?”

“말도 안 되는 장면을 보여주어서 공포에 질리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제국에서 그러면 곤란하겠죠?”

당연히 곤란했다.

그리고, 그녀가 말하는 말도 안 되는 장면도 보고 싶지 않았다.

“제가 처리하죠.”

나는 건틀릿을 낀 주먹을 쥐어보며 앞으로 나섰다.

“오, 아름다운 여성분을 지키려 기사분께서 나섰구먼.”

“진짜 기사가 아니라서 안타까울 따름이지.”

내가 앞으로 나서자, 덩치들이 나를 놀려댔다.

나는 잠시 의문이 들어, 그들에게 물었다.

“진짜 기사일 수도 있을 텐데.”

내 말에 덩치들은 크게 웃었다.

“푸하하하, 여기에 기사나 귀족이 올 리가 없잖아. 명예에 흠집이 생길 짓을 누가 한다고.”

“덕분에 세금도 안 걷은 지 오래되었다고.”

확실히, 이런 빈민가를 귀족과 기사가 홀로 들어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창녀촌과 도박장, 도시의 지저분한 일이 모두 모이는 이런 빈민가에 귀족과 기사가 모습을 보였다가는 별의별 소문을 뒤집어쓰게 될 뿐이었다.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단지, 발레아와 나는 이 제국의 귀족과 기사가 아니었고, 둘 다 그런 명예에 별로 개의치 않을 뿐이었다.

“역시,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어.”

나는 친절한 설명을 해준 이들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

황제가 내려준 건틀릿을 처음으로 맞는 행운을 누리게 해준 것이다.

쾅!

“꽥!”

퍽!

“우웩!”

우직!

“으악! 팔이 부러졌어!”

음, 이건 조절에 실패했다.

그렇게 공평하게 한 방씩 때려주니, 덩치들은 바닥에 편안하게 누워있게 되었다.

나는 들을 준비가 끝난 덩치들을 발레아에게 넘겨주었다.

몇 번의 질문과 작은 고문 끝에, 그들은 자신들의 아지트를 토해냈다.

일부러 다리는 건들지 않은 덕에, 그들은 친절하게 우리를 안내해 줄 수 있었다.

그들에게 안내를 시키며 주위를 살피니 어느새 골목에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골목에 늘어져 있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었다.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힌 사람들이었다.

잠시 뒤, 우리는 저녁노을을 받으며 덩치들의 아지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나마 온전해 보이는 건물에 덩치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너희들은 뭔데 우리 구역에서 행패냐! 설마 투구단의 자객이냐!”

거기다, 가운데에서 고함을 지르는 덩치는 마나를 가지고 있었다.

족히 수련 기사는 할 수 있을 듯한 마나였다.

“마나를 가진 자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나는 대답 대신에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니, 그게, 젠장, 추격자냐! 둘 다 죽여버려!”

“아니, 아니, 질문 취소. 또 뭔가 꼬이는 건 질색이야!”

발레아는 내 말에 한숨을 내쉬었고, 나는 양손을 마구 흔들었지만, 덩치들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아지트 앞 난투극이 벌어지게 되었다.

당연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내게 덤벼드는 덩치들은 한 방에 한 명씩 꼬꾸라졌고.

“여자를 잡아! 인질로 잡으란 말이야!”

그걸 본 두목이 발레아를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지만.

발레아 옆에 도착할 수 있었던 덩치는 한 명도 없었다.

나는 덩치들을 전부 쓰러뜨린 뒤에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발레아도 땅속에 목까지 파묻힌 덩치들을 지나, 안으로 들었다.

나는 아지트를 둘러본 뒤에 두목에게 물었다.

“부하는 저기 쓰러진 인원이 다야?”

긴장한 채로 눈을 굴리던 두목은 내 말에 급하게 대답했다.

“네? 아니……. 저를 찾아오신 분이 아니신지…….”

“아냐. 시킬 일이 있어서 온 거야. 그리고, 네 사정은 하나도 안 궁금하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마!”

내 말에 발레아가 작게 웃었다.

“시킬 일은요.”

내 말에 이어 발레아가 입을 열었다.

“넵! 말씀하십시오!”

발레아가 말하자, 두목이 바짝 긴장한 채로 대답했다.

역시, 내 건틀릿보다는 부하들을 땅에 묻어버린 발레아가 더 무서운 모양이었다.

“이 도시나, 주변에서 공식적인 이유 외에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는 곳이 있는지 알려주시면 돼요. 잘 모르겠으면, 다른 이들에게 물어보면 좋겠구요.”

“아, 그런 거였습니까. 그런 거면, 그냥 말로……. 아니, 아닙니다. 바로 확인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두목은 바로 튀어 나가서 쓰러진 부하들을 두들겨 깨웠다.

땅에 묻혔던 덩치들도 발레아가 빼내 주자, 부리나케 사방으로 달려갔다.

나는 어두컴컴해진 밖을 보며 조금 투덜대보았다.

“처음부터 왔으면 좋았을 텐데…….”

내 말에 발레아가 미소를 지었다.

“그럼, 데이트를 못 하잖아요.”

“아니…….”

“그리고, 한낮에는 다들 일하러 가서 쳐들어가도 아무도 없었을 거예요. 지금이 딱 좋아요.”

그녀의 말에 나는 부동자세로 서 있는 두목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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