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3화
제13편 수로 탈출 (2)
“마물입니다!”
결국, 3 황자가 나오기 전에 마물이 먼저 지상으로 올라왔다.
제일 먼저 나온 것은 여섯 개의 다리를 가진 곤충을 닮은 회색의 마물.
날개도 가지고 있었지만, 지하에 오래 살아서인지, 하늘을 날지는 못했다.
대신, 마물은 엄청난 높이로 뛰어올랐다.
퍽!
하지만, 그 마물은 바로 화살에 맞아 아래로 떨어졌다.
대기하고 있던 귀족이 마물에게 화살을 날린 것이었다.
이곳은 대륙 최강국인 차르 제국의 수도였다.
차르 제국이 기사만 강할 리가 없었다.
다만, 유적에서 올라오는 마물도 그 숫자가 만만치 않았다.
첫 번째 마물에 이어, 다른 마물들이 계속 유적 밖으로 튀어나왔다.
마물들이 계속 튀어나오자, 부단장이 고함을 질렀다.
“막아! 전열을 유지해! 차르마니아 쪽으로는 한 마리도 보내지 마라!”
기사들이 넓게 진형을 펼치고, 마물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남아 있던 귀족들도 뒤에서 기사들을 받쳤다.
처음 나온 마물처럼 방어선을 뛰어넘는 마물도, 틈을 봐서 기사들 사이를 빠져나오는 마물도 뒤에서 기다리던 귀족들이 능력으로 처리했다.
하늘로 화염구가 날아가고, 땅이 얼어붙었다.
하지만, 초반의 여유는 금방 사라졌다.
마물들이 튀어나오는 속도가 계속 빨라졌기 때문이었다.
잠시 뒤에는 물이 쏟아지듯 마물이 쏟아졌다.
입구는 작았지만, 이건 웨이브였다.
“컥!”
결국, 숫자를 감당하지 못한 기사가 쓰러졌다.
“당장 빼내! 휩쓸린다!”
지휘하던 부단장도, 옆에 있던 기사들도 도울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기사가 마물들에게 휩쓸리려 할 때.
부우우우웅.
반투명한 벽이 나타나 마물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기사가 뒤를 돌아보았다.
마물을 밀어내는 반투명한 벽 중앙에는 작은 방패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패를 잡은 것은 기사가 아니라, 아름다운 귀부인이었다.
그녀는 옆 단이 터진 드레스를 입은 채로, 마물을 밀어내고 있었다.
한 손에는 검을 들고, 다른 손에는 방패를 든 채로.
그녀가 한 걸음 전진할 때마다, 방패를 감싸고 있는 반투명한 막에 밀려, 마물들이 물러나고 있었다.
그녀가 가담한 덕분에 망가진 진형이 다시 복구되었다.
기사들은 놀란 얼굴로 카트린을 바라보았다.
거기다, 파티장에서 그녀를 보았던 귀족들과 황태자는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카를로스 여왕의 이모가 저런 실력의 기사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카트린의 참가로 진형은 단단해졌다.
계속해서 마물들이 밀려 나왔지만, 마물들은 수도, 차르마니아로 향하는 방향으로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었다.
전진이 계속 막히게 되자, 마물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마물들이 점점 넓게 퍼지더니,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동서남북 상관없이, 마구 흩어지는 마물들.
당연히, 기사들에게 가해지던 압력은 줄어들었다.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기사들은 한숨을 돌렸지만, 황태자와 부단장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마물들이 기사들의 진형을 옆으로 돌아 나와 다시 수도로 향하는 것도 문제였고.
사방으로 흩어져서 다른 지역에 피해를 주는 것도 문제였지만,
제일 큰 문제는 제국인들이 황실의 치부를 알게 되는 것이었다.
“막을 방법이 없나?”
“무리입니다! 흩어지는 놈들을 잡기 위해 진형을 무너뜨리면 뒤에 나온 놈들이 수도로 달려들 겁니다.”
그들에 이어 기사들과 다른 사람들도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곳에 저렇게 사방으로 달려 나가는 마물들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한 사람이 앞으로 손을 뻗었다.
그녀의 몸에서 마나가 빠져나와 영역 전체에 퍼져나갔다.
감시용으로 펼쳐 놓은 영역이 빠르게 바뀌었다.
발레아의 진짜 영역으로 변해간 것이다.
영역 전체가 바뀐 순간.
발레아가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구구구구구궁.
엄청난 진동과 함께 땅이 하늘로 솟구쳤다.
유적의 입구를 넓게 포위하듯이 높고 긴 벽이 땅에서 솟아올랐다.
콰앙! 퍽!
사방으로 달려가던 마물들이 갑자기 나타난 벽에 부딪혔다.
솟아난 벽을 뛰어넘으려던 마물들도 계속 높아지는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땅에 처박혀 버렸다.
단단한 머리를 가진 마물들이 벽을 부수려 했지만, 벽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결국, 마물들은 벽이 없는 곳으로 달려가는 방향을 바꿔야 했다.
벽이 없는 곳은 단 한 곳.
수도가 있는 방향.
기사들이 막아선 곳이었다.
마물과의 싸움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싸움이 치열해지고, 압력이 거세졌지만, 기사들은 오히려 기뻐했다.
자신들이 제국을 지킬 수 있으니, 기뻐하는 것이 당연했다.
치열해진 싸움 때문에 기사들과 다른 귀족들은 누가 이런 기적을 일으켰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뒤에서 일대 전체를 지켜보던 황태자는 누가 벽을 만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번에도 카를로스 사절단인가.”
“거기다 둘 다 여성분들이군요.”
황태자의 말에 유적에서 그와 같이 다니던 중년 귀족이 대답했다.
육체 능력자도 아닌 것 같은데, 그도 황태자와 같이 이 자리에 남아 있었다.
“평범한 사절단이 아니었군.”
귀족도 황태자와 같은 생각이었다.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 줄 생각이었나 봅니다.”
황태자는 의아한 얼굴로 귀족을 쳐다보았다.
“이런 일이 있을 줄을 알았다는 건가? 거기다 유적에 들어간 건 다른 사람인데?”
황태자의 말에 중년 귀족은 턱을 쓰다듬었다.
“저 두 사람만 특별한 걸까요? 아니면…….”
“글쎄, 그렇게 뛰어난 기사는 아니라고 들었는데…….”
황태자는 말을 하다 말고, 어깨를 으쓱였다.
이제는, 예언자의 말이 무조건 맞는 것도 아니었다.
황태자는 말을 바꾸었다.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안에서 죽지 않았으면 생각보다 대단한 기사일 테고, 그렇지 않으면…….”
죽으면 거기서 끝일 뿐이었다.
황태자는 두 여성을 기억하기로 했다.
아직 결혼도 안 한 것 같으니, 제국 가문과 결혼을 시켜서 제국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막아 내자, 유적에서 튀어나오던 마물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었다.
마물을 막아 내던 사람들의 표정은 밝아졌지만, 황태자는 의문이 담긴 눈으로 유적을 바라볼 뿐이었다.
“다행입니다. 생각보다 숫자가 많지 않을 것 같군요. 살아남은 마물이 많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부단장의 말에 황태자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이렇게 금방 멈출 숫자가 아니었어. 내가 뚫고 나온 양만 해도 이것보다 많았어.”
중년 귀족이 황태자의 말을 거들었다.
“저도 같이 봤습니다. 만약 이게 마물 웨이브와 같다면, 이게 1파가 아닐까요?”
물이 파도를 치듯이, 마물 웨이브도 파도를 만들었다.
큰 숫자의 마물들이 덩어리를 이루어 차례로 밀어닥치는 모습을 사람들은 마물의 파도, 1파, 2파로 불렀다.
두 사람의 이야기에 부단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렇다면…….”
“지금 문을 막아야지.”
부단장이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을 황태자가 끄집어냈다.
차르마니아의 성문은 닫혔고, 수도에서 기사들과 병사들을 모아 여기까지 달려오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기사들도, 뒤를 바치던 귀족들도 지쳐가고 있었다.
이 뒤에도 마물들이 계속 밀려온다면, 언제 진형이 무너질지 몰랐다.
조금 전에도 두 여성 덕에 버텼던 진형이었다.
유적을 감싼 저 높은 벽들도, 분명 능력으로 고정하고 있을 터였다.
벽이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문을 막겠습니다.”
유적 입구의 문은 평범한 철문이 아니었다.
수도 옆에 마물들을 묻어 두고, 제국이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었다.
모두 잡을 수 없다면, 절대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구해 온 유물 철문이었다.
지금 기술로는 녹지도, 부서지지도 않는 철문.
철문을 닫아버리면 병력이 도착할 동안은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다만, 안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사람들도 빠져나오지 못하겠지만.
부단장은 미련을 버렸다.
이렇게 마물이 쏟아져나왔는데, 유적 안에 있는 사람들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나중에 사건이 커질 게 분명하지만, 지금 할 일은 해야 했다.
“나를 따라와라.”
그는 손이 비는 기사들을 데리고, 입구로 달려갔다.
아직도, 유적 입구에서 마물들이 나오고 있었지만, 이 정도는 그와 기사들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다.
튀어나오는 마물들을 잘라 내며 문 앞으로 달려간 그들은 양쪽으로 열린 철문에 달라붙었다.
“모두 힘을 써라! 닫기만 하면 된다! 그 뒤는 유물의 힘으로 잠긴다!”
마물을 상대하는 기사 둘만 남고, 기사들은 모두 문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철문을 밀어붙이려는 순간.
콰콰콰콰.
그들의 발밑에서 송곳이 튀어나왔다.
“이게 무슨!”
“누구냐!”
그들이 물러서는 순간.
쿠르르릉.
철문 아래의 땅이 솟아나 철문을 뒤덮기 시작했다.
놀란 기사들이 다시 달라붙었지만, 그들보다 먼저 철문은 흙더미에 파묻혀 버렸다.
기사들은 그제야 솟아난 흙더미가 주변을 감싼 벽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같은 능력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황태자도 방해자를 노려보았다.
“제거할까요?”
그리고, 그의 옆에 서 있던 귀족이 황태자에게 물었다.
귀족의 말에 황태자가 미간을 모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황태자도 쉽게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황태자가 잠시 고민을 하는 사이, 상황이 또 한 번 바뀌었다.
“물러서! 2파다!”
“문은 포기한다!”
“진형으로 돌아가! 막아야 해!”
다시, 유적 입구에서 마물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었다.
문을 닫기 위해 애를 쓰던 기사들이 뒤로 달려가고, 자기 자리에서 한숨을 돌리던 기사들이 다시 검을 잡았다.
기사들이 돌아오자, 사방을 감쌌던 벽도 점차 아래로 가라앉았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모두 놀랐지만, 그들은 먼저 마물들을 상대해야 했다.
이번에 쏟아져 나온 마물들은 전과 달랐다.
마물들은 사방으로 퍼지지도 않고, 이리저리 재지 않고, 그대로 기사들의 진형에 들이박았다.
벽이 내려와, 다른 곳으로 달려갈 수도 있었지만, 마물은 앞으로만 달려갔다.
사람과 달라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마물들은 뭔가 급하게 허둥거렸다.
마치, 누군가를 피해 도망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마물들을 막아서던 사람들은 잠시 뒤,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쏟아져 나오던 마물 뒤로 유적에서 사람들이 빠져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안에서 죽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과 도망치며 버려두었던 사람들.
여태 보이지 않던 3 황자까지.
모두 유적 밖으로 모습을 보인 것이다.
밖으로 나온 그들 가운데에는 알렉스가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보는 햇살에 눈을 깜박였다.
유적 밖에는 아직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뭔가 복장이 이상한 카트린과 나를 보며 미소를 짓는 발레아.
그리고 뭔가 고민이 있어 보이는 황태자까지.
황태자의 표정을 보니, 이제야 조금 만족스러웠다.
기껏 사람들을 데리고 나왔는데, 황태자가 만족해했으면, 기분이 나쁠 뻔했다.
나는 놀란 눈으로 우리를 보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다들 피해요! 마물들이 계속 올라옵니다!”
사람들을 구해 오긴 했지만, 마물들을 모두 쓰러뜨린 것은 아니었다.
내 뒤에도 마물들이 가득했다.
3 황자와 사람들을 구했으니, 뒷일은 내 알 바가 아니었다.
그건 발레아도 같은 생각이었다.
벽은 다시 올라가지 않았고, 나를 따라 나온 유적의 마물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