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0화
제10편 지팡이 시연 (1)
마물들의 귀 일부를 잘라 허리에 찬 주머니에 집어넣고 있으니, 3 황자가 나에 대해 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샤를 자작이라고, 카를로스 왕국의 사절단으로 온 기사입니다.”
내가 대답하기 전에, 질문에 먼저 대답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피로스 왕국의 2 왕자. 막스 왕자였다.
3 황자의 표정이 애매해졌다.
그만큼 제국에서 나와 사절단의 위치가 애매하다는 것일 터였다.
하지만, 3 황자는 예상 이상으로 내 실력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실력이 대단하던데…….”
“카를로스 왕국 내전 중에 큰 활약을 보여서 스스로 작위를 받은 기사입니다. 그 나이대의 기사 중에는 가장 특출난 기사 중 한 명일 겁니다.”
3 황자의 말에 막스 왕자는 신이 나서 내 행적을 떠들어댔다.
막스 왕자는 내 행적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
나라도 다른데 어떻게 알고 있었던 것인지…….
“황실 기사만큼이나?”
“황실 기사에 따를 기사가 있을 리가 없죠. 하지만, 아직 그는 황실 기사가 될 나이가 아닙니다.”
역시 대단한 처세술이었다.
나를 띄우면서도 황실 기사들의 배려를 놓지 않는 저 모습은 처세술의 귀감이었다.
막스 왕자의 사탕발림이 먹힌 것인지, 3 황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에게 직접 물어왔다.
“그래. 좀 더 실력을 보고 싶은데……. 이제부터 우리와 같이 다니는 게 어떻겠나.”
3 황자의 말에 막스 왕자는 반색했다.
열심히 입을 턴 보람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3 황자와 같이 다닐 생각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같이 다닐 형편이 되지 않습니다.”
나는 거절을 하면서 눈으로 껄끄러운 표정을 하는 두 귀족을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카를로스 왕국의 사절과 같이 다니는 것은 조금 이릅니다. 아직 주의의 시선도 있고 해서…….”
내가 거절하자, 귀족 한 명이 냉큼 말을 덧붙였다.
다른 귀족도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고.
“조금 전 사냥이 어려웠던 것은 예상과 다른 마물의 습성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싸워봤으니, 다시는 이런 모습을 보여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다, 3 황자의 선임 기사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3 황자가 나와 같이 가려고 하는 진짜 이유를 알고 있었다.
황자는 호기심이 아니라, 안전 때문에 나와 같이 가고 싶어 한 것이었다.
다른 이들이 전부 반대하자, 3 황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가……. 큰 형님 쪽의 공격을 받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겠지.”
그렇게 3 황자의 그룹과는 바로 헤어지게 되었다
막스 왕자는 내가 떠나는 것을 아쉬워했지만, 나를 따라올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제국 황자에게 붙어 있는 것이 그의 살길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호위 기사들의 호언장담에 의문이 들었지만, 따로 조언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제국의 황자. 잘못돼도 상관없었다.
3 황자 일행과 헤어진 뒤에 나는 유적 깊숙한 곳으로 계속 나아갔다.
이번에는 길을 헤매지 않았다.
3 황자 쪽에서 내게 방향 지시기를 건네주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식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동서남북과 고저 차가 같이 표시되는 방향 지시기, 일종의 나침반이었다.
이리저리 꼬인 수로 덕분에 착시가 일어나는 이런 수로에서는 안성맞춤인 물건이었다.
“아니, 이 유적에 들어가려면, 이런 게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을 텐데, 나한테는 왜 안 알려줬지?”
나야 방안에 처박혀 있어서 듣지 못했다지만, 사절단 중에는 전해 들었던 사람이 있을 게 분명했다.
“뻔한 건가. 일부러 안 알려줬겠지.”
다만, 시드 백작과 그 아래 관료들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다면, 일부러 까먹었을 게 분명했다.
“이거, 같은 사절단 내에 방해자가 있다는 게 꽤 불편하네.”
뭔가 나에게 직접적인 큰 위해를 가하지 않아도, 이런 자잘한 방해만으로도 충분히 상황이 안 좋아지게 만들 수 있었다.
내가 약했다면, 지금쯤 무척이나 곤란했을 터였다.
“이건, 그냥 보내기는 좀 그렇군.”
아무래도 돌아가는 길에, 자그마한 답례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방향을 잡고 아래로 내려가니, 마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중간에 마주친 마물들은 평범하다면 평범한 마물들.
검을 쓰지 않고도 제압이 가능한 마물들이었다.
당연히 일격에 쓰러뜨리고, 증거가 될만한 부위들을 수집했다.
마물들을 처리하고, 계속 나아가니, 또다시 ‘레드 마우스’의 변종과 만나게 되었다.
“회색 쥐라고 하는 편이 맞으려나.”
변종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달라진 모습.
회색의 거대한 쥐를 보니,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마물들은 나를 보기도 전에, 멀리서부터 미친 듯이 내 쪽으로 달려왔다.
확실히 다른 마물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마물들은 전부 인간을 싫어해서 보자마자 덤벼들긴 했지만, 이렇게 보이지도 않는데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거기다, 이 변종 마물들은 어렸을 때 보았던 마물들과 달리, 광적으로 나를 공격해댔다.
다른 마물과의 연계도, 공수의 전환과 분배도 전혀 생각지 않고, 막무가내로 나를 공격했다.
일종의 광전사랄까.
나는 덤벼오는 마물들을 쓰러뜨리고, 내 몸을 확인했다.
“설마 이 지팡이 때문인가.”
지팡이가 가동되지 않아도, 특정 마물을 유인하게 되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었다.
몸에서 특별한 냄새가 나는 것 같지도 않고, 거기다, 나 말고 3 황자에게도 덤비고 있으니,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뭐, 나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알아서 덤벼들어 주니, 마물 사냥의 증거를 담은 주머니가 제법 불룩해졌다.
“그래도, 이상한 일이니까, 기억해 두고 있기는 해야겠지.”
이런 일들을 무시했다가 더 큰 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인리히의 법칙이었나?
대형사고 전에 항상 전조 현상이 일어난다는.
뭔가 조금 다른 이야기인 것 같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무시할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변종도 처리하고 계속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다 보니, 더는 내려갈 수 없는 곳에 도착했다.
수로는 무너진 천장으로 막혀 있었다.
무너져서 고립된 일부 지역에 마물을 풀었다더니, 여기가 무너진 지역인 모양이었다.
“여기도 만만찮게 넓은데, 이게 일부라는 건가.”
하긴, 과거 고대 제국의 제2 도시가 있었던 곳이었다.
그 도시의 상하수도라면 그 길이가 얼마나 될지, 예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건 일부러 무너뜨린 것 같은데…….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었나?”
들었던 것과 달리, 사냥터를 만들려고 일부러 무너뜨렸던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마물과 싸우다 무너졌을지도.
어느 쪽이든, 나와 상관은 없었다.
원하던 장소에 도착했으니, 이제 지팡이를 꺼낼 때였다.
나는 한쪽이 막힌 평범한 수로 가운데에 서서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대공녀가 수리한 지팡이.
조직에서 탐을 내고, 예언자가 직접 찾아오기까지 한 지팡이였다.
이제 이 지팡이가 얼마나 대단한 효과가 있는지 알아볼 시간이었다.
내가 이 유적에 들어온 것은 두 가지 목적 때문이었다.
하나는 내가 사절단 일원으로 어느 정도 활약을 보여 주는 것.
나와 사절단으로 뽑아준 공주가 정치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내가 이 제국에서도 나름 인지도를 쌓고, 활약을 해야 했다.
제국에 온 뒤에, 그럴 기회는 이 유적의 사냥밖에 없었다.
“황제에게 상을 받는 정도면 충분하겠지.”
나름 많이 잡기는 했지만, 그룹으로 다니는 사람들에 비하면 부족할 가능성이 컸다.
결국, 몰이사냥이 필요했다.
그 몰이사냥을 위해서라도, 두 번째 목적인 ‘지팡이 테스트’가 필요했다.
마물이 없는 곳에서 써봤자, 확인할 수 없었고, 봉인지 같은 곳에서 쓰다가는 마물의 파도에 묻혀버릴 게 분명했다.
지금처럼 정해진 숫자의 마물만 있는 것이 테스트에는 제일 좋았다.
이곳처럼 깊은 곳이라면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도 않을 테고.
푹.
나는 지팡이를 마른 수로 가운데에 박아넣었다.
그리고, 수로 가운데 박힌 지팡이에 손을 올렸다.
“얼마나 살아남았는지 모르겠지만, 남은 마물을 최대한 끌어모아 보자고.”
나는 지팡이에 마나를 흘려 넣었다.
우우우우웅.
마나를 밀어 넣자, 지팡이가 울기 시작했다.
그 뒤에, 지팡이에 들어가서 변형된 마나가 땅을 통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아주 약하고, 나조차도 느끼기 어려운 마나였다.
나는 지팡이에 불어넣던 마나를 거두었다.
하지만, 지팡이가 퍼트리는 마나는 멈추지 않았다.
내가 깨운 유물 지팡이가 이제는 알아서 대기 중의 마나를 흡수하고 있었다.
아주 작은 양이었지만, 지팡이가 퍼트리는 마나도 그 정도밖에 안 되었다.
“생각보다 적은데, 이런 양으로 유인이 되려나.”
걱정되었지만, 나는 직접 찾아왔던 예언자를 믿고, 계속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
하지만, 잠시 뒤.
찾아오라는 마물들은 오지 않고, 다른 것이 찾아왔다.
쿠구구구구궁.
지진이었다.
땅이 울리고, 벽이 흔들렸다.
‘마물을 불렀는데 왜 지진이 나지? 설마 지진을 일으키는 지팡이였나?’
놀라 지팡이를 쳐다보았지만, 지팡이는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지팡이를 지켜보는 사이에도 지진이 계속되었다.
쿠구구구궁.
이제는 수로의 양 벽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수로를 막아서던 벽이 조금씩 허물어졌다.
그리고, 바닥마저 불쑥 솟아났다.
그 틈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들.
“젠장, 이건 지진이 아니잖아.”
나는 신검을 뽑아 들었다.
사방에서 마나가 밀려오고 있었다.
마물의 마나였다.
마물의 마나는 반대편 통로가 아니라, 벽에서, 바닥에서, 무너진 통로 뒤에서 느껴졌다.
마물들이 벽과 바닥, 수로를 부숴대고 있었다.
결국, 벽이 무너지고, 막힌 수로가 뚫려버렸다.
바닥도 무너져서, 나는 지팡이를 회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너진 벽과 바닥에서 마물들이 튀어나왔다.
먼저 튀어나온 마물들은 거대한 지렁이들이었다.
크와아아아악!
수 미터가 넘는 지렁이들의 둥근 입에는 수천 개의 칼날이 빼곡히 달려 있었다.
지렁이 마물들은 그 칼날들로 수로의 벽과 바닥을 뚫은 것이었다.
밖으로 튀어나온 지렁이 마물들은 나를 공격하지 않고, 마구 몸을 비틀었다.
뭔가 잘못 먹은 짐승처럼, 꼬리로 뭉개진 돌과 흙을 쏟아냈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지진은 이 지렁이 마물들이 벌인 일인 듯했다.
지렁이 마물들은 내가 있는 곳에만 튀어나오는 게 아니었다.
내가 지나온 통로. 뒤쪽 통로에도 계속 마물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거기다, 튀어나온 마물들은 하나같이 땅을 구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지렁이 마물들은 지팡이에 유인되어서 이렇게 튀어나온 것 같았다.
좋아하지도 않는 돌들을 씹어먹어서 저렇게 괴로워하는 것일 테고.
혼자 난리 치는 지렁이 마물들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아 보였다.
다만, 지렁이 마물들이 사방에 구멍을 뚫고 있어서, 수로 자체가 위험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
거기다, 한 가지 문제가 더 생겼다.
지렁이 마물들이 뚫어놓은 구멍에서 다른 마물들이 쏟아져나온 것이다.
하얗게 변한 거대한 지하 곤충들.
변형된 마물들이 구멍에서 끝없이 쏟아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