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9화
제9편 생일 기념 사냥 (3)
그동안, 지하 유적들을 잘만 돌아다녀서 자신감이 너무 커졌던 모양이었다.
규칙 없이 만들어진 중세 도시의 상하수도가 얼마나 복잡한지, 한참을 헤매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바닥 판 모양으로 만들어진 수로도 아니었고, 층층이 층으로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계단도 이리저리 얼기설기 얽혀 있었고, 바닥에 물도 없어서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따라갈 수도 없었다.
하기야, 물이 없는 게 당연할지도 몰랐다.
수백 년간 버려지다시피 한 곳이니, 수로 자체도 멀쩡할 리가 없었다.
“괜히 나를 비웃는 게 아니었어.”
다른 이들이 전부 그룹을 만든 것도, 혼자 들어가는 나를 비웃는 것도 전부 이유가 있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무턱대고 헤매면 곤란한데…….”
물론, 내가 사람들이 끌고 와서 풀어놓은 마물들에게 당할 리도 없었고, 황제가 보고 있는 행사인데, 유적에 사람을 버려둘 리도 없었다.
하지만, 다 끝난 뒤에 사람들에게 구출되는 것도 꼴사나웠고, 이런 식으로 돌아다니다가는 마물을 잡기도 어려웠다.
지팡이를 쓴다고 해도, 효과가 예상보다 짧다면, 마물을 한 마리도 못 잡게 될 수 있었다.
결국, 이 지하 유적의 구조를 파악할 때까지만이라도, 다른 그룹을 찾아 빌붙어야 했다.
“몰래 쫓아다니면 되겠지.”
나는 먼지가 쌓인 수로 중앙에 앉아 마나를 퍼트렸다.
그다음에는 감각을 키우고, 귀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멀리 마나가 퍼져나갔다.
감각으로 주변의 많은 정보를 확인해 나갔다.
그리고, 작은 소리가 귀로 모여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니, 결국, 퍼트린 마나에 다른 마나가 걸려들었다.
빙고.
가까운 곳에 사람이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나가 느껴진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리저리 수로를 돌아가니, 내 감각에도 사람이 느껴졌다.
다만, 감각에는 사람만 느껴지는 게 아니었다.
공기를 흔드는 거친 기백과 이곳까지 흘러오는 살기.
이건 마물이었다.
“마물과 마나를 가진 사람이라……. 사냥 중인가?”
흑백으로 보이는 세상에서 나는 걸음을 더 서둘렀다.
그렇게 좀 더 다가가자, 이제는 소리도 들려왔다.
“누구 없나!”
크아아앙!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검술도 더 연습하는 건데!”
마물들의 괴성 사이로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이 목소리는 분명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였다.
“설마…….”
나는 황당한 마음으로 수로를 달려 나갔다.
그렇게 속도를 올리자, 곧 소리가 들렸던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늑대보다 큰 마물 셋과 싸우는 기사가 있었다.
아니, 기사라기보다, 화려한 갑옷을 입은 왕자가 있었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살덩이가 벗겨진 마물 세 마리와 싸우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아는 왕자.
이피로스 왕국의 2 왕자인 막스 왕자였다.
이피로스 왕국은 제국의 속국에 가까운 왕국이었으니, 황제의 생일에 이피로스도 사절단을 보내왔다.
그 사절단에 막스 왕자가 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막스 왕자는 사과하기 위해 직접 제국에 온 모양이었다.
여왕의 병력을 묶어 놓으라는 제국의 지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으니, 사과하기 위해 당사자가 제국을 방문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던 막스 왕자라면 본인이 사절단에 참가하겠다고 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 왕자가 유적 지하에서 마물들과 혼자 드잡이질을 하다니…….
어떻게 이렇게 된 것인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젠장! 부하들이라도 있었으면, 이곳이 지상이었으면, 이런 꼴을 안 당하는 건데.”
왕자는 투덜거리면서도 열심히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입과 화려한 갑옷과 달리, 그의 검술은 형편없었다.
겨우 수련 기사를 넘어서는 정도로 보이는 그의 실력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검에서 세 가닥 빛이 튀어 나가고, 마물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케엥! 켁! 컹!
빛의 선에 잘려 나가는 마물들을 보고 막스 왕자는 반색했다.
“엇! 누구?”
그는 고개를 돌려, 내 쪽을 쳐다보았고, 나는 그에게 인사를 했다.
“오랜만입니다. 막스 왕자님.”
“아……. 알렉스 공. 아니 샤를 자작이라고 했지?”
나를 보자, 왕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는 시무룩한 왕자를 무시하고, 마물들의 귀를 베어냈다.
시체가 돈이 되는 마물들이 아니었으니, 내가 잡았다는 증거가 될만한 부분을 가져가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마물의 귀를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왕자가 표정을 바꾼 채로 내게 다가와 있었다.
“내전이 끝나고 처음 본 거지? 샤를 자작은 정말 매번 볼 때마다, 달라지는 것 같아. 공주의 호위 기사에서 내전의 영웅이 되고, 이제는 작위를 받아서 제국에 사절로 오게 되었잖은가.”
그는 밝은 표정으로 신나게 나를 칭찬했다.
“샤를 자작의 나이대에서 그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는 사람은 이 대륙 안에는 한 명도 없을 거야. 그리고…….”
그냥 놔두면 칭찬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다. 나는 무례하게도 그의 말을 끊고,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여기 계신 겁니까?”
내가 말을 끊었지만, 그는 무례하게 여기지 않았다.
대신, 다시 우울해 보이는 얼굴로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때, 내가 속았을 줄은 생각도 못 했어. 병사들이 다 빠져나갔다는 것을 알게 된 뒤에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그가 처음 꺼낸 이야기는 예상대로 이피로스 군을 이끌고 왕국을 침범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내가 그를 지그시 바라보자, 그는 급하게 손을 흔들었다.
“아니, 아니, 그때의 일로 뭐라 하는 것은 아니야. 실력을 겨루어서 내가 진 거니까.”
그의 표정도 말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처음에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이 왕자는 뒤가 없는 깔끔한 사람이었다.
“문제는 그 일로 인해, 왕국에서의 내 실권이 다 날아가 버리게 되었지.”
확실히 내 예상대로 일이 진행된 모양이었다.
그는 쓰러진 마물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봤던 것처럼, 내 실력은 형편없어. 그동안 열심히 줄을 타는 것으로 버텨내고 있었는데, 결국, 그 줄이 끊어진 거야.”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제국의 사절단에 참여한 거야. 제국의 줄이라도 잡으면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하고…….”
내 예상과 다르지 않은 설명이 쭉 이어졌다.
거기다, 유적에 들어온 이야기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여기에 온 것도 같은 이유에서야. 3 황자님과 같이 다니게 되면 뭔가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한 거지.”
거기까지는 이해가 되는 이야기였다.
다만 그 뒤가 문제였다.
“그런데 왜 여기 혼자 계신 겁니까?”
“그게 우리 일행에 마물들이 들이닥쳐서 싸우다 보니, 이렇게 낙오한 거라…….”
싸우다 낙오했다고?
설마, 일에 실패했다고 나와 같은 꼴을 당한 건가?
왕자가 내 생각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아니, 버려진 것은 아냐. 예상보다 위험한 마물들이 나와서 이렇게 된 거야. 아, 맞다!”
말을 하다 말고, 그가 소리쳤다.
“3 황자님이 위험해. 그 마물들은 계속 황자님만 공격하려고 했어.”
여러 종류의 마물들이 모여 황자 일행을 습격한 모양이었다.
위험하다는 마물들은 내가 죽인 마물들과는 다른 마물인 듯했고.
마물에게 습격당한 황자라…….
이건 좋은 기회였다.
“3 황자님의 일행은 어느 방향으로 갔습니까?”
내 말에 막스 왕자가 가운데 길을 가리켰다.
나는 그 길로 마나와 감각을 퍼트렸다.
집중을 하니, 멀리 사람들의 마나와 마물과 사람이 싸우는 기색이 느껴졌다.
“가시죠. 아직 싸우고 있습니다.”
“좋았어. 역시 그냥 죽으란 법은 없지!”
내 말에 막스 왕자가 반색했다.
그는 내가 제국의 황자를 구하는 동안, 뭔가 이익을 취할 모양이었다.
그거야 알아서 할 문제였고, 솔직히 그의 생각대로 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따라오십시오.”
나는 그에게 말을 남기고, 앞으로 쏘아졌다.
“같이 가!”
뒤에서 막스 왕자의 음성이 들려왔지만, 나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렇게 한걸음에 달려가 보니, 한참 마물들과 싸우는 사람들이 보였다.
막스 왕자의 말대로, 3 황자 일행이었다.
황자와 네 명의 호위 기사 그리고 두 명의 귀족.
화사한 미모를 자랑하던 황자가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열심히 검을 휘두르고 있었고.
그의 일행과 기사들도 열심히 마물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딱 봐도 3 황자 일행은 마물에 밀리고 있었다.
3 황자의 기사들과 그의 일행도 약한 편은 아니었다.
사절단을 호위했던 볼프 기사 정도로 강한 기사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몇몇 기사는 왕국의 왕실 기사 정도는 되어 보였다.
그런 기사들이 이렇게 밀리다니.
확실히 지금 덤비고 있는 마물들은 평범한 마물들이 아니었다.
쥐를 닮은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진 회색 마물들.
나는 저 마물들을 본 적이 있었다.
“변형된 레드 마우스…….”
어렸을 적, 카트린과 함께 무덤 아래에 떨어졌을 때 동굴에서 만났던 마물.
단도를 찾았던 그 동굴과 유적에서 보았던 그 마물이었다.
레드 마우스라 불리는 봉인지의 마물이 깊은 땅굴에 갇혀서 변형되었다는 마물.
물론,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다.
덩치도 더 크고, 발톱도 이빨도 더 날카로웠다.
이 마물들은 어렸을 때 보았던 두 어미 마물들보다 더 강해 보였다.
어렸을 때의 나였으면, 상대하기 불가능한 마물들이었다.
지금 3 황자 일행과 싸우는 마물들은 어렸을 때 본 마물들의 업그레이드판이었다.
“저게 왜 여기 있지?”
문제는 이 유적에 저 마물이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유적에 들어올 때, 기사가 말했었다.
이번 유적의 마물들은 이번에 제국을 습격한 마물들을 잡아들여서 유적에 풀어놓은 것이라고.
나도 협곡에서 그 마물들을 보고, 싸웠었다.
그중에 레드 마우스도 없었고, 저렇게 변형된 마물들도 없었다.
의문이 커졌지만, 지금은 의문을 해결할 시간이 아니었다.
나는 검을 들고, 싸움에 뛰어들었다.
3 황자 일행이 마물에게 밀리는 이유는 마물들이 어둠에 특화된 마물들이라는 점이었다.
마물들은 처음부터 횃불을 공격해, 주변을 어둠으로 감싸버렸다.
마나를 가진 이들이라 해도, 어둠 속을 모두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뛰어난 기사라도 가까운 곳의 실루엣만 볼 수 있을 정도였다.
3 황자 일행은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약점은 나와는 상관이 없었다.
실력도 뛰어났지만, 내 ‘마나 감응력’은 이런 어둠 속에서도 낮과 다름없이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어둠에 특화된 마물들이었지만, 나와 싸우게 되니, 그 장점은 아무 소용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내가 뛰어든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마물들은 모두 차가운 시체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빨리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마물들 때문이었다.
이 마물들은 좀 이상했다.
3 황자만 노리던 마물들이, 내가 뛰어들자, 나도 같이 목표로 삼아버린 것이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나는 우선 마물들의 귀를 잘랐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득이 생겼을 때 확실히 챙겨야 했다.
3 황자도 다른 사람들도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갑자기 벌어진 이상한 일들.
역시, 유적에 들어왔는데, 평범하게 지나갈 리가 없었다.
나는 가슴을 쓰다듬었다.
이렇게 된 이상,
최대어와 최다어.
아니, 제일 강한 마물과 가장 많은 마물을 잡는 사람에게 주는 상을 전부 타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