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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358화 (358/563)

제358화

제8편 생일 기념 사냥 (2)

제국 수도 바로 옆에 있는 유적은 지상에 남아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았다.

대전쟁으로 폐허가 된 옛 도시의 자재들은 제국의 수도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남은 부분들도, 고대 제국을 잇는다는 말과 달리, 사람들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교단과 제국 수뇌가 흔적을 지워버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결국, 남은 것은 과거 도시의 지하 부분이었다.

지하실과 창고, 거미줄같이 이어진 지하 수로까지.

시간이 지나, 많은 곳이 무너졌지만, 아직도 옛 도시의 지하는 전부 탐색이 안 되었을 정도였다.

제국 황실은 무너져서 고립된 유적 지하 일부에 마물을 풀어, 지금처럼 사냥하곤 했다.

마물을 잡아와서, 수도 옆 유적을 봉인지의 유적처럼 만들다니.

이건 제국 황실만 할 수 있는 무식한 짓이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은 그 마지막 남은 지상 유적 앞에 모여 있었다.

반쯤 허물어진 건물 중앙에 지하로 나 있는 계단.

그리고, 계단 좌우로 활짝 열려 있는 철문.

철문이 깨끗한 것을 보니, 나중에 달아놓은 모양이었다.

“제국 수도 옆에 이런 유적이 남아 있다니. 지하 유적과 연결된 이 건물은 무슨 건물이었을까요?”

“연구소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요?”

“군 기지 같은 곳일지도?”

출발하기 전, 황제가 연설하기 위해 연단에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데, 옆에서 그런 대화가 들려왔다.

다른 나라에서 온 사절단들이었다.

대륙의 남쪽에서 온 사절단이라서 그런지, 얇은 옷을 몇 겹이나 덧입고 있었다.

“알렉스는 무슨 건물인 것 같아요?”

내 옆에 있던 발레아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내게 물었다.

도시의 지하 수로로 다닐 수 있도록 만든 건물이라면 한 가지밖에 없었다.

“상하수도 관리 건물이겠죠. 외주를 줬다면 용병 쪽 건물일 테고.”

나는 발레아만 듣도록 작게 답해주었다.

“설마, 그럴 리가?”

하지만, 내 말에 놀란 사람은 발레아가 아니었다.

옆에서 대화하던 사람들이 놀라서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누가 말한 거야?”

“나는 아닌데?”

“이게 어디서 들린 소리지?”

그들의 표정을 보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발레아가 능력을 써서 내 음성을 그들이 듣도록 한 것이었다.

발레아는 어리둥절한 사람들을 보고 쿡쿡 웃었고, 나는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애 앞에서는 냉수도 함부로 마시지 못한다고 하더니, 발레아에게는 함부로 능력을 부탁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발레아가 장난을 치는 사이, 황제가 연단에 올라, 연설을 시작했다.

죽기 전까지 골골하던 카를로스의 선왕과 달리, 제국의 황제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건강해 보였다.

머리도, 수염도 전부 하얗게 변했지만, 덩치도 컸고, 연설하는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제국은 대전쟁 때 마물에게 당했던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 우리는 지금도 계속 봉인지에 마물을 가둬 놓고, 감시하고 있고, 이렇게 때마다 마물과의 싸움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정도면 황태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려나?’

건강한 황제를 보며 떠올린 생각이었지만.

연단 아래에 모여 있는 황제의 자식들을 본 뒤에는 그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연단 아래에 모여 있는 세 황자.

그중에 황태자가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제일 나이가 많은,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선 굵은 미남.

그가 바로 황태자였다.

다른 황자들도 다들 미남이긴 했다. 잘생긴 걸로 따지면, 다른 두 황자가 더 잘생긴 것 같았지만, 황태자처럼 눈에 확 들어오지 않았다.

누가 비둘기파이고, 누가 매파인지도 첫눈에 알 수 있었다.

중세 판타지 영화의 주인공인 황태자와 순정만화의 황자들이라고 하면 너무 과한 이야기일까.

황자들을 보니, 카를로스 왕국처럼 황태자에 대들어 내전을 벌일 만한 사람은 없어 보였다.

제국에게는 좋은 일이겠지만, 나와 카를로스 왕국에는 좋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렇게 황족들을 살피고 있으니, 황제의 연설이 끝났다.

“유적에 들어갈 분들은 모두 앞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기사가 유적 앞에 서서 마나를 실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살살해!”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나는 카트린과 발레아의 응원을 받으며 기사 앞으로 걸어갔다.

다른 곳에서도 귀족들과 기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황태자와 그의 수행원들.

다른 황자들과 기사들.

여러 그룹으로 뭉친 귀족들과 기사들까지.

다른 나라의 사절단에게서도 기사와 귀족이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사절단은 정식으로 이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제국의 포용을 보여 주는 형식적인 참여일 뿐이었다.

그래서, 사절단들은 한 명씩밖에 참여하지 않았고, 그들은 각각 전부터 이야기해놓은 그룹에 들어갔다.

하지만, 나는 참여할 곳이 없었다.

제국의 초대를 받은 것도 처음이었고, 얼마 전에 싸우기까지 했는데, 사이가 좋은 이들이 있을 리가 없었다.

2 황자 쪽에 우리를 호위하던 볼프 기사가 끼어 있는 게 보였지만, 내 쪽을 안 보는 것을 보니, 볼프 기사도 권유를 안 할 모양이었다.

뜬금없이 왕따 비슷하게 되어버렸지만, 나는 이게 오히려 편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계단 앞에 선 기사에게 설명을 들었다.

“이 계단 아래, 지하 유적에는 여러 곳에서 잡아 온 마물들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약한 마물부터, 봉인지에 있을 만한 마물까지 다양한 마물이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설명이었지만, 그 뒤에 이어진 말은 조금 색달랐다.

“특히 이번에는 얼마 전 제국 남부를 휩쓸었던 마물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전보다 훨씬 위험합니다.”

“오오! 그 마물들이 있다는 건가.”

“잘됐군. 나도 한 손을 더하고 싶었는데, 여기서 싸워 볼 수 있다니.”

기사는 조심하라고 꺼낸 말이었지만, 모인 사람들은 기사의 말에 더 눈을 반짝였다.

기사는 주의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무엇보다, 사고가 생길 가능성이 크니, 스스로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지금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앞의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더구나, 이 말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 같았다.

나를 똑바로 보고 하는 말이었으니, 내게 하는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마음에 안 드는 카를로스 왕국의 사절에다가, 혼자 서 있으니, 표적이 될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기사가 나를 보며 말을 끝내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나를 보고 피식거렸다.

방안에 처박혀 있어서 몰랐는데, 사람들은 생각보다 우리 왕국을 싫어하고 있었다.

뭐, 누가 원인이던 싸웠던 상대를 좋아하는 법은 없으니, 그들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되진 않았다.

하지만, 내가 그런 행동을 곱게 받아들일 이유도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도, 내가 여기서 물러날 이유가 없었다.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기사는 모두를 쳐다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이 안에서 가장 위험한 마물을 잡거나, 가장 많이 잡으신 분들은 폐하께서 따로 시상하실 것입니다. 모두 최선을 다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시상품으로 꽤 좋은 유물이 나온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유물을 노리는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시상 그 자체, 황제와 다른 이들의 눈도장을 받을 생각들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기사가 계단 옆으로 물러섰다.

사냥을 시작하라는 뜻이었다.

사람들이 계단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왕따인 내가 선두에 나서거나, 중간에 끼어들 수도 없으니, 맨 뒤에 서서 사람들이 모두 내려가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뜻밖의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선 굵은 멋진 황자, 이 제국의 황태자가 내게 다가온 것이다.

“반갑군. 난 레오폴트 폰 오토네.”

“처음 뵙겠습니다. 알렉스 디 샤를입니다.”

그의 인사에 나는 평범한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그는 비꼬는 것인지, 칭찬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카를로스 왕국의 사절단 대표로 왔다고 들었네. 젊어 보이는데 이렇게 대표로 나오다니, 정말 대단하군.”

“감사합니다.”

무슨 뜻이었건 간에 나는 감사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네.”

그는 내 어깨를 두들기더니,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뒤에 남은 나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왜 온 것인지, 저 황태자가 단지 인사를 하려고 온 것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소외된 사절을 배려하는 황태자의 모습이 돋보이는 장면일 뿐이었다.

황당해하는 나를 남기고, 황태자는 일행과 함께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그들이 마지막이었다.

나도 정신을 차리고, 그들을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 * *

곳곳에 불이 밝혀져 있어서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황태자 일행은 무척이나 편한 얼굴로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평범하게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아니라, 이리저리 굽이치고 갈라진 계단.

복잡한 지하 수로와 이어진 계단답게 무척이나 복잡했다.

먼저 들어간 자들은 이미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뒤에 따라오고 있을 카를로스 왕국의 소년 기사도 다른 길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황태자가 호위 기사에게 신호를 보내자, 그는 주변에 방음벽을 펼쳤다.

일행 중에서 황태자와 같이 걷고 있는 귀족만 포함된 방음벽.

황태자의 호위 기사도 실력이 범상치 않았다.

황태자가 옆에서 같이 걷고 있는 귀족에게 물었다.

“그놈들은 잘 풀어놓았겠지?”

그의 질문에 중년의 귀족이 대답했다.

“네. 지금도 깊숙한 곳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럼 준비는 끝난 거군. 표적들에는 내가 유인할 향도 묻혀놓았으니까.”

황태자의 말에 귀족은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태자께는 많은 귀족과 기사들이 있습니다. 평범한 기사에게까지 직접 하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의 말에 황태자가 고개를 저었다.

“동생들에게 묻혀놓는 김에 한 명 더 추가한 것뿐이야. 괜히 여러 사람이 움직일 이유가 없어.”

“하지만, 만에 하나 옥체에 문제가 생기실 수도 있습니다.”

“그걸 걱정했으면, 이 안에 들어오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지금은 황태자님 주위에 태자님을 보호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미 지난 일이야. 앞으로 고려해보지.”

“거기다, 이번 일도 걸리는 곳이 많습니다.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작지 않습니다. 향을 묻혀놓았다고 마물이 우리 뜻대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니까요.”

귀족의 말에 황태자가 피식 웃었다.

“죽어도, 죽지 않아도 상관없어. 마물에 대한 경각심을 키우고, 동생들이 겁을 먹기만 해도 나쁜 일은 아니니까.”

그는 고개를 돌려 귀족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보다, 다른 피해자가 많이 나오지 않게 노력해 줘. 전부 이 제국의 시민들이야.”

“알겠습니다.”

황태자의 말에 귀족은 고개를 숙였다.

그 뒤에, 마지막으로 꺼낸 황태자의 말은 외국에서 온 기사에 대한 것이었다.

“카를로스 왕국에서 온 기사는 웬만하면 유적 안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고. 지팡이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도 조직의 일을 막아선 자를 그냥 놔둘 수는 없지. 사절단을 공격하긴 그렇지만, 이 정도 사고는 괜찮을 테니까.”

“네.”

그런 이야기를 하며 황태자 일행이 유적 깊숙이 내려간 그 시간.

나는 갈림길에 서서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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