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354화 (354/563)

제354화

제4편 예언자의 이야기 (2)

예언자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거기다, 대충 옷으로 묶어 놓았는데도 움직이기 불편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각성한 귀족이니 격한 움직임에도 목이 부러지거나 하지는 않을 테고.

그래서인지, 나는 꽤 수월하게 요새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막아서는 병사와 기사를 날려버리고, 나는 요새의 성벽을 넘었다.

요새를 빠져나오면서 열심히 예언자의 얼굴을 보여준 덕에 화살을 날리는 병사는 없었다.

“화살은 안돼! 중요한 분이 다칠 수 있어!”

날리려 해도 주변에서 말렸고.

“빨리 연락해! 율리아 님이 납치되었어!”

위에다 보고하라고 소리치는 기사도 있었다.

내 예상대로 요새에는 조직원들이 더 있었다.

그녀 말대로 예언자가 중요하다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호위를 한 명만 둘리가 없었다.

성벽을 뛰어내린 나는 북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쫓기 어려운 속도지만, 말은 따라올 수 있는 속도로.

추적자들이 나를 놓치지 않을 정도로 달려 나갔다.

나는 뒤에서 따라오는 마나들을 확인하면서 계속 길을 달렸다.

놀란 상인들을 지나가고, 허둥거리는 용병들을 피해, 계속 달려가니, 숲이 끝나고 벌판이 나타났다.

황야에 가까운 벌판.

없어진 삶에서 한번 와 봤던 곳이었다.

그때도 추격대에 쫓기면서 여기에 왔었다.

그때는 저 들판에 천막이 하나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천막 안에는 대공녀와 투레 백작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빈터였다.

투레 백작도 없고, 대공녀도 없었다.

나도 혼자가 아니라, 등에 예언자를 지고 있었다.

비슷하지만 다른 상황.

나는 천막이 있던 장소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감탄을 했다.

“이래서 여기에 천막을 쳤구나.”

천막이 있던 장소는 주변이 모두 보이는 얕은 구릉이었다.

북쪽으로 끝없는 평야가 펼쳐져 있었고, 남쪽으로는 끝없는 숲과 희미하게 보이는 산맥이 둘러쳐져 있었다.

광활하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이런 광경을 놓칠 수는 없었다.

나는 여기에 자리를 펴기로 했다.

나는 유물 주머니에서 캠핑 장비를 꺼냈다.

여러 가지 개선을 한 덕분에 천막도 다른 장비들도 좁은 유물 주머니 입구를 통해 빠져나올 수 있었다.

기절한 예언가를 바닥에 던져놓고, 쇠사슬로 칭칭 감아놓았다.

이어서 나는 캠핑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천막을 치고, 모닥불을 피우고.

그 위에 냄비를 걸치고, 음식까지 넣으니.

손님들이 숲에서 모습을 보였다.

요새에서 출발한 추격대였다.

나는 대검을 들고, 앞으로 걸어갔다.

손님은 미리 마중을 가는 게 예의였다. 기껏 준비한 캠핑이 망가지는 것도 곤란했고.

“인질과 떨어졌다! 공격!”

내가 천막에서 떨어지자, 숲을 빠져나온 기사들이 이때다 싶은지, 힘차게 말을 몰았다.

몇몇 기사들은 말을 달리면서 쇠뇌를 쏘았고, 창을 던지는 기사도 있었다.

아무래도 생각보다 위험했다.

잘못하다가는 캠핑을 망칠 것 같았다.

나도 달려오는 기사들을 향해 마주 달려 나갔다.

서걱. 서걱. 쾅!

“으아악. 괴물!”

“흩어져! 모이면 같이 당할 뿐이야!”

“안돼, 붙어! 멀리 떨어져도 당한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크악!”

이리저리 몸을 날리며 검을 휘두르니, 비명과 고함이 귀를 어지럽혔다.

하지만, 그런 소리는 자주 들어서 싸움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소리도 오래가지 않았다.

더 열심히 검을 휘두르니, 얼마 안 있어 벌판은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대검에 묻은 피를 털고, 캠핑 장소로 걸어갔다.

다행히 천막 쪽에서 바람이 불었다. 천막에 다가갈수록 음식 냄새가 피비린내를 덮어주었다.

나는 냄비 안을 확인한 뒤에 입을 열었다.

“정신을 차렸군.”

쇠사슬에 묶인 채로 바닥을 구르고 있던 예언자가 상체를 일으킨 채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이가 도대체 몇인 거죠?”

“별로 동안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니, 그 나이에 그렇게 능숙하게 싸울 리가 없어요. 이건 단순히 천재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예언자의 말이 맞았다.

나와 싸우다 죽은 알리나도 30대 중반은 되어 보였었다.

다른 실력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나 정도로 검술이 무르익으려면 적어도 30은 넘고, 수많은 사선을 넘었어야 했다.

따지고 보면, 나도 마찬가지였고.

나는 어깨를 으쓱하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는 국자로 냄비를 휘저은 뒤에 국자를 꺼내 맛을 봤다.

무척 맛이 있었다.

아무래도 바쁘게 움직이느라 식사를 건너뛰었기 때문인듯했다.

“저 기사들은 단지 요새에서 출발한 일차 추격대일 뿐이에요. 저들을 죽였다고 추격이 멈출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

“그런데, 왜……. 여기서 이렇게…….”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지. 아까 말했잖아.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내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해야 할 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조직의 비밀을 말할 생각은 없어요.”

“그것도 궁금하긴 하지만, 우선 듣고 싶은 것은 당신이 봤다는 미래야.”

나는 냄비에 국자를 넣어 휙휙 휘저었다.

“조직이라는 곳이 열심히 뛰어다니는 이유. 이 대륙이 위한다는 그 이유. 그건 말해 줄 수 있지 않아?”

내 물음에 예언자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 예지를 막았으니, 당신도 예언자가 아닌가요? 당신도 볼 수 있을 텐데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녀 말대로 미래를 확인하고 돌아올 수도 있을 터였다.

늙어서 죽기 직전까지 ‘저장 시점’을 만드는 것을 거절하고 먼 미래까지 확인하고 다시 돌아오면 될 터였다.

다만, 그런 식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잘못해서 중간에 죽기라도 한다면, 수십 년을 또 반복해야 했다.

그런 짓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내가 당신의 능력을 막은 것은 맞는 것 같지만, 내가 예언가인 것은 아냐.”

“그럴 리가…….”

“어쨌거나 그것도 말할 수 없나?”

이것도 안 된다면, 시작부터 고문을 해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웬만해서는 그냥 말해 주었으면 했다.

고문 뒤에 식사하기는 좀 그랬다.

예언자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마왕이 봉인을 깨고 나올 거예요.”

그녀가 꺼낸 말은 솔직히 놀랄만한 말은 아니었다.

봉인되었다는 것은 언제인가는 깨고 나올 수 있다는 말이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언제?”

“시기는 정확히 보지 못했어요. 당신이 제 예지를 막은 것처럼 봉인된 마왕도 제 시야를 가리니까요. 다만, 적어도 수년, 지금으로부터 십 년 내에요.”

“이런…….”

늦어도 10년 내라.

이건 나도 놀랄 이야기였다.

다른 사람들이 안다면, 대 폭동이 일어날 말이었고.

물론, 예언자의 말이 진실이어야만 했다.

다만, 예언자는 확신에 차 있었다.

“당신 때문에 미래가 보이지 않고, 틀어진다고 해도 마왕이 봉인을 깨는 시기는 바뀌지 않을 거예요. 외부의 요인과는 관계가 없는 거니까요.”

그녀의 말대로라면, 마왕이 봉인을 깨게 된 것은, 단지 시간이 지나서 봉인이 약해졌기 때문이라는 소리였다.

“거기다, 마왕이 나오기 전부터 봉인지의 마물들은 날뛰기 시작할 거예요.”

이어서 하는 말은 더 기가 막혔다. 봉인지의 마물들이 날뛴다니.

“마왕의 앞길을 준비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마왕의 마나가 마물들을 폭주시킨 것인지 모르겠지만……. 마물과 마물 왕들은 마왕이 봉인을 깨기 전부터 봉인지 밖으로 쏟아져 나올 거예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북쪽의 벌판과 남쪽의 숲과 산맥을 바라보았다.

“마물은 퍼져나갈 거에요. 제국과 다른 왕국, 대륙 전체에.”

쇠사슬로 묶여 있었지만, 벌판 위에 서서 예언을 말하는 예언자는 확실히 신비해 보였다.

“그리고, 저와 조직은 마물과 마왕에게서 세상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에요.”

그녀는 마지막 말은 나를 똑바로 보며 끝을 맺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무척이나 존경할만한 이야기였지만,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나는 유물 주머니에서 지팡이를 꺼냈다.

“그 세상에는 제국밖에 없는 모양이군. ‘마물을 부르는 지팡이’가 필요했던 것을 보면, 제국으로 향할 마물을 다른 나라로 보낼 생각이었겠지?”

예언자는 멍하니 내 손에 들린 지팡이를 쳐다보았다.

“그 지팡이는……. 당신이 그 영주였나요?”

“그래. 알렉스 디 샤를 자작이다.”

“그래서 지팡이를 구하지 못한 거군요. 당신이 미리 알고 있었기에.”

아무래도 내가 예언자가 아니라는 말은 믿지 않게 된 모양이었다.

“그래서, 왕국의 일이 계속 실패한 거고……. 왕국의 미래가 제일 먼저 안 보인 거군요.”

예언자는 그동안의 일이 이해되기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혼자 고개를 끄덕이다가 내게 물었다.

“혹시 왕국에도 비슷한 조직이 있나요?”

“아니.”

내 말에 예언자는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그럴 리가……. 미래를 안다고 해도, 그걸 다 혼자서 막아 낼 수는 없는데.”

확실히 내가 예언자였으면, 전부 막는 것은 무리였다.

중간에 실패도 여러 번 했었고, 과거로 돌아가지 않았다면, 중간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었다.

“그 일들을 당신이 하신 게 맞다면, 제가 뭐라 할 말이 없어요. 마왕이 봉인을 깨기 전까지는 제국의 힘을 유지해야 했어요. 온전한 제국의 힘이 아니라면 마왕을 막을 수 없어요.”

“제국이 온전한 상황이면 마왕을 막을 수 있나?”

“그건……. 마왕의 힘에 막혀서 볼 수가…….”

“결국, 모른다는 소리군.”

“하지만, 제국이 막을 수 없으면 다른 어떤 나라도 막을 수 없어요!”

예언자는 내게 소리쳤다.

전과 달리, 그녀의 외침은 슬프고, 처연했다.

수많은 갈등과 고민을 한 사람이 토해내는 말.

하지만, 나는 그녀의 감정이 전혀 와닿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그녀가 말한 방법이 맞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건 내가 제국인일 때 이야기였다.

나 한 명이 죽어서 친한 열 명이 산다고 해도 고민할까, 말까인데.

조금 더 확률을 높이자고 내와 내 주변인을 죽이게 놔두고, 우리 왕국을 멸망시키게 놔둘 리가 없었다.

그녀는 그 뒤에도 제국에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고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지만, 나는 한쪽 귀로 흘리며 냄비에 담긴 식사를 이어갔다.

그렇게 식사를 끝낸 뒤, 나는 예언자에게 물었다.

“아직도 조직에 대해 말할 생각이 없어?”

“네……. 말할 수 없어요.”

전과 같은 대답이었지만, 예언자의 말은 힘이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들을 수 없을 거예요. 고문을 하려고 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겁니다. 저를 막을 수 없을 거예요.”

“늙어서 죽겠다고?”

“……그것도 아는 건가요.”

죽기 전에 예언자는 유물로 젊음을 유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할머니라는 소리와 방금 이야기를 합치면, 예언자는 이미 죽을 나이가 지났다는 이야기였다.

그녀는 지금 유물로 수명을 연장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잘 들었으니, 추하게 죽게 할 수는 없지.”

고문이 불가능하다면, 예언자에게 볼일은 남지 않았다.

제일 듣고 싶은 이야기는 들은 뒤였고.

생각보다, 중요한 이야기를 들어서, 내 생각도 좀 정리해야 했다.

나는 다시금 예언자의 목을 잡았다.

“이렇게 죽게 될 거라는 생각 못 했네요.”

내 손에 목이 잡힌 채로 예언자가 말했다.

나는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글쎄. 네 생각과는 조금 다르겠지만……. 다음에 보지.”

내 말에 예언자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 표정이 사라지기 전에 숨이 멈추었다.

나는 죽은 예언자를 바닥에 눕히고, 모닥불을 살펴보았다.

다음 손님을 기다리려면 모닥불 관리를 잘해야 했다.

* * *

이틀 뒤,

천막 주변에 일련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총 세 사람.

모두 알리나만큼 강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왜, 여기 남아 있는 거지?”

나는 꺼진 모닥불에서 시선을 떼고, 대답해 주었다.

“예언자에게 들었지. 자신을 죽이면 조직의 손을 피할 수 없을 거라고. 괜히 도망치다가 남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지. 술래잡기도 귀찮고.”

“죽을 생각인가.”

“뭐, 비슷해.”

내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넌 죽지 못할 거다. 네놈이 왜 예언자님을 죽였는지, 어디 소속이고, 어느 나라 놈인지 알아 내야 하니까.”

그의 말에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곤란한데…….”

나는 검을 들었다. 저들이 뭐라 하던, 나는 자신 있었다.

죽을 자신이.

나는 포위한 상대를 향해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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