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6화
제21편 사절단 (3)
공작의 물음에 나는 바로 대답했다.
“네. 편하게 잘 계십니다.”
공작이 묻는다고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정말 잘 계셨다.
물론, 집사장에게 최대한 어머니를 도우라고 말해두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어머니는 내 영지에서 편하게 지내시고 있었다.
발레아도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해서 어머니와 잘 지내고 있었고.
플로라도 같이 온 덕분에 외로움도 타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공작령에 있을 때와 달리, 기사와 병사들을 데리고 영지 곳곳을 다니셨다.
플로라의 시어머니, 후안의 어머니와 같이 다니시기도 하고, 집사장의 집에 놀러 가서 집사장의 아내와 저녁을 먹기도 했다.
오헨 기사와도 잘 지내는 것 같았으니, 이번에 이바나가 오면 그녀와도 친해져 있을 게 분명했다.
내 말에, 공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말했다.
“안에서 한 말처럼 사절로 가서 최대한 몸을 사리는 게 좋을 거다.”
설마, 또, 훈계가 이어지는 건가?
“수도의 귀족들이 네 흠집을 계속 찾고 있다. 내 아들에다가, 내전에서 큰 공로를 세우고, 여왕의 신임을 받고 있으니, 그냥 두고 보지 못하겠다는 거겠지.”
아니, 훈계가 아니었다. 제대로 된 조언이었다.
“이번 사절도 제국보다 같이 가게 되는 귀족들을 더 조심해라. 실수라도 하면 벌떼처럼 달려들어서 너를 잡아먹으려 할 거다. 그들은 그게 나와 여왕의 힘을 약화하는 거로 생각할 테니까.”
여왕의 호위 기사에, 어쨌거나 공작의 아들이니, 한 묶음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공작의 조언에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쉽게 생각하면……. 아니, 더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군. 내 도움 없이도 스스로 작위를 받은 너이니.”
공작은 뭐라 말하려다가 고개를 젓고는 제 갈 길을 가버렸다.
뭔가 할 말이 따로 있었던 것 같았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공작이 말하지 않았으니 별일이 아닐 테지.
우리가 제일 마지막에 도착했기에 사절단은 다음 날 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나는 남은 시간을 이용해 사람들을 만났다.
아직도 정정한 노인, 세우타 공작도 만나고, 뒤이어 왕실 기사단장과도 만났다.
엔리케 기사단장은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는 원했던 목표, 다음 대 왕의 왕실 기사단장을 차지하게 되어서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거인으로 보였던 덩치는 더 커진 것 같고, 근육은 한 뼘은 더 불어났다.
“이야기는 들었다. 제국 사절로 간다고 그랬지? 내가 쓸 만한 놈들로 뽑아놓았다.”
왕국의 공식적인 사절이니, 당연히 사절의 호위는 왕실 기사들이 맡았다.
그리고, 나는 그 왕실 기사들을 지휘해서 사절을 보호하는 호위 책임자가 된 것이다.
자작 작위를 가진 육체 능력자에다, 왕국에서 손꼽히는 기사였으니, 내가 호위 책임자가 되는 게 당연했다.
물론, 제국에 도착한 뒤에는 호위 말고도, 여러 일을 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우선 호위 업무에 충실해야 했다.
“사절 중에 문제가 생기면 꽤 곤란해지겠군요.”
내 걱정에 기사단장은 콧방귀를 꼈다.
“네가 있는데, 사절에 문제가 생길 정도의 일이면, 문제 정도가 아니잖아.”
“기사단이 덮치거나 마물 웨이브에 쓸렸는데, 한두 명이라도 살려 왔다고 하면 뭐라 하는 사람들보다 칭찬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거다.”
뭔가, 일이 터지라고 악담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의미심장한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물론, 나도 기사단장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 일이 생기면 안 되겠지만, 일이 터진다면 생존자를 고를 수도 있을 테니.
“그리고, 그 여기사는 고향으로 내려갔다. 꽤 실력이 좋았는데 아쉽게 되었어.”
“네?”
“설마, 까먹은 건가? 2 왕자 호위 기사였던 여기사 말이야. 이네스라는 이름이었나? 아무튼 경이 데려왔잖아.”
“아. 맞다.”
까먹은 게 맞았다.
여기사를 심문한 뒤에 여기사는 왕실 기사단에 던져 주었었다.
그 뒤에 바빠서 잊어버렸었는데…….
아쉽게도 협곡에서 잡았던 여기사는 자신을 도와준 자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었다.
가면을 쓴 제국식 억양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과 2 왕자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다른 사건들과 연관이 있다는 것은 확신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뭔가 대단한 정보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왕실 기사단에 던져 주고 까먹고 있었다.
단지, 내전에서 편을 다르게 먹은 것일 뿐이라, 곧 풀려나게 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고향으로 내려갔다는 말에 어깨를 으쓱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바쁜 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다른 때처럼 왕궁 정문 앞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여러 대의 마차와 말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제국으로 가는 사절단이라 사절단은 물론, 많은 사람이 환송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발레아는 먼저 나와서 카트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사절단에서 발레아는 여왕의 이모인 카트린을 돕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일종의 비서나 하녀장이랄까.
귀족들을 상대하는 일에 넌더리가 난 카트린이 그 일을 떠맡길 상대로 발레아를 골랐다는 말이 있기도 했다.
그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겉으로 봐서는 카트린도 발레아도 괜찮아 보였다.
물론, 갓 왕위에 오른 여왕의 이모에게 함부로 대할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그 대신인지, 내게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나를 보고 옆 사람과 속삭이는 귀족들과 나를 지그시 노려보는 중년의 관료 귀족들까지.
모든 이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자작님 오셨습니다.”
그렇게 시선을 받은 사이, 마차 앞에 아는 사람이 보였다.
나는 냉큼 그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마누엘 공자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수도로 가버려서 공작령에서 만나지 못했던 공작의 둘째 아들, 작은형이었다.
갑작스러운 내 인사에 둘째 형은 한참을 버벅대며 겨우 대답했다.
“알렉스……. 샤를 자작. 오랜만……. 입니다.”
그는 아무래도 작위를 받은 배다른 동생은 어색한 모양이었다.
물론, 나는 지금 이 상황이 무척이나 재미있다.
“휴우…….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나는 혼자서 구시렁대는 마누엘을 빤히 쳐다보았고,
마누엘은 계속 내가 계속 쳐다보자, 한숨을 내쉬며 내게 말했다.
“제가 부탁한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혼자 나서서 부탁한 것입니다.”
어라, 그냥 재미있어서 쳐다본 것인데, 뭔가 다른 일이 있었던 걸까?
“아버지, 공작님이 저를 도와주라고 부탁한 것은, 정말 제가 말한 게 아닙니다.”
어라? 공작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는데?
“이 사절단이 제게 기회라는 것을 알고 어머니가 혼자서 나선 겁니다.”
그러니까, 나보고 마누엘을 도와주라고, 공작부인이 공작에게 말해달라고 부탁했고,
공작이 그 이야기를 내게 했다는 말인데…….
난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었는데?
물론, 공작을 따로 만나긴 했었다.
공작답지 않게 복도에서 나를 기다렸고. 그는 애매한 조언을 하고는 제 갈 길을 가버렸었다.
설마, 그때, 방금 한 이야기를 하려 했었던 걸까?
차마 말하지 못하고 엉뚱한 말만 하고는 떠나간 거고.
자식을 위해서라도, 아내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도, 충분히 내게 말할 수 있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공작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동안 내게 보여준 차가운 이미지와는 전혀 맞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것도 차별이려나.
나는 차례로 떠오르는 차가운 공작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마누엘의 말은 정말 쓸데없는 이야기였다.
아카데미에 다니면서 어른이 된 줄 알았는데, 이런 이야기나 하고 있다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무튼, 공작이 내게 말을 안 했으니, 나는 그 일은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
그 뒤로도 마누엘은 구구절절 자신의 사정을 설명했다.
칼 같은 공작은 수도에 온 마누엘을 말단 행정관에 집어넣은 모양이었다.
특혜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던 것이었다.
문제는 공작의 아들이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으니, 오히려 거리를 두게 되었고, 뭔가 일해 보기도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어머니가 힘을 써서, 겨우 이 사절단에 들어오게 되었……. 죠. 여기서 공적을 쌓아서 돌아오면 좀 더 윗자리로 가게 되고, 결혼도 가능할 테니.”
말을 들어보니, ‘직접 부탁은 하지 않았다.’는 정도일 뿐이었다.
시몬은 알아서 잘하고 있던데…….
아카데미도 끝났는데, 마누엘은 어른이 되려면 아직 먼 것 같았다.
그렇게 마누엘의 사연을 듣고 있는 가운데, 누가 뒤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알렉스 공인가? 직접 인사하는 것은 처음이군.”
멋진 수염을 가진 중년 귀족이었다.
“아, 시드 백작님.”
남자의 말에 마누엘이 먼저 인사를 했다. 나도 마누엘을 따라 그에게 인사를 했다.
“반갑네. 내가 이 사절단의 총책임자인 페르난도 디 시드 백작이네.”
우리가 인사를 하자, 그는 내게 자신을 소개했다.
듣기에 좋은 중저음의 멋진 목소리였다.
목소리도, 인상도 무척이나 좋아, 사절단의 대표로는 안성맞춤으로 보였다.
‘당연히 인상이 좋을 수밖에…….’
나도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지만, 백작은 꽤 유명한 관료였다.
그의 가문은 영지는 대대로 관리인에게 맡겨두고 수도에서 생활하는 가문이었다.
그도 가족과 함께 수도의 저택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능력은 수도의 관료 조직에 안성맞춤인 능력이었다.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능력.
죽은 둘째 공작부인과 비슷한 능력으로 나는 이런 능력을 전에 본 적이 있었다.
그의 딸, 아카데미의 여학우에게서였다.
“자네가 우리 정원을 망쳐버린 덕분에 정원 모습을 완전히 바꿔야 했지. 그래도, 지금은 보기 좋아져서 가족 모두 만족하고 있네.”
백작의 딸에게 불려가서, 그 집 정원에서 요하힘과 대련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
대련 핑계로 정원을 박살 냈었는데, 아무래도 백작은 그때 일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금도, 그때 일을 호탕하게 웃어넘기고 있었지만, 그의 능력이 통하지 않는 나에게는 말 사이에 흐르는 불편함이 느껴졌다.
어이없는 일이긴 했지만, 공작이 말한, 사절단에서 조심해야 할 사람을 만난 모양이었다.
그 뒤로도 같이 가게 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는 말에 올라탔다.
마차를 타도 되긴 했지만, 우선 기사들과 호흡을 맞출 생각이었다.
왕실 기사단장의 말대로 열 명의 기사들은 다들 실력이 좋은 기사들이었다.
성격도 나쁘지 않아 보였고.
그리고, 그중에 한 명은 나도 잘 아는 기사였다.
하비에르.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에 왕실 기사단에 들어갔던 선배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자작님.”
그의 경례에 나는 씩 웃었다.
모두, 준비를 끝내고, 몇몇 귀족의 축사 뒤에 사절단이 출발했다.
열 명의 기사와 백 명이 넘는 병사들. 그리고, 열 대의 마차.
왕국의 사절단이라서 그런지, 행렬의 규모가 상당했다.
사절단은 수도 북쪽 문을 통과해 북쪽으로 달려 나갔다.
사절단의 첫 목적지는 훌리안 공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