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345화 (345/563)

제345화

제20편 사절단 (2)

이번 수도행은 발레아와 둘만 가게 되었다.

어차피 수도에서 제국으로 다시 가게 될 테니, 수행원은 필요 없었다.

집사장이 마음에 안 들어 했지만, 그도 내 신변 걱정은 하지 않았다.

발레아는 둘이 가게 된 것을 기뻐했다.

발레아와 둘이 각각 말을 타고 수도로 향하는 여행.

휴대폰도 없는 세상에서, 한가한 여행 중에 할 만한 일은 새로 구한 유물을 살피는 것 정도일 것이었다.

“그 지팡이인가요?”

발레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말 위에서 살펴보고 있는 것은 이번에 유적에서 가져온 지팡이였다.

조직원이 ‘마물을 부르는 지팡이’라고 불렀던 유물.

마물 왕이 되기 직전이었던, 마물까지 유적에 붙잡아 놓았던 유물이었다.

다행히 이 지팡이는 마나를 불어넣지 않으면 효과가 없었다.

유적에서는 유적의 마나로 이 지팡이가 가동되는 것이었고.

그런 지팡이를 뽑아버렸으니, 마물이 날뛸 수밖에 없었다.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는 것 같고. 유적에서는 마물이 이 지팡이 때문에 가만히 있었으니, 유인만 아니라 조종도 가능한 게 아닐까 했는데……. 역시, 잘 모르겠네요.”

열심히 살폈지만, 역시 유물을 파악하는 것은 내 전공이 아니었다.

경매장과 셀린 교단 지부를 만드느라 레스티는 바빴고.

역시, 대공녀에게 물어봐야 할까?

아무래도 제국으로 갈 때 공국을 지날 테니, 대공녀를 만나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계속 지팡이를 살펴봐도 별다른 것은 찾지 못했지만, 나는 지팡이를 바로 넣지 않았다.

이 지팡이, ‘마물을 부르는 지팡이’를 왜 조직이 찾았는지도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마물을 부르는 지팡이라면 그 말대로 할 생각 아닐까요?”

“그 말대로라면…….”

“마물을 부르려는 거죠.”

“마물을 부른다라…….”

부른 마물을 잡아봤자, 특별하게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마물이라, 모기를 모아 잡듯이 미리미리 잡아들이는 것도 아닐 터였다.

그렇다면, 한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마음에 안 드는 곳에다 마물을 푸는 건가?”

“다른 나라에 마물을 푸는 거죠.”

발레아와 내가 동시에 이야기했다.

조금 다른 내용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같은 이야기였다.

지팡이를 이용해서 마물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려 했다는 말이었다.

자신의 조직이나, 제국이 아닌 다른 곳으로.

아마도, 우리 왕국이 첫 순위가 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마물 웨이브가 그렇게 흔한 것은 아닌데…….”

소로카 요새에서 있었던 마물 웨이브도 정말 오랜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유적에서 들은 또 다른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다.

“조직에 있는 예언가라……. 확실히 알아봐야겠어요.”

사절이 아니더라도, 조직에 대해 알아보려면 제국에 가봐야 했었다.

이렇게 때마침 공식적으로 가 볼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길지 않은 여행 끝에 우리는 왕국의 수도에 도착했다.

수도를 떠난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수도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수도는 무척이나 활기차고 밝았다.

내전은 없었던 일인 양, 내가 처음 수도에 왔을 때 이상으로 활기차 있었다.

거기다, 치안병들의 군율도 괜찮아 보였다.

우리가 말을 타고 귀족들이 드나드는 문을 지나려 하니 병사가 우리를 멈춰 세웠다.

“죄송합니다.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잠시 멈춰주셨으면 합니다.”

하녀나 고용인도 없이 어려 보이는 두 남녀만 다니는 것이 이상했던 모양이었다.

좋은 군율이 내게 향한 것이 아쉽긴 했지만, 나는 병사의 물음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알렉스 디 샤를 자작과 발레아 영애다. 여왕님께 제국 사절로 부름받아 왕궁으로 향하는 길이다.”

“예?”

병사는 내 말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뭔가 이해가 안 가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가 알고 있던 귀족과 너무 달랐던 걸까?

아니면, 내가 수도에 온 이유가 특이해서일까.

어찌 되었건 바로 이해시키기가 어려워 보였다.

내가 한숨을 내쉬며 여왕이 보낸 편지를 꺼내려 할 때, 저쪽에서 치안 기사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그는 번개같이 달려와서 내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 부하가 바로 알아뵙지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다행히 치안 기사는 나를 알아보았다.

“괜찮다. 신경 쓰지 않으니 통과시켜 주었으면 한다.”

“그럼, 왕궁까지 안내하겠습니다.”

“그럴 필요는 없다. 왕궁까지 길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기사의 권유를 거절하고 발레아와 나는 성문을 통과했다.

성문을 벗어나니, 뒤쪽에서 나를 막아섰던 병사가 기사에게 혼이 나는 게 느껴졌다.

규칙대로 열심히 검문했던 병사가 저렇게 혼이 나게 되다니.

정말 오랜만에 보는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발레아와 나는 바로 왕궁으로 향했다.

다행히 왕궁 정문을 지키는 기사들은 나를 알아보았다.

하기야, 왕실 기사단의 수련 기사들이었으니, 나를 모를 리가 없었다.

“샤를 자작님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안내할 집사가 나올 것입니다.”

기사의 말에 발레아와 나는 말을 하인들에게 넘기고, 성의 정문 앞에서 집사를 기다렸다.

잠시 뒤, 우리를 안내할 사람이 나타났다.

그런데 나타난 사람은 평범한 집사가 아닌 총집사였다.

전임 왕을 섬겼던 노인, 그가 아직도 왕궁의 총집사를 맡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한 뒤에 눈으로 우리의 옷을 훑어내렸다.

“잠시 손님방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여왕님을 만나시려면 몸가짐을 다시 하셔야겠습니다.”

작위를 받은 덕분에 전과 다른 대우를 받게 되었지만, 여왕이 된 공주를 만나기도 그만큼 번잡스러워졌다.

공주를 만나는 것이 아닌 여왕을 만나는 것이었으니 당연했지만, 역시 이제는 아이샤와 편하게 만나기는 어려울 듯했다.

집사장은 우리를 손님방으로 안내한 뒤에 목욕과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혔다.

수도까지의 여행으로 많이 지저분해졌기에 우리는 군말 없이 그의 지시를 따랐다.

드레스를 화사하게 차려입은 발레아와 깨끗한 정장을 입게 된 나는 왕의 접견실로 향했다.

왕국의 복도를 걷자, 지나가던 고용인들과 하녀들이 내게 인사를 했다.

전에는 이런 인사를 받은 적이 없었는데…….

확실히 작위나 영지가 좋긴 한 것 같았다.

잠시 뒤, 우리는 접견실 앞에 도착했고, 닫힌 문을 향해 총집사가 외쳤다.

“샤를 자작과 발레아 양입니다.”

“들여보내게.”

접견실 안에서 그레시아 공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사절로 가게 될 사람들이 여왕을 만나러 왔으니, 재상 겸 고문관이 같이 기다리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아직, 내가 좀 거북했을 뿐.

곧이어 접견실의 문이 열리자, 예상대로 접견실 안에는 여왕과 공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르심에 달려왔습니다. 샤를 자작입니다.”

“발레아입니다.”

접견실 안에 들어간 발레아와 나는 왕궁 예식대로 여왕에게 인사를 올렸다.

“어서 오세요. 다들 두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어요. 이제, 사절이 전부 모였군요.”

여왕도 전과 다르게 품위 있게 우리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인사가 끝나고, 여왕은 우리 두 사람에게 부탁했다.

“사절로 떠나는 다른 분들에게도 말했지만, 두 분도 잘해주시기를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네. 잘할게요.”

우리는 그녀의 말에 대답했고, 이어서 공작이 입을 열었다.

“두 사람 다 왕국의 사절이라는 위치를 잊지 않도록. 두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왕국과 제국과의 관계를 바꾸게 될지도 모르니 항상 조심하고…….”

짧은 여왕의 말과 달리, 공작의 딱딱한 훈계는 계속 이어졌다.

뻔하디뻔한 훈계였고, 지루한 이야기였다.

공작의 말을 듣고 속으로 혀를 찼다.

분명 전에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수도에서 귀족들과 구르더니, 구태의연한 귀족들과 비슷해진 걸까?

그렇게 한참 동안 훈계를 늘어놓자, 여왕이 손을 들어 공작의 말을 막았다.

“그 정도면 되었어요. 다른 귀족들도 만족할 거예요.”

여왕의 말에 공작은 말을 멈추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당장은 지겨운 훈계를 멈추게 해 주어서 고마웠다.

공작의 말을 멈춘 뒤, 여왕이 공작에게 지시를 내렸다.

“잠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자리를 비켜주시겠어요?”

공작은 여왕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접견실을 빠져나갔다.

“여왕의 호위 기사가 여기 있으니, 호위들도 잠시 나가 있어 주세요.”

이어, 여왕은 접견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도 내보냈다.

기사들이 나가자, 어린 여왕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발레아가 미소를 지었고, 나는 주변에 방음벽을 펼쳤다.

“……정말 잘 오셨어요!”

어린 여왕은 우리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그 뒤로, 우리는 접견실 한쪽에 있는 소파에 앉아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왕의 수도 귀족에 대한 험담과 바쁜 업무에 관한 이야기, 나와 발레아의 영지에 관한 이야기 등, 할 이야기는 산처럼 쌓여 있었다.

하지만, 여왕의 시간을 많이 빼앗을 수 없었다.

아카데미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길지 않은 대화 뒤에 나는 전부터 하려던 말을 꺼냈다.

“유적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조직으로 불리는 자들에 대해 아셔야 할 겁니다.”

그동안 그들이 한 일을 여왕에게 이야기했다.

몇 가지 숨겨야 할 일은 숨겨 놓았지만, 할 수 있는 한 모두 이야기했다.

왕족들에게 ‘마나 감응력’을 준 이야기와 수도의 테러, 어렸을 때 시몬의 외가인 후작가에서 벌어진 일까지.

내 말에는 발레아도 처음 듣는 여러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나는 이번에 유적에서 벌어진 일까지 말한 뒤에 이야기를 끝마쳤다.

“……이제야 말씀드린 것은 지금은 아이샤 여왕님이 이 나라의 왕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제국을 상대하시려면 조직에 대해 알고 계셔야 할 것입니다.”

내 말이 끝나자, 어린 여왕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그동안 알렉스를 잘 알지 못한 거네요. 항상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상대, 아니, 제국과 싸우고 있었던 줄은 몰랐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제국과 싸우고 있다니.

조직과 싸우는 게 그런 거창한 일이었나?

“그럼, 이번 사절은 빠져야 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요? 위험하잖아요!”

여왕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들은 저에 대해 모르니까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저도 강하고, 발레아도 같이 가니까요.”

그보다,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내 능력을 믿는 것이었지만, 이것은 알려 줄 수 없었다.

“알렉스의 말은 잘 기억했어요. 고마워요. 왕국의 일은 제가 잘해 나갈 테니 걱정 마세요.”

여왕의 조금 과한 대답을 듣고, 발레아와 나는 접견실을 빠져나왔다.

나는 접견실을 나온 뒤, 발레아에게 물었다.

“표정이 왜 그래요? 무슨 걱정 있었어요?”

발레아는 좀 전부터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뭔가 생각하고 있었다.

내 말에 발레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알렉스의 말을 들으니, 조금 걸리는 게 있어서요.”

무슨 일일까?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나는 발레아에게 묻지 못했다.

접견실 밖, 복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레시아 공작.

내 아버지였다.

공작이 내게 물었다.

“아만다, 네 어머니는 잘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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