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9화
제14편 실험실 (3)
“비켜!”
어려 보였기 때문일까?
내 말을 무시하고 달려드는 자들이 있었다.
용병 차림의 남자들이었다.
용병 차림이었지만, 그들이 들고 있는 검에는 마나가 흐르고 있었다.
둘 다 겉보기와 달리, 기사에 준하는 실력자들이었다.
그 실력을 보면, 덤벼들 만했을지도.
하지만, 그들은 사람을 잘 못 봤다.
그들은 빠르게 접근했고, 이어서 내게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나도 바닥에 늘어뜨리고 있던 대검을 휘둘렀다.
부우우웅!
검이 크게 반원을 그렸다.
두 사람은 자신의 검에 더욱 마나를 불어넣었지만, 내 대검을 막을 수 없었다.
콰직. 콰직.
대검이 두 검을 수수깡처럼 부러뜨렸다.
놀란 두 사람이 뒤로 몸을 빼려 했지만, 두 사람의 몸은 머리의 말을 듣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들의 가슴에서, 배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째서……. 몸에는 닿지도 않았는데.”
보이지 않는 마나검이 지나간 것이었지만, 이미 죽은 자들에게 말해 줄 필요는 없었다.
두 사람은 바로 무너져내렸다.
나는 검에 묻은 피를 털고, 다시 검을 늘어뜨렸다.
“미안하지만, 비킬 생각은 없어.”
두 사람이 허물어지는 것을 보고, 뒤따라오던 자들이 발을 멈췄다.
이어서 책임자로 보이는 남자의 고함.
“멈춰!”
뒤늦은 말이었지만, 덕분에 갈등하던 자들이 뒤로 물러섰다.
“어떻게 두 사람을 한 수에…….”
남자의 중얼거림에 어깨를 으쓱했다.
확실히 기사 둘을 한 수에 베어버린 것과 다름없으니, 남자와 일행이 놀란 것은 당연할 듯했다.
더구나, 더 뛰어난 자가 없어 보였으니.
나는 난감해하는 남자에게 선언했다.
“무슨 일인지 확인하고 싶지만, 마물이 있으니, 뒤로 미루겠다. 너희들이 벌인 일이니, 너희들이 수습해라. 나는 여기서 너희들이 수습하는 것을 지켜보겠다.”
그리고, 대검을 들어 어깨에 걸쳤다.
원래는 보자마자 전부 베어버릴 생각이었지만, 석실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석실에는 마물과 싸우기 위해 여러 가지 준비한 흔적이 가득했다.
마지막에 뭔가 잘못되었는지, 달아나려 했지만, 이들은, 이 유적, 아니 마물에 대해 아는 자들이었다.
어떻게 아는지도 궁금했고, 준비한 물건으로 어떻게 마물과 싸울지도 궁금했다.
그래서, 마물과 싸울 기회를 주기로 했다.
아니면, 내게 덤비던가.
문을 가로막고 서 있는 나를 보고, 갈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좁은 문 앞에 있으니, 동시에 덤벼들 수 있는 사람은 두 사람 정도.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방금 보았었다.
하지만, 반대쪽에서 문을 빠져나오려 하는 마물도 싸워서 이기기는 어려워 보였는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결정을 도와줄 사람들이 나타났다.
내 뒤에 미겔과 신관 기사 에드가가 나타난 것이다.
우리는 유적 중간에서 습격을 당했었다.
물론, 발레아와 내가 미리 파악한 습격이었기에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적을 정리한 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리를 맡기고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미겔이 내 뒤에 자리를 잡고, 내게 보고 했다.
“별다른 것은 없었습니다. 죽기 전에 뭔가 말한 자들도 없었습니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뭐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았었다.
늦지 않게 온 것으로 충분했다.
미겔이 왼쪽 뒤에 서자, 신관 기사 에드가가 다른 쪽 뒤에 섰다.
이렇게 두 사람이 내 뒤를 받치니, 이제 누가 보더라도 이 문을 빠져나가기는 어려워 보였다.
책임자로 보이는 남자도 결정을 내린 듯했다.
그는 이를 갈며 내게 말했다.
“으득, 지금 이 결정을 나중에 후회하시게 될 겁니다.”
그는 나에게 협박을 하고는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마물을 먼저 처리한다! 계획대로 움직여!”
“네!”
계획이 다 꼬였지만, 그래도 다들 남자의 말을 잘 따랐다.
미겔과 신관 기사만 보이고, 발레아는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내 감각에 그녀가 느껴졌다. 발레아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영역을 펼치는 중이었다.
“모두 위치에 가서 서!”
숫자가 많이 줄었지만, 아직 열 명 이상이 남아, 그의 명령에 따랐다.
나는 그들이 자리를 잡는 것을 보며, 한쪽 구석에 모여 있는 사냥꾼들에게 손짓했다.
“내가 새로운 영주다. 마을도 되찾았고, 다른 사냥꾼들도 치료하고 있으니, 사냥꾼들은 유적 밖으로 나가도록.”
내 말에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더니, 후다닥 내 쪽으로 달려왔다.
사냥꾼들은 내게 고개를 넙죽 숙이고, 내 옆을 지나 유적 밖으로 마구 달려 나갔다.
“살았다!”
“설마, 살 수 있을 줄이야…….”
“하지만, 다들 죽었어.”
달려가면서 그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옆을 지나갈 때도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던 사냥꾼들이었지만, 들려오는 음성에는 울음이 가득 묻어나왔다.
사냥꾼을 내보내는 사이, 결국, 마물이 강철 문을 부쉈다.
콰아아앙!
산산이 흩어지는 문 뒤로 마물의 모습이 보였다.
마물은 커다란 야수형 괴물이었다.
높이는 3m 길이는 5m가 넘었다.
검이 들어갈 것 같지 않은 단단하고 울퉁불퉁한 피부.
입에서는 불꽃이 흘러나오고, 머리에는 커다란 뿔이 달려있었다.
크르르릉.
천천히 안으로 들어오는 마물의 모습은 마치 화산암으로 거칠게 빚어낸 뿔 달린 네발짐승 같았다.
마물은 석실 안으로 들어와서 주변을 훑어보았다.
사람들을 확인하던 마물의 시선이 멈춘 것은 책임자로 보이던 남자의 손이었다.
아니, 마물이 본 것은, 그의 손에 들린 지팡이였다.
그르르릉.
마물은 지팡이를 확인할 때까지,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말이 안 되었지만, 마물은 일부로 시선을 피하는 것 같았다.
크아아앙.
어쨌거나, 지팡이를 보게 된 마물은 괴성을 지르며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공중으로 몸을 띄운 마물.
그때, 남자가 소리쳤다.
“던져!”
그의 말에 그의 부하들이 손에 들고 있던 병을 던졌다.
공중에 떠 있는 마물을 향해.
다들 무척이나 훌륭한 투석, 아니 투병이었다.
빗나가는 병은 없었다.
모든 병이 하늘을 날아, 마물의 몸에 부딪혔다.
쨍그랑! 쨍그랑!
병들이 깨지고, 마물은 안에 들어있던 점액을 뒤집어썼다.
덕분에 마물은 남자를 덮치지 못하고 바로 앞 돌침대 위에 내려서게 되었다.
크어어엉!
마물은 몸을 마구 흔들었다.
하지만, 몸을 일부를 덮은 점액은 단단한 피부에 눌어붙어 아무리 흔들어도 털리지 않았다.
이어서, 점액에 덮인 피부가 변하기 시작했다.
꿀렁, 꿀렁.
흐물거리기 시작한 피부.
피부를 덮은 점액질처럼, 마물의 피부가 변하기 시작했다.
크러러렁.
피부가 변하자 마물은 비명을 지르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몸을 터는 정도가 아니라, 바닥을 헤집고, 돌침대를 터트렸다.
하지만, 바닥에도 조직원들이 미리 뿌려 놓은 점액질들이 깔려 있었다.
마물이 난동을 부릴수록 점액질들은 더욱 그의 몸에 들러붙었고, 마물의 피부는 점점 더 이상하게 변해 갔다.
피부만이 아니었다.
완전히 점액질에 덮여버린 앞쪽 다리 하나는 이제 다리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조금 전까지 단단했던 바위 다리가 지금은 뭉뚝한 촉수나 젤리처럼 보일 정도였다.
“됐다!”
“잡을 수 있어!”
조직원들이 그 모습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마물과의 싸움에 몰입했는지, 모두 지켜보는 나는 안중에 없었다.
덕분에 나도 편하게 그들의 싸움을 구경할 수 있었다.
다만, 싸움에 참여하지 않은 한 명, 파울라는 이리저리 눈을 돌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뭔가 딴생각을 하는 듯했다.
조직원들과 달리, 지휘하는 남자의 표정은 아직 좋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계획대로 지시를 내렸다.
“좋아, 사슬을 움직여!”
그의 말에 따라, 조직원들은 바닥에 깔려있던 사슬을 잡아당겼다.
몇몇 조직원들은 사슬의 끝을 힘껏 반대편에 던졌다.
한두 번 맞춘 솜씨가 아니었다.
이번 일 때문에 급하게 손을 맞춰본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함께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전부터 이런 식으로 마물을 잡았었나?’
내가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모습이었고, 사슬도 그들의 실력만큼이나 제대로 마물에 휘감겼다.
사슬들이 마물의 몸을 휘감았다.
좀 전의 단단한 바위 몸이었으면, 그 사슬도 문제가 안 되었겠지만, 마물은 이미 삼 분의 일 이상이 젤리처럼 변해버렸다.
사슬은 물컹거리는 마물의 몸을 파고들었고, 완전히 변한 앞다리는 너무 깊게 파고들어, 잘라낼 지경이었다.
적인 나도 감탄할 만한, 훌륭한 준비였고, 훌륭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의문이 드는 공격이기도 했다.
지금 공격은 마물이 어떤 놈인지 알지 못하면 할 수 없었던 공격이었다.
미리 준비해온 물건을 보면, 이들은 유적을 찾기 전에 미리 준비한 게 분명했다.
‘설마, 조직에 나 같은 회귀자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
갑자기 뒷머리가 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조직과 얽혔을 때마다 뭔가 좀 이상했다.
그들의 준비와 계획은 내가 아니었으면 실패할 리가 없는 것들이었다.
그것도 대부분 성공한 뒤에 내가 회귀해서 일을 뒤집은 것이었고.
‘어라, 내가 회귀해서 막았다는 것은 나 같은 회귀자는 아니라는 건데…….’
그때부터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조직원 한 명이 쇠사슬 끝을 잡고 마물에게 전류를 흘리는 것을 보며, 나는 머릿속에서 뭔가 떠오를 것 같았다.
그때였다. 싸움의 양상이 달라진 것은.
“모두 피해!”
크아아아앙!
지휘하던 남자의 고함이 들리고, 마물의 괴성이 석실을 울렸다.
동시에 흐물거리던 마물 앞다리의 모습이 빠르게 변했다.
앞다리, 아니 촉수는 그대로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촉수를 감싸던 점액질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다음 순간.
몸 안으로 사라졌던 앞 다리 자리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촉수, 아니, 넝쿨처럼 보이는 나무줄기였다.
나무줄기는 마치 창처럼 가까이 있던 두 조직원의 몸을 차례로 꿰뚫었다.
동시에 마물의 다른 부분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원래의 모습이 허물어지고, 순식간에 덩굴 뭉치, 덩굴나무와 닳은 마물이 되어갔다.
그 이상한 점액질은 덩굴나무처럼 보이는 마물의 껍질에는 붙어 있지 못하는 듯했다.
점액질들은 바닥에 흘러내렸고, 헐거워진 쇠사슬도 모두 바닥에 떨어졌다.
동시에 수많은 덩굴이 석실 안을 휩쓸었다.
콰과과과과!
한순간에 사람들이 쓸려나갔다.
“크아아악!”
“피해!”
“잡, 잡혔어!”
“살려줘요! 커억!”몇몇 육체 능력자는 검으로 덩굴을 잘라내고, 자신의 능력으로 넝쿨을 막는 능력자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처음 공격도 막지 못했다.
순식간에 반 이상 죽어 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신관 기사가 입을 열었다.
“그냥 둬도 되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돌려 신관 기사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