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8화
제13편 실험실 (2)
파울라는 유적 안을 열심히 달렸다.
함정이 가득한 통로였었지만, 그 함정들은 지난 몇 주 동안 전부 해제해버렸다.
앞을 막는 강철 벽과 문들도 모두 부숴버리거나, 녹여버렸고.
지금 유적 안에 그녀가 달리는 것을 막을 만한 것은 없었다.
달리는 그녀 옆으로 늘어선 수많은 감옥.
아니, 마물들을 가두었던 것이니 ‘마물 우리’라고 해야 할까.
파울라는 달리는 와중에도 텅 빈 ‘마물 우리’를 보며 지난 일을 떠올리게 되었다.
겨우 유적을 뚫어냈더니, ‘마물 우리’가 나오다니.
미리 듣지 않았다면 파울라도 실망했을 터였다.
거기다, 유적 안에 있는 우리 안에는 어떤 마물도 남아 있지 않았다.
대전쟁이 끝난 지도 수백 년이 지났으니, 뭔가 남아 있는 것이 웃긴 일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뼈 정도는 남아 있어야 할 텐데.
우리 안에는 마물이 있었던 흔적만 남아 있었다.
무척이나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녀와 조직원들은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모두 유적에 들어오기 전에 들었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유적을 발견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 유적은 조직에 있는 예언자가 미리 알려 준 유적이었다.
언젠가부터 헝클어진 미래 때문에 나타날 시기가 달라지긴 했지만, 미리 준비해 놓은 덕분에 조직은 다른 이들 모르게 유적을 낚아챌 수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람들의 미래가 달라지고 있었지만, 원래 있었던 유적이 달라질 리가 없었다.
“그래서 잘 될 줄 알았는데……. 이게 뭐람.”
이제는 마지막 문이 열리기 전에 그녀가 먼저 도착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직 기회는 남아 있었다.
알렉스가 강하다 해도 작년까지 아카데미 학생이었을 뿐이었다.
기사들도 있겠지만, 유적 안에 있는 동료들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거기다, 늦지 않게 도착한다면, 작전을 새로 짤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파울라는 더욱 속도를 올렸다.
그녀가 속도를 올리자, 주위의 배경이 빠르게 뒤로 지나갔다.
공간을 접으며 이동하니, 금방 동료, 아니 같은 조직원들이 모였다.
그들은 복도 끝, 커다란 문 앞에 모여 있었다.
아니, 모두 문 앞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문 앞에 서 있는 것은 사냥꾼 한 명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냥꾼을 지켜보고 있었고, 조직원 한 명이 문과 조금 떨어진 벽에 손을 올리고 서 있었다.
그녀는 도착하자마자, 모두에게 소리쳤다.
“알렉스, 아니, 여기 영주가 숙영지에 나타났어요!”
그녀의 고함에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문 위쪽에서 작은 침들이 튀어나왔다.
슈슈슉.
침 들은 문 앞에 서 있는 사냥꾼을 꿰뚫었다.
“크아아악!”
피가 솟고, 사냥꾼의 짧은 비명이 통로를 울렸다.
사냥꾼이 바닥에 쓰러지자, 벽에 손을 올리고 있던 조직원이 소리쳤다.
“누구야! 마나가 엉겼잖아!”
파울라가 목을 움츠렸다. 이상하게도 자신이 잘못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서둘러야…….”
파울라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말하려고 하자, 지켜보던 사람들 가운데에서 한 남자가 손을 들어 올렸다.
“잠깐 기다려.”
파울라는 입을 닫았다. 급한 상황이긴 했지만, 저 남자는 이곳의 책임자였다. 함부로 대들 수는 없었다.
그는 파울라를 멈춰 세우고, 벽에 손을 올리고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사람은 더 있으니, 화내지 말고, 계속 진행해.”
“에잉.”
그는 콧바람을 뿜더니 다시 벽에 마나를 밀어 넣었다.
부하가 다시 마나를 밀어 넣는 것을 보고, 그는 사냥꾼들에게 말했다.
“다음 사람.”
뒤에 물러서 있는 사람 중에는 사냥꾼들도 있었다.
침통한 얼굴의 네 명의 사냥꾼.
그들은 함께 죽은 사냥꾼을 끌어내더니, 한 명이 죽은 사냥꾼 자리에 섰다.
나머지 사냥꾼들은 뒤로 물러서며 남은 사냥꾼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동료가 죽고, 또 다른 동료가 죽게 될 터였지만, 그들의 모습은 평범한 일상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사냥꾼들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수많은 동료의 죽음을 보았다. 더구나, 다음은 자신의 차례였다.
마을에 남은 가족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 이들이었다.
겨우 한발 빨리 가게 되는 동료에게 특별한 위로는 필요 없었다.
그렇게 문의 감지 장치를 활성화하기 위해 다음 사냥꾼이 제 위치에 서고, 부하가 문의 잠금장치를 다시 해제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책임자는 파울라를 불렀다.
“작게 말해도 돼. 영주가 왔다고? 나는 좀 전에 마을에서 막을 수 있을 거라고 들었는데.”
“마을에서 막지 못한 것 같아요. 숙영지 앞에 나타난 것을 제 눈으로 봤어요.”
“영주가 맞나?”
“본인이 그렇게 이야기했고, 아는 목소리도 들렸어요. 여기 영주가 제가 이곳 아카데미에 있을 때 같이 다녔던 동기였어요.”
파울라의 말을 듣고, 책임자, 중년의 남자가 피식 웃었다.
“아, 그랬지. 공주의 호위기사랍시고, 아카데미를 졸업하지도 못한 어린애를 영주로 앉혔다는 것을 듣고 많이 웃었지.”
남자는 그녀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파울라는 남자의 반응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카데미 이야기를 꺼내면 이럴 것 같기는 했다.
옆에서 직접 경험한 그녀도 알렉스가 영주가 된 것이 신기했으니, 다른 사람들은 저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알렉스를 평범한 아카데미 학생으로 여기면 무척 곤란했다.
“유적 입구까지 왔다는 것은 마을을 지키던 동료들이 당했다는 말입니다. 막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아니면 마물과 싸우게 유인하던가…….”
“음, 그건 그렇군. 충언을 받아들이도록 하지. 루퍼스! 방금 이야기 들었지? 준비해 둬!”
“알겠습니다.”
남자의 지시에 가죽 갑옷을 입은 조직원 몇이 뒤로 움직였다.
웬만한 기사들은 잡아낼 수 있는 조직의 실력자들이었다.
파울라가 봐도 나쁘지 않은 지시였지만, 파울라의 불안은 줄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조언할 수 없었다.
“됐다!”
드드드득.
마지막 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문 앞에 서 있던 사냥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뒤로 물러서 있던 조직원들이 열리는 문으로 다가갔다.
드드득.
파울라도 열리는 문 안쪽을 살펴보았다.
조직의 목표가 이 문 안쪽에 있었다.
열리는 문을 통해 안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지 않은 원형의 지하 석실이었다.
돌로 만든 침대 같은 것들이 석실 곳곳에 흩어져 있었고, 구석에는 벽에서 떨어진 것 같은 녹슨 도구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언 듯 보면 오래전 제국에서 보았던 도축장과 닮아 보였다.
하지만, 석실 전체가 그런 분위기인 것은 아니었다.
한쪽 벽에는 처음 보는 물건들이 놓여있었다. 아직도 멀쩡한 유물로 보이는 이상한 도구들.
“역시 여기도 예언대로야. 마물을 해체하고 실험하는 곳이라는 말대로군.”
남자가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마물을 해체하고 실험하는 곳이라면, 도축장과 닮아 있는 것이 당연했다.
한쪽 벽에 늘어선 유물들은 그 실험 도구일 테고.
여기까지 오면서 본 빈 우리들은 실험할 마물들을 잡아넣었던 곳들이었다.
“고대 제국이 대단하긴 했어. 대전쟁으로 밀리면서도 이런 곳에서 마물을 잡을 연구를 하다니.”
남자가 감탄한 듯이 말했지만, 파울라는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봤자, 결국 마물과 마왕에 멸망한 고대 제국이었다.
그리고, 고대 제국을 멸망시킨 마왕을 봉인하고, 마물들을 봉인지에 밀어 넣은 것은 고대 제국이 아니라, 용사들이었고.
“우선 유물을 챙겨. 방해꾼들이 나타나기 전에 일을 끝내자.”
남자는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석실 안쪽으로 걸어갔다.
일행이 들어온 반대편 석실 벽에는 그들이 들어온 문보다 큰 문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문 앞에는 지팡이 하나가 돌바닥에 박혀 있었다.
커다란 보석이 끝에 달린 길고, 아름다운 지팡이였다.
“이게 마물을 부르는 지팡인가.”
그는 잠시 지팡이를 살펴보더니, 만족한 얼굴로 지시를 내렸다.
“유물을 챙기고, 계획대로 준비해. 그 어린 자작 때문에 몇 명이 비겠지만, 예언대로라면 나머지 인원으로 충분하겠지. 그렇지 않아?”
“네!”
“맞습니다!”
부하들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그는 만족한 얼굴이 되었다.
어린 조직원 하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카를로스 왕국에게 계속 삽질하던 지부 놈들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예언의 도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쪽 지부 놈들과 달리, 그는 여태 실패한 적이 없었다.
그는 어린 조직원에게도 그것을 보여 줄 생각이었다.
잠시 뒤.
부하들이 남자에게 보고했다.
“유물을 다 챙겼습니다!”
“사냥 준비도 끝났습니다!”
한쪽 벽에 늘어서 있던 유물은 모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바닥과 돌침대에는 얼기설기 쇠사슬이 깔려있었고, 이상한 점액질들도 뿌려져 있었다.
그리고, 조직원 전체가 갑옷과 대형 무기로 무장했다.
모두 예언가의 말을 듣고 준비한 것들이었다.
“좋아.”
그는 전부 확인한 뒤에 지팡이 앞에 섰다.
그리고, 지팡이를 잡고, 마나를 불어넣으며 힘껏 잡아 뺐다.
드드드드.
그가 힘을 주자, 지팡이는 조금씩 바닥에서 뽑혀 나왔다.
지팡이가 뽑혀 나오는 구멍에서 묘한 향기가 나오는 듯했지만, 지팡이를 뽑는데 정신이 없었던 남자는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드드드, 퍽!
그렇게 점점 뽑혀 나오던 지팡이는 어느 순간 구멍 밖으로 빠져나왔다.
크아아아아앙!
동시에 남자가 서 있는 앞쪽의 문 뒤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마물의 괴성이었다.
이 유적에는 마물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한 마리 마물이 남아 있었고, 이들은 예언으로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 마물은 지팡이를 뽑으면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마물이긴 했지만, 예언으로는 충분히 잡을 만한 마물이었다.
몰래 유물을 가져갈 생각이었던 조직은 마물도 잡을 생각이었다.
영주에게 들킨 것 같았지만, 계획은 달라지지 않았다.
마물이 설치는 것보다, 영주가 사라지는 편이 유적을 숨기기에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조직과 남자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괴성이 들린 다음 순간.
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강철 문이 반쯤 뜯겨나가 버렸다.
뜯겨나간 문 사이로 흘러나오는 살기는 그들이 생각했던 마물의 살기와 전혀 달랐다.
살기에 나뒹군 남자는 박살 난 철문을 보고 바로 결정을 내렸다.
“젠장! 계획을 바꾼다! 모두 물러선다!”
그는 지팡이를 쥐고 고함을 질렀다.
“모두 유물만 가지고 빠져나간다! 마물은 왕국이 해결하게 해!”
왜 이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에 대한 작전도 준비되어 있었다.
어쨌거나, 유물, 이 지팡이가 중요했다.
유적이 들키면 곤란했지만, 어쨌거나 곤란한 정도일 뿐이었다.
그리고, 마물이 다 부숴버려서 왕국이 유적에 신경을 쓰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석실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처음 보는 젊은 남자가 입구를 막아섰기 때문이었다.
“아…….”
그를 보고, 파울라는 신음을 흘렸고, 남자도 갑자기 나타난 젊은 남자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영주를 막으라고 부하를 보내놓았는데?
그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나는 놀란 중년 남자를 보며 씩 웃었다.
“마물을 왕국이 해결하게 둔다고? 하지만, 영주인 내가 마물을 설치게 놔둘 리가 없잖아.”
석실 안에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멀리 부서진 문 사이로 보이는 마물의 눈.
마음에 드는 눈이었다.
저런 눈이라면, 20살 용사와 싸우기 전, 한바탕 몸을 풀기에 딱 좋은 상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