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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337화 (337/563)

제337화

제12편 실험실 (1)

“……감히 샤를 자작님의 영지에서 함부로 유적을 발굴하다니!”

갑작스러운 소리에 파울라는 천막을 뛰쳐나왔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노려보았다.

어두운 숲 앞에 사람들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빛이 없어서 정확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방금 들은 말이 사실이라면 저 사람 중에 샤를 자작. 아카데미 동기가 있을 게 분명했다.

이 영지의 새로운 영주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던지.

아카데미에 있을 때도 평범한 기사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성공할 줄 생각도 못 했었다.

생각해 보면 실력도 있었지만, 정말 줄을 잘 섰던 모양이었다.

내전에서 공주가 승리자가 되다니.

제국도, 조직도 전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1 왕자와 2 왕자가 마물 왕까지 끄집어내면서 공멸할 줄 누가 알 수 있었을까.

예언가의 예언도 예전에 엇나가 버렸고, 조직원도 왕국에서 대부분 빠져나가 버려서 조직이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나는 줄을 잘못 섰고. 아니 나도 잘 선 편이려나.’

작전이 실패하고, 감옥에 갇혀서 한참 동안 심문을 당하기도 하고, 결국 제국으로 송환을 당하기까지.

물론, 살아남기는 했으니, 작전 중에 죽은 다른 선배들보다야 훨씬 나았지만, 그녀로서도 쉽지 않은 삶이었다.

하지만, 그 고생도 제국의 유력 귀족 자제인 요하힘과 같이 있었던 덕분에 많이 줄어든 것이었다.

거기다, 요하힘과 같이 있는 동안, 설득에 성공해서 요하힘도 조직에 가입하게 했고.

그래서 이렇게 수습이 아닌, 정식 조직원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첫 작전에서 이렇게 아카데미 동기와 만나게 되다니.

“영주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영 꺼림직했다니까.”

파울라는 희미하게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나타난 사람들을 살피던 것처럼 저쪽 사람들도 밖으로 뛰쳐나온 사람들을 확인한 모양이었다.

파울라는 어두워서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그녀가 서 있는 곳은 환한 횃불이 가득한 숙영지. 상대방은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모양이었다.

“……파울라인가요?”

긴장된 공기를 타고, 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레아. 그녀가 정말 닮기를 원하는 여성의 목소리였다.

모두와 친해지는,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여성.

거기다 알렉스 공자와 함께 있을 때만 언뜻언뜻 보이는 광기까지.

발레아가 여기 나타난 것을 보니, 모두가 알고 있는 대로 발레아는 알렉스에게 진심이었다.

“기다려 주십시오. 잠시 오해가…….”

그녀 옆에 있던 선배 조직원이 손을 들고 대답을 하고 있었지만, 파울라가 보기에는 바보 같은 짓이었다.

아카데미에 돌던 소문이 반만 맞더라도 알렉스가 가만히 들어줄 리가 없었다.

거기다, 저들은 마을을 지키던 동료들의 손을 빠져나온 상황.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 믿어 줄 리가 없었다.

마을에서 잘 대응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연락을 받은 게 조금 전이었다.

파울라는 경계를 더 강화하자고 조금 전까지 떠들었었는데, 이미 늦은 이야기였다.

파울라는 그대로 몸을 돌려, 유적 안으로 뛰어내렸다.

살아남으려면 유적 안에 들어가 있는 본대와 합류해야 했다.

* * *

발레아는 파울라가 구덩이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왕립 아카데미 동기답네요. 저렇게 결단을 내려야죠.”

“확실히 결단이 빠르네.”

발레아의 말대로였다.

수도 테러 때도 혼자 살아남았던 것을 보면 확실히 생존에 대한 감각은 타고난 것 같았다.

“그래도, 저쪽을 칭찬하는 것은 좀…….”

미겔이 난감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만이 아니었다. 다들 이상한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잘하면 적이라도 칭찬을 할 수도 있는 거지.

그렇게 발레아와 똑같은 놈처럼 볼 필요까지는 없잖아!

표정 가지고 화를 내기도 그래서 나는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이 영지의 영주 알렉스 샤를 자작이다. 모두 무기를 풀고 엎드려라! 당장!”

디오구에게 시켜도 되는 일이었지만, 뻘쭘한 분위기를 바꿀 필요가 있었다.

“저는 상관없는 용병입니다!”

“저, 저도 그냥 일이 있다고 해서 온 것뿐입니다.”

몇몇 사람이 내 말에 무기를 내려놓고 납작 엎드렸다.

하지만, 나머지는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확실히 결정을 내릴 만한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주력은 유적 안에 들어간 거겠지?’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정리해.”

나는 두 기사에게 명령했다.

미겔과 디오구, 두 기사가 숙영지로 달려갔다.

이어서 발레아도 손을 펼쳤고, 우리를 따라온 교단 사람들도 움직였다.

나도 검을 뽑아 들고, 그들의 뒤를 따랐다.

“따라와.”

우리를 안내한 사냥꾼을 데리고.

유적 밖 숙영지를 정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냥꾼 마을처럼 지켜야 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실력이 좋은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거기다, 신관 기사들이 활약하고, 발레아가 도우니, 내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살아남은 사람도 거의 없었다.

먼저 나서서 항복한 용병 몇은 멀쩡했지만, 다른 조직원들은 죽을 각오로 덤벼들어서, 결국 죽고 말았다.

내가 나섰으면 죽기 전에 제압도 가능했겠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솔직히 조직원들은 힘들게 살려놓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죽어가면서도 입을 열지 않는 조직원들을 대신, 나는 먼저 항복한 용병들에게 유적 안 사정을 물었다.

“무슨 감옥처럼 되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길마다 철문과 창살로 막혀 있었고, 함정도 많아서 그걸 하나하나 뚫고 나아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이제 마지막 문만 남았다고 우릴 데려왔던 자들 대부분이 유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함정 같은 것은 사냥꾼들을 앞으로 보내서 찾아냈습니다. 그 덕에 사냥꾼 중에 성한 사람이 몇 없습니다. 죽고 다친 사람들은 여기 남았고, 멀쩡한 사냥꾼들은 아직 유적 안에 있습니다.”

용병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아직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는 천막을 들췄다.

다치고 죽어가는 사냥꾼들이 천막 안에 누워있었다.

“아……. 이건……. 내가 생각한 건 이런 게 아닌데…….”

내가 끌고 온 젊은 사냥꾼이 그 광경을 보고 탄식을 토해냈다.

그로서는 선택을 한 것일 뿐이었겠지만, 결과가 이렇게 되었으니, 선택을 한 본인이 책임을 져야 했다.

그래도, 아직 살아 있는 사냥꾼들이 있는 것은 다행이었다.

조직원들은 다른 사냥꾼을 써먹기 위해 다친 사냥꾼들을 죽이지는 않은 듯했다.

사냥꾼들은 마을에 있는 가족과 다친 동료 때문에 반항도 못 하고 있었을 테고.

나는 엘레나를 돌아보았다.

“치료를 해 줄 수 있겠습니까?”

“네. 그게 저희가 할 일이니까요.”

할 일은 무슨, 무료로 치료받은 것은 아카데미 학생들이나, 귀족들 뿐.

평민들은 많은 돈을 기부하지 않으면 치료도 못 받는 것을 빤히 아는데.

하지만, 여기서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더군다나, 치료해 준다는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를 꺼낼 이유도 없었고.

엘레나는 나를 동생이 아니라, 영주로서 대했다. 나도 그녀를 가족이 아니라, 사제로 대했고.

나도 신검으로 이들을 치료할 수 있었지만, 교단 사람들이 있는데 신검을 꺼낼 수는 없었다.

괜한 소문이 퍼지는 것도 문제였고.

내 신검은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함부로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엘레나는 말 없는 여사제와 함께 천막 안에 누워있는 사냥꾼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여사제들의 치유 능력은 교단에서 사제들에게 내려 준 능력.

겉으로 보기에는 귀족들의 능력 이상으로 대단한 능력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말을 하지 않아서 몰랐는데, 내 머릿속으로 말을 전한 것이 저 여사제인듯했다.

말 없는 여사제도 각성한 귀족인 모양이었다.

거기다,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 알아차린 것을 보니, 여사제의 능력은 머릿속에 음성을 보내는 것 이상일 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 대해 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여기 남기는 데 성공했으니, 그녀에 대해 당장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신관 기사에게 말했다.

“놓친 자도 있고, 유적에 다른 입구가 있을지도 모르니 바로 쫓아야 할 것 같군. 어떻게 할 건가. 여기서 여사제들을 지키고 있을 건가? 아니면 따라올 건가.”

신관 기사 에드가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내 말에 대답했다.

“……동료는 남고, 저는 따라가겠습니다.”

감시든 뭐든, 결과를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보여 주는 게 인지상정.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한 명을 남기도록 하지. 디오구 기사! 이곳에 남아서 영지민들과 사제님들을 보호하도록.”

실력자들이 전부 유적 안으로 들어갔으니, 싸움이 벌어지게 되면 실력이 떨어지는 디오구 기사는 위험할 수가 있었다.

그로서는 안전한 이곳에서 대기하는 편이 나았다.

……라는 이유도 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 그를 믿기 어려웠다.

유적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발레아와 미겔이라면 뜻밖의 비밀이 밝혀지더라도 비밀이 지켜지리라고 믿을 수 있지만, 디오구는 무리였다.

물론, 신관 기사도 같이 내려가지만, 어차피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와 발레아와 미겔. 그리고 신관 기사 에드가까지 유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미겔이 영주가 위험한 일에 직접 뛰어든다고 걱정하긴 했지만, 공작령에서 내 실력을 본 만큼 걱정은 크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우리를 따라오는 신관 기사에 의심이 들었다.

이런 소수의 인원이 유적에 뛰어드는데 따라오다니.

정말, 죽음을 각오한 광신도일까?

그건, 얼마 뒤에 알 수 있을 터였다.

우리는 사냥꾼들을 치료 중인 여사제들과 기사들을 뒤에 남겨 둔 채로 유적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천막들 가운데 나 있는 큰 구멍.

옆에 치워진 커다란 바위를 보니, 원래 저 바위가 구멍을 막고 있었던 듯했다.

바위 때문에 수백 년간 발견이 안 되었을 테고, 이번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운 좋게 입구가 발견된 모양이었다.

밤이었지만, 구멍 자체는 깊지 않아서 바닥이 보였다.

파울라가 뛰어내린 것처럼 우리도 구멍 안으로 뛰어내렸다.

탁. 탁.

우리가 내려선 바닥 한쪽에 작지 않은 통로와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보였다.

자연적이지 않은 통로. 역시 유적이 맞았다.

미겔이 숙영지에서 가져온 횃불에 불을 피웠다.

나는 빛이 없어도 별 상관이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마나를 쓴다고 해도 빛이 있는 편이 좋았다.

그렇게 우리 네 사람은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선두는 두 기사가 섰고, 우리는 그 뒤를 따라갔다.

생각보다 크고 넓은 통로였지만, 통로는 길지 않았다.

다만, 통로에는 부서진 함정과 망가진 문들이 여러 개 보였다.

“조금 이상해요. 여기 함정들과 강철 문들은 외부의 적을 막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닌 것 같아요.”

발레아가 함정과 부서진 문들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실히 나도 그렇게 보였다.

함정도, 문도 전부 유적 안쪽을 향해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짧은 통로가 끝난 뒤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통로가 끝나고, 작지 않은 광장 벽에는 쇠창살로 막혀 있는 방들이 늘어서 있었다.

“감옥?”

미겔이 쇠창살 방들을 보고 말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마물을 가두었던 곳이에요.”

나는 손을 들어, 쇠창살 안의 벽을 가리켰다.

바위를 깎아 만든 벽에 긴 흠집이 나 있었다.

다섯 개의 긴 고랑들.

분명, 마물이 손톱으로 만든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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