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6화
제11편 교단과 조직 (3)
“차린 것은 없지만 맛있게 드십시오.”
“대단한 만찬인데.”
세금으로 가져가서 겨울을 겨우 지냈다더니, 가져온 음식들은 하나같이 먹음직한 음식들이었다.
조직원들이 가져온 음식들인 모양이었다.
“잠깐만, 촌장이 먼저 먹어…….”
나는 촌장을 앉혀 먼저 음식을 먹이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발레아도 준비가 끝났고, 이야기도 다 들었는데, 계속 상대에 맞춰줄 이유가 없었다.
“잡아들여.”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짜 촌장이 소리쳤다.
“젠장! 알아차렸다! 두 번째 작전을 진행해!”
촌장과 음식을 가져왔던 사냥꾼들이 품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유물 주머니도 없었을 텐데, 저런 검을 어떻게 숨겼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촌장과 사냥꾼들은 도망치지도 우리를 공격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들은 마을 회관 문을 막아섰다.
그리고, 사방에 펼쳐놓은 감각에 마나를 가진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숨어 있던 조직원들인 모양이었다.
마을 회관 밖에 숨어 있던 자도 있었고, 마을 사람들의 집안에도 숨어있었다.
다만, 그들은 자기가 뛰쳐나온 곳에서 멀리 움직이지 못했다.
“어떻게 된 거야! 문이, 창문이 없어졌어!”
“어, 준비한 장작이 없잖아! 어 부싯돌도 안 보여!”
마나를 쓰지 않아도 고함이 들려왔다.
마을 곳곳에서 들려온 소리들. 원래라면 들리지 않을 소리였지만, 발레아가 겸사겸사 소리도 실어 나른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을 밖으로 내몰고, 마을 회관과 사람들의 집에 불을 지를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발레아가 마을의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다.
“일을 벌이려던 자들은 모두 분리해 놓았어요. 밖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문과 창이 사라진 것은 마을 회관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환각의 일종인지, 빛은 들어와서 사물을 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문 앞을 지켜 섰던 가짜 사냥꾼들은 뜻밖의 사태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거기다, 미겔과 내 부하들이 달려들고 있으니, 금방 정리될 듯했다.
심문을 당했던 젊은 사냥꾼은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멀쩡해 보였다.
가짜들이 알아차릴까 봐 내가 ‘신검’으로 열심히 치료해 준 덕분이었다.
이들은 어디서 이렇게 마나를 쓸 수 있는 사람을 계속 찾아낼 수 있는 것인지…….
가짜 사냥꾼들은 모두 마나를 다룰 수 있었다.
후안과 병사들이 사냥꾼 한 명을 상대하고, 미겔이 다른 사냥꾼들을 쉽게 제압하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 젊은 기사 디오구는 촌장과 싸우는데 힘겨워하고 있었다.
가짜 촌장은 다른 사냥꾼과 달리, 기사급 실력자로 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밀리는 것을 보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기다, 싸우는 도중에 슬금슬금 나와 발레아 쪽으로 접근하는 꼴을 보니,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번에는 나서지 않으려 했는데.
발레아가 괜한 상처라도 입게 놔둘 수는 없었다.
나는 단검을 뽑아 허공을 향해 휘둘렀다.
빛의 선들이 싸우고 있는 가짜 촌장을 향해 날아갔다.
기겁한 촌장이 외마디 소리를 질렀지만…….
“항복! 제가 있어야 협상이…….”
서걱.
그는 머리가 댕강 잘려 나가고 말았다.
덕분에 그와 싸우던 디오구는 피를 뒤집어썼다.
멍하니 피로 물든 자신의 몸을 보는 디오구를 보고, 나는 이번에는 젊은 기사를 봐주기로 했다.
마나양은 괜찮았는데, 생각보다 싸워 본 경험이 없었던 것 같았다.
어차피 미겔이 제대로 교육을 해 줄 테고, 나와 같이 다니면 실전도 많이 겪을 테니, 금방 실력을 올릴 수 있을 터였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테니.
회관을 정리한 뒤에 우리는 밖으로 나가 마을도 정리했다.
발레아가 만든 벽과 담에 갇힌 놈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집에 갇혀있던 사람들을 구해냈다.
조직원들을 제압하는 과정에 저항하는 자들도 많아서 죽은 자도 꽤 있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죽은 자들에게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영주님! 남편을 구해 주세요.”
“아들이 잡혀갔습니다. 제발.”
“저 미친놈이 용병들을 불러들여서 그만…….”
다만, 그들은 유적으로 끌려간 가족들을 걱정할 뿐이었다.
거기다, 우리가 끌고 나온 젊은 사냥꾼을 보는 그들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그의 말처럼 협박 정도만 한 게 아닌 듯했다.
마을에 던져놓고 떠나면 돌에 맞아 죽을 것 같았다.
영주로서 그렇게 사사로이 영지민을 죽이게 둘 수는 없었다.
“유적 위치를 알고 있겠지?”
나는 이번에는 이 사냥꾼에게 안내를 맡길 생각이었다.
돌에 맞아 죽더라도 그 전에 조금은 내게 보탬이 되는 편이 좋았다.
그런데, 젊은 사냥꾼 말고도 유적 위치를 알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유적 위치는 저희가 알고 있습니다.]
다시금 머릿속에 말소리가 들리고, 열린 마을 입구에서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두 명의 여사제와 여러 명의 기사.
신관 기사들과 사제들이었다.
두 여사제 중 한 명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엘레나, 내 누이였다.
만날 줄 알고 있었지만, 사제 복장을 한 엘레나를 보니,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우리 앞까지 왔고, 이어 젊은 기사가 대표로 내게 인사를 했다.
“신관 기사 에드가입니다. 샤를 자작님을 뵙습니다.”
꽤 실력이 좋은 기사였다.
인상도 나쁘지 않았고.
하지만, 나는 이미 흉악한 신관 기사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이단을 쫓아서 지옥 끝까지 간다는 추살대라고 불리는 자들.
그들과 만나 싸워도 봤고, 전부 죽이기까지 했다.
추살대를 전부 죽이고, 이단의 성기사인 나.
교단이 알게 되면 나는 교단의 제일 적이 될지도 몰랐다.
그래도 뭐, 지금은 모르고 있으니.
이 기회를 잘 이용할 생각이었다.
나는 자신을 소개한 기사를 지그시 내려보며 말했다.
“마을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데, 그대들은 멀리서 구경만 한 것 같은데.”
내 말에 기사와 사제들은 마을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저희도 나서지 못해서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교단의 큰일 때문에 나서지 못했으니, 여러분께 사죄드립니다.”
사제와 신관 기사들이 고개를 숙이자, 마을 사람들은 황망해 하며 급하게 마주 고개를 숙였다.
몇몇 사람들은 땅에 엎드리기까지.
그 꼴을 보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종교인들은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자신의 믿음 이외에는 다른 것은 구애받지 않는 자들.
괜히 찔러봤다가 손해만 본 것 같았다.
큰일이라고 핑계를 대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저들은 우리가 이 일을 잘 헤쳐나갈지 멀리서 구경한 것에 불과했다.
우리가 쓸 만해 보이자, 숨어 있던 곳에서 나와서 이렇게 합류한 것일 테고.
하지만, 그것을 따져봤자, 위쪽 핑계를 대며 입에 발린 사과나 할 게 뻔하니, 나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내가 입을 닫자, 신관 기사가 나에게 말했다.
“지금, 유적을 확인하실 생각이시면 저희 신관 기사들이 마을을 지키겠습니다. 잡아 놓은 용병들도 저희가 지키겠습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내면서 일은 우리에게 시키고, 알맹이는 쏙 빼먹으려는 수작이었다.
저들은 유적 안에 있는 유물만큼이나 조직에 대해 알고 싶어 했으니, 우리가 유적으로 가 있는 동안, 여기서 잡은 조직원들을 심문할 생각인듯했다.
최대한 직접적인 싸움도 피하고.
“그렇게 하지.”
하지만, 그의 말은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의 제안을 승낙했다.
물론, 조건을 붙여서.
“후안은 병사들과 여기 남아서 신관 기사들을 돕도록.”
“알겠습니다.”
어차피 병사들은 여기 남길 생각이었다.
제대로 싸움이 붙게 되면 병사들은 짐이 될 가능성이 컸다.
그 병사들을 신관 기사들이 지켜준다면 고마울 따름이었다.
내 말에 신관 기사의 눈이 잠깐 움찔거렸지만, 곧 원래대로 돌아왔다.
우리는 바로 유적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곧 해가 질 것 같았지만, 여기서 더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마을의 소식이 유적에 전해졌을 가능성이 적지 않았다.
준비를 해 놓기 전에 들이닥치는 편이 좋았다.
발레아와 나, 기사 미겔과 디오구.
두 여사제와 신관 기사 셋. 그리고, 젊은 사냥꾼까지.
이렇게 열 명이 유적으로 가게 되었다.
유적으로 가는 동안, 나는 사냥꾼에게 유적 상황을 물었다.
“유적에 있는 용병들은 사, 오십 명 정도였습니다. 끌려간 사냥꾼들은 이십 명 정도이고…….”
고문 뒤로 이 사냥꾼은 내 질문에 술술 대답해 주는 착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신관 기사의 말을 무시하고 사냥꾼을 끌고 가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뭘 찾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유물도 나오긴 했는데, 계속 안으로 파고 들어가고 있습니다.”
조직도 유적에서 따로 찾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편지를 받고 내가 올 때까지 계속 유적에 남아 있었겠지.
“그 이상은 저도 잘 모릅니다. 안으로 들여보내 주지를 않아서. 함정들이 많아서 사냥꾼 아저씨들이 많이 다친다는 것밖에 알지 못합니다.”
“안 들여보내 주는 게 아니라 다칠까 봐 안 들어간 거 아냐?”
미겔의 말에 젊은 사냥꾼은 입을 꾹 닫았다.
미겔의 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나는 미겔의 말을 들으며 천천히 일행의 뒤를 따라갔다.
마을에서도, 유적을 찾아가면서도 나는 최대한 직접 움직이지 않았다.
유적 밖에서는 철저하게 영주로서 행동할 생각이었다.
교단과도 잘 지내고, 자신의 영지에서 발견된 유적도 지켜내는.
물론, 그건 다른 사람들이 보는 유적 밖의 모습일 뿐이었다.
증인이 없다면, 괜한 가식을 부릴 이유가 없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가 되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험한 숲을 헤치고, 우리는 계속 나아갔다.
숲을 지나다 보니, 결국 해가 지고 말았다.
어두운 숲, 들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지만, 우리 중에 겁을 내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해가 진 뒤에도 한참을 걷자, 멀리 나무 사이로 불빛이 아른거리는 게 보였다.
유적이 분명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불빛에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불을 밝힌 천막 여러 개가 원형으로 절벽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천막이 빙 두른 땅에는 큰 구멍이 뚫려 있는 게 보였다.
저 구멍이 유적의 입구인 듯했다.
소리 없이 제압할까도 생각해봤지만,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영주로서 행동하기로 했으니.
나는 디오구 기사에게 손짓했다.
내 손짓에 우리의 스피커, 디오구 기사가 유적을 향해 힘껏 외쳤다.
“너희들은 누구냐! 감히 샤를 자작님의 영지에서 함부로 유적을 발굴하다니!”
어두운 밤에 쩌렁쩌렁 소리가 울렸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천막에서 튀어나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천막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보고 감탄을 하고 말았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파울라인가요?”
발레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으로 송환되었던 유학생 파울라가 뜬금없이 천막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이제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저들은 제국인이자, 조직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