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5화
제10편 교단과 조직 (2)
전처럼 메시지창을 보고 걱정하지는 않게 되었다.
메시지창이 뜬 뒤에도 죽지 않고 헤쳐나간 때도 없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라는 각오는 필요했다.
메시지창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경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메시지창의 대답에 당연히 ‘예’라고 대답했다.
그 고생을 해서 작위와 영지를 얻었는데 또 반복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거기다, 슬슬 20살짜리 용사와 다시 싸워볼 생각이었다.
영지도 어느 정도 안정화되었고, 실력 확인도 해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죽게 되면 과거로 돌아가 내전 뒤처리를 다시 하게 될까 봐서 미뤄두었는데, 마침 잘 된 것일 수도 있었다.
메시지창을 치우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머릿속으로 음성을 들려주었다는 것은 교단의 사제들도 근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교단의 사제들은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듯했다.
내 능력으로도 마나가 느껴지지 않았다.
나무 위로 올라가 사방을 훑으면 찾아낼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기껏 연극에 맞춰주고 있는데, 괜히 의심을 하게 만들 이유가 없었다.
잠시 뒤 도착한 사냥꾼 마을은 딱 예상했던 그런 마을이었다.
통나무로 지어진 여러 채의 집들이 듬성듬성 들어서 있는 마을.
대신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목책은 무척이나 튼튼해 보였다.
마을 입구도 두꺼운 나무 문으로 막혀 있었고, 목책 난간에는 사냥꾼 복장의 두 사람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우리를 안내하던 가짜 사냥꾼이 경계를 서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외쳤다.
“여기 새로운 영주님이 오셨어!”
그의 말에 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어? 그래? 문을 열 테니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서둘러!”
몰랐으면 그냥 넘어갔겠지만, 알고 보면 무척이나 어색한 대화가 이어졌다.
우리는 나무 문에 앞에 멈춰 섰다.
통나무 문은 생각보다 천천히 열렸다.
드드드드득.
문을 여닫는 법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듯했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우리는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자, 안쪽에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촌장과 경비를 서던 사냥꾼, 그리고 일을 도와줄 사냥꾼 두 명……. 다들 변장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의 옷을 뺏어 입었는지 옷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조금 체형이 맞지 않는 사람도 있었지만,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모를 것 같고.
하지만, 한 명만 빼고, 저 깔끔한 얼굴들은 낡은 옷과 비교되어 영 어색할 따름이었다.
아무래도 얼굴까지 변장할 시간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거기다 어색한 표정까지.
이들은 지금 무척이나 아쉬울 터였다.
평범한 여행객이었으면 그냥 쓱싹 묻어버리면 되었을 텐데.
아쉽게도 나는 이제 그렇게 하기는 어려운 위치가 되었다.
영주란 자리는 내 마음대로 움직이기 불편한 자리였지만, 상대방도 마음대로 처리하기 어려운 자리였다.
“영주님을 뵙습니다! 이런 외진 마을에 영주님이 오시다니!”
촌장으로 변장한 중년 남자가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고.
“영주님은 지금 영지 내를 순행 중이시다! 여기에 우리를 세워둘 셈이냐! 어서 안내하도록!”
깃발을 들고 있던 기사 디오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오, 생각보다 디오구 기사가 연기를 잘했다.
중간에 들키면 거기서 끝낼 생각이었는데, 좀 더 두고 봐도 될 것 같았다.
슬쩍 마을에 마나를 풀자, 마을 정보가 내 감각에 차례로 걸려들었다.
집안에 살아있는 사람들이 느껴졌다. 다행히 마을 사람들을 몰살시킨 것은 아닌듯했다.
하지만, 집 안에서 느껴지는 사람 숫자가 많지 않았다.
많이 죽은 걸까? 아니면 어디에 데리고 간 걸까?
알아볼 일이 더 생긴듯했다.
“우선 마을 회관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가난한 사냥꾼 마을이라 제대로 대접을 해드리기 어려운 것은 용서해주십시오.”
우리를 안내하면서 가짜 촌장이 마을 사정을 이야기했다.
가짜치고는 마을 사정을 잘 아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이런 사냥꾼 마을의 촌장치고는 예의가 너무 발랐다.
뭐, 이것도 의심하고 보니 보이는 것일 뿐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 세계에서 이 정도 연극은 훌륭한 축에 들어갈 정도였다.
“가을에 세금 징수원이 세금으로 다 가져가서 남은 게 없는 겁니다. 겨울이라 다들 입에 풀칠할 것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같이 안내하던 젊은 사냥꾼이 가짜 촌장의 말 뒤에, 툭 하니 내뱉었다.
다른 이들이 놀라 그를 바라보았고, 사냥꾼 자신도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 녀석이 아직 어려서 그랬습니다.”
가짜 촌장이 옆에서 사냥꾼과 함께 마구 고개를 숙였다.
나는 재미있게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방금 불만을 토해 낸 사냥꾼은 우리를 기다리던 사람 중에 홀로 진짜처럼 보이던 사냥꾼이었다.
방금 한 말을 보니, 진짜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진짜 이 마을의 사냥꾼인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가짜들과 같이 다닌다라…….
대충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숙인 사람들을 보며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영주가 의견을 내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영지민이 그 앞에서 불만을 토해 내다니.
성격이 나쁜 영주라면 여기서 그의 목을 날려버려도 무방한 그런 일이었다.
나는 발레아를 힐끗 쳐다보았다. 발레아는 작게 고개를 저었고.
역시,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관용이 넘치는 영주가 될 때였다.
“용서한다. 대신 너는 내가 이곳에 있을 동안 내 옆에서 수발을 들도록.”
“감사합니다!”
내 말에 가짜 촌장은 감사를 표했고.
“아……. 네 알겠습니다.”
사냥꾼도 고개를 다시 숙였다.
그렇게 잠깐의 촌극이 있고 나서, 우리는 마을 회관에 도착했다.
마을 회관은 그냥 조금 큰 창고에 가까웠다.
그래도, 사람이 생활할 수 있게 어느 정도 준비되어 있어 지내기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다만, 그건 일반인 기준이긴 했지만.
“감히! 이런 곳에 영주님을 안내하다니! 죽고 싶은가!”
마을 회관을 확인한 디오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연기가 아니었나?
그래도, 평범한 영주라면 어울릴만한 반응이었던 것 같았다.
촌장이 화들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
“저……. 영주님과 부인께서는 저희 집에 머무시는 것이…….”
나는 그의 말에 손을 저었다.
“됐다. 어차피 오래 있을 것도 아니니.”
오래 있을 생각도 없었고, 일행을 둘로 나누면 일을 벌일 때 귀찮기만 했다.
“그럼, 저녁을 만들어 올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잠깐!”
마을 회관으로 안내한 뒤에 모두 우르르 나가려 하자, 나는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나가려는 자들 중 한 명을 가리켰다.
“너는 남아야지.”
내가 가리킨 사람은 좀 전에 나에게 불만을 터트린 사냥꾼이었다.
어딜 도망가려고.
그의 불만만큼이나 나도 그에게 물어볼 게 많았다.
슬쩍 마나를 풀어보았지만, 감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기야, 기사들이 있는데 드러내고 감시할 리가 없었다.
거기다, 영주인 나도 귀족이었고.
아니면, 남겨 놓은 사냥꾼에게 이야기를 들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이야기를 듣기를 원하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내가 신호를 보내자, 미겔이 회관 안쪽에 방음벽을 펼쳤다.
역시, 영주가 되니 이런 것은 편했다.
나는 젊은 사냥꾼을 보며 씩 웃었다.
“자, 그럼 어떻게 된 건지 이야기를 들어 볼까.”
“네?”
내 말에 사냥꾼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장난은 여기까지.
나는 표정을 굳히고, 후안에게 지시를 내렸다.
“전부 토해 내게 해.”
“알겠습니다.”
내 말에 후안과 병사들이 나섰다.
전부 전쟁터에서 굴러본 병사들이었다.
어떻게 할지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그 뒤에 방음벽 안에서는 약간의 고문과 비명이 이어졌다.
다만, 그 비명은 오래가지 않았다.
첩자나 기사도 아니고, 평범한 사냥꾼이 오래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리, 리카도 아저씨가 찾은 유, 유적이었습니다.”
젊은 사냥꾼은 숨을 헐떡이며 그동안의 일을 술술 늘어놓았다.
고문 때문에 몸도 얼굴도 엉망이 되어버렸지만, 대답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원, 원래 영주께 말해야 하는데, 제, 제가 말렸습니다. 어차피 알려봤자 보상도 못 받고, 유적을 파헤친다고 마, 마을 사람들만 힘들게 할 거라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대부분 영주는 그 말대로 했을 터였다.
그게 당연한 세상이고.
“도시에 갔을 때 알고 지내던 용병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유적이나 유물을 찾게 되면 알려달라고…….”
그래서 이 사냥꾼은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서, 돈만 쓸어가는 영주 대신, 값을 쳐준다는 용병에게 알린 모양이었다.
뭐, 생각해 보면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지만, 아쉽게도 나쁜 놈은 영주만이 아니었다.
내가 예상한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나는 다른 것도 물어보았다.
“다른 사냥꾼들은?”
“남자들은 용병들과 같이 유적에 가서 일하고 있습니다. 유물을 찾으면 나누어 준다고…….”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나? 촌장은 반대 안 했고?”
“있긴 했지만, 저는 마을을 위해서…….”
이놈은 용병, 아니 조직과 붙어서 반대하는 마을 사람들을 협박한 모양이었다.
지금 집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가지고 사냥꾼들을 협박했겠지.
지금 집에 있는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도, 유적에 가 있는 사냥꾼을 가지고 협박하고 있는 걸 테고.
그의 말에 발레아가 한심한 눈으로 사냥꾼을 바라보았다.
“바보네요.”
“네?”
사냥꾼은 냉담한 발레아를 보더니, 표정이 슬쩍 얼굴을 붉혔다.
아니,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닐 텐데.
발레아는 그런 사냥꾼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나누어 줄 리가 없잖아요.”
“네?”
“유적이 있었다는 소문이 날 텐데, 마을 사람들을 살려 둘 이유가 없죠.”
“그럴 리가.”
당연한 얼굴로 발레아가 하는 말에 사냥꾼은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나는 반쯤 넋이 나간 사냥꾼에게서 관심을 끊었다.
사정을 들었으니, 저 사냥꾼을 필요 없었다.
거기다, 발레아가 입을 연 것을 보니, 준비가 된 듯했다.
“영역은 펼쳐 두었어요. 원하실 때 말씀하시면 돼요.”
역시, 발레아를 데려오기를 잘한 것 같았다.
“그럼 식사를 가져오면 그때 시작하죠.”
나는 마을에 있는 자들을 후딱 정리하고 유적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짜 촌장과 사냥꾼들이 음식을 가득 들고 회관으로 들어왔다.
이런 음식들을 사냥꾼들이 직접 들고 오다니.
거기다, 이들은 처음 우리를 안내했던 사냥꾼들이었다.
원래라면 마을 사람들이 들고 왔을 텐데. 거기까지 설득하기는 어려웠나?
이런 식이라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얼마 안 가서 의심을 하게 될 것 같았다.
저들도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그렇다면 결국, 이 식사 시간에 결판을 낼 듯했다.
‘독이려나.’
나는 늘어놓는 음식을 빤히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