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334화 (334/563)

제334화

제9편 교단과 조직 (1)

귀가 번뜩 열리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바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한, 아니 두 영지의 영주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없을 때도 영지가 잘 돌아가게 해야 했다.

이번에는 발레아에게 부탁할 수도 없었다.

공작령에 갈 때도 떼어놓았기에 이번에는 데려갈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발레아는 누구보다 도움이 많이 되는 동료이기도 했고.

그래서 나는 여느 때처럼 보고를 하러 온 오헨 기사를 저택에 눌러 앉혔다.

집무실에서 내 이야기를 듣고 오헨 기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영지 순행을 가시는 것은 찬성할 만한 일이지만, 제가 이 영지까지 대행을 맞는 것은 무리일 것 같습니다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두 영지를 하나로 묶어야 하니, 그 준비를 한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그것참…….”

오헨도 자신이 앞으로 두 영지를 관리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기야 이 영지에서 멈출 분은 아니실 것 같으니, 미리 준비는 해 놓아야겠죠.”

내 생각과 조금 다른 이유 같지만, 이해해 준다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오헨 기사에게 임시로 두 영지를 맡기고 나는 그와 함께 집무실을 나섰다.

내가 나서자 복도를 지나가던 고용인들이 고개를 숙였다.

영주의 자녀가 아니라, 영주에게 하는 인사였다.

거기다, 고용인들의 모습에는 작은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저택을 장악하고 있던 자들을 내가 직접 죽인 것이 소문이 났기 때문이었다.

레스티에게 들으니, 새 영주는 평상시에는 관대하지만, 적이 되거나 잘못 보이게 되면, 본래의 잔혹한 성격을 드러낸다는 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뭐, 크게 틀리지도 않은 소문이긴 했고, 이 세계에서는 그게 뭐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고용인이 영주를 무서워하는 것도 특별한 것은 아니었고.

저택을 점령한 자들 밑에서 일한 고용인을 모두 살려주고 복직시킨 관대한 영주라는 쪽이 더 마음에 들기는 했지만.

이미 퍼진 소문을 되돌리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별로 그럴 마음도 들지 않고.

저택은 이제 내전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며칠 만에 뿌려진 피와 망가진 부분이 전부 사라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영주의 너저분한 취향의 물건들도 모두 치워졌다.

딱, 깔끔한 귀족의 저택으로 변하게 된 것이었다.

역시, 새로 얻은 집사장은 유능했다.

물론, 매번 새로운 주인 아래에서도 잘 적응하는 것을 보니, 위험할 때 신뢰하기는 어려워 보였지만, 같이 싸워나갈 사이도 아니니 그런 기대는 안 하기로 했다.

그렇게 깔끔해진 저택 밖으로 나오니,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히 발레아가 외출복을 입고, 말 위에 앉아 있었고, 미겔 기사가 그 뒤에 있었다.

우고 기사와 내기를 해서 남을 사람과 같이 갈 사람을 결정한다더니, 미겔이 이긴 모양이었다.

그 뒤에 미겔과 우고를 따라온 젊은 기사가 있었다.

‘디오구’라는 이름이었는데…….

뭐, 젊다고 해도 영주보다 네다섯 살은 많은 20대 초반이었다.

그 뒤에는 후안이 병사 여러 명과 함께 서 있었다.

우고가 남았으니, 나와 함께 할 병사들은 후안이 이끌기로 한 것이었다.

이제 후안도 어느 정도 마나를 다룰 수 있었다.

나이가 많았지만, 실력으로 따지면 수습 기사에 가까운 능력이었다.

병사로 남기에는 아까운 능력이었지만, 그 덕분에 병사들의 통솔을 후안에게 부탁할 수 있었다.

영주가 되니, 한 번 움직이는데 많은 사람이 따라붙게 되었다.

귀찮은 일이기도 하고, 솔직히 호위도 필요 없었지만,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이번 행차는 몰래 돌아다니는 암행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영주가 영지를 살피기 위한 ‘영지 순행’이었다.

영주의 위신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나는 준비한 말에 올라탔다.

마차를 타고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조언도 나왔지만, 진짜 목표가 ‘순행’이 아니었으니, 그 조언은 무시했다.

내가 말을 타자, 앞에서 젊은 기사가 깃발을 높이 세웠다.

마물 머리에 박힌 검이 그려진 깃발이 바람에 펄럭였다.

도시도 이제 내전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표정도 나쁘지 않았다.

전 영주가 남긴 돈과 피 같은 내 돈이 열심히 빠져나가고 있는데, 사람들의 표정이 나쁘다면 그것도 곤란한 일이었다.

소작을 걷고, 세금을 낼 때까지 다들 잘 살아주어야 했다. 그래야 이자까지 박박 거둬들일 수 있을 터였다.

그래봤자, 올해는 적자라 이렇게 돈을 벌러 영주가 직접 움직이는 거지만.

우리가 지나가는 동안 영지민 일부는 고개를 숙이고, 나머지 영지민들은 바닥에 엎드렸다.

고개를 숙이는 정도로 충분하다고 공문까지 돌렸지만, 아직도 전 영주에게 하던 데로 인사를 하는 영지민이 대다수였다.

내가 그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자, 후안이 나서서 사람들을 일으키려고 했다.

나는 손을 저어 후안을 말린 뒤, 그냥 그들 앞을 지나갔다.

강제로 시키면 반감만 살 뿐이었다.

어느 세상이나 사람들은 편한 것을 좋아했다.

어차피 고개만 숙여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면 엎드리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 게 분명했다.

고개를 숙인 사람들 사이에 레스티의 모습이 언 듯 보였다.

요새 레스티가 바쁘게 돌아다니는 바람에 얼굴도 보기가 힘들었다.

그는 이 영지에 수도에 있던 자신의 상점과 경매장의 분파를 세우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람들이 도와줘서 이미 상점은 문을 열었고, 경매도 곧 하게 될 모양이었다.

물론, 겉으로는 경매장이자, 상점이지만, 알고 보면 셀린 교단의 지부, 아니 본부였다.

그는 이 영지를 셀린 교단의 새로운 성지로 만들 셈인듯했다.

그동안의 도움과 성기사라는 이름 때문이라도 그가 하는 일을 막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수백 년간 숨어서 지낸 덕에 교단에 들킬 염려도 없었고.

다만, 이번 여행에는 데려가지 않기로 했다.

교단과 만나게 될 텐데, 괜히 꼬투리라도 잡히면 곤란했다.

이제는 영주가 되어서인지, 전에는 들려왔던 작게 쑥덕거리는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내가 멀어진 뒤에도 내 어린 나이와 ‘서자’라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새로 온 영주의 귀에 들릴까 봐 몸을 사리는 듯했다.

어디서 또 이상한 소문이라도 돌았나?

여태까지 바빠서 못했지만, 이번 일이 끝나고 잠행이라도 나와야 할듯했다.

그렇게 도시를 가로질러,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의 인사를 받고 북쪽 성문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편지에서 알려 준, 영지 북쪽을 향해 말을 달렸다.

* * *

공작, 그것도 이제 왕국의 실세가 된 그레시아 공작의 딸이었지만, 교단 내에서 보면 수습 사제에 불과한 엘레나였다.

아무리 내가 믿음직하다고 해도, 그녀 마음대로 내게 그런 편지를 보냈을 리가 없었다.

당연히 위에서 지시를 내렸던가, 허락을 해 주었을 터였다.

엘레나의 뜻이 아니라면 교단은 내게 뭘 원하는 것일까?

내전에서 화려하게 등장한 기사가 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왕국 수도의 신전에서 벌어진 일을 아는 자가 필요한 것일까?

하지만, 그들은 그런 종류의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편지를 읽어보니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편지에는 조직이 내 영지 안의 유적을 찾아냈다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영주인 내게 편지를 보냈다는 말은 내가 영주로서 유적을 찾아가기를 바라는 것일 터였다.

영주의 직위를 이용해서 일을 망쳐달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한번 붙었다가 깨진 걸까? 아니면 직접적으로 상대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을지도…….’

어느 쪽이든 교단이 밀렸다는 것일 테고, 내가 상대할 자들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조직일 터였다.

‘뭐라도 이름을 붙여야지, 매번 조직이라고 하니까 헷갈리는군.’

편지만으로는 그 조직인지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이들이어도 별 상관은 없었다.

다만, 쓸만한 유적이길 바랄 뿐이었다. 돈 될만한 유물로 가득 찬.

그렇게 우리는 계속 북쪽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몇몇 마을을 방문해서 공식적인 목적인 영지 순행도 행했다.

생각대로 영지의 외각으로 나갈수록 마을들의 사정은 안 좋았다.

우리를 보고 도망치는 강도들을 잡은 적도 있었고, 우리를 보고 목숨을 내놓고 구걸하는 영지민들도 있었다.

나는 잡은 강도들은 죽이고, 구걸하는 영지민들은 약간의 식량을 주고 수도로 보냈다.

어차피, 두 영지가 통합되었으니, 도시는 더 커질 터였다.

공주와도 공국과도 사이가 나쁘지 않으니, 우리 영지도 교역로로 써먹을 만했고.

생각대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왕 영지를 얻게 되었으니, 제대로 써 먹어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평야를 거쳐, 우리는 산맥에 들어서게 되었다.

북부 산맥의 지류에 불과한 산맥이었지만, 이 산맥도 험하고 울창한 것으로 따지면 만만치 않았다.

수십 미터짜리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협곡과 능선이 북쪽으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군대를 이끌고 왔다면 여기서부터 군량 수송이 문제가 되었을 만한 험지였다.

물론, 군대도 안 데려오고, 식량은 배낭과 유물 주머니로 해결하는 나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였지만.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만한 소로를 따라가다가 후안에게 물었다.

“안쪽에 마을이 하나 있다고 했지?”

레스티처럼 알 수 없는 정보까지 물어 오지는 못했지만, 후안도 지나가는 마을마다 병사들을 풀어 여러 정보를 얻어오곤 했다.

“네. 사냥꾼들이 모여서 만든 마을이라고 했습니다.”

“그 마을에서 물어보면 되겠군.”

외부인이 유적을 찾으러 산맥에 들어왔다면 그 마을을 들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편지에는 정확한 위치가 없어서 곤란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을 듯했다.

아니, 물어볼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마을에 도착하기도 전에 당사자가 나타나 버렸다.

산에서 사냥꾼 한 명이 내려오다가 우리와 마주친 것이다.

젊어 보이는 사냥꾼이었는데, 그는 우리와 깃발을 보고 놀라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귀, 귀족 나리, 여기는 어쩐 일로…….”

“감히! 영주님이시다!”

깃발을 든 기사 디오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무 오래 들고 있어서 피곤해졌던 모양이었다

“네? 영주님이시라고요?”

그는 다시 한번 고개를 조아렸다.

“헉, 죄송합니다.”

디오구 기사는 사과하는 사냥꾼을 향해 소리쳤다.

“앞에 있는 마을로 가시는 길이다. 어서 안내해라!”

“어, 저는 지금 내려가야……. 아, 알겠습니다.”

그는 거절하려다가, 기사와 눈을 마주치고는 빠르게 몸을 돌렸다.

디오구의 말은 전생의 기준으로는 과했지만, 지금 이 세계 기준으로는 평범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두 사람의 대화를 두고 본 것이 아니었다.

발레아가 다가와 슬쩍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손에서 마나가 흘러나와 커다란 방음벽이 만들어졌다.

나나 기사들이 만드는 방법과 전혀 다른 형태의 방음벽이었다.

방음벽은 우리 일행 전체, 우리를 안내하는 사냥꾼을 제외한 모두를 감싸고 있었다.

방음벽이 펼쳐지자, 발레아가 사냥꾼을 보며 말했다.

“연극이 어설프네요.”

“네?”

발레아의 말에 디오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미겔이 손을 들어 사냥꾼을 가리켰다.

“사냥꾼 말이다.”

“네?”

디오구는 더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겔은 젊은 후배 기사에게 차분히 설명했다.

“지금 앞에 가는 사냥꾼이 한 말은 거짓말이라는 이야기다.”

그는 손가락을 내려 사냥꾼의 발을 가리켰다.

“아무리 봐도 사냥꾼의 발걸음이 아냐. 차라리 암살자에 가까운 발걸음이지.”

미겔의 말에도 디오구 기사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미겔의 말은 거기서 끝났지만, 설명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미겔에 이어 후안이 나섰다.

“여기까지 엎드려 절하지 말라는 공문이 오지도 않았을 텐데, 고개만 숙이더군요. 다른 곳에서 온 자거나 새로운 영주님이 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입니다.”

하지만, 후안이 한 말에는 디오구 기사도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나도 놀랄 정도의 추리력이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한 명 더, 길옆에 숨어서 지켜보던 자가 있었다는 것은 우리 영주님도 잘 아실 테죠?”

발레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냥꾼을 그냥 놔둔 것처럼, 숨어 있는 자도 건드리지 않았다.

그랬더니, 그자는 먼저 숲을 통해 우리 앞쪽으로 달려가 버렸다.

마을에 알릴 모양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 사냥꾼을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그의 몸에서 마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사냥꾼을 보며 말했다.

“사냥꾼인데 신기하게도 제대로 된 마나를 가지고 있군요.”

나는 처음 사냥꾼이 나타났을 때부터 그가 가짜 사냥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나를 저렇게 기사급으로 풀풀 풍기면서 사냥꾼이라니.

죽은 왕세자가 코웃음을 칠 일이었다.

물론, 암살자 특유의 방식으로 열심히 마나를 숨기고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마나 감응력’ 앞에서는 의미 없는 짓에 불과했다.

거기다, 머릿속을 울리는 음성까지.

[속지 마세요. 마을은 이미 점령당해 있습니다. 엘레나 사제와 함께 나온 사제들입니다. 원하실 때 신호를 주시면 저희가 돕겠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유적 일은 무척이나 정신없는 일이 될 것 같았다.

나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만 봐도 그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유적에 도착했습니다. 새로운 ‘저장 시점’을 설정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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