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3화
제8편 구인 (3)
나는 당연히 가장 친한 두 기사를 먼저 만났다.
미겔과 우고.
미겔은 어려서부터 나를 가르친 기사였고, 우고는 유적 때를 포함해서 여러 번 나와 함께 움직이고, 나를 도와준 기사였다.
시간이 지나 미겔도 30대 중반이 되었고, 우고는 40대의 중년 기사가 되었다.
실력도 일취월장해서, 두 사람은 이 기사단의 선임 기사가 되어 있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자, 아니 자작님이 쓰실 기사가 필요하시다는 거죠?”
“맞아. 영지를 얻게 되었는데, 영지의 기사가 하나도 없어.”
오헨 영주 대리도 실력 있는 기사였지만, 그를 기사로 쓸 수는 없었다.
물아센 영지에 남아있던 기사도 내가 다 죽여버렸고.
결국, 내 휘하의 기사는 하나도 없었다.
내 말에 미겔과 우고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뭔가 내가 모르는 사인이 오가고,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미겔이 내게 말했다.
“그럼, 오랜만에 자작님의 실력을 확인해봐야겠군요.”
“둘 다?”
“당연히 저희가 봐야죠.”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솔직히 대련하자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소개해주려면 두 사람이 실력을 확인 보는 게 제일 확실하지만, 왜 내 실력을 본다는 건지…….
기사가 영주의 실력을 확인하고 소개를 해주겠다는 이야기는 두 사람과 아무리 친하더라도 기분이 상하는 이야기였다.
이미 내 실력으로 작위와 영지를 얻었으니, 충분히 실력을 증명한 것이었다.
실력자는 고향에서 인정을 못 받는다더니…….
아무래도 두 사람과 너무 친했던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버럭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이게 다 기사를 구하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지 않으니 대련에서 혼쭐을 내주기로 했다.
박박 굴리다 보면 기분이 풀릴 게 분명했다.
그렇게 우리는 연무장으로 향했다.
언제 알렸는지, 연무장에는 기사들이 많이 와 있었다.
나는 걱정이 되어, 미겔에게 물었다.
“이렇게 다 와서 봐도 돼?”
옆에서 우고가 특유의 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보여주면 안 되는 겁니까?”
솔직히 난 상관없었다.
보여줘도 되는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둘 다 제압할 수 있었다.
다만, 그렇게 져버리면 두 사람의 명예에 문제가 될 텐데…….
“그건 아니지만.”
“그럼 괜찮습니다.”
내 말에 우고도 괜찮다고 대답했다.
미겔도 마찬가지였다.
“요새 자작님의 실력을 다들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공국에서 잠깐 보긴 했지만, 그거야 우리 정도나 되는 기사나 알아볼 수 있었고요.”
그런 난전에서 다른 싸움에 눈을 돌리기는 어려웠을 터였다.
거기다 소개해줄 기사들에게 내 실력을 보여줄 모양이었다.
확실히, 영주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준다면 소개도 쉬워지겠지.
이해가 되긴 했지만, 그래도 봐줄 생각은 없었다.
나는 연무장 옆에 세워진 검을 들었다. 예전에 썼던 공작가의 훈련 검, 오랜만에 잡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나는 검을 들고, 연무장 가운데에 섰다. 그리고 검을 들어 우고와 미겔을 가리켰다.
“둘 다 나와. 실력을 보여주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조금 오만한 말이었지만, 두 사람은 흔쾌히 받아들었다.
“좋습니다. 오랜만의 대련이군요.”
두 사람도 훈련 검을 꺼내 들고, 내 앞에 섰다.
우고와 미겔이 검을 들고 내 앞에 서자, 두 사람의 마나가 움직여 간격을 조율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몸 밖으로 내뿜은 마나가 상대의 마나를 밀어내지 않고, 서로 조율하는 모습.
수십 년 동안 함께 싸운 기사들이 보여줄 수 있는 대단하고 신기한 광경이었다.
지금부터 두 사람이 보여줄 검술도 이 마나처럼 서로를 보완하는 검술일 터였다.
수십 년간 갈고 닦은 공작가 검술의 합격 술.
두 명의 기사와 싸우는 게 아니라, 손이 네 개 달리거나 몸이 두 개인 한 기사와 싸우는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감탄한 목소리로 두 사람에게 말했다.
“시작해!”
내 말이 끝나는 순간, 두 사람의 검이 내게 쏘아져 들어왔다.
내 생각대로였다.
두 사람의 검은 마치 쌍검술을 쓰는 사람의 검처럼 서로를 보완하면서 나를 공격했다.
그리고, 나도, 그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아쉽게도 대련은 금방 끝났다.
“항복! 졌습니다!”
몇 번 나뒹굴지도 않았는데, 두 사람이 항복을 선언해버린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나는 이제 시작이야.”
정말이었다. 혼내주려는 마음은 둘째치고, 오랜만의 대련에 이제야 슬슬 몸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여기서 멈추다니, 이렇게 되면 김빠진 사이다를 마시는 것보다 더 아쉬워질 게 분명했다.
하지만, 미겔도 우고도 내 생각과는 다른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바닥에 주저앉아 마구 손을 내저었다.
“아뇨. 충분히 확인했습니다. 이제는 상대조차 안 된다는 것을 충분히 알았습니다.”
나는 입맛을 다셨다. 처음부터 너무 신나게 검을 휘두른 모양이었다.
벌은 무슨, 좀 더 아껴먹었어야 했다.
영지로 돌아가면 이런 기사들과는 싸울 기회가 한동안 없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 아쉬워졌다.
한숨을 쉬며 검을 늘어뜨리자 두 사람이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도 두 사람의 시선을 따라 기사들을 살펴보았다.
눈을 둥그렇게 뜬 기사들.
전부터 보아왔던 기사들은 자신들의 생각보다 더 성장한 실력에 놀란 것 같았고,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기사들은 처음 본 내 실력에 놀란 모양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확인한 미겔이 나보다 더 만족한 얼굴로 모두에게 이야기했다.
“모두 봤지? 또 뭐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번에는 나를 상대해야 할 거야.”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뭔가 나에 대해 이야기가 있었던 걸까?
미겔에 이어 우고가 입을 열었다.
“우리 둘 다 이렇게 처참하게 져버렸으니, 앞으로 우리가 알렉스 자작 밑에 가서 실력을 쌓겠다는 말에 뭐라 하는 사람은 없기를 바란다.”
네? 뭐라고요?
두 사람이 내 밑으로 들어온다고?
놀란 음성이 밖으로 나오려 했지만, 입술을 꾹 깨물어 새어 나오지 않게 했다.
여기서 내가 초를 칠 수는 없었다.
예상치 못한 말이었지만, 이런 이야기도 의연하게 받아들여야 좋은 영주가 되는 법이었다.
그러고 보니 모여있는 기사 중에 앙헬 같은 첫 번째 공작부인 쪽 기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전부 공작부인을 따라간 건가?
아니면 두 사람이 부르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공작부인 쪽 기사들이 없으니 뭐라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알론소 기사단장도 공작과 함께 수도에 남아있었기에 두 사람의 전횡에 막을 기사가 없었다.
모였던 기사들이 흩어지고, 내가 두 사람을 빤히 바라보자, 미겔이 내 눈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따지고 보면 공자님 때문이에요. 우리 두 사람은 공자님하고 얽히면서 기사단의 주류에서 벗어나 버렸어요. 제가 공자님을 가르칠 때, 우고 선배님이 말씀하셨던 게 맞았던 거죠.”
설마, 그런 이야기가 있었던 거였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몇 번이나 삶을 반복했는데 그걸 못 알아차리다니.
그동안 내 실력을 끌어올리기 바빴다지만, 내 생각보다 훨씬 기사단에 무심했던 것 같았다.
“저와 달리 미겔은 실력으로 이겨내고 위로 더 올라갈 수 있지만 저는 이 자리가 한계입니다.”
“저도 다를 바 없습니다. 거기다, 공자님 옆에 있어야 더 실력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실력을 올려주는 것은 충분히 해줄 수 있었다.
물론 도움도 주겠지만 그동안 싸움에 휘말리는 내 꼴을 보니 내 옆에 있으면 싸움은 원 없이 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열심히 구인하려 했지만, 다행히 알아서 사람이 모이는 것 같았다.
인복이 있는 것인지, 그동안의 노력이 보상을 받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훨씬 좋은 사람들을 섭외할 수 있었다.
다만 미겔과 우고, 두 사람은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런 대련만으로 선임 기사 둘을 데려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수도에 있는 공작과 기사단장도 문제였지만, 영주 대리가 두 사람을 그냥 놓아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내 생각은 틀렸다.
“두 사람이 가고 싶다면 보내줘야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시몬이 쓴웃음을 지으며 한 말이었다.
집무실 책상 뒤, 공작이 앉아 있던 그 의자에 앉아 있는 시몬은 아직 어린 나이지만, 공작과 조금 닮아 있었다.
그는 옆에 쌓여있는 수많은 서류를 처리하며 계속 말했다.
“아버지가 권력을 차지하신 덕에 수도에 있는 기사들이 우리 영지의 기사로 많이 지원하고 있어. 알론소 기사단장이 지원하는 기사들을 걸러내는 데 정신이 없는 모양이야.”
하기야, 귀족들의 수장에 내각의 장이 되어버린 공작이었다.
내전으로 있을 곳이 없어진 기사들이 제일가기를 원하는 곳은 왕실 기사단을 제외하면, 공작의 기사단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수도에 가신 이유 중 하나가, 마음에 맞는 기사들을 뽑기 위해서였으니까.”
나는 공작부인이 수도로 올라간 것은 그동안 누릴 수 없었던 사교계를 활보하기 위해서일 거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이 짧았던 모양이었다.
사교계 때문도 있겠지만, 공작부인은 아들의 기사들을 고르기 위해 수도에 간 것이었다.
역시 그녀는 아들을 사랑하는 제대로 된 귀족이었다.
결국, 내가 데려가지 않아도, 미겔과 우고는 기사단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두 사람은 나와 함께 가려 했고 그것에 반발하는 기사들에게 내 실력을 보여준 것이었다.
결국, 공작령에 온 일은 내 생각보다 훨씬 잘 풀렸다.
영지로 같이 가게 된 사람도 내 생각보다 훨씬 많아졌다.
어머니와 후안 가족, 그리고 두 선임 기사와 그를 따라온 젊은 기사 넷.
서기관들은 꼬시지 못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만족 이상이었다.
내가 타고 온 마차로는 다 데려갈 수 없을 정도였다.
우리는 추가로 마차를 얻고, 말도 더 구해서 공작령을 나섰다.
이번에도 시몬 부부가 저택 밖까지 우리를 배웅했다.
저건 배다른 동생을 위한 배웅인지, 아니면 앞날이 밝은 새로운 귀족을 배웅하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시몬 부부는 좋게 내 머릿속에 남게 되었다.
더 인원이 많아져서인지, 돌아오는 길은 더 편안했다.
이제는 아예 건드리는 사람이 없어서 어머니에게 몹쓸 장면을 보여주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물아센 영지로 돌아왔다.
저택에서 기다리던 발레아와 어머니의 만남은 생각보다 좋아 보였다.
어머니는 발레아를 배려해 주셨고, 발레아는 어머니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니, 잠깐. 발레아가 고개를 숙였다고?
“자작님 어머니는 조금 무서운 면이 있으세요.”
그 상황이 이상해서 발레아에게 물었더니, 더 이상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해가 안 되었지만, 덕분에 저택은 편안했다.
다른 사람들도 영지에 잘 적응했다.
기사들이 있으니 내가 없어도 안전에 걱정이 없었고,
후안도 레스티를 대신해서 병사들을 잘 관리했다.
레스티는 본업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오헨 기사도 자주 물아센 저택에 방문해서 보고를 올렸다.
그렇게 활기차고 순탄한 겨울이 지나갔다.
그리고 봄이 되었다.
봄에도 두 영지는 별문제가 없었지만, 한가지 내게 문제가 생겼다.
영지를 꾸려가는 데는 돈이 엄청 많이 필요했던 것이다.
영지의 창고는 점점 비어 갔고, 내 개인 자금마저 슬슬 바닥이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무슨 편지인데 그렇게 여러 번 읽으시는 건가요?”
오랜만에 발레아와 함께하는 다과 시간.
내가 계속 반복해서 편지를 읽는 것을 보고 발레아가 물었다.
“누님의 편지에요. 안부 인사가 아니라 진행 상황 보고 겸, 양해 편지라고 할까?”
내 설명에 발레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게는 돈이 나올 정보라는 거죠.”
편지에는 내 영지 북쪽에 있는 산맥에서 유적이 발견되었다고 적혀있었다.
전에 내가 말했던 조직의 흔적을 쫓다가 그 조직원이 드나드는 유적을 발견했다는 이야기였다.
편지에는 그 정보와 영지 안에서 교단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을 양해해주기를 바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열심히 누이를 꼬신 보람이 있었다.
그리고, 영주인 나는 교단 사제들이 내 영지를 마음대로 다니는 것을 충분히 양해해줄 수 있었다.
다만, 이 영지에 있는 유적은 다 내 것이었다!
조직이든 교단이든 내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게 둘 수는 없었다.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봄, 다시 움직일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