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2화
제7편 여사제
기사들을 볼 생각이었지만, 시간을 내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나와 엘레나는 연무장으로 가는 길 옆에 있는 정원으로 향했다.
작은 벤치와 테이블이 놓인 정원 안쪽의 야외 응접실.
엘레나와 나는 그곳에 마주 앉았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플로라가 물었다.
“다과를 준비할까요?”
엘레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볼일이 있어서 가던 중이었잖아요. 몇 가지만 물어볼 거니까요.”
“말 놓아도 됩니다.”
“그래도 되나……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쉽게 말을 놓기가 어렵네. 어렸을 때 귀여운 모습도 흔적만 남았고. 거기다, 이번에 작위하고 영지도 받았다며, 이제 나와는 천지 차이니까.”
엘레나도 이제는 어렸을 때 발랄하던 그 소녀가 아니었다.
수녀원 소속 아카데미에 다녀서일까. 행동도, 말하는 것도 절도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질문이…….”
“다른 게 아니라 돌아가신 어머니에 관해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온 거야.”
역시 예상대로였다.
엘레나를 피하려 한 것도 그 질문이 나올 것 같아서였는데.
피할 수 없는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포기하고 그녀가 질문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엘레나는 바로 묻지 않았다.
대신, 플로라와 그녀를 따라온 하녀를 멀찌감치 물려놓았다.
그 모습에 나는 슬쩍 주변에 방음벽을 쳤다.
확실히 죽은 둘째 공작부인 이야기라면 듣는 사람이 적어야 했다.
“방음벽이네. 고마워.”
신기하게도 내가 방음벽을 치자마자 엘레나는 그것을 알아차렸다.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을 텐데…….
어쨌거나, 그녀는 방음벽이 처진 것을 알아차리곤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만 그녀는 질문이 아니라,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늘어놓았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나는 어머니 때문에 아카데미로 보내진 거잖아.”
하기야, 못 알아차릴 리가 없었다. 외가에서 연락이 안 갈리도 없었고.
“처음 아카데미에서 정말 외롭고 힘들었어. 수도원 산하라서 그런지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돌아다니는 것도 제한이 많았고, 신분 차이도 나기 때문에 다들 나를 외면했어.”
그래도, 공작의 딸이라 편하게 보냈으리라 생각했는데, 엘레나는 나와 반대 이유로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아만다 부인이 꾸준히 보내주는 편지는 고마웠지만, 나를 보낸 아버지, 공작님에게도 화가 나고, 집에 남은 다른 가족, 거기다 너에게까지 화가 났었지.”
엘레나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조금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정당방위긴 했지만, 그래도 꺼림칙한 기분이 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모두의 모함에 어머니와 내가 쫓겨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니까.”
“그래서 방학 때 몰래 외가로 찾아가기도 했어. 다만 거기서 본 어머니는 예전에 알던 어머니와 완전히 달라져 있었지만…….”
그런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분명, 공작은 알고 있었을 텐데…….
“어머니의 모습은 왜 쫓겨났는지 나도 이해가 될 정도였어.”
엘레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도 진실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으니, 나름 나쁘지 않은 결과였지만, 그녀의 질문에 이 이야기가 왜 필요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신세 한탄일까?
“알고 있겠지만, 공작님께서는 내가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에 다른 귀족과 결혼을 시킬 생각이었어.”
하지만, 엘레나의 엉뚱한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어머니를 보고, 수도원 산하 아카데미에 다니는 동안 나는 결혼할 생각을 버렸지만.”
아니, 그게 되나? 귀족의 딸이 마음대로 결혼을 거절할 수가 없을 텐데…….
전생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이게 무척이나 불합리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세계는 귀족 자녀의 결혼을 본인이 결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려면 나처럼 직접 작위 정도는 가지고 있거나 발레아처럼 가주가 손을 대지 못할 정도로 힘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엘레나는 그렇지 않을 텐데?
“내전으로 아카데미가 해산된 뒤에 나는 교단에 귀의했어. 아직 정식 사제는 되지 못했지만, 준 사제 신분을 가지고 있어.”
엘레나는 내게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꺼내 보여주었다.
확실히 교단의 성직자가 걸고 다니는 목걸이였다.
교단의 사제나 신관이 된다면 가문과도 절연이 되니, 집안의 결혼을 거절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결혼을 하지 않으려고 사제가 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이야기가 뭔가 이상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너는 잘 모르겠지만, 각성한 귀족들은 교단에서도 조금 특별한 일을 맡고 있거든. 그래서 나도 준 사제로 그 일을 돕고 있어. 고대 제국이 남겨놓은 악마의 유물과 이단들을 쫓는 일이야.”
아니, 알고 있었다.
교단이 유물을 모아서 없애고, 기록을 지우고 있다는 것도, 다른 종교들을 철저히 탄압하는 것도.
하지만, 맙소사.
내 누이가 그 일에 가담하니.
이건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
“그 일 때문에 질문하는 거야. 능력을 잃어버렸던 어머니가 능력을 되찾고 폭주했다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어.”
비밀로 했던 일이지만,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소문이 안 퍼졌을 리가 없었다.
“이건 우리가 쫓고 있는 고대 제국의 악마나 이단자들이 벌인 일일 가능성이 커. 알렉스 네가 그때 그곳에 있었다는 말을 들었어.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나는 멍하니 엘레나를 바라보았다.
분명 듣고자 하는 이야기는 같았는데, 그 이유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엘레나는 딸로서 어머니의 죽음을 듣기 위해 나를 찾아온 게 아니었다.
그녀는 교단의 이단 심판관으로 사건의 증인을 찾아온 것이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예상 못 한 이야기에 생각을 다시 정리해야 했다.
원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얼버무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이라면 대답도 달라야 했다.
나는 엘레나 누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얼굴과 자세만 달라진 게 아니었다.
그녀의 눈은 무척이나 맑고 차가웠다.
확실히 교단의 신관, 사제들의 눈과 비슷했다.
자신의 믿음에 확신을 가진,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눈. 교단의 신을 진심으로 믿는 눈이었다.
저런 눈을 가진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말은 의미가 없었다.
진실을 아는, 배다른 남매로서는 안타까운 눈이었지만, 덕분에 나는 어떻게 말할지 정할 수 있었다.
“저는 그때 공작님의 지시로 공작부인 영지의 이상을 확인하러 갔었습니다.”
우선, 처음부터 공작 핑계를 댄 뒤에…….
“하지만, 영지에 갔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습니다. 공작부인은 이미 폭주한 뒤였고, 영지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녀의 노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사실에 근접하게 모든 이야기를 해주었다. 다행히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엘레나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엘레나의 표정을 보면서 속으로 헛웃음을 웃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엘레나가 가장 찾고자 하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나는 신검을 가진 이단의 성기사였다.
교단에게 큰 피해를 준 사람이었고. 지금도 앞으로도 교단에 피해를 줄 예정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이야기를 듣고 있다니.
말하는 나도 고개를 저을 지경이었다.
앞으로도 누이를 죽이지 않으려면, 내가 성기사라는 것은 들키지 말아야 할 듯했다.
하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성기사인 데다가, 고대 제국의 유물을 쓰고 있으니, 언제가 되었건 나는 교단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가 되면 엘레나와도 결론을 내려야 할 게 분명했다.
다만, 그건 그때 생각할 문제였다.
그런 이유로 이런 좋은 기회를 날릴 수는 없었다.
교단과 조직을 싸우게 할 기회였다.
공작부인 마리아의 폭주는 분명 조직 혹은 조직과 관련된 자가 일으킨 일이었다.
나는 공작부인이 회복된 것과 비슷한 일들을 알고 있었다.
왕족들의 각성, 죽었던 삶에서 입학식장을 터트린 두 신입생.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목걸이까지.
모두 얻을 수 없던 능력이 생겨나거나, 능력이 증폭된 결과였다.
각 사건이 조금씩 다른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연관이 없을 리가 없었다.
솔직히 연관이 없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누가 봐도 연관이 있을 만하니, 가져다가 붙이면 그만이었다.
고대 제국의 유물을 열심히 써먹고, 개조하는 조직.
그리고 고대 제국 유물을 파묻으려 하는 교단.
물론, 둘 다 차르 제국에 거점을 두고 있어, 뭔가 접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건 두 집단의 목표가 충돌하는 상황이었다.
이 일이라면 두 집단을 충분히 싸우게 할 수 있었다.
어머니 일이라 엘레나도 더 열심히 추적할 터였다.
그 가운데 뭔가 정보를 얻으면 더 좋고.
조직도, 교단도 전부 제국에 기반이 있어서 무척 막막했는데, 마침 잘 되었다.
나는 미안한 마음을 제쳐두고, 최대한 열심히 설명했다.
조직과 싸우려면, 이용할 수 있으면 다 이용해야 했다.
“……그렇게 공작 부인에게 벌어진 일들은 내전에서 벌어진 일들과 비슷했어요. 마물왕을 2 왕자가 깨운 것도 그렇고요.”
나는 최대한 공작 부인에게 벌어진 일을 조직과 연관시켰다.
다행히, 내 말은 엘레나에게도 먹힌 것 같았다.
“그렇구나. 그래서 내가 이렇게 찾아온 거야. 그동안 우리는 그들의 흔적을 추적 중이었어. 전부 말해줘서 고마워.”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주세요. 제가 도울 수 있으면 돕겠습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저도 꽤 싸울 줄 압니다.”
나는 엘레나를 보며 진심으로 말했다.
싸움에는 자신 있었다. 조직과도 여러 번 싸웠고.
물론, 교단과도 좋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모르면 같이 싸울 수도 있는 법이었다.
“고마워. 필요한 일이 있으면 꼭 부를게.”
내 진심이 통한 모양이었다.
결국, 나는 엘레나에게 약속을 받아냈다.
그렇게 약속을 받아낸 뒤, 엘레나가 다시 공작부인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어머니는…….”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역시, 그냥 넘어가는 것은 무리였으려나?
대충 얼버무렸지만, 공작부인의 죽음에 내가 연관된 것은 숨기기는 어려웠다.
“알렉스가 폭주한 어머니를 쉬게 해준 거지?”
역시 얼버무린 것은 실패였다. 엘레나는 내 생각보다 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고마워. 어머니를 멈추게 해주어서. 죽은 어머니도 고마워할 거야.”
아니, 분명 나를 증오하면서 돌아가셨는데…….
폭주 전에도 싫어하셨고.
하지만, 그건 고인의 명예를 위해 나만 알기로 했다.
죽은 사람은 더 화를 내겠지만,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었다.
그렇게 남매간에 정다운 이야기를 끝내고 우리는 헤어졌다.
엘레나는 신전으로 갈 모양이었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다른 신관과 사제들과 함께 내가 알려준 정보를 확인하면서 이단 심판관의 일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셀린 교단의 성기사로서는 그들을 그냥 보내는 게 마음에 안 들었지만, 이번에는 내 일을 대신해주게 되었으니 곱게 보내기로 했다.
엘레나가 반대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마지막으로 본 뒤에 나도 가려던 길을 걸었다.
이제 기사들을 만나볼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