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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329화 (329/563)

제329화

제4편 물아센 영지 (3)

밤이 깊어질수록 도시는 더욱 어두워졌다.

가로등도 밝히지 않았고, 등을 켜는 집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어두운 도시 가운데 환하게 불을 밝힌 집이 하나 있었다.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커다란 저택. 그 저택은 방마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환한 불 아래로 병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는 게 보였다.

낮술까지 마셨던 성문의 병사들과 다르게, 저택의 병사들은 제대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집사장의 집에서 호쾌하게 뛰쳐나온 것과는 다르게, 나는 저택으로 걸어가며 집사장의 설명을 들었다.

“결론적으로, 두 번째 자작 부인과 선임 기사가 손을 잡은 게 맞긴 합니다. 물아센 자작님이 돌아가신 게 알려진 뒤에, 저택 안은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습니다. 첫 번째 부인이 자작의 총애를 받았던 두 번째 부인을 죽이려 했던 것이죠. 그런데, 죽기 전에 선임 기사가 알게 되어, 오히려 첫 번째 부인이 죽어버렸습니다. 선임 기사가 자작 부인을 죽인 게 되어버렸으니, 일이 우습게 된 거죠. 결국, 두 번째 부인과 선임 기사는 남아 있는 다른 기사들을 회유하고, 용병들을 모아서 도시를 장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택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집사장의 말을 발레아와 이바나는 눈을 반짝이며 듣고 있었다.

확실히, 연애소설 같은 데에 나올 만한 이야기였다.

기사와 두 번째 부인에게 연민도 느껴졌고.

하지만, 내 집에서 일이 벌어진 이상, 전부 아무 소용없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결국, 대관식과 피로연이 끝나고, 이 영지를 다스릴 영주가 오기 전에 사랑의 도피를 하겠다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감히, 내 돈을 가지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을 따르는 병사들도 많고, 용병들과 기사도 있습니다. 성 밖에 있는 병사들을 데려오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집사장은 저택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나를 설득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이해시키지 않았다. 괜히 이해시키느라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눈으로 보여주면 그만이었다.

나는 저택 앞에 도착한 뒤에 집사장에게 물었다.

“저택을 지키는 자 중에 쓸 만한 자가 있나?”

“네?”

“살려서 쓸 만한 자가 있느냐는 말이야.”

그도 내 말투가 바뀐 것을 알아차렸다.

집사장은 조심스럽게 내 말에 대답했다.

“회유가 안 돼서 감옥에 갇혀 있는 기사 두 분이 있긴 한데…….”

“그럼, 상관없겠군.”

다 죽여도 상관없다면, 저택에 잠입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정문을 향해 걸어가며, 발레아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녀가 담벼락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을 보고, 나도 들고 있던 단도를 던졌다.

단도는 정문을 향해 쏘아졌다.

“윽.”

작은 신음과 함께 정문을 지키던 병사가 쓰러졌다.

“뭐야?”

옆에 있던 병사가 놀라 고개를 돌렸지만, 그의 가슴에는 빛나는 선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서걱.

밤하늘에 핏줄기가 뿌려지며 병사가 쓰러졌다.

정면 대결에서는 기사들에게 견제 용도밖에 쓰이지 못하는 ‘마나 방출’이었지만, 평범한 병사에게는 막는 게 불가능한 원거리 공격이었다.

그렇게 입구를 지키던 두 병사가 쓰러지는 동안, 벽 뒤에서 개들의 작은 비명이 들려왔다.

“컹! 커엉!”

입이 묵힌 채로 어딘가 끌려들어 가는 소리였다.

그렇게 풀어놓은 개들의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게 되자, 정문 앞은 조용해졌다.

나는 평범하게 정문을 지나갔다.

조금 전까지 열심히 병사들 이야기를 꺼내던 집사장은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그렇게 정문을 지나, 우리는 저택의 앞뜰을 통과했다.

미로 같은 정원을 지키는 병사도 있었고, 몇몇 용병들은 나무에도 숨어있었지만.

그들 중에 우리를 막아서거나, 호각을 불 수 있었던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저택 밖을 지키던 병사와 용병들을 모두 잠재우고, 우리는 저택의 문을 열게 되었다.

끼이이익.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텅 빈 홀.

밤이라 홀 안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밤에 순찰하는 하인들이 보이지 않네.”

용병이나 병사들이 대신 내부를 도는 걸까?

내 말에 집사장이 급하게 말했다.

“고용인들은 억지로 일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제발 살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조금 전과 달리, 부탁을 하는 집사장의 얼굴이 땅에 닿을 것 같았다.

생각보다 너무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

하지만, 이바나도 조금은 질린 얼굴이었다.

다만, 발레아는 전처럼 싱글거리고 있었다.

“몰랐죠? 알렉스 자작님은 무서운 분이랍니다.”

거기다, 이바나에게 저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평범하게 움직였을 뿐이었는데…….

그냥 집을 지키는 병사들과 용병들을 죽이고, 안으로 들어온 것뿐.

해체 쇼를 벌인 것도, 신나게 고문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러고 보니, 이바나나 집사장은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생각해보니, 자극이 조금 과했을지도 몰랐다.

다만, 아쉽게도, 그 이유가 아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람을 죽이면서도 평범한 서류에 사인할 때처럼 무덤덤했던 내 표정 때문이었지만, 그걸 알아차린 것은 꽤 나중의 일이었다.

우리가 홀을 지나갈 때, 발레아가 홀 중앙에서 멈춰 섰다.

“저는 여기에 있을게요.”

그녀의 말에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확실히 그녀의 영역을 퍼트리려면 이곳이 제일 좋아 보였다.

“호위는 없어도 되겠습니까?”

내 말에 발레아가 미소를 지으며 한쪽으로 손을 뻗었다.

덜컹. 덜컹.

홀 한쪽에 서 있던 갑옷 장식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뒤, 갑옷 장식들은 우리 앞까지 걸어와 발레아 양옆을 지키고 섰다.

신기하게도 갑옷 장식들은 진짜 기사처럼 보였다.

“이 정도면 되죠?”

발레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발레아 님의 능력이 이 정도일 줄 몰랐어요.”

“이게 이바나 영애의 능력 덕분이에요. 제게 능력을 부여한 뒤부터 활용법이 엄청나게 많아졌어요.”

이바나와 발레아가 능력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이바나와 말을 하면서도 그녀를 중심으로 마나가 퍼져나가는 것을 보니, 이제는 집중하지 않고도 영역을 만들 수 있어 보였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여기서부터는 따로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거친 싸움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다들 이곳에 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내 말에 이바나도 집사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죽는 것을 봐서인지, 다들 남기를 원했다.

나는 집사장에게 자작 부인과 선임 기사의 위치를 물었다.

설마, 이렇게 되었는데 따로 지내지는 않겠지.

“두 사람이 있는 방은 어느 쪽입니까?”

“두 번째 자작 부인의 침실은 이 층으로 올라가서 서쪽 끝 방…….”

역시, 같이 지내는 게 맞았다.

“방을 확인했어요. 그런데, 두 사람은 그 방에는 없는데요. 설마, 벌써 짐을 챙겨서 도망치려는 걸까요? 다른 사람들하고 복도로 나와 있어요. 어라, 싸우는데요?”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나는 발레아에게 주의를 주고 2층 계단으로 몸을 날렸다.

“들었죠? 고용인들은 죽이지 말아야 한다는 거.”

“설마 제가 그런 짓을 하겠어요? 그냥 사람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막기만 할 거예요.”

뒤에서 발레아의 대답이 들려왔지만, 솔직히 믿기가 어려운 대답이었다.

그녀가 사람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벽 속에 밀어 넣기 전에 일을 끝내기로 했다.

생각보다 저택의 내부가 컸지만, 그래봐야 자작의 저택일 뿐이었다.

나는 금방 발레아가 말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해서 본 광경은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저택 이 층의 복도 끝에 기사들이 모여 있었다.

세 명의 기사가 한 명의 기사를 포위한 듯한 모습.

포위당한 기사의 뒤에는 어린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발레아, 아니 이바나보다도 어려 보였다.

분명, 자작의 둘째 부인과 선임 기사라고 들었는데…….

저기에 여자는 어린 소녀밖에 없었고, 소녀를 지키는 남자는 아무리 봐도 중년의 기사였다.

확실히, 이 세계는 어릴 때부터 결혼을 할 수 있는 세계였고.

선임 기사라면 나이가 많기도 하겠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좀 심해 보였다.

아니, 내가 죽인 자작은 분명 저 기사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았는데…….

몇 년 전에 부인으로 삼았다면, 도대체 몇 살 때 부인으로 삼았다는 건지.

‘잘 죽였어. 확실히 잘 죽인 거야.’

나는 물아센 자작을 죽인 나를 칭찬할 수 있었다.

이미 한차례 싸움이 지나간 듯, 소녀를 지키는 기사는 많이 다쳐 있었다.

그는 자신을 포위한 기사들에게 소리쳤다.

“충분히 보상했잖은가! 왜 우리를 막는 거지?”

“아니, 보상이 약하다는 겁니다. 새 영주가 오면 도망자 신세가 될 텐데. 좀 더 많은 보상이 필요하다는 거죠.”

“아니, 그런 이유로……. 기사의 명예는 어떻게.”

“이 도시를 차지했을 때부터 기사의 명예는 끝장난 거잖습니까. 뽑아먹을 게 있으니 그동안 말을 들어준 거고. 이제 헤어질 때가 되었으니, 결산을 하자는 거죠.”

주변을 둘러본 선임 기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삼 대 일에 자신은 다친 상황. 이기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다 내주겠네. 우리만 나가게 해주게나.”

선임 기사의 말에 다른 기사들이 피식 웃었다.

“자작 부인은 생각이 다르신 모양인데요?”

기사의 말대로 선임 기사 뒤에 숨어 있던 소녀는 가슴에 안고 있는 짐을 더욱 꽉 움켜쥐었다.

절대 놓지 않겠다는 모습이었다.

선임 기사가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살고 봐야 하지 않겠…….”

그가 소녀를 설득하려 했지만, 기사들은 그가 말하기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냥 죽어주시면 됩니다. 모두 움직여!”

기사 셋이 덤벼들자, 선임 기사는 급하게 검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선임 기사라 하지만, 나이 든 기사가 젊은 기사 셋을 막기는 어려웠다.

상처가 늘고, 결국, 검을 든 팔이 잘려 나갔다.

서걱.

기사는 바닥에 쓰러지고, 소녀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기사를 안았다.

“안 돼!”

비명이 복도를 울렸다.

“안됐지만, 이게 운명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다른 기사가 검을 치켜들었고, 이어서 검이 휘둘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팟.

소녀의 눈앞에 피보라가 몰아쳤다.

동시에 여러 조각으로 잘려 나가는 기사들.

그녀를 죽이려던 기사들이 한순간에 조각들로 변해버렸다.

소녀는 놀란 눈으로 새로 나타난 사람을 쳐다보았다.

젊은 남자가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심한 눈과 담담한 표정.

그는 온통 피가 가득한 복도에 홀로, 깨끗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소녀는 그를 보고 애원했다.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누굴 살려달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애원이 통한 모양이었다.

남자는 가슴에서 검을 빼내더니, 기사 위에 올려놓았다.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잘린 팔도 아물고, 상처들이 사라졌다.

소녀는 놀란 눈으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때였다.

벽이 꿀렁거리더니, 여자의 얼굴로 변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벽이 변한 여자의 얼굴은 조금 새침해 보였다.

“둘을 살려 줄 생각인가 보네요. 고용인들도 아닌데…….”

발레아의 말에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미지’라는 것 말인가요?”

“관용이 넘치는 새 영주라는 이미지 때문도 있지만, 그것보다 궁금한 게 있어서요.”

나는 바닥에 상처가 회복된 한쪽 팔 기사와 어린 소녀를 쳐다보았다.

“한쪽 팔이 잘린 기사와 쫓겨난 귀족 아내가 빈털터리로 얼마나 잘살아갈지 궁금해서요.”

물론, 숨겨진 재물이 더 있는지 말해 줄 사람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그건 작은 이유일 뿐이니까.’

나는 겁에 질린 소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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