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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325화 (325/563)

제325화

제25편 자작의 영지 (1)

귀족들과 서기관들, 왕실 고용인들까지 즉위식을 준비하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닌 한 달이었다.

물론, 호위 기사인 나와 별다른 직위가 없었던 발레아에게는 무척이나 한가로운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발레아는 왕궁과 사교계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명성을 높여갔고, 나는 왕실 기사들과 대련을 이어갔다.

즉위식을 준비하는 동안, 침체하였던 수도도 활기를 되찾았다.

공국과 다른 영지들과의 상행도 정상적으로 이루어졌고, 내가 끌고 왔던 병사들도 하나둘 자신의 영지로 돌아갔다.

물론, 고향으로 돌아가는 병사들의 밥값은 그 영지의 영주들에게 잘 받아냈다.

이 세계의 영지민들은 영주들의 소유물이었다.

싸움에 져서 인질 비슷하게 된 병사들을 되찾아가려면 돈을 내야 하는 게 당연했다.

물론, 영주들이 죽거나, 포기해서 데려가지 못하는 병사들도 적지 않았다.

부양할 가족이 있는 병사들은 고향으로 돌려보냈고, 나머지는 내가 데리고 있기로 했다.

새로 영지를 얻었으니, 데리고 갈 상비군 정도는 있어야 했다.

그렇게 각자의 시간이 흘러, 즉위식 날이 되었다.

수도 위로 폭죽이 쏘아졌고, 건물들에서는 꽃종이들이 쏟아져 내렸다.

광대와 행사 꾼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분위기를 띄웠고, 상점들도 문을 활짝 열고 손님을 받았다.

왕국은 내전으로 큰 피해를 입은 만큼, 오히려 더 크게 행사를 벌였다.

왕국과 왕실은 건재하다는 것을 내외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굶주린 사람들과 가라앉은 경제에 어울리지 않는 짓이었지만, 대외에 과시할 필요가 있을 때도 있었다.

그것은 지금처럼 어린 여왕이 즉위할 때는 더욱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왕궁의 중앙 홀에서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홀 뒤쪽 중앙에 다시 걸린 ‘기사의 검’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이샤 공주는 카를로스 왕국의 여왕이 되었다.

그녀는 마나를 가득 담은 목소리로 왕국의 재건과 부흥을 천명했고, 귀족들이 그녀의 충성을 맹세하는 것으로 즉위식을 마쳤다.

그리고, 긴 피로연이 시작되었다.

나는 즉위식이 끝난 것을 보고 왕궁을 나섰다.

물론, 귀족들과 안면을 익히고, 관계를 쌓으려면 피로연에 참석하는 것이 좋겠지만, 솔직히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제 이 수도에 올라와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상황이었다.

물론, 처음 목표는 아카데미에 들어와 살길을 찾는 것이었지만.

내전을 통해 영지까지 얻게 되었으니, 복마전인 수도 귀족들 사이에 끼어들 이유가 없었다.

그럴 시간에 먼저 영지를 가보는 게 훨씬 더 나았다.

나는 발레아와 함께 병사들이 모여 있는 성벽 밖으로 향했다.

북문 밖 평야에 수십 개의 천막이 펼쳐져 있었고, 그 앞에 병사들이 훈련하고 있었다.

이들이 내가 데려온 병사 중에 남은 병사들이었다.

대부분 젊고 어린 병사들.

부양할 가족이 없는 병사들이니 모두 젊고 어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 달 동안 병사들을 추려가면서 이들을 훈련해 왔었다.

친분이 있는 왕실 기사들에게도 부탁했고, 레스티에게도 부탁하고, 직접 나서기도 했다.

덕분에 남은 병사들은 꽤나 그럴듯한 상비군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들은 내가 다가가자 훈련을 멈추고 줄을 맞춰 섰다.

이쪽 세상에는 거의 없는 제식이라, 병사들이 무척 싫어했지만, 이렇게 딱 맞추니 무척이나 보기에 좋았다.

모두 줄을 맞춰 서자, 지켜보던 레스티가 다가왔다.

“총 478명. 열외 없이 준비를 마쳤습니다.”

500명이 채 안 되는 이 병력이 처음 맡게 되는 내 사병이었다.

나는 영지병을 모으는 대신, 이들을 이끌고, 움직일 생각이었다.

이 병사 중에 꽤 많은 수가 레스티와 같은 신도, 즉 셀린 여신의 신도였다.

병력을 장악하기 위해, 신도들이 끼어드는 것을 방관했고, 그 덕분에 이 병력은 쉽게 내 병사들이 되었다.

나중에 셀린 교단이 나와 반목이라도 한다면 곤란해지겠지만, 나는 이들의 성기사였다. 지금부터 그럴 걱정을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 출발하지.”

명령을 내리자, 병사들은 빠르게 숙영지를 정리했다.

천막을 걷고, 짐을 챙긴 뒤, 내 배낭에 짐을 넣었다.

순식간에 숙영지가 사라져 버렸다.

모두 간단한 짐과 무기만 들고, 북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른 부대에서 보이던 병력의 뒤를 따르는 수레와 짐꾼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짐은 모두 내 배낭 안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478명의 병사와 레스티, 발레아와 나는 북쪽, 내 영지를 향해 나아갔다.

수도에서 벗어나, 북쪽 영지로 가는 동안 어려움은 없었다.

내전이 끝난 뒤였으니, 우리를 막는 영지도 없었고.

500명이나 되는 병사들을 막을 강도나 도둑도 없었다.

다만, 피폐해진 사람들과 망가진 영지들은 외면하기 쉽지 않았다.

전쟁터였던 왕국의 서부보다는 덜했지만, 이곳도 공국 군이 한번 쓸고 지나갔던 곳이었다.

큰 싸움이 없었다지만, 군대가 지나갔던 곳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그렇게 엉망이 되어버린 영지들을 지나, 우리는 모레나 영지에 도착했다.

모레나 영지는 내전의 시작을 알렸던 영지이자, 큰 싸움이 벌어져 영주가 죽었던 곳이었다.

다른 곳 같았으면 도적과 강도가 들끓어 지옥처럼 변해 버렸겠지만, 우리가 본 영지는 그렇지 않았다.

부서진 집들도 있었고, 다치고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영지민의 표정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영지로 들어서는 우리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불충한 표정들입니다. 새로 영주님이 오신 것을 모르는 것 같으니, 미리 사람을 보내 알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레스티가 다가와 내게 조언했다.

그의 조언은 불충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을 위해 하는 말이었다.

내가 영주인지 몰라서 하는 표정들이니, 참아달라는 소리였고, 이런 일이 안 생기게 사람들에게 미리 알리자는 이야기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레스티의 조언도 나쁘지 않았지만, 지금 멀쩡히 잘 돌아가는 영지를 혼란에 빠뜨릴 필요는 없었다.

우선, 영주가 없는데도 영지를 잘 관리하는 사람부터 만나볼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영지 깊숙이 나아가, 우리는 목책으로 둘러싼 마을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이 이 영지의 중심 마을. 영주의 저택이 있는 마을이었다.

전에도 왔던 곳이었고, 이 길옆에 펼쳐진 평야에서 영지 전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나는 목책 밖에 병사들의 숙영지를 펼치게 하고, 발레아와 레스티와 함께 목책으로 다가갔다.

흥미롭게도, 전에 이 마을에 왔을 때와 같은 구성원들이었다.

우리가 다가가자 목책 위로 긴장한 사람들이 창을 들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입고 있는 옷들을 보니, 영지병도 아닌 것 같았다. 자경단이라고 해야 할까.

그들은 긴장했을 뿐, 우리에게 창을 겨누지 않았다.

대신, 목책 문이 열렸다.

끼이익.

열린 목책 문 뒤로 늙은 기사가 서 있었다.

“새로운 영주가 오신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영주님이 오시기 전에 임시로 영지를 지키고 있던 오헨입니다.”

아는 사람이었다.

이바나를 키워주었다는 늙은 기사.

전에 이곳에 왔을 때 내가 신검으로 그를 치료했었다.

그의 인사에 내가 대답했다.

“알렉스 디 샤를 자작입니다. 여왕님의 명령으로 이 영지의 영주가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어리신 분이시군요. 저택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는 우리를 목책 안으로 안내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내가 새로 온 영주라는 것을 들은 모양이었다.

모두, 집 안에 숨어서 창문 틈으로 우리를 훔쳐보고 있었다.

기사는 우리를 안내하다가 발레아를 보고 다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만, 아직 저택을 다 비우지는 못했습니다. 영지의 사정을 보고하면서 바로 비우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운 것도 아니고, 안 비운 것도 아니라니,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희 일행이 들어갈 곳이 없다는 말입니까?”

그건 좀 곤란했다.

영주로 와서 저택을 놔두고, 여관에 들어갈 수는 없잖은가.

내 물음에 기사는 급하게 변명했다.

“아닙니다. 귀족 영애와 같이 오실 줄은 몰라서 안주인 거처를 비우지 못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신다면 금방 비우겠습니다.”

그의 말에 뒤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발레아였다.

“설마, 이바나 짐을 뺀다는 것은 아니겠죠?”

발레아의 물음에 오헨 기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이바나, 제 딸을 아십니까?”

오헨 기사의 입에서 편하게 딸이라는 호칭이 흘러나왔다.

모레나 자작이 죽은 뒤에 오헨 기사는 이바나를 진짜 딸로 삼은 것 같았다.

“알죠. 아카데미 후배인걸요. 이바나 짐은 안 빼셔도 돼요. 저는 손님방으로 충분해요. 아직 안주인 거처에 들어갈 상황도 아니고요.”

발레아의 장난스러운 말에 경직되었던 분위기가 확 풀려버렸다.

좀 더 긴장시켜서 사정을 알아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모양이었다.

“제 후배기도 합니다. 이바나도 오헨 기사님도 저택에 남아 있으셨으면 합니다.”

“아, 그럼, 알렉스라는 이름이……. 설마 자작님이 저를 치료해주신 그레시아 공작 아드님이신가요?”

“네. 그 알렉스 맞습니다.”

가문 명이 바뀌는 바람에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못 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아카데미 학생이 내전에서 공적을 쌓아 영지, 작위를 받게 되었다는 것을 믿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지금도 오헨 기사는 입을 딱 벌리고 나를 보고 있었다.

우리는 저택의 집무실로 안내되었다.

뭔가 화려하게 준비된 방이었지만, 화려한 장식물들은 전부 바래진 채로 한곳으로 치워져 있었고.

대부분 장소는 삭막한 소파와 책상이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집무실을 둘러보고, 의자에 앉아보았다.

집무실 의자에 앉아 앞에 선 사람들을 보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영주의 시선인가.

하지만, 그런 묘한 기분은 금방 사라졌다.

그동안의 일에 비하면 이 정도 감상은 스쳐 가는 작은 감상에 불과했다.

그래도 어쨌든 지금부터 이 의자는 내 자리였다.

나는 자리에 앉아 앞에 선 오헨 기사를 바라보았다.

“영지 상황을 듣고 싶군요.”

“네.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는 책상 한쪽에 쌓인 서류를 들어, 내 앞에 올려놓았다.

가지런히 정리된 자료들.

공작가와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고, 전생의 서류들을 보았던 내 눈에도 무척이나 훌륭한 정리였다.

왜 영지가 이렇게 멀쩡한 것인지 이 서류들을 봐도 잘 알 수 있었다.

이 기사는 훌륭한 기사였을 뿐만 아니라, 무척이나 훌륭한 관리였다.

나는 오헨 기사를 향해 씩 미소를 지었다.

“멋진 자료들이군요. 감탄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오헨 기사는 얼떨떨한 얼굴로 내 칭찬을 받아들였다.

내 생각보다, 좋은 영지를 받은 것 같았다.

이렇게 일머리가 훌륭한 관리자가 있는 곳이라니.

생각해보니, 이 영지는 영주가 수십 년간 수도에서 농땡이를 벌였어도 잘 돌아가던 곳이었다.

다쳤던 오헨 기사도 내 치료 덕에 멀쩡해졌고.

그렇다면 앞으로도 원래 하던 사람이 하는 게 좋을 터였다.

“정말 훌륭하게 영지를 지켜오셨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나는 오헨 기사의 손을 잡고 마구 흔들어주었다.

발레아는 고개를 저었고, 레스티는 늙은 기사를 불쌍하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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