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4화
제24편 알렉스 자작 (2)
왕궁의 중앙 홀에서 여러 귀족에게 상이 수여되었다.
작게는 뛰어난 공을 세운 병사에서부터 크게는 병력 전체를 이끈 그레시아 공작까지.
나도 그들 중 한 명으로서 작위와 영지를 받게 되었다.
차례로 공주 앞에 나가 공에 따른 보상을 받는 것을 지켜보던 나는 마지막 즈음에 상을 받게 되었다.
“알렉스 데 그레시아는 아이샤 왕위 계승자의 호위 기사로 훌륭하게 계승자를 지켜왔고, 공국에서 제국군을 무찌르고, 수도의 성문을 여는 데 도움을 주고, 마물 왕과 두 왕자의 주검을 가져오는 등, 많은 업적을 쌓았습니다.”
공주 앞에 나서자, 서기관이 내 공로를 쭉 읽어내렸다.
서기관이 말한 내용 들은 내가 한 일의 일부에 불과했다.
그가 말하지 않은 일 중에는, 내가 일부러 감춘 것도 있고, 존재하지 않은 삶에서 했었던 일도 있었다.
그렇게 일부에 불과한 내용이었지만, 이렇게 듣고 있으니, 상당히 화려한 성과들이었다.
“이런 일을 해낸 알렉스 공에게 공주님이 상을 내리시겠습니다.”
서기관의 말이 끝나자, 공주는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나의 양쪽 어깨에 검을 얹으며 말했다.
“알렉스 공에게는 ‘샤를’이라는 가문 명과 자작의 작위를 내리겠다. 그는 왕실을 수호한 기사의 명예를 계속 가지게 될 것이고, 한 영지의 영주로서 이 왕국을 지탱하게 될 것이다.”
마나를 실은 그녀의 음성이 홀 전체에 울렸다.
앞에서 상을 받은 사람들에게 한 말과 그리 다르지 않았고, 내 뒤에 상을 받게 될 귀족들도 같은 말을 듣게 될 것이었다.
그중에 조금 다른 것은 ‘기사의 명예’라는 부분이었다.
물론, 작위를 가진 영주이자 귀족에게는, 기사라는 명예는 그리 대수로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영지를 얻은 뒤에도 이리저리 돌아다닐 생각이 가득한 나에게는 저 ‘명예 기사’라는 위치는 무척이나 써먹기 좋은 선물이었다.
더구나 왕실이 인정한 ‘명예 기사’라니.
‘왕실 기사’급의 권리에 책임과 의무는 하나도 지지 않는 멋진 자리였다.
그리고, 자작이라.
나쁘지 않았다. 아니 딱 좋은 작위였다.
남작이라면 너무 작위가 낮아 이리저리 치이기가 딱 좋았을 터였고, 백작 작위를 받는 것은 솔직히 말도 안 되었다.
공주가 힘을 써, 백작이 되었다면, 분명 사방에서 들고 일어났을 터였다.
논공행상 자체가 터져버렸을 게 분명했다.
자작만 해도 수군거리는 사람이 없지 않았다.
‘서자’ 따위가 남작도 아니고 자작에 올랐다는 게 눈꼴신 귀족이 그만큼 많았다.
물론, 내 화려한 전과에 내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공주가 왕위를 잇지 못했다면 자작이 되기는 힘들었을 게 분명했다.
양쪽 어깨에 ‘기사의 검’을 얹은 뒤, 망토와 수실까지 달아준 뒤에 공주가 일어나는 내 귀에 속삭였다.
“정말, 수고하셨어요.”
남들이 듣지 못하는 작은 감사.
공주의 감사는 뒤에서 들려오는 큰 박수보다 훨씬 더 듣기가 좋았다.
내 뒤로도 상은 계속 이어졌다.
작위가 올라가는 귀족과 비어 있는 영지를 더 받게 되어 영지가 커지는 귀족.
그리고, 왕실과 내각에 들어오게 되어 수도로 들어오게 되는 귀족까지.
참모로 열심히 활약한 벤자민도 행정부의 좋은 직책을 받게 되었고, 그레시아 공작은 재상이자 고문관이 되어 수도에 남게 되었다.
공작은 섭정이나 뒤에서 주무르는 대신에 직접 왕국을 관리해볼 생각인 듯했다.
공국의 왕세자는 공주의 감사와 여러 가지 명예를 얻게 되었다.
상 같은 것을 공식적으로 주지는 않았지만, 뒤로 뭔가 거래가 있었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큰 상들을 내린 뒤, 쪼그라든 두 왕자 파벌 귀족들에게도 작은 보상을 던져 주고, 행사는 끝났다.
보상에 화를 내는 사람도 있고,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고, 만족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의아해하는 쪽이었다.
행사가 끝난 뒤, 나는 행정부로 향했다.
내가 받은 영지에 대해 듣기 위해서였다.
행정부의 안쪽 방에서 나는 벤자민을 만났다.
그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나를 맞이했다.
“축하해. 아니, 이제는 말을 높여야지. 축하합니다. 샤를 자작님.”
“사석에서는 말을 놓으셔도 됩니다. 벤자민 부장님.”
“그럴 수는 없죠.”
벤자민은 내 말에 고개를 저었다.
이제 겨우 아카데미를 졸업할 나이였지만, 행정부의 중책을 맡게 된 벤자민은 벌써 직책에 맞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만큼 때가 탔다고 할까.
계속 권유해도 말을 놓지 않자, 나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사람을 시켜서 차를 내왔다.
차를 내리고, 고용인이 나가자, 그는 잔을 들고, 재미있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자작님은 샤를이라는 이름이 원래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 대륙은 제국어로 통일되어 있었지만, 이런 인명 같은 것은 방언이 많아서 그 원뜻을 다 알 수 없었다.
벤자민는 고개를 젓는 나를 보고 씩 웃었다.
“남쪽 왕국에서 카를로스를 뜻하는 말이라고 하더라고요.”
그의 말은 내 가문 명이 카를로스 왕가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자작님의 가문 명은 특별히 공주님이 직접 지으셨죠.”
벤자민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왕가의 다른 이름으로 공주가 내 가문 명을 지어주었으니, 둘 사이에 뭔가 있는 게 아니냐는 그런 이야기인가?
말을 놓지 않는 것도 그렇고, 지금 깐죽거리는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벤자민은 뭔가 나에게 화가 난 모양이었다.
“저한테 무슨 불만이라도 있으신가요?”
내 말에 벤자민이 잔을 내려놓고 턱을 긁적였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자작님에게 불만을 가질 처지는 아니긴 한데……. 준비했던 계획이 다 박살이 나서 정신이 없긴 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장례식에서 벤자민이 나에게 사과했었다.
일이 정신없이 벌어져서 까먹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벤자민에게는 타격이 있을 듯했다.
“공주님의 즉위식을 좀 연기했으면 한 것뿐이었는데……. 거기서 뜬금없이 ‘기사의 검’이 나오고, 전설로 전해오던 능력이 등장해버리다니.”
벤자민은 양손을 들어 올렸다.
“정말, 그런 식으로 일이 끝장날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덕분에 이번 행사를 준비하느라 일주일 내내 거의 잠도 못 잤습니다.”
이 뒤에도 즉위식이 있으니, 고생이 끝나려면 멀었다고 말하는 벤자민의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가득했다.
음, 저렇게 피곤하면 불만이 없을 리는 없을 듯한데…….
“거기다, 그런 검이 짠하고, 등장하게 되면 제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자작님밖에 없으니까요.”
하기야, 한참 같이 다녔던 벤자민이라면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유추할 수 있을 듯했다.
정확한 방법은 모르지만 내가 뭔가 했다는 것은 충분히 알 테지.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사과한 것인지. 제 사과를 들으면서 자작님은 속으로 무척 웃으셨을 겁니다.”
속으로 웃지는 않았다. 사과를 받지 않았을 뿐.
“그동안 계속 칭찬을 들어서 내가 천재인 줄 알았는데, 이제야 정신을 차린 거죠.”
그렇지만, 정신을 차렸다고 보기에는 벤자민은 너무 피곤해 보였다.
“지금도 자작님에게 불만이라기보다, 한심한 저 자신에 대해 투덜거린 겁니다.”
하는 말을 듣고 있으니, 나에게도 불만이 없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나는 눈곱만큼도 미안하지 않았다. 사과할 짓을 먼저 한 것은 내가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을 치웠을 뿐이었다.
“아, 맞다. 정말 제가 정신이 없군요. 자작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러 오신 게 아닐 텐데. 영지 때문에 오신 것 맞죠?”
벤자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영지의 크기나 위치는 솔직히 나쁘지 않았다.
아니, 무척 좋은 편이었다.
내전 중에 주인이 죽어버린 자작급 영지 둘을 묶어 내게 안겨준 것도 나쁘지 않았고.
그 영지들의 위치도 왕국 북부 가운데라서 입지도 나쁘지 않았다.
수도와 공국 사이에 있지는 않아서 물류가 활발한 곳은 아니었지만, 소출도 나쁘지 않고, 살기도 좋아 보이는 동네였다.
다만, 내가 아는 곳이라는 게 문제였다.
“받으신 영지가 모레나 영지와 물아센 영지였죠? 이제 샤를 영지가 되는 건가요?”
벤자민의 말대로 내가 받은 영지는 이바나 영애가 있는 모레나 영지와 그 영지와 붙어 있는 물아센 영지였다.
자작급 영지 두 개를 붙여 주는 바람에 자작의 영지치고는 무척 큰 영지를 가지게 되었고.
영지의 영주들도 모두 죽게 되어 내가 영주가 되는 데 아무 문제가 없긴 했지만.
하필 왜, 모레나 영지인지.
거기다, 물아센 영지도 찝찝하긴 마찬가지였다.
영지전 중에 그 영지병들을 내가 엄청나게 죽여댔었고, 영주도 아마 내가 죽였을 터였다.
물론, 그런 사실을 공주나 다른 귀족들이 알지는 못했겠지만.
“원래는 서쪽 끝에 외진 영지로 보내려고 하던 것을 공주님이 여러 번 반려해서 그 영지들로 결정되었습니다. 영지를 두 개나 붙여 준다고 해서 반대도 많았습니다.”
벤자민은 그때 일을 떠올리는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수도에서 가까운 곳이라서 인지, 아니면 그 영지에 있는 아카데미 후배를 도우라는 뜻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공주가 결정한 것이라면, 공주에게 직접 물어보면 될 터였다.
하지만, 솔직히 지금은 사적으로 공주와 만나는 게 껄끄러웠다.
이제 곧 수도를 떠나야 해서 미안한 마음이 없지도 않았고.
왕위에 오르면 호위 기사 일도 끝나게 되니, 공주와의 접점은 사라지게 될 터였다.
괜히 만나서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내가 얻게 된 영지가 뭔가 다른 수작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더 물을 필요는 없을 듯했다.
그렇게 벤자민과의 면담이 끝났다.
자리가 사람을 바꾼다는 말이 맞는 듯했다.
이제 앞으로 벤자민과는 아카데미 선후배로 만나기는 어려울 듯했다.
나는 벤자민의 앞날을 축복해주고.
다시 왕궁으로 향했다.
공주가 왕위에 오르기까지는 호위 기사의 업무를 계속 해야 했다.
물론, 이제는 다른 두 호위 기사와 왕실 기사들이 공주를 호위하고 있었지만, 형식적인 이유에서라도 왕궁에 남아 있어야 했다.
그리고, 왕실 관계자가 아닌데 왕궁에서 지내는 사람이 나 말고도 한 사람 더 있었다.
발레아였다.
내전에서 많은 활약을 했던 발레아였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공주의 진영에서 어떤 공적인 지위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냥 개인 자격으로 나를 따라다녔을 뿐이었다.
물론, 많은 이들이 발레아의 공적을 인정했지만, 그 공적에 대한 보상을 공식적으로 할 수는 없었다.
“괜찮아요. 공식적이 아니더라도 나름 많이 받아냈으니까요.”
그녀 말대로 발레아는 비공식적으로 여러 가지 혜택을 받게 되었다.
그의 남동생은 이제 남작 대리가 아니라 남작이 되어 영지를 정식으로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녀가 영주가 될 수도 있었지만, 발레아는 영지를 남동생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여러 선물을 받았다고 듣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 선물들이 그녀의 공적에 비할 만한 것들은 아니었다.
다만, 발레아는 만족한 듯했다.
“보상으로 공주님께 약속을 받아냈는걸요. 공주님이 성인이 될 때까지 제가 자작님을 따라다니는 것을 방해하지 않기로.”
아무래도 집에는 발레아와 같이 가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