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3화
제23편 알렉스 자작 (1)
내가 확인한 ‘기사의 검’의 능력은 소유자의 정신 공격을 방어하는 것이었다.
세뇌나 환각 같은 정신 공격을 막아 내는 나쁘지 않은 능력이긴 했지만, 솔직히 왕국의 국보치고는 아쉬운 능력이었다.
그래서, 나는 초대 왕의 전기나 영웅담을 다시 살펴보았다. 혹시나 빠트린 게 있을지.
그리고, 찾아낼 수 있었다. 초대 왕만이 아니라, 그의 기사단도 대단했던 이유를.
대전쟁에서도, 그 뒤에 왕국을 세우면서 이어진 싸움에서도, 그의 기사단은 혼란에 빠지지도, 정신이 나가거나, 절망하는 일이 없었다.
그의 기사들은 어떤 어려움에서도 최고의 사기를 지닌 채로 적을 향해 돌진했었다.
대부분 사람은 이것도 일종의 영웅담이라고 생각했지만, 일부 연구자들은 이것도 초대 왕, 카를로스의 능력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카를로스 왕의 능력 중에는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능력은 그가 가진 유물, ‘기사의 검’의 능력이었다.
그 뒤로 나는 ‘기사의 검’의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 계속 노력했었다.
하지만, 검은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 이외에는 아무도 검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했다.
나도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드디어 검의 능력에 변화가 있었다.
다른 이에게도 이 검의 능력을 부여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검의 능력을 쓸 수 있게 된 것은 ‘마나 감응력’이 오른 덕분이었다.
마물 왕을 쓰러뜨리고, ‘마나 감응력’이 레벨 5가 되자, 나는 이 검을 제대로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사의 검’의 능력은 정신 공격 방어 정도가 아니었다.
검은 외부에서 오는 정신 공격처럼, 스스로 만든 절망이나, 좌절, 공포 같은 안 좋은 정신 상태도 모두 되돌릴 수 있었다.
결국, 초대 왕 기사들의 사기도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마나 감응력’으로 변형된 내 마나는 같은 ‘마나 감응력’을 가지고 있는 공주에게 전해 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회의실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기사의 검’의 진정한 능력을 보여 주게 된 것이었다.
빛이 사라지고, 공주가 다시 검을 집어넣을 때까지,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들 정신을 차린 뒤에는 공주의 왕위 계승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눈앞에서 전설을 보여 주었는데, 반대할 사람이 나올 리가 없었다.
하지만, 한 명에게는 설명해야 할 듯했다.
그 뒤로 계속 공주가 나를 뚫어지도록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왕위 계승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어지니, 즉위식 일정은 금방 정해졌다.
날짜도 최대한 당겨졌다.
당장 할 일이 산더미였다.
즉위식 준비를 한다고 마냥 시간을 보낼 상황이 아니었다.
원래, 귀족들이 공주를 당장 왕으로 세우지 않으려 한 이유 중 하나가 이어진 일들 때문이었다.
내전으로 왕국군과 기사단들이 박살 났고, 수많은 영지가 비고, 귀족들도 사라졌다.
최대한 빨리 그 큰 피해들을 복구해야 했다.
물론, 복구만 생각하면 한숨이 나올 일들뿐이겠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수많은 이권과 자리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더구나, 내전 중에 공주 쪽에서 제대로 활약했던 귀족이 많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왕이 없다면 귀족 회의를 통해서 편하게 나눠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왕을 세우게 되었으니, 이제 방향을 바꿔야 했다.
“너무 급한 것 아닙니까. 첫 여왕이 되실 텐데 제대로 준비해야 합니다.”
귀족 한 명이 급한 예식에 딴지를 걸자, 조금 전과 반대로 사방에서 지원이 물밀듯이 밀어닥쳤다.
“저희는 시간 안에 맞출 수 있습니다.”
“예물은 저희 가문이 맡겠습니다.”
“의상은 저희가…….”
그렇게, 모두 나서서 준비를 돕겠다고 하니, 일이 미뤄질 이유가 없었다.
공주의 즉위식은 한 달이 지나기 전, 최대한 빨리 거행하기로 결정되었다.
즉위식에 관한 이야기를 끝내니, 공주가 입을 열었다.
조금 전과 달리, 공주가 입을 열자 다들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내전의 사후 처리와 공신의 결정, 그리고, 보상과 작위 수여는 일주일 뒤에 하겠습니다.”
하지만, 공주의 결정에는 여기저기서 말이 나왔다.
“그렇게 빨리…….”
“준비할 시간이 부족합니다.”
공주는 그런 말들을 모두 무시하고, 계속 이야기했다.
“그 내용은 내일부터 일주일 동안 회의를 거쳐서 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최종 결정은 제가 내리겠습니다.”
“아…….”
다들 공주의 말에 입을 딱 벌렸다.
이번에는 반발도 하지 못했다.
왕위 계승이 결정된 뒤에 꺼낸 말이었다.
이미 왕으로서 하는 말이었고, 잘못된 내용도 없으니, 반대하기가 어려웠다.
대신, 귀족들은 자신도 그 회의에 참여하기 위해, 혹은 회의에 참여하는 귀족에게 줄을 대기 위해 몸을 비틀어대야 했다.
공주가 먼저 회의장을 나선 뒤, 회의장은 그야말로 시장 바닥이 되어버렸다.
“공작님! 저도 회의에 참여를!”
“자네는 2 왕자 파벌이었잖아! 미친 건가!”
“아니, 자작도 눈치만 보다가 발만 담근 거잖소! 별 차이도 안 나는데…….”
“어허! 내가 수도에서 얼마나 노력했는데.”
“제가 영지를 열어 주어서 공국군이 수도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습니다. 공주님께서는 그 일을 기억해 주시면…….”
회의장 문이 닫히고서야 우리는 소음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해결할 일이 남아 있었다.
공주가 걸어가며 슬쩍 손을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펼쳐지는 방음벽이 펼쳐졌다.
공주는 키가 커지는 만큼 실력도 부쩍 늘고 있었다.
어른이 되면 1 왕자는 물론이고, 초대 왕을 빼면 역대 어느 왕보다 강해질 것 같았다.
방음벽이 펼쳐지자 공주가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건 물어볼 수밖에 없어요.”
그녀가 무엇을 물어볼지는 잘 알고 있었다. 묻지 않을 수 없다는 것도 이해했다.
나는 잠자코 그녀가 묻기를 기다렸다.
“확실히 알렉스도 왕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죠?”
이미 보여 주었으니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거기다, 공주도 어느 정도는 눈치를 채고 있었을 터였다.
“마나 감응력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네.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심각해지는 공주의 표정을 보며 말을 이었다.
“1 왕자도, 2 왕자도, 공국왕과 왕세자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저 하나가 더 추가되는 것뿐입니다.”
확실히 이번 대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마나 감응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내전이 일어난 것이었고.
“하지만, 가지고 있는 것은 마나 감응력만이 아니잖아요. 기사의 육체도, 여러 검술과 어머니 가문의 능력까지. 설마 초대 왕의 능력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겠죠?”
지나가다가 정곡을 찌르다니.
잘못했으면 들킬뻔했다. 나는 표정을 가다듬으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럴 리가요. 다중 능력자라 잡스러운 능력을 몇 개 더 가지고 있는 것뿐입니다.”
“거기다, ‘기사의 검’의 능력을 깨우기까지 했어요.”
공주는 손에 들린 검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검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리 봐도 왕은 내가 아니라 알렉스가 되어야 하는데…….”
나는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척했다.
솔직히 나라고 그런 생각을 안 해봤을 리가 없었다.
초대 왕의 능력을 모두 얻고, 왕국의 누구보다 강해지고, 마물 왕과 싸우고, 쓰러뜨리기까지.
이 정도면 나는 초대 왕과 맞먹는 용사가 아닐까도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서자’라는 내 위치를 생각하니 바로 사라져 버렸다.
이미 완성되어 고착화되어버린 이 왕국에서는 수백 년간 내려오는 계급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여자라고, 나이가 어리다고,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공주도 왕이 되기가 저렇게 어려웠다.
‘서자’인 내가 왕이 되겠다고 하면, 귀족 모두가 나서서 반대할 것이었다.
왕국을 위한답시고 그레시아 공작부터 나서서 검을 휘둘러 댈지도 몰랐다.
작위 하나 받기로 이렇게 힘든데, 언감생심 왕이라니.
그런 일은 대전쟁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차라리, 새로 왕국을 세우는 편이 편해 보였다. 물론, 그런 고생스러운 짓은 할 생각이 없었지만.
공작도 후회하는 모양이었고, 방금 전 회의를 봐도, 왕이 되어서 저런 귀족들을 이끌 자신이 없었다.
나중에는 화가 나서 검으로 다 쳐죽일지도 몰랐다.
이 나라 왕은 공주가 안성맞춤이었다.
나에게는 좋은 뒷배가 되어 줄 테고, 나는 그냥 살기 나쁘지 않은 영지를 받아서 실력이나 키우고, 여행이나 다니는 게 딱 좋았다.
거기다, 아직 할 일도 남아 있었다.
적도 남아 있었고.
왕이 될 생각이라면,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내가 왕이 될 수 없는 수많은 이유는 공주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게 직접 말을 못 하는 것이었다.
대신, 그녀는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알겠어요. 지금은 제가 왕이 되겠어요.”
마땅히 당사자에게 돌아갈 자리는 직접 왕이 되지 않아도 갈 방법이 있으니까요.
“제가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아니, 아니.
이것도 못 들은 것으로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가지 뜻으로만 들리는 소리였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외면하기로 했다.
10대 초반의 꼬맹이가 하는 말이었다.
이제 왕이 될 공주였지만, 천재로 이름 높은 공주였지만, 실력도 훌륭한 왕족이었지만.
아직 어린 소녀였다.
전생이었으면 아직 초등학생 나이. 질풍노도의 시기도 오지 않았다.
분명, 몇 년만 지나면 현실을 깨닫고 지금 꺼낸 말을 후회할 터였다.
아니, 기억도 못 할 수도 있었다.
‘암. 그렇고말고.’
나는 그렇게 믿고, 공주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아무래도 수도를 빨리 떠나야 할 이유가 늘어난 것 같았다.
논공행상(論功行賞)을 결정하는 회의는 일주일 동안 끊임없이 이어졌다.
낮에도 밤에도, 수많은 고성과 협상이 이어졌고, 각종 로비와 청탁이 귀족들과 왕족들에게 물밀듯이 밀려 닥쳤다.
나에게도 많은 사람이 다가왔다.
공주의 호위 기사니 혹시나 한자리를 부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 모두를 돌려보냈다.
누구의 청탁을 받기에는 내 코가 석 자였다.
작위가 있는 귀족도 아니고, 회의의 결과에 따른 보상을 받을 처지라, 회의에 참여하기는커녕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내전 시작부터 끝까지, 나는 최선을 다했고, 충분히 잘했다고 생각했다.
공주도 확실히 왕위에 올렸고, 왕국의 위기도 막아 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물 왕을 죽인 게 나라고 말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나는 끝까지 참아냈다.
그리고, 한 주가 흘렀다.
논공행상이 확정이 되고, 내 보상도 결정되었다.
다행히 작위도 영지도 받을 수 있었다.
알렉스 디 샤를 자작.
나는 드디어 영지와 작위를 가진 귀족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