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321화 (321/563)

제321화

제21편 왕위 (1)

관 두 개와 마물을 앞세운 퍼레이드가 끝나고, 수도에서는 바로 두 왕자의 장례식이 이어졌다.

두 왕자의 장례식 장소는 얼마 전 왕의 장례식이 벌어졌던 중앙홀이었다.

수많은 귀족이 다시 수도에 모여들어 두 왕자의 죽음을 안타까워했고, 남은 유족들을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왕의 장례식 때처럼 공주의 호위로 멀찌감치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무척이나 이상한 광경이었다.

내전 중에 서로 죽이려 하던 상대의 장례식이라니.

거기다, 죽은 두 사람은 서로 신나게 칼을 휘두른 상대였고.

물론, 배다른 형제들이긴 했지만, 서로 죽이려고 한 이상 남보다 더 나쁜 사이가 되었을 텐데…….

하지만, 지금은 2 왕자가 한 짓은 실수로 묻혀 버렸고, 1 왕자는 공식적으로 마물왕을 막다가 순국한 열사가 되어 있었다.

아무리 봐도 어이가 없었지만, 그 일의 발단이 나였으니,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어이가 없는 것은 장례식장 안도 마찬가지였다.

공주도 왕비도, 1 왕자의 부인도, 모두 나란히 서서 슬픈 가면을 쓰고 방문하는 귀족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1 왕자가 왕국 서부를 너무 부숴 버려서 더 쳐내기 곤란해져 버렸어.”

아무래도 내 표정이 겉으로 드러난 모양이었다. 옆으로 다가온 벤자민이 내게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그레시아 공작 파벌이나 공국 파벌이 너무 강성해서 균형을 맞춰야 했고.”

그동안 나랑 같이 다녀서, 벤자민도 내가 공작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덕분에 이런 이야기도 내게 쉽게 꺼낼 수 있었다.

“솔직히 나도 왕자 쪽 귀족들이 마음에 안 들지만, 대안이 없어.”

역시 현실은 소설과 달랐다.

내전에서 반대편에 섰다고 다 쳐내 버리면 나라가 굴러갈 리가 없었다.

더구나 벤자민 말대로 1 왕자가 설쳐대는 바람에 필요 이상으로 귀족과 기사들이 없어져 버렸다.

까놓고, 왕국 군이든, 왕실 기사단이든 원래대로 재건하려면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나는 그런 정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냥 제삼자로서 한심하게 봤을 뿐이지, 저 사람들과 함께 뭔가 해 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벤자민도 내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그 이야기는 다시 꺼내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을 물어보았다.

“그래서, 협곡 안에서 일어난 일은 뭐가 진실이야?”

협곡에서 벌어진 일이라…….

그것이 지금 수도의 귀족들과 사교계가 가장 궁금해하는 일이었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2 왕자가 마물왕을 풀고, 1 왕자가 마물왕을 막다가 같이 죽은 것으로 발표되었다.

하지만, 일반 시민과 달리, 귀족 중에는 그 발표를 믿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수십 년 전 이 왕국을 망하게 할 뻔한 마물왕이었다.

오래 봉인되어 약해졌다고 하지만, 사정을 아는 귀족들은 1 왕자와 함께 죽었다는 말을 쉽게 믿기 어려웠다.

거기다, 그 광경을 증언한 것은 단지 세 사람이었다.

공주의 호위 기사와 남작 영애, 그리고 용병.

증거물과 1 왕자의 군대를 이끌고 왔기에 겉으로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다들 의문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내가 공주에게 보고를 하면서 불을 질러 버렸으니…….

소문이 거하게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증인들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레스티는 쇠사슬에 묶인 여기사를 끌고 모습을 감춘 뒤였고, 발레아도 예전에 도망쳐 버렸다.

카트린과 유적을 지키던 기사와 병사들은 협곡 안에서 일어났던 일을 보지 못했으니.

결국, 물어볼 사람은 나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나에게도 함부로 묻기가 어려웠다.

이제는 많은 귀족이 내 실력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왕자들과 마물왕의 시체를 가져온 기사에 대해 알아보다가 내가 그동안 벌인 일들을 듣게 된 것이었다.

아카데미에서 있었던 일들과 호위 기사로 싸운 일, 공국에서의 싸움까지.

사람들은 이제, 내가 이 왕국에서 한 손에 꼽을 수 있는 기사인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거기다, 공주의 호위 기사라 거의 공주 옆에 붙어 있으니, 궁금한 사람들은 내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벤자민이 이런 식으로 내게 물어본 것도 그가 원해서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반대로 물어보았다.

“다른 이야기를 듣길 원하세요?”

“아니, 그럼 곤란해. 짜놓은 계획이 엉망이 될 거야.”

내 말에 벤자민이 질겁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고개를 젓다 말고, 한숨을 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과를 하러 온 거기도 해. 네 계획을 내가 방해를 한 게 된 것 같아. 네가 나에게 존대를 받게 되는 것은 좀 더 뒤가 될 모양이야.”

그는 미래의 관료, 아니 이미 높은 자리를 예약해 놓은 현직 관료답게 말을 꼬아놓았다.

하지만, 무슨 소리인지는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존대하게 된다는 것은 내가 작위를 받는다는 말일 테고, 그게 늦어진다는 것은 작위를 받는 게 늦어진다는 소리였다.

공주가 왕위에 오르게 되면 작위 받는 게 어렵지 않을 테니, 결국, 공주가 바로 왕위에 오르기가 어려워졌다는 말이었다.

결국, 벤자민의 말은 다른 파벌들이 공주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막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괜찮습니다. 사과 안 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사과를 받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내가 사과해야 할지도 몰랐다.

아무래도, 그의 계획은 내가 부수게 될 것 같았다.

벤자민이 왔다 간 후로,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그리 길지 않은 왕자들의 장례식이 끝났다.

왕실은 중요한 귀족들이 수도에 모두 모이게 되었을 때, 두 왕자의 장례식을 끝냈다.

여러 이유를 달았지만, 다들 왜 그때 왕자들의 장례식을 끝냈는지 알고 있었다.

솔직히, 이럴 때는 죽은 두 왕자와 그들의 유족이 불쌍해 보일 정도였다.

장례식이 끝나고, 귀족들이 모이자, 예상대로 공회 날짜가 잡혔다.

장례식이 끝나고 이틀 뒤, 내전으로 엉망이 된 왕국을 복구해야 하니, 공회를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공회의 안건은 크게 두 가지.

비어 있는 왕의 자리를 채우는 일과 무너진 왕국을 복구하는 일이었다.

물론, 내전에서 성과를 보여 준 자들에게 포상도 해야 했지만, 그것은 왕이 세워지고, 복구 방향이 정해진 다음에 하기로 했다.

공회일이 정해지자, 공주와 그레시아 공작, 공국의 황태자는 벤자민과 다른 귀족 참모들과 함께 공회가 진행되기 전까지 회의를 이어 갔다.

수도에 모여든 다른 귀족들도 이리저리 모여서 계획을 세웠다.

특히 박살이 난 두 왕자의 파벌들은 그동안의 앙금을 떨쳐 버리고, 힘을 모으기로 한 모양이었다.

물론, 내가 보기에는 귀족답지 않은 이합집산일 뿐이었지만…….

역시, 생존이라는 목적 앞에서 귀족의 명예는 무시해도 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다들 공회를 준비하고 있을 때, 나는 방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공주는 나도 회의에 참여하기를 원했지만, 나는 몸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댔다.

이제는 슬슬 빠질 때였다.

괜히 이런 회의에 계속 참석했다가는 공주가 왕이 된 뒤에도 수도에 남게 될지 몰랐다.

나는 정치는 모르는, 검만 쓰는 기사이니, 공주가 왕이 된 다음에 냉큼 내게 작위를 주고 수도에서 쫓아내 주길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방 안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으니, 공회 전날 내게 손님이 찾아왔다.

그레시아 공작이었다.

나는 뜻밖의 손님에 어리둥절했다.

공작이 찾아올 이유가 있었나?

작위를 받게 되면 만날 생각이긴 했는데, 생각보다 공작이 빨리 찾아왔다.

손님이긴 했으니, 나는 그를 소파에 앉게 했고, 소파에 앉은 그는 인사도 없이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냐.”

뭔가 앞뒤가 많이 생략된 물음이었다.

하지만, 공작다운 물음이기도 했다.

대답도 어렵지 않았고.

“영지와 작위를 얻어 어머니를 모시고 독립할 생각입니다.”

나는 공작도 알고 있을, 내 계획을 말했다.

“아만다가 반대할 수도 있다.”

내가 작위와 영지를 얻어도, 어머니는 공작가에 남으려 하실지도 모른다라…….

나도 그동안 고민했던 내용이었지만, 지금은 나름 결론을 내린 뒤였다.

“네, 그럼 제가 먼저 가서 준비해 놓을 생각입니다.”

내 인생을 내가 개척하는 것처럼, 어머님의 인생은 어머님이 결정하시는 게 맞았다.

나는 어머니가 오실 장소만 마련해 놓을 생각이었다.

공작은 이마를 슬쩍 쓰다듬었다. 내 대답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뒤이어, 공작답지 않게 다른 쪽으로 말을 돌렸다.

“공주가 너를 많이 의지하고 있다.”

공주가 의지하고 있다고?

아하, 그가 왜 찾아왔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역시 가족 문제나 어머니 때문에 온 것이 아니었다. 물론, 기대도 하지 않았기에 실망도 없었다.

나는 그의 말에 대답했다.

“곧 성인이 되실 겁니다.”

평범한 대답. 하지만, 충분히 내 뜻은 전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왕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 어린 공주이니 왕이 될 때까지 도와줄 사람이 있어야 할 거다.”

휴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치라서 그런가?

주저리주저리.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공작답지 않았다.

그만큼 일이 쉽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이번 공회에서 공주가 왕이 되기 어려워졌다는 말일 테고.

벤자민과 공작이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보니,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이번에 공주가 왕이 되기는 힘들어진 모양이었다.

아니, 잠깐. 그러고 보니, 벤자민은 공작과 공국이 왕국을 장악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었잖아.

그렇다면, 벤자민은 반대 세력이 된 건가?

공주 쪽은 반대 세력의 스파이와 함께 회의를 진행한 거고?

이제야 벤자민이 내게 한참 말을 돌려가며 사과를 하게 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도 위험을 무릅쓰고 최선을 다해 사과한 것이었고.

당장 내일 공회가 시작되니, 벤자민 이야기를 해 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내가 특별히 공국과 공작에 빚을 진 것도 아니었고.

나는 영지와 작위만 받을 수 있고, 공주가 왕위만 차지하게 된다면, 누가 뒤에서 뭘 하든지 상관이 없었다.

결국, 공작답지 않게 늘어놓은 말들은 내가 남아서 왕이 되지 못한 공주 옆을 지켜 달라는 이야기였다.

공작은 왕국, 아니 자신을 위한 것이겠지만, 나름 공주를 위해서 찾아온 것일 터였다.

공주를 위해 공작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었으니, 나도 그에게 제대로 대답해 주었다.

“저는 지금까지 공주, 아니 제 앞을 막는 것은 모두 부수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내가 나아갔던 길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호쾌한 전진이 아니었다.

매번 막히고, 좌절하고, 죽었던 길이었다.

하지만, 포기한 적은 없었다.

나는 한 번이 아니면 두 번, 죽음이 막으면 되살아나서 길을 열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공주님을, 저를 막지 못할 겁니다.”

내 말에 공작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강해졌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부터 공주가 상대할 자들은 검으로 쓰러뜨릴 자들이 아니야.”

공작치고는 무척이나 부드러운 권유였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내일 그들은 검에 쓰러질 것입니다.”

나는 처음 보는 어리둥절한 공작의 표정에 씩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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