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317화 (317/563)

제317화

제17편 협곡 전투 (3)

협곡 입구가 메워지자, 1 왕자의 군대는 반으로 나뉘게 되었다.

진영을 갖추느라, 병사들은 협곡 밖에 많이 남게 되었고, 기사들은 이미 거의 전부가 협곡 안에 들어온 상황이었다.

1 왕자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가 협곡 입구에 들어서기 바로 직전에 협곡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마치 그가 협곡을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려는 것처럼, 절벽은 그의 앞부터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먼지를 가득 뒤집어쓴 왕자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절벽을 올려다보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선발대를 쓸어버렸던 거대한 마나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 이상한 광경이 보였다.

어깨에 쇠사슬에 감긴 작은 기사를 둘러맨 용병처럼 보이는 자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성인도 안되어 보이는 어린 남자였는데, 그는 왕자를 보고 씩 웃었다.

“감히!”

계속 변하는 상황에 정신이 없었지만, 1 왕자는 자신을 비웃는 웃음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왕자는 달려오는 용병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 * *

“감히!”

왕자가 분노한 얼굴로 검을 휘두르는 것을 보고, 나는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1 왕자를 여기서 발견하다니, 그나마 마지막에 운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솔직히 여기서 왕자를 찾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발레아가 협곡 입구를 무너뜨린 덕에 이 앞은 엉망진창이었다.

전부 먼지와 흙을 뒤집어써서 사람들 얼굴도 알아보기 어려웠고, 연이은 충격에 모두 알고 있던 모습과 달라져 있었다.

왕자 옆에서 고개를 흔드는 저 기사도 분명 호위 기사이자, 부단장 알바로의 아들인 다빗 기사일 텐데, 아무리 봐도 다빗 기사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왕자를 찾게 되다니.

이번에는 마물에게 양보할 생각을 했던 나로서는 뜻밖의 횡재를 한 기분이었다.

카아앙!

“윽!”

왕자의 검을 튕겨내고, 끝을 내려고 했다.

“위험합니다! 피하십시오!”

하지만, 이번에도 방해하는 사람이 있었다.

먼지를 가득 뒤집어쓴 중년 기사가 내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역시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마나를 확인하니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알바로 부단장이었다.

캉!

“으윽! 무슨 힘이!”

억지로 내 검을 막아낸 부단장은 나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설마, 너는 공주의 호위 기사!”

“그게 무슨 소리야? 아이샤 이야기가 여기서 왜 나오는데?”

부은 손목을 움켜쥔 채로 왕자는 자신의 앞을 막아선 부단장에게 물었다.

내 앞을 가로막은 부단장을 보고, 나는 입맛을 다셨다.

차라리 왕자의 검을 날려버리지 말고, 그냥 죽일 걸 그랬나 보다.

이미, 마물은 바로 뒤까지 따라왔고, 기사들도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여기서 왕자를 잡기 위해 드잡이할 시간이 없었다.

아쉽지만, 나는 왕자에게 손을 흔들고, 훌쩍, 옆으로 몸을 날렸다.

왕자에게서 멀리, 기사들과 병사들이 있는 곳에서 떨어진, 절벽과 가까운 곳으로.

갑자기 옆을 지나가는 나를 보고, 기사들이 깜짝 놀랐지만, 그들은 나를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마물 왕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막아!”

“정신 차려! 단지 마물이다!”

“죽고 싶지 않으면 찔러!”

비명과 함성, 그리고, 정신을 차린 기사들의 고함까지.

마물 왕의 등장에 절벽 앞은 난장판으로 변해버렸다.

마물 왕은 공격을 막아낼 뿐, 바로 덤벼들지 않았다.

마물은 앞에 있는 1 왕자와 절벽 그늘에 숨어 있는 나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고 있었다.

누굴 먼저 공격할지를 정하려는 걸까? 아니면, 자신을 고생시킨 인간이 어느 쪽인지 고민하는 걸까?

하지만, 어떤 고민이든 결론은 하나밖에 없었다.

둘 다 죽이는 것.

나는 마물 왕이 그 결론에 도달하기 전에 어깨 위의 짐을 치우기로 했다.

생각 외로 어깨 위의 짐이 거추장스러웠다.

이 짐만 없었다면 1 왕자는 바로 죽일 수 있었다.

거기다, 부단장에게도 막힐 이유도 없었다.

좀 더 빨리 발레아에게 넘겨주는 게 좋았을 뻔했다.

어쨌거나, 협곡 입구를 무너뜨린 것은 발레아였으니, 내가 있는 이곳도 발레아의 영역 안이었다.

나는 쇠사슬에 감긴 여기사를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절벽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발레아, 이 여기사를 어디에 좀 가둬줘요.”

예상대로 발레아는 내 말을 알아들었다.

스르륵.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기사가 땅속으로 쑥 빠져들었다.

여기사는 마치 늪에 빠져드는 것처럼 땅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급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아, 죽이면 안 돼요. 심문해야 해요.”

내 말에 여기사가 빠져들었던 땅이 다시 꿈틀거렸다.

다행이었다. 조금만 늦게 말했으면 시체를 심문할 뻔했다.

여기사를 땅에 묻는 사이, 마물 왕이 결정을 내린 모양이었다.

마물 왕의 결정은 내 예상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인간을 죽이는 것. 그것이 마물 왕의 결정이었다.

드드드득.

“으아악, 얼어붙는다.”

“추, 추워.”

“살려…….”

문을 부술 때 화염을 써서인지, 마물 왕의 첫 공격은 냉기 공격이었다.

마물 왕 주변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영하 수십도 이하로 내려간 듯한 모습.

당연히 마물 왕을 공격하던 병사들도 얼어붙었다.

기사들은 급하게 마나를 움직여, 냉기 지역을 탈출했지만, 마나가 없는 병사들은 냉기를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한순간, 협곡 안에 남아있던 1 왕자의 병사들이 전멸해버렸다.

병사들이 전멸한 뒤에는 기사들 차례였다.

마물 왕이 손을 내밀자, 그 손에서 번개가 내려쳤다.

파지지직!

말 그대로 빛과 같은 속도로 뻗어 나간 전류는 전방에 있던 기사들의 몸을 휘감아버렸다.

바닥이 얼어있든, 공기가 춥든 상관이 없었다.

기사들이 들고 있는 검과, 그들의 갑옷은 너무도 쉽게 고압 전류를 받아들였다.

“크아아악!”

냉기를 막아주었던 그들의 마나는 전류까지 막아주지 못했다.

전류를 뒤집어쓴 기사 중 반 이상이 온몸에서 연기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몇몇 실력 좋은 기사는 마나를 일으켜 전류를 버텨냈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보니, 더는 싸우기 불가능해 보였다.

왕자는 박살 나는 기사들을 확인하고는 혀를 찼다.

다른 때라면, 실력을 눈곱만큼도 발휘하지 못하는 기사들을 비웃어 줄 텐데, 상대가 마물 왕이라는 재앙 덩어리니, 비웃음이 전혀 안 나왔다.

“젠장, 이러니, 선발대가 한순간에 전멸한 거겠지.”

선발대만이 아니었다.

마물 왕을 봉인하다가 능력을 잃었다는 노친네도 그동안 열심히 비웃어주었는데,

실제로 마물 왕을 보니, 솔직히 노친네에게 감탄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감탄할 시간도, 놀랄 시간도 부족했다.

지금도, 잠깐 뒤를 돌아본 것을 가지고, 옆에서 호위 기사가 왕자를 꾸짖었다.

“더 빨리 달리셔야 합니다.”

평상시라면 그런 말을 할 리도 없고, 왕자도 듣고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왕자도 아무 대꾸 없이, 다시 열심히 달릴 뿐이었다.

기사들이 마물 왕에게 몰살당하는 동안, 1 왕자는 절벽 옆으로 열심히 도망치고 있었다.

그와 함께 도망치는 기사들은 왕실 기사단 부단장과 그의 아들, 그리고 그가 점찍어둔 몇 명의 친위 기사 몇 명.

조금 전에 다른 이들 모르게 협곡을 빠져나가려 했던 바로 그 인원들이었다.

그들은 절벽 옆을 달리며 다시금 이 협곡의 험난함에 이를 갈았다.

정말 지옥 같은 협곡이었다.

이들은 성벽도 타 넘을 수 있는 대단한 기사들이었지만, 옆에 있는 절벽은 기어오를 수가 없었다.

미끈거리는 이끼로 가득 덮인 데다가, 검을 박아넣으면 부서져 버리는 연약한 사암으로 된 바위까지.

이 협곡은 마치, 협곡 안에 있는 존재를 가두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았다.

물론, 마물 왕을 막기는 불가능해 보였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빠져나오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사람이 도망칠 수 없는 협곡이라니. 감옥이나 기사들의 훈련 장소로 딱 일 것 같은데…….’

부단장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떠오를 정도였지만, 그런 생각은 바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 앞에 마물 왕이 나타난 것이었다.

동료들을 미끼로 삼은 탈주였지만, 아쉽게도 탈주는 길지 않았다.

그만큼 다른 기사들이 버티지 못한 것일 테고, 그만큼 이 마물이 강한 것일 터였다.

‘나를 쫓는 거겠지?’

1 왕자는 앞을 막은 마물 왕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수십 년 전 이 마물을 봉인했던 일은 1 왕자도 여러 번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노친네, 세우타 공작이 유인해서 마물 왕을 가두었다는 이야기와,

마물은 세우타 공작과 그 당시의 왕인 자신의 할아버지를 계속 추격했다는 이야기까지.

그렇다면, 이 마물이 지금 쫓는 것은 남은 왕족인 1 왕자일 터였다.

그 말대로라면, 봉인을 풀었던 2 왕자는 이미 죽었을 테지만, 따라 죽게 된 것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복수가 제일 중요하긴 했지만, 1 왕자는 이런 외진 곳에서 죽을 생각이 없었다.

‘저 마물을 끌고 다니면서 왕국을 부수기라도 했으면 좀 기분이 좋아졌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마물 왕을 쳐다보니, 마물 왕의 시선이 조금 이상했다.

마물 왕은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마물 왕은 옆의 기사들도 보지 않고 있었다.

마물 왕은 좀 더 뒤쪽을 보고 있었다.

왕자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일행 뒤에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어려 보이는 얼굴을 한 용병 차림의 남자. 조금 전 어깨에 기사를 둘러맸던 그 남자였다.

‘아이샤의 호위 기사라고 했었나.’

호위 기사라는 남자는 왕자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보고,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저 마물이 보기에는 내가 더 왕족다웠으려나?”

왕자는 공주의 호위 기사가 한 말에 눈썹을 모았다.

“무슨 소리지?”

* * *

내 말에 왕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마물 왕이 앞을 막고 있는데 저렇게 소리를 지르다니. 왕자가 화가 많이 난 모양이었다.

하긴, 저 왕자는 왕가와 족보가 자신의 역린이었으니, 내 말에 화를 내는 게 당연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그가 화내는 것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또 다른 사람, 아니 마물이 화가 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르르르릉.

‘이크, 왕족 때문이 아니라는 거군.’

아무래도 마물은 유적 안에서 싸운 게 누구인지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머리가 좋은가 봐.”

생각보다 많이 놀렸던 모양이었다. 마물 왕은 내 말을 바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괴성을 지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슬쩍 옆으로 움직이며 마물 왕을 맞이했다.

내가 움직인 방향은 1 왕자의 바로 뒤쪽.

“으악!”

“피해!”

“도망치십시오!”

마물 왕이 달려오는 광경에 기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검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마물 왕의 낡은 검이 크게 반원을 그리자, 기사들의 목이 성둥 잘렸다.

호위 기사도, 부단장도 마물 왕의 검을 막지 못했다.

부우우웅. 드드드드득.

다만, 1 왕자가 낀 반지가 만든 방어막이 마물 왕의 낡은 검을 막아냈다.

역시, 왕족들이 가진 유물은 대단했다.

하지만, 그 방어막도 곧바로 이어진 충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그것도 반대쪽에서 가해진 충격이었으니.

푹!

검이 왕자의 등에 박혔다.

놀란 왕자가 뒤를 돌아봤고, 나는 검을 뽑으며 왕자와 마물에게 미소를 보내주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