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6화
제16편 협곡 전투 (2)
확실히, 전보다 커진 마나 이상으로 2 왕자의 호위 기사 이네스는 강해져 있었다.
그녀가 처음부터 허공에 날린 검은 이제 전생의 무협지에서 보던 어검술과 비슷해져 있었다.
하늘을 자유자재로 비행하며 적을 공격하는 검.
물론, 마나가 담겨 있지 않아 마물을 상대할 때는 쓸모가 없겠지만, 같은 기사들끼리 싸울 때는 전혀 달랐다.
거기다, 이네스는 허공의 검을 조종하면서도 또 하나의 검을 손에 들고 나를 공격했다.
어떤 훈련을 했길래, 이렇게까지 성장을 했는지 당장 알아보고 싶을 정도였다.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면서 공격하는 검과 염력으로 자신의 몸을 육체 능력자 이상으로 강화해서 공격하는 기사.
이렇게 되면, 기사 둘 이상, 아니 기사와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마물에게 동시에 공격을 당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거기다, 혼자서 둘 다 조종하고 있으니, 둘 사이의 협력은 어떤 기사들보다 뛰어났다.
과거, 왕궁에서 능력을 봉인하고 싸웠던 그 실력대로라면 나도 꽤 고전했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다만, 지금은 그때와 실력이 달라져 있었고, 능력을 숨길 필요도 없었다.
나는 날아오는 검을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캉, 카앙!
대검에서 튀어 나간 흰 선들이 하늘을 나는 검을 튕겨냈다.
어차피 염력으로 조종하는 검이었다. 더 강한 공격을 이길 리가 없었다.
그리고, 단도로 덤벼오는 여기사의 검을 부수고, 얼굴에 대검을 휘둘렀다.
퍽!
이빨이 몇 개 튀어 나가고, 여기사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검면으로 쳐서 죽지는 않았지만, 여기사는 그 한방에 기절해버렸다.
“투구라도 썼으면 얼굴은 멀쩡했을 텐데…….”
놀리는 것도 아니고, 멀쩡한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고 할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쉽게 쓰러뜨릴 곳이 있는데 쓸데없이 갑옷 위를 두드릴 이유가 없었다.
나는 유물 주머니에서 두꺼운 쇠사슬을 꺼내 여기사를 칭칭 감았다.
평범한 육체 능력자가 아니라 염력을 사용하는 귀족이었다.
단단히 묶어두어도 안심할 수 없었다.
나는 쇠사슬과 쇠사슬을 마무리한 두꺼운 자물쇠까지 확인하고 여기사를 어깨에 얹었다.
이 여기사는 깨어나기 전에 발레아에게 데려갈 생각이었다.
발레아에게 부탁해서 땅속에 묻어버리거나, 바위 속에 가두어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여기사를 데리고 한참 달려 나가는 중에, 유적이 있는 방향에서 엄청난 마나가 솟구치는 게 느껴졌다.
콰과과과과!
저 마나는 잘 알고 있는 마나였다.
수차례 코앞에서 보고 싸웠던 마나.
두 머리 마물 왕의 마나였다.
2 왕자가 지금, 마나 세계에 갇혀있는 마물 왕을 풀어준 게 분명했다.
나는 여기사를 옆에 던져두고,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갔다.
나무 위에 올라가서 보니, 유적 주변에 가득 찬 마나가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지나니, 마나는 점점 진해졌다.
마물 왕이 밖으로 나오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처음 철문이 열리고, 처음 밖으로 튀어나온 것은 마물 왕이 아니었다.
피투성이가 된 2 왕자와 여러 명의 장교였다.
장교의 수는 들어갈 때보다 훨씬 줄어들어 있었고, 다들 멀쩡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 밖이었다.
여기사를 막아 버리면 2 왕자가 빠져나오지 못할 줄 알았는데, 저렇게 탈출할 줄이야.
“뭔가, 바꿀 수 없는 역사가 있는 걸까?”
그래도, 나는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은 믿지 않았다. 이미 수많은 미래를 바꿔왔었고.
운 좋게 살아나왔다면 직접 죽이면 그만이었다.
내가 유적으로 가버리면 계획이 다 꼬이겠지만, 2 왕자가 무사히 빠져나가게 둘 수는 없었다.
그렇게 결심하고 유적으로 가려는 순간.
콰아아앙!
절벽에 박혀 있던 거대한 철문이 터져나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산산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날아가는 철문,
박살 난 문 안에서 거대한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화염은 주변 절벽과 나무집과 목책, 그리고 숲까지 불태웠다.
화염은 도망치는 2 왕자와 귀족 장교들에게도 쏟아졌다.
여러 겹의 방어막이 펼쳐지고, 장교들이 능력을 펼쳐서 쏟아지는 화염을 막았지만, 마물 왕의 화염은 그렇게 쉽게 막아질 게 아니었다.
방어막들이 허물어지고, 장교들이 화염에 휩쓸렸다.
화르르르르!
크아아아악!
화염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이 멀리 떨어진 내 귀에도 들려왔다.
그곳에는 비명을 지를 수 있는 자들은 몇 없었다. 대부분 비명도 없이 불타버린 것이다.
하지만, 2 왕자는 이번에도 살아남았다.
그가 가지고 있던 유물의 방어막이 마지막까지 그를 살려낸 것이었다.
왕실이 가지고 있는 유물은 차원이 다르다고 들었긴 했지만, 직접 보니 정말 명불허전이었다.
다만, 그의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동굴 밖으로 튀어나온 마물이 왕자를 덮친 것이다.
웅크린 마물 주변으로 퍼져나간 피.
비명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따로 확인해 볼 필요도 없었다.
“전에 들었던 것과 조금 달라진 것 같은데…….”
죽기 전 듣기로는 마물 왕이 유적에서 튀어나온 것은 1 왕자의 선발대가 유적에 도착한 뒤였다.
하지만, 지금 1 왕자의 선발대는 아직 유적 앞에 도착하지 못했다.
아마, 내가 한 행동 때문에 조금 상황이 어긋난 것 같은데…….
그래도, 많이 틀린 것은 아니라서, 큰 문제는 없을 듯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빨리 1 왕자 쪽으로 움직여야 했다.
괜히 늦었다가는 마물의 동선이 꼬일 게 분명했다.
마물이 고개를 들어, 나와 1 왕자 쪽을 번갈아 보는 것을 확인하고,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이어서 나는 바로 여기사를 둘러업고 달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목표는 1 왕자의 선발대였다.
* * *
협곡 안에 들어선 1 왕자는 유적이 있다는 곳에서 피어오른 연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들, 뜬금없이 솟아오른 연기를 보고 의아해했지만, 갑자기 말을 멈춰 세운 1 왕자의 모습에 더 놀란 상황이었다.
수도에서 나온 뒤, 1 왕자는 이런 상황에서 발을 멈춘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1 왕자는 적의 습격이 있으면 먼저 달려가서 분쇄하고, 함정이 나타나도, 정면에서 박살 내서 부대의 사기를 더 끌어 올리는 그런 지휘관이었다.
그런 왕자가 단지 연기가 갑자기 피어오른 것을 보고 멈추다니, 모두 왕자의 다른 행동에 의아해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부단장 알바로가 왕자에게 물었다.
“저 연기 나는 곳에서 엄청난 마나가 느껴져서 말이야. 사람이 저런 마나를 낼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마물이 내는 것일 텐데. 저 정도 마나를 뿜는 마물이 정말 있었던 걸까?”
“엄청난 마나를 내뿜는 마물이라니……. 설마…….”
알바로는 왕자의 말에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왕자의 말에 생각나는 마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좀 기다려보자고, 곧 있으면 선발대하고 부딪칠 것 같거든. 이기든 지든, 어떤 놈인지 소식을 가져오겠지.”
왕자의 말에 알바로는 기사들에게 지시를 내려 부대를 멈춰 세웠다.
다행히 부대의 반 정도는 협곡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상대였다.
이 정도면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도 충분히 물러설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뭔가 마나의 움직임이 이상한데……. 무언가에게 유도되는 것처럼 방향을 바꾸고 있잖아. 선발대 쪽으로 바로 가는 것도 아니고 왜 저러는 거지?”
왕자는 마나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마나를 보지 못하기에 왕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만약을 대비해서 적을 맞이할 진영을 갖추기 시작했다.
“마물 대응 진영으로! 기사들은 앞으로 나오고, 병사들은 뒤로 빠져!”
“빨리 빠져! 네놈들 창으로는 상처도 나지 않으니 기사님들에게 자리를 마련해드려!”
갑자기 마물을 상대할 준비를 하라는 말에 다들 어리둥절했지만, 그동안 1 왕자의 말에 순종을 해왔던 터라, 이번에도 모두 순순히 진영을 바꾸었다.
다만, 좁은 협곡 입구에서 진영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들은 아주 조금씩 진영을 갖춰갔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난 뒤, 1 왕자는 거대한 마나와 선발대의 마나가 합쳐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두 마나가 하나로 맞닿았고, 순식간에 인간들 쪽 마나가 지워져 나갔다.
말도 안 되는 속도였다.
왕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거기다, 이번에는 1 왕자가 힘들게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본 광경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크아아아아앙!
거대한 괴성이 앞쪽에서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으아악, 귀가 터질 것 같아!”
“으왝!”
히이이이잉!
그 괴성은 협곡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다.
말이 날뛰고, 병사들은 귀를 잡고 뒹굴었다.
토하는 병사가 있는가 하면, 귀에서 피를 흘리는 병사도 있었다.
하늘로 작은 새들이 날아올라 협곡 밖으로 도망쳤다.
작은 동물들이 숲에서 튀어나와 땅을 구르는 병사들 옆으로 달려갔다.
동물들은 모두 협곡 밖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가을 낙엽이 쏟아지는 것은 물론이었고, 협곡의 공기마저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왕자는 물론, 나이 든 기사들도 이 괴성을 어떤 마물이 내 지른 것인지 알아차렸다.
“두 머리 마물인가?”
알바로의 말에 왕자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 마물이 봉인된 곳이 이 협곡이었었나? 그걸 동생 놈이 풀어준 거고?”
하지만, 젊은 기사들과 마물이 죽었다고 들었던 기사들은 나이 든 기사와 왕자의 말을 쉽게 믿지 못했다.
“다른 마물일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 두 머리 마물은 죽었을 텐데요.”
기사들이 그 마물이 맞느니 틀리느니 떠들어댔지만, 병사들은 그럴 정신도 없었다.
왕자는 기사들에게 더 설명하지 않았다.
이미 선발대의 마나는 마물의 마나에 전부 지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마물의 마나는 다시 이 본대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렇게 빨리 선발대를 지워버린 마물이라면, 거기다, 전설이 반만 사실이라도, 이 병력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
1 왕자는 알바로와 몇몇 기사에게 신호를 보냈다.
자신과 함께, 몰래 뒤로 빠지자는 신호였다.
협곡 입구에서 진영을 갖춘다고 움직이는 바람에 빠져나가기는 쉽지 않겠지만, 정 뭐하면 병사 몇을 베어내고 움직이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1 왕자가 천천히 뒤로 빠질 때, 또 하나의 이변이 일어났다.
쿠구구구구궁.
협곡 입구가 흔들리며, 양쪽의 절벽에서 바위가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피해! 무너진다!”
병사들이 비명을 질러댔고, 기사들이 놀란 말을 진정시켰지만, 두 번째 충격에는 다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콰과과과과광.
결국, 협곡 입구가 무너져 내릴 때까지, 그곳에 있는 병사들도, 기사들도 그 자리를 피하지 못했다.
“살려줘!”
“크아악!”
수많은 사람이 쏟아지는 바위와 돌, 흙에 파묻혔고, 협곡의 입구는 사라져 버렸다.
협곡 입구는 주변의 다른 절벽같이 백 미터가 넘는 높은 절벽에 가로막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