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5화
제15편 협곡 전투 (1)
< 창조형 영웅 능력자 >
< 사용 능력 >
- 영역 장악, 변형 : 레벨 4
- 마나 영역 구축 : 레벨 1
발레아의 머리 위에 보이는 정보창.
이곳에 오기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영역 능력도 한 단계 더 올라가 있었고, 마나 영역 구축이라는 새로운 능력이 생겨나 있었다.
아마도 이 유적에 있는 마나 세계를 다루면서 얻게 된 능력인 것 같았다.
이 유적 밖에서도 쓸 수 있는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능력이 생긴 것은 좋은 일이었다.
내가 발레아의 머리 위를 보는 동안, 카트린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후다닥 자리를 떴다.
카트린도 헛기침하며 천막으로 들어가 버렸다.
발레아 앞에서는 잘도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왜 나는 피하는 것인지…….
하기야, 다른 사람들이 보는 발레아는 그런 이야기도 미소를 지으면서 들어주는 아름답고, 훌륭하고, 대범한 귀족 영애였다.
그에 비해 나는 뒤끝이 있는 좀스러운 인간이었으니, 반응이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카트린의 한 말은 전부 틀렸다.
발레아가 큰 상처를 입었는데도 개의치 않고 나를 싸움터로 밀어 넣은 것을 보니,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닌 것 같다 라…….
그건 발레아의 본성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였다.
발레아라면 사랑하는 사람도 이유가 있다면 충분히 끓는 물에 던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시 붙일 수 있다면 혈육이라도 팔다리를 댕강댕강 자를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거기다, 다시 살아난다면 진짜 그런지 죽여보려고 하지 않을까…….
아니, 잠깐.
방금 뭔가 무서운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았다.
나는 격렬하게 머리를 흔들어 떠오른 생각을 다 지워버렸다.
지금은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암. 그렇고말고.
그리고, 통로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레스티를 보니, 내 생각이 틀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적 밖으로 정찰을 나가 있던 레스티였다.
그가 돌아왔다는 것은 뭔가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는 이야기였다.
지금 벌어질 상황이라면 한 가지밖에 없었다.
“2 왕자가 협곡 안에 들어왔습니다.”
예상대로였다.
2 왕자가 딱 알맞은 시간에 왔다.
아니, 2 왕자가 오기 전에 겨우 마칠 수 있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았다.
레스티의 말에 흩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
모인 사람들은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카트린과 발레아를 비롯한 병사들과 기사까지.
병사들과 기사도 2 왕자가 진짜로 오게 된다면 우리를 따르기로 했었다.
2 왕자가 저들을 살려둘 리가 없으니, 우리와 함께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곳 지형을 손금보듯이 하는 이들이라 이들을 데려가는 게 짐이 되지는 않았다.
나는 일행 모두를 보며 입을 열었다.
“계획대로 합니다.”
어떤 계획인지는 모두에게 미리 말해두었다.
마물과 싸우면서 일행과 정리한 계획.
그 계획은 기본적으로 한 가지 믿음이 필요했다.
내 말을 듣고 카트린이 모두를 대신해서 물었다.
“자신 있어?”
그 믿음은 나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 싸움에서 나 자신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네. 자신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제국 쪽으로 마물 왕을 달고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솔직히 이번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그럼 움직이자. 너희들은 나를 따라와.”
카트린은 기사와 병사들을 이끌고 통로를 빠져나갔다.
실력이 가장 떨어지는 자들이니 먼저 움직여야 했다.
남은 사람들은 통로에 있는 것들을 모두 치웠다.
천막도, 야영 장비도, 전부 유물 주머니에 쓸어 넣었다.
그렇게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우리도 움직였다.
2 왕자가 오기 전에 유적을 빠져나가야 했다.
* * *
시간이 흐르고, 협곡 깊숙이 들어온 2 왕자는 결국, 절벽에 박혀 있는 커다란 철문을 보게 되었다.
왕자와 그를 따르던 귀족 장교들은 모두 멍하니 철문을 바라보았다.
왕자도 이야기만 들었던 철문이었고, 다른 장교들은 이곳에 이런 유적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2 왕자 일행이 철문을 구경하는 동안, 장교 몇이 주변을 살폈다.
그들은 주변의 숲과 철문 옆에 세워져 있는 나무집을 확인한 뒤, 2 왕자에게 보고했다.
“안에도 사람은 없습니다. 싸운 흔적도 없고, 사람이 없어진 지도 한주 이상 지난 것 같습니다.”
장교의 말에 2 왕자가 눈을 찡그렸다.
“기사와 병사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내전 소식을 듣고 탈영한 걸까요?”
“전 왕실 부단장 로바르 쪽 기사라고 들었습니다. 로바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탈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귀족 장교들이라서 그런지, 쉽게 기사를 비하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왕자는 바로 무슨 말인지 알아차렸지만, 장교들이 하는 말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도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유 때문이라면, 주변을 수색하고, 계획대로 하기도 어려웠다.
왕자는 장교들이 이야기한 기사와 병사들의 탈영을 믿기로 했다.
“좋아, 도망친 놈들은 나중에 벌을 주기로 하고, 우선 저 철문을 연다. 모두 철문에 마나를 주입해!”
그의 말에 귀족 장교들이 철문 앞에 모였다.
같이 협곡에 도착했던 수천의 병사는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뒤에 남아 1 왕자의 군대를 막고 있었다.
귀족 장교들이 철문에 손을 대고 마나를 밀어 넣자, 2 왕자도 품에서 작은 원판을 꺼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원판 양면에는 알아보기 힘든 문양이 가득 그려져 있었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원판을 철문 중앙에 나 있는 틈에 밀어 넣었다.
찰칵.
원판을 밀어 넣자, 열쇠가 맞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2 왕자가 꺼낸 원판은 2 왕자가 왕실 창고에서 빼낸 이 유적의 열쇠였다.
그리고, 수십 년 전 세우타 공작이 마물 왕을 가두기 위해 사용했던 열쇠이기도 했다.
“마나를 주입할 때 조심해! 잘못하면 열쇠가 망가져서 유적이 다시는 열리지 않을 거야!”
왕자의 고함에 장교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조심스럽게 마나를 움직였다.
전혀 다른 마나들이었지만, 어쨌거나 마나들은 문에 모여들어, 중앙에 박힌 원판에 스며들었다.
중간에 전령이 달려와 1 왕자의 선발대가 오고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2 왕자는 철문과 열쇠에 온 정신을 모았다.
그리고,
쿠구구구궁.
철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됐다!”
왕자가 벌떡 일어섰다.
2 왕자와 그 일행이 유적 안으로 들어서는 그때, 나는 나무 위에 올라서서 그들을 보고 있었다.
실력이 올라간 나도 겨우 보일 정도 거리, 2 왕자와 그 일행은 절대 나를 보지 못할 거리였다.
그때까지 내 시야를 공유하고 있던 구슬이 입을 열었다.
[임시 사용자용 열쇠입니다. 관리자가 없을 때, 훈련 장소에 출입하기 위해 썼던 물건입니다. 여러 명이 마나를 부여하는 것을 보니, 사용자의 마나가 많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2 왕자가 사용한 열쇠가 무엇인지는 세우타 공작에게 들어서,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세우타 공작도 여러 명이 마나를 부여해서 문을 열었다고 들었는데…….
원래 저 열쇠는 용사 혼자서 쓰는 물건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만큼 용사가 가진 마나가 컸었다는 이야기였을 테고.
[그리고, 저 열쇠는 임시 사용자 용이라 가상 세상 출입은 소유자 일인만 가능합니다.]
제한도 많은 열쇠였다.
그래서 나는 2 왕자에게서 열쇠를 빼앗는 대신 먼저 이 유적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거기다, 구슬과 발레아를 믿기도 했었고.
어쨌거나, 내 예상보다 더 일은 더 잘되었다.
실력도 크게 올랐고.
2 왕자와 그 일행이 유적 안으로 들어가자, 나는 시선을 돌려 협곡 입구를 쳐다보았다.
하늘에 가득한 마나를 보지 않아도, 흔들리는 숲을 보면 엄청나게 많은 병사가 협곡 안으로 들어온 것을 알 수 있었다.
1 왕자가 온 것이었다.
“마물 왕과 2 왕자와 1 왕자라.”
드디어, 왕국과 공주를 위협하는 왕국의 모든 적들이 이 협곡 안에 모두 모여 있게 된 것이었다.
이제 고생의 보답을 받을 때가 되었다.
1 왕자의 군대가 들어온 것을 확인한 뒤에 나는 나무 아래로 뛰어내렸다.
바닥에 내려선 내 눈에 작은 협곡 밖으로 이어진 작은 소롯길이 보였다.
이 길은 이곳을 지키던 기사에게 들은 협곡 밖과 이어진 뒷길이었다.
일반인은 감히 넘을 수 없는 험지였지만, 기사 정도의 육체 능력자는 넘을 수 있는 협곡의 몇 안 되는 틈.
그 틈에서 유적으로 향하는 길에 나는 홀로 와 있었다.
다른 일행은 모두 흩어져서 내가 신호를 보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만약의 일을 대비할 생각이었다.
그 만약의 일이란, 2 왕자를 놓치게 되는 일이었다.
부스럭.
그때, 앞쪽에서 수풀을 헤치며 사람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반인일 리가 없는 가벼운 발걸음 소리.
이 길로 오고 있다는 것은 분명 협곡을 넘어왔다는 말이었다.
나는 가만히 서서 소리가 다가오는 것을 기다렸다.
“아! 그대는.”
그리고, 잠시 뒤, 소리를 낸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는 왕실 갑옷을 입고 있는 기사였다.
이번에는 투구를 쓰지 않아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젊고 아름다운 여기사. 이곳에 나타난 기사는 2 왕자의 호위 기사였다.
저번 삶에서, 1 왕자가 마물 왕을 뒤에 달고 수도로 향하고 있을 때, 나는 2 왕자도 이 협곡에서 죽지 않고 도망쳤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사라졌던 2 왕자의 호위 기사가 나타나 왕자를 구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레스티에게 부탁해서 그 이야기를 여러 번 확인했었다.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이 협곡에서 2 왕자가 빠져나가게 둘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들었던 그 이야기들은 내가 직접 눈으로 보게 되어, 사실로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떻게 여기에…….”
“그건 내가 묻고 싶군요. 이름이 이네스라고 하셨지요? 2 왕자를 떠났던 당신이 어떻게 여기로 다시 오게 된 것인지…….”
처음에는 이 여기사가 2 왕자 뒤를 따라 와서 그를 구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확인해 보니, 그렇게 따라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2 왕자는 병력을 나누어 뒤에 남겨놓았고, 1 왕자는 그 병력을 부수며 따라오고 있었다.
여기사가 다른 이에게 들키지 않고, 2 왕자의 뒤를 따를 방법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다른 길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떡하니 나타나다니.
솔직히 나도 무척 놀라는 중이었다.
“저를 도와주셨던 분이 알려 주셨습니다.”
“그게 누구죠? 설마, 이번에도 지나가는 현자 같은 건가요?”
“네? 현자라니요?”
자꾸만 뜬금없이 등장하는 사람들 때문에 말이 헛나와 버렸다.
하지만, 그냥 헛나온 말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제가 그걸 말할 리가 없을 텐데요. 어서 길을 비켜주세요.”
하기야, 이 여기사가 내게 그걸 말해 줄 리가 없었다.
그녀는 지금 2 왕자를 구하려 하는 것이었고, 나는 그 왕자를 여기서 죽일 생각이었다.
그리고, 여기사도 죽일 생각이었지만, 지금 생각이 바뀌었다.
“누가 도와주었는지 알아내야겠군요.”
나는 허리에 차고 있던 신검을 뽑아 들었다.
내가 검을 뽑자, 여기사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흥, 전하고 똑같게 생각하면 안 될 거예요. 이번에는 당신을 쓰러뜨리고 왕자님을 구하겠어요.”
확실히, 전보다 실력이 많이 올라간 게 보였다.
저렇게 빠르게 강해지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으니, 이것도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오늘 할 일이 많았다.
갑자기 생각을 바꾼 덕에 시간이 많지 않았다.
나는 말없이 그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