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310화 (310/563)

제310화

제10편 봉인 유적 (1)

오래지 않아 왕실 마차는 수도에서 북서쪽으로 한참 떨어진 북쪽 산맥의 한 협곡 아래에 도착했다.

협곡 아래에 도착했지만, 바로 협곡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우리는 길에서 조금 떨어진 버려진 성채 안에 왕실 마차를 숨겼다.

출발할 때 왕실 문양도 떼어내고, 평범한 마차처럼 보이도록 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보통 마차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뒤에, 우리는 버려진 성채에 숙영지를 만들고, 용병 행세를 했다.

카트린이나 레스티는 원래 용병 일을 했었고, 나도 용병처럼 보이는 데 무리는 없었다.

하지만, 발레아는 용병처럼 꾸며놓아도 용병처럼 보이지 않았다.

좋게 봐줘도, 몰래 여행하는 귀족 영애와 용병처럼 보일 듯했다.

그렇지만, 이 버려진 성채를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그것도 별 상관이 없었다.

반쯤 부서진 외딴 성채에 천막을 펴고 쉬고 있으니, 마치 먼 곳으로 캠핑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들 오랜만의 휴식을 즐기고 있었지만, 한 사람은 달랐다.

“잠깐 유적을 보고 오면 안 될까?”

카트린이 엉덩이를 들썩이며 내게 물었다.

몇 분 전에도 했던 말이었고, 벌써 수십 번을 들은 말이었다.

역시, 불새 사냥꾼이었다.

마물 왕이라는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던 카트린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여기 있는 불새 사냥꾼은 유적을 탐사할 기대만 가득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여태 했던 대로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여기서 2 왕자가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2 왕자가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유적을 먼저 건드릴 수는 없었다.

“2 왕자가 이쪽으로 오는 것을 확인한 뒤에 유적으로 갈 겁니다. 2 왕자가 오지 않거나 다른 곳으로 향하면 수도로 돌아갑니다.”

물론, 솔직히 기대하지는 않지만, 백의 하나, 내가 이번 삶에서 바꾼 일로 2 왕자의 행동이 바뀔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정말 그냥 돌아갈 생각이었다.

다만, 이런 일은 역시 과거와 달라지지 않았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레스티가, 2 왕자에 대한 소식을 가져온 것이다.

“알렉스 기사님의 말씀대로입니다. 1 왕자에게 기습을 당한 2 왕자가 많지 않은 병력을 데리고 북쪽으로 향했다는 소식입니다.”

레스티는 이제 내가 따로 가져온 정보에 관해 묻지 않았다.

의문이 들 만도 할 텐데, 정말 셀린 여신이 알려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걸까?

레스티가 셀린 교단에 대해 속속들이 이야기를 해줄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에는 셀린 교단의 빠른 연락망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그 연락망은 전부터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언제부턴가 원거리 연락을 할 수 있는 능력자도 없이, 빠른 속도로 소식을 전하고 받아왔던 레스티였다.

당연히 특별한 방법이 있을 터였다.

내가 물어보니, 레스티는 고민도 없이 그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 방법은 반쯤 예상한 대로 셀린 교단이 남겨놓은 유물을 이용한 방법이었다.

그 유물은 각 신전에 파견된 신관들이 몸에 가지고 다니던 유물로, 팔에 차는 묵주와 비슷해 보였다.

레스티는 유물을 보여주며 유물에 관한 전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 전설은 신관들이 묵주를 쥐고 여신에게 계속 기도를 드렸더니 여신이 축복을 내려 다른 신관들과 연락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조금은 엉뚱한 전설이었다.

물론, 레스티는 그 이야기를 전설이 아니라, 사실로 믿고 있었다.

마나와 초능력이 진짜 존재하는 세상이니, 믿기 어려운 이야기도 사실로 믿어지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사실일 수도 있었다.

유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레스티의 말대로 신이 내려주었을 가능성도 없는 게 아니었다.

어느 쪽이든 내게 도움이 되는 이상, 별 상관이 없었다.

아쉽게도 유물에는 소지자가 신앙심이 투철해야 하고, 셀린 교단과 관련된 장소에서만 연락이 되는 등 제약이 덕지덕지 붙어 있긴 했다.

하지만, 먼 곳과 연락을 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대단히 도움이 되는 유물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레스티는 그 유물을 이용해 전령도 없이 2 왕자의 움직임을 알아 올 수 있었다.

레스티의 말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스티의 말은 2 왕자가 마물 왕을 깨우기 위해 움직였다는 말이었지만, 놀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자님이 예상했던 일인데, 틀릴 리가 없죠.”

“처음 이야기 듣고 놀랄 것은 다 놀랐으니, 또 놀랄 리가 없잖아. 빨리 가자고.”

그 이유를 물어보자, 발레아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고, 카트린은 오히려 나를 재촉했다.

레스티는 그냥 어깨를 으쓱했고,

생각과 다른 반응에 나는 빨리 펼쳐놓은 짐을 꾸겨 넣었다.

큰 짐은 배낭에 넣고, 작고 중요한 물건들은 유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숙영지를 정리하고, 성채 깊숙이 숨겨놓은 마차는 그대로 두기로 했다.

협곡 안으로 가져갈 수 없으니, 이곳에 두는 게 제일 좋았다.

말들도 성채 옆에 방생했다.

똑똑한 말들이니, 운이 좋으면 돌아갈 때 다시 찾을 수 있을 터였다.

레스티는 배낭을 메고, 나머지 사람들은 가벼운 차림으로 무너진 성채를 벗어났다.

우리는 거의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협곡 안으로 들어갔다.

물이 거의 말라붙은 협곡.

협곡은 높은 나무로 가득 차 있었다.

북부 산맥의 외진 협곡.

이 정도 외진 곳이라면 길이 아예 없어야 했지만, 사람이 다닌 흔적이 남아 있는 길이 있었다.

이 길은 세우타 공작에게 들었던 길이었다.

유적으로 향하는 길.

이 길은 아직도 유적을 지키는 기사와 병사들이 지나다니는 길이었다.

수십 년이 지나긴 했지만, 아직도 카를로스 왕국은 마물 왕을 봉인해 놓은 유적을 지키고 있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 지키고 있던 병사와 기사의 수는 전보다 줄어들었지만, 그들은 내전 중에도 계속 유적을 지키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있던 기사와 병사들은 어떻게 됐을까?’

죽기 전에는 2 왕자가 마물 왕을 끄집어냈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여기를 지키던 기사와 병사들에 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2 왕자의 편에 서서 유적을 여는 걸 도와주었는지, 아니면 저항을 했을지.

아마, 지금 가 보면 알 수 있을 터였다.

다들, 협곡을 지나는데도 힘들어하지 않았다.

전부 각성한 귀족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도 ‘내가 구해온’ 왕실 마차가 편해서일 게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협곡은 다니기 편한 지형이 아니었다.

주변을 살피던 카트린도 같은 생각이었다.

“지형이 영 안 좋네. 사람들 숫자가 많으면 다니기가 힘들겠어.”

나무로 빽빽이 메워져 있는 데다가, 협곡 입구는 겨우 몇 명이 동시에 통과할 정도로 좁았다.

거기다, 양쪽으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까지.

제대로 매복하면 몇 배나 많은 적군을 쓰러뜨릴 수 있을 만한 곳이었다.

저번 삶에도, 2 왕자가 마물 왕을 깨우는 대신에 이곳에 매복했으면 한번 붙어볼 만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장소였다.

하지만 그 일은 이미 지나간, 아니 없어진 일이었다.

협곡 안에는 북부 산맥답지 않게 마물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싸움 없이 협곡을 지난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우리는 걸음을 멈추고, 높은 절벽을 쳐다보았다.

절벽에 큰 철문 하나가 박혀 있었다.

겉에는 넝쿨이 수없이 생겨났다가 사라진 흔적이 가득한, 무척이나 오래된 철문이었다.

세우타 공작에게 들었던 대로 고대 제국이 만든 유적의 문이었다.

다만, 고대 제국이 만들어서인지, 오래된 것치고는 그 형태와 단단함이 처음 만들었을 때와 달라지지 않은 듯했다.

철문에서 시선을 내리자, 그 앞에는 요새라고 부르기에는 작은, 큰 울타리가 쳐진 오래된 통나무집이 있었다.

저곳이 바로 이 유적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과 기사가 있는 곳일 터였다.

절벽에 박혀 있는 낡은 철문과 허름한 작은 요새.

이곳에서 보니, 무척이나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전생이었으면, 대단한 관광지가 되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관광객이 풍경을 보고 감탄하고 있는 게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같았다.

“모두 멈춰!”

“여기는 왕께서 정하신 출입 금지 지역이다!”

길 양쪽 숲에서 고함이 들리더니, 불쑥 기사 한 명이 걸어 나왔다.

“무기를 버리고 두 손을 들어라. 함부로 움직이면 목을 베겠다.”

나타난 기사는 삼십 대 중반 정도로 실력이 출중해 보이는 기사였다.

아무리 봐도, 이런 곳에 있을 만한 기사가 아니었다.

설마, 2 왕자가 미리 기사를 보내 놓은 걸까?

하지만, 우리를 보자마자 죽이려 들지를 않은 것을 보니, 그것은 아닌 것 같았다.

죽이려고 했으면, 바로 정리했을 텐데…….

이렇게 나오니 조금 곤란해졌다.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야 할까 고민을 하는데, 양옆에서 마나가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발레아와 카트린이 움직인 것이다.

우드드드득.

“으악, 이게 뭐야!”

“나무가! 가지가 움직이고 있어!”

“멈춰! 살려줘!”

곧이어 숲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기사의 신음이 들려왔다.

“으윽! 용병이 무슨 이런.”

“휴, 다행이야. 제자 중에 괴물이 있어서 내 실력이 줄어든 줄 알았거든.”

내가 머뭇거리는 동안, 발레아가 숲에 있는 병사들을 정리해 버렸고, 이어서 카트린은 우리를 막아선 기사를 제압하고 있었다.

두 사람을 보니, 내 고민이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확실히 이게 제일 편한 방법이었다.

멋지게 나섰던 기사는 얼마 안 있어 바닥에 나뒹굴었고, 나뭇가지에 둘둘 말린 병사들과 함께 우리 앞에 나란히 무릎을 꿇게 되었다.

내가 그들을 보는 사이, 발레아와 카트린이 내 뒤에서 속삭였다.

분명 내가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 텐데도, 두 사람은 방음벽도 치지 않고 뒷담화를 나누고 있었다.

“방금도 그렇지만, 알렉스 공자는 적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손을 쓰는 데 반해, 적이 아닌 것 같으면 묘하게 손을 머뭇거리더라고요.”

그랬었나? 생각해 보니, 확실히 내가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았다.

발레아의 말에 카트린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공작가의 가르침 때문일까?”

그런 가르침은 배운 적이 없었다.

발레아 말이 사실이라면, 아마 전생의 윤리관이 남아 있어서인 듯했다.

하지만, 발레아의 생각은 달랐다.

“적이면 쉽게 죽일 수 있는데, 적이 아닐 때는 그렇게 하지 못해 곤란해하는 것 같았어요.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게 귀찮다고 할까…….”

발레아의 말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평범한 사람한테 도살자 이미지를 씌우다니.

이건 오해를 사기에 딱 좋은 말이었다.

더구나, 카트린과 레스티가 나를 보고 움찔하는 것을 보니, 이미 오해를 해버린 모양이었다.

문제는 동료들만 오해한 것이 아니었다.

“저희들이 아는 것은 다 이야기하겠습니다!”

“저희들은 저 문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내전이 시작한 뒤로는 배급도 잘 들어오지 않아서 언제나 탈영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 기사님이 다 알고 있습니다! 기사님을 족치면 원하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병사들은 겁에 질린 얼굴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토해냈고.

기사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무릎을 꿇려놓은 병사들과 기사도 발레아 말을 믿어버린 것이다.

‘설마, 자백을 받아내려고 그런 거짓말을 한 건가?’

나는 혹시나 해 발레아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발레아는 나를 보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 어디에도 거짓말이라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 듯했다.

나는 구질구질한 변명을 하는 대신, 병사들과 기사를 심문했다.

이들은 2 왕자가 보내 놓은 병력이 아니었고, 원래 이곳을 지키던 이들이었다.

그리고, 병사도 기사도 이 유적이 어떤 곳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었다.

심문을 마치고, 우리는 병사들과 기사를 나무집에 던져 넣은 뒤, 철문으로 향했다.

높은 절벽에 새겨진 듯이 박혀 있는 거대한 철문.

원래는 2 왕자가 왕실 창고에서 가져간 열쇠가 있어야 했지만, 나에게도 이 문을 열 방법이 있었다.

나는 가슴에 손을 넣어 유물 구슬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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