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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309화 (309/563)

제309화

제9편 마물 왕을 향하여 (3)

제국군이 공국을 떠났다는 소리를 듣고 이피로스 왕국군이 물러나기 시작하자, 발레아는 바로 말을 빌려 수도로 달려온 것이었다.

“알려줘서 고마워요.”

수도에 도착한 발레아는 레스티에게 감사를 표했고, 나에게도 활짝 웃어 보였다.

“잊지 않고 불러줘서 고맙고요.”

“미안하지만, 바로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괜찮아요. 그럴 것 같아서 열심히 달려온 거거든요.”

발레아는 고개를 저었지만, 딱 봐도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그동안 능력으로 계속해서 이피로스 왕국군의 눈을 속이고 이어서 수도까지 말을 달려왔으니, 피곤한 것이 당연했다.

아니, 도착한 시간을 보니, 평범하게 말을 달려서는 이렇게 일찍 도착할 리가 없었다.

빨리 오기 위해 능력을 사용한 게 분명했다.

능력을 사용해서 땅을 접는 식으로 거리를 줄이고, 말에게도 환상을 보여준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저 튼튼한 군용마가 도착하자마자 거품을 물고 반쯤 죽어갈 리가 없었다.

발레아가 오면 바로 출발하려고 했지만, 발레아의 모습을 보고 계획을 조금 변경했다.

말을 타고 가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입구까지는 마차로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러려면 튼튼한 마차가 필요할 거고, 내가 아는 가장 튼튼한 마차는 이 도시에서 제일 높은 사람의 집에 있었다.

물론, 그 집주인은 지금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 대리인이 남아 있었다.

나는 발레아와 함께 왕궁으로 향했다.

왕비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거기다, 운이 좋게도 왕실 기사단장이 왕비와 같이 있었다.

왕비의 응접실에는 기사단장과 왕비, 카트린까지 모여서 다과를 나누고 있었다.

단장의 덩치 때문에 묘하게 어색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세 사람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니, 한두 번 만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왕실 기사단이 쉽게 넘어온 또 다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왕비와 카트린 덕이었다. 두 사람이 왕궁과 수도에 남아, 사람들을 회유해 왔던 것이었다.

“어서 와요. 얼마나 바쁜지 그동안 얼굴도 안 보이고……. 아이샤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려줄 생각도 없었나요?”

나를 보자, 왕비는 나를 반기면서도 자신의 불만을 이야기했다.

거기다, 옆에 있던 카트린도 머리를 끄덕였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머릿속이 마물 왕으로 가득 차 있어서 두 사람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었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많은 도움을 받았었는데, 두 사람을 무시한 게 되어버린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나는 두 사람에게 사과했다.

“아니, 사과하라는 말은 아니었어요. 그냥 괜한 투정 정도였는데…….”

내 사과에 왕비가 오히려 미안한 얼굴이 되었다.

“그동안 아이샤를 잘 도와주신 것을 알고 있어요. 큰일도 해주신 것을 들었고요.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왕비의 감사를 들으니, 확실히 공주가 누구에게 배워 온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이리저리 욕먹고 있는 죽은 왕이 아니라, 왕비에게서 교육을 받아온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나는 불만이야. 나하고 대련이라도 해주면 좀 좋아. 실력 차이가 많이 난다고 아예 무시하는 것 같다니까.”

하지만, 카트린은 입을 삐죽 내밀며 내게 말했다.

소파에 늘어져 있는 카트린은 무척이나 지쳐 보였다.

아무래도 귀족들을 상대하는 스트레스가 큰 모양이었다.

“다 늙은 놈들이 나보고 둘째 부인으로 들어오라는 소리를 하고, 아버지 백작께서는 이 기회에 데릴사위로 삼을 만한 남자를 찾아보라고 하고 있으니, 내가 어떻게 안 지치겠어…….”

내가 생각하는 스트레스와 조금 달랐지만, 이쪽도 힘든 것은 만만찮아 보였다.

나는 속으로 위로를 보내고, 이곳에 온 이유를 이야기했다.

“할 일이 있어서 바로 북서부로 움직여야 합니다. 먼 거리라 왕실 마차를 사용하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내 말에 왕비는 눈을 끔벅였다. 뜻밖의 이야기였던 모양이었다.

“쓰게 해주는 것은 문제가 없는데…….”

그래도 왕비는 쉽게 허락해 주었다. 다만, 단장이 대표로 내 말에 의문을 표했다.

“아니, 이곳으로 오고 있는 병력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움직인다고?”

공주의 병력을 기다렸다가 움직이기에는 너무 시간이 걸렸다.

잘 수습하기는 했지만, 수도가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는 것은 1 왕자도, 2 왕자도 금방 알아차릴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2 왕자가 유적으로 바로 움직일 테고, 내가 공주가 온 뒤에 떠나게 되면 너무 늦을 것이었다.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몇 가지 정보를 얻어서……. 서둘러 확인해봐야 합니다.”

그렇다고,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을 떠들 수는 없었다.

결국, 그 이유는 얼렁뚱땅 넘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생각보다 이들에게 신뢰를 많이 쌓아놓은 것이었는지……. 이 정도 대답에도 그냥 넘어가 주었다.

“생각보다 공주나 그레시아 공작이 일을 많이 시키는 모양이군.”

대신 다른 사람들이 욕을 먹게 되어버린 것 같았다.

“제가 고생을 자초한 거죠.”

단장과 이 방의 사람들은 내 말을 겸손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전혀 겸손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정말 고생을 자초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미래를 안다는 것이 이렇게 피곤할 줄이야…….

그렇다고 왕국이 망하게 생겼는데,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마차를 얻고, 작별 인사까지 끝내려 할 때, 우울한 얼굴의 카트린을 보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일에도 밀톤 용병처럼 길잡이를 해줄 용병이 한 명 필요했다.

유적에 대해 잘 아는, 실력이 좋은 용병.

나는 그런 용병을 한 명 알고 있었다.

“카트린 교수님도 같이 가시겠습니까?”

“아카데미가 문 닫았는데 교수는 무슨……. 이제는 실직자 노처녀 카트리네일 뿐이랍니다. 그래서 내가 왜? 어라? 잠깐, 분명 같이 가자고 한 거지?”

푸념을 늘어놓던 카트린이 몸을 바짝 세웠다.

카트린의 반짝이는 눈을 보니, 괜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네, 불새 사냥꾼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도 교수 카트리네가 아니라 용병 불새 사냥꾼이었다.

내 말에 카트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말? 그쪽 일이라는 거지? 갈게! 당장 준비할게!”

“아버님이 뭐라 하실 텐데…….”

옆에서 왕비님이 초를 치셨지만, 전혀 먹히지 않았다.

“왕비님이 좀 막아줘! 그동안 나 열심히 했잖아!”

왕비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왕비에게도 카트린이 고생한 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나는 흥분해서 서두르는 카트린을 보고 주의를 주었다.

“많이 위험할 겁니다.”

카트린은 내 말에 코웃음을 쳤다.

“용병 일이 언제는 안 위험했다고.”

카트린의 말이 맞았다. 검을 든 용병이 안전한 일을 할 리가 없었다.

그렇게 마차를 빌리고, 유적 탐사를 도와줄 용병도 구한 뒤, 나는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혼자 세우타 공작을 만났다.

만약을 대비해서 말을 전해 두어야 할 사람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2 왕자 쪽에 심어두었던 정보원 하나가 전해온 이야기입니다. 상황이 안 좋아지면 2 왕자가 유적에 가두어 두었던 마물 왕을 꺼낼지도 모른다는…….”

다시 한번 세우타 공작에게 있지도 않은 정보원을 핑계로 2 왕자가 마물 왕을 풀어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세우타 공작은 내가 마물 왕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에 놀랐다가, 2 왕자의 계획에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설마 그럴 리가……. 아니, 내게 계속 그때 일을 물어본 게 그런 이유였던 건가?”

당연히 처음에는 내 말을 믿지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도 뭔가 짚이는 일이 떠오른 것 같았다.

“그 뒤에 왕실 창고도 방문했었고……. 아니 잠깐! 왕실 창고를 확인해봐야…….”

생각을 이어가던 공작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왕이 없으니 왕실 창고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을 수도 없고……. 결국 사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군.”

공작은 안타까워했지만, 나는 왕실 창고를 들어가든 못 들어가든 별 상관이 없었다.

나는 내 이야기를 확인받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었다. 내 눈으로 봤는데, 또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먼저 가서 사실 확인을 할 생각입니다.”

먼저 이렇게 밑밥을 깔고.

“공작님께 말씀드리는 건 제가 따로 소식을 전했을 때 믿고 준비해 주실 분이 필요하고, 만약 제가 연락을 못 하고 일이 벌어지면 공작님이 나서주십사 하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진짜 이유를 이야기했다.

솔직히 내가 실패한다면 그 뒤의 일은 내게는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릴 터였다.

어차피 나는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도전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매번 최선을 다하기로 하고 그렇게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한 가지 준비 정도는 해 놓기로 했다.

“만약을 대비한다는 거냐…….”

“괜한 소문이 나기라도 하면 분위기만 안 좋아질 테니까요. 공작님만 알고 계셨다가 상황에 맞게 움직여 주셨으면 합니다.”

“.....”

내 말이 끝나자, 공작이 고민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노인도 따라오고 싶어 하는 게 분명했다. 내가 부탁하지 않았으면 바로 따라오려 했을 터였다.

노인이 따라오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저번 삶에서 보면, 노인은 마물 왕을 자신의 책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 이렇게라도 붙잡아 놓지 않으면 따라오거나, 뒤늦게 찾아오려 할지도 몰랐다.

마물 왕을 상대하러 가면서 노인까지 수발할 수는 없었다.

거기다, 괜히 따라와서 죽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젊어서 고생한 노인은 편하게 늙어 죽는 게 제일 좋았다.

* * *

모든 준비를 마치고, 우리는 왕실 마차를 타고 수도를 벗어났다.

마차에는 발레아와 카트린, 내가 탔고, 레스티가 말을 몰았다.

마물 왕이 봉인된 유적을 찾아가는 인원으로는 무척이나 조촐했지만, 나는 충분히 만족했다.

하지만, 같이 출발한 동료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뭐! 마물 왕이 봉인된 유적으로 가는 거라고?”

“네. 위험하다고 했잖아요.”

“아니, 분명 그 마물 왕은 세우타 공작님과 그 당시 기사들이 죽인 것 아니었나? 거기다 2 왕자님이 마물 왕의 봉인을 풀 생각이라고?”

카트린은 내 설명에 자신의 상식이 무너졌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을 몰던 레스티도 놀랐는지, 마차가 길을 살짝 벗어났다가 돌아왔다.

다행히 발레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그녀는 안락한 왕실 마차에 앉아 즐거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발레아 너는 ‘알렉스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짓지 말아 줄래?”

아니, 저 얼굴이 그런 뜻이었던가?

오랜 세월을 살고 있었지만, 역시, 여자의 표정은 어려웠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2 왕자가 유적으로 오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물론 그럴 일은 없을 테지만.

“거기다, 2 왕자가 유적에서 마물 왕을 꺼내기도 쉽지 않을 테고.”

저번 삶에서는 잘만 꺼냈었다.

“최악의 상황에도 2 왕자가 마물 왕을 꺼내는 것을 방해하기만 할 겁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방해 말고도 마물 왕을 죽여 볼 생각이었다.

유적에 봉인되었다고 하지만, 마물 왕을 왕국 내에 두는 것은 무척이나 불안한 일이었다.

마물을 가둔 유적인 만큼, 이번에는 죽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뭐, 다 안 되면, 유적에 들어온 2 왕자를 죽이고, 마물 왕을 이용해서 1 왕자 병력을 쓸어버린 다음, 제국으로 튈 생각이었다.

전에도 제국이 마물 왕을 죽여본 적이 있었던 만큼, 마물을 달고 제국을 순회하면 마물 왕을 죽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왕실 마차는 빠른 속도로 왕국 서부를 주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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