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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308화 (308/563)

제308화

제8편 마물 왕을 향하여 (2)

공주의 응접실에서 쫓겨난 뒤에 생각해 보니, 이건 공주에게 부탁할 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나에게는 이런 일을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레스티는 내 부탁을 바로 들어주었다.

그리고, 레스티가 수도에도 같이 가기로 했다.

다른 병사와 기사들보다 빨리 수도에 도착해서 도시에 잠입해야 했다.

그런 일에는 용병이자, 어둠의 상인인 레스티가 제격이었다.

보고도 했으니, 우리는 바로 출발했다.

공국에서 수도로 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교역로로 이용하는 큰 대로가 있었고, 공국군이 한번 휩쓸고 지나간 덕에 길에는 강도나 도적들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굶주리고 피폐한 사람들이 보이긴 했지만, 그들을 외면하고 계속 말을 박찼다.

우리는 중간에 쉬지도 자지도 않았다.

음식도 말 위에서 먹고, 말이 지치면 다른 말로 갈아탔다.

공국왕과 공작에게 말해 놓은 덕에 좋은 말을 여러 마리 데려올 수 있었다.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나고, 결국, 각성자인 레스티가 지쳐서 나가떨어지기 직전, 우리는 수도의 성벽을 볼 수 있었다.

아직 해가 중천에 있었지만, 수도의 성문은 죽기 전에 보았을 때처럼 굳게 닫혀있었다.

1 왕자가 있을 때도 잠시만 열어 놓았고, 공국군이 왔을 때부터는 완전히 닫아걸었다고 들었었다.

저러면, 내부의 불만이 장난이 아닐 텐데…….

확실히, 단장이나 왕실 기사단이 쉽게 넘어온 이유가 있었다.

“밤까지 기다려야 하나…….”

전보다 강해졌어도, 낮에 성벽을 넘을 수는 없었다.

성벽 위의 기사와 병사들을 포섭해 놓았었던 제국 기사들과 달리, 나는 견시병들에게 들킬 수밖에 없었다.

죽기 전에도 결국, 해가 없을 때 담을 넘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레스티가 나섰다.

“그, 그건 제가 해결해보겠습니다.”

그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말을 움직여 닫힌 성문으로 향했다.

나는 뒤로 물러서서 그가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닫힌 성문 앞에 가서 이리저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나누자.

그그그그긍.

결국, 성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분명 평범한 성문이었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열리던 성문은 사람 허리 정도에서 멈췄다.

문이 멈추자, 레스티가 나에게 신호를 보냈고, 나는 냉큼 그에게 다가갔다.

“이야기가 잘 되었습니다. 저희를 살짝 들여보내 주기로 했습니다. 낮에는 처음이지만, 밤에는 지금처럼 상인들을 들여보내고 있던 모양입니다.”

“공짜는 아닐 텐데…….”

이야기가 길어진 것을 보니,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은 셀린 교인이 아니었다.

만약 그 사람이 셀린 교인이더라도 성문을 지키는 사람은 한사람이 아니었다.

“보상은 우리가 타고 온 말로 하기로 했습니다. 문을 다 안 열어준 것도 그런 이유고요.”

나름 합리적인 가격이었다.

물론, 우리가 타고 온 튼튼한 군용말 가격을 생각한다면 폭리도 그런 폭리가 없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리 비싸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군용 말보다, 시간이 더 중요했다.

공국에서는 나를 많은 이들이 알아보았지만, 수도에서는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더구나 평범한 가죽 갑옷을 입고 있으니, 조금 돈이 많은 부잣집 아들 정도로 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편법으로 성문을 통과해, 도시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삭막한 거리와 우울한 도시.

저번에 왔을 때와 도시는 다르지 않았다.

“저는 여기서 헤어지겠습니다.”

레스티는 나와 헤어져서 두 왕자에 대해 알아볼 계획이었다.

병력의 위치와 상황, 계획까지.

전부 내가 부탁한 일이었다.

이 수도에는 1 왕자의 부하들과 2 왕자 쪽 귀족들도 남아 있으니, 운이 좋으면 몇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레스티가 건물들 사이로 모습을 감추는 것을 보며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레스티와 셀린의 교인들은 전부 자신의 종교를 위해 나를 돕고 있었다.

내가 성기사의 검을 가지고 있고, 성기사의 인정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내가 자신들을 구원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신을 믿고 있지 않았다.

제국의 교단의 신을 믿지 않은 것처럼.

까놓고 말해, 그들의 힘을 이용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것도 솔직히 말했지만, 레스티도, 셀린의 교인들도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도 잘 이용하고 있지만, 솔직히 미안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게 그들의 노림수이려나. 미안해서 내가 도와주는 걸 노린 걸까?”

어이없는 생각에 머리를 흔들었다.

다만, 그들에 대한 감사는 마음 깊이 담아두기로 했다.

진짜 그것이 그들의 노림수라면, 확실히 성공한 것 같았다.

레스티가 떠난 뒤, 나도 왕실 기사단의 숙소로 향했다.

전에 왔을 때보다 경계가 삼엄하지 않아, 쉽게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전과 달리, 숙소에는 왕실 기사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기사단장의 방에 들어갈 때까지 다른 기사들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단장도 없을까 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는 방에 있었다.

단장은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공국에 있는 것 아니었나?”

역시, 단장의 말에서 묘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아니, 단장은 전과 다르지 않겠다.

단장의 말은 죽기 전 수도에서 들었던 말과 비슷했다.

다만, 죽기 전에 단장과 함께 싸웠었던 나로서는 다시 과거로 만난 단장이 조금 서먹하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물론, 처음 있었던 일도 아니었고, 나는 금방 어색함을 떨쳐 버릴 수 있었다.

“공국이 제국을 물리쳤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게 며칠 안 되었는데……. 그 소문의 당사자가 어떻게 여기 나타난 거지?”

확실히 단장의 말대로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것은 이상하게 여길만했다.

거기다, 소문에 내 이야기라니…….

이건 분명 레스티와 셀린 교단이 한 짓이었다.

내가 전면에 나서는 것을 보고, 그들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내게 말없이 이런 소문을 뿌린 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알아서 잘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뭐라 할 수도 없었다.

다음에 만났을 때, 나에게 귀띔이라도 해달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일이 있어서 먼저 수도로 달려왔습니다. 단장님을 만나려고요.”

내 말에 눈썹을 실룩인 단장은 다시 딴지를 걸었다.

“거기다, 성문이 닫혔는데 여기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성벽을 몰래 넘어왔다는 말일 텐데. 그건 큰 범죄…….”

단장은 과거에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꺼내놓았다.

이번에도 똑같은 말인 것을 보니, 확실히 뭔가 의도를 가지고 꺼낸 말은 아니었다.

거기다, 이번에는 성벽을 넘지 않고, 성문으로 들어왔었다.

하지만, 그런 대답으로 시간을 끌 생각은 없었다.

나는 전과 똑같은 말을 꺼냈다.

“왕실 기사단을 움직여서 성문을 열어주십시오.”

“기사의 성 앞에서 왕국 기사들끼리 싸우라는 소리냐?”

같은 표정과 같은 대답.

전에는 여기서 설득을 하기 위해 여러 말들을 했었다.

하지만, 그 설득들은 뒤돌아보니 큰 의미가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결국, 단장이 원하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단장님과 대련을 하겠습니다. 제가 이기면 성문을 열어주시고, 공주님의 편에 서 주십시오.”

내 말에 단장의 눈이 커졌다.

“아니, 30분만 버티면……. 좋아! 네놈이 그렇게 말했으니, 그렇게 하지. 네가 이기면 성문을 열어주고, 공주님 편도 들어주지.”내 이야기에 단장은 화가 난 것 같았다.

“하지만, 지면 네놈은 내 밑에서 1년, 아니 2년간 굴러야 해!”

너무 서두른 것일까?

과거로 돌아온 뒤에 나는 뭔가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계획에는 큰 차이가 없으니 다행이었다.

대련은 이기면 되는 거고, 혹시 진다고 해도 단장 밑에서 2년간 구르면…….

아니, 잠깐.

단장 밑에서 구른다는 것은 설마 왕실 기사가 된다는 건가? 단장 밑이면 단장의 직속 제자가 되어서?

생각해 보니, 다른 사람이라면 진 것도 대단한 특혜였다.

물론 나는 질 생각이 추호도 없었지만.

그리고, 대련은 내 생각대로 끝이 났다.

30분 뒤, 단장은 숙소 밖, 연무장에서 검에 기댄 채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물론, 나는 숨도 거칠어지지 않고, 표정도 그대로였다.

지켜보는 기사들은 과거의 반도 되지 않았다.

이 시기의 왕실 기사들은 아직 치안대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이렇게 빨리 강해지리라고는…….”

단장을 생각해서 30분 이상 시간도 끌고, 바닥에 눕히지도 않았지만, 직접 나와 대련을 한 단장은 내 실력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놀라고 있는 것이었다.

단장과 싸운 나도 놀라고 있었다.

전에 싸웠을 때보다 훨씬 쉬웠다.

단장이 약해졌을 리가 없으니, 내가 강해진 것이었다.

다른 싸움이 없었으니, 결국, 마물 왕과의 싸움 때문에 또 실력이 올라간 모양이었다.

잠시, 정보창을 확인해 볼까 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왕실 기사단장을 다시 이긴 것뿐이었다.

정보창을 보는 것은 더 강한 적을 이겼을 때 볼 생각이었다.

싸움이 끝난 뒤, 전에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하게 되었다.

내가 다중 능력자라는 이야기와 내전이 끝날 때까지 비밀을 지켜달라는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실력이 올라가서인지, 죽기 전처럼 ‘마나 감응력’을 들키지는 않았다.

덕분에 단장과는 쉽게 이야기를 마칠 수 있었다.

대련이 끝난 뒤, 왕실 기사단은 전처럼 다시 도시를 장악하기 위해 움직였다.

전과 달리, 도시를 장악하는 것은 더 빠르게 진행되었다.

왕실 기사단이 수도 치안대 역할을 하는 중이어서 인 것 같았다.

1 왕자의 병력은 전보다 더 빠르게 정리가 되었다.

강제로 끌려왔던 지원병들은 바로 집으로 돌려보냈고, 1 왕자 쪽 기사들과 귀족들은 전부 숙소와 자택에 갇히게 되었다.

그리고, 성문이 열렸다.

성문이 열리자, 먼저 용감한 상인들이 조심스럽게 내왕을 시작했고, 그 뒤를 다른 사람들이 따르기 시작했다.

성문은 금방 혼잡해졌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수도에 갇혔던 귀족들과 평민들이 피난을 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공국군과 공주의 연합군이 수도로 오고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포기를 한 것인지, 아니면 공주의 군대를 환영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수도가 비지 않은 것은 무척이나 다행스러웠다.

그리고, 나와 레스티는 성벽 위에 서서 성문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2 왕자는 세력을 수습하느라, 1 왕자는 2 왕자를 쫓느라, 수도가 넘어간 것을 신경 쓰지 못할 겁니다.”

아직, 공주의 군대가 도착하지 않아, 수도는 무주공산이었지만, 1 왕자도 2 왕자도 수도에는 관심을 두기가 어려웠다.

수도 내부도 계속 치안대 역할을 해 주었던 왕실 기사단이 지금도 계속 움직여주어,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이제, 며칠 뒤에, 공주의 군대가 도착하기만 하면 되었다.

나는 성문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서 시선을 거둔 뒤, 멀리 동쪽 평야를 바라보았다.

“말씀하신 북부 산맥에 있는 왕국 군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2 왕자 쪽에 붙었지만,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그 병력에 신경을 쓰시는지…….”

옆에서는 레스티가 계속 보고를 하고 있었지만, 나는 말을 타고 달려오는 사람을 보느라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었다.

발레아가 멀리서 말을 타고 힘차게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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