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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307화 (307/563)

제307화

제7편 마물 왕을 향하여 (1)

터져 나오는 흙더미와 함께 하늘로 치솟는 화염.

작은 화산이 터져 나오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람들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내 고함에도 도망치지 않았다.

기사들은 오히려 검을 치켜들고 싸울 준비를 했고, 그건 발레아도 단장도 마찬가지였다.

하얗게 질린 발레아가 땅에 마나를 불어넣고 있었고, 단장도 검을 뽑아 들었다.

훌륭한 모습들이었지만, 지금은 그래서는 안 되었다.

“제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바로 퇴각해서 이곳으로 오고 있는 병력과 합류해주세요. 아시지 않습니까? 여기서 싸우다가는 개죽음일 뿐입니다. 기사단만으로는 막을 수 없습니다!”

내 고함에 단장은 손에 들고 있는 검을 힘껏 움켜쥐었다.

칼 손잡이를 타고 흐르는 피.

그 피에 단장은 정신을 차렸다.

으득.

단장은 이를 갈고는 기사들에게 소리쳤다.

“후퇴! 북문을 통해 퇴각한다! 저택에 남아 있는 부상자들도 모두 옮겨!”

내 말은 듣지도 않던 기사들이었지만, 자신들 단장의 말에는 바로 움직였다.

기사들은 검을 다시 집어넣고 달리기 시작했다.

북문으로 달려가는 기사들과 저택으로 달리는 기사들.

후작의 동생도 저택으로 달려갔고, 용병 밀톤도 알아서 몸을 빼고 있었다.

이야기 속의 용사에 대한 로망이 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오랫동안 용병으로 구른 짬밥은 어디 가지 않았다.

밀톤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단장은 떠나기 전 나를 돌아보았다.

“저는 시간을 벌다가 알아서 복귀하겠습니다.”

복귀를 못 할 수도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싸움터에 나온 기사들은 지금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으니, 그걸 따로 말할 필요는 없었다.

단장도 그것은 잘 알고 있었다.

내 대답에 단장은 아직 남아 있는 세우타 공작을 데리고 가려 했다.

하지만, 세우타 공작은 단장의 도움을 거절했다.

“시간 벌이에는 내가 더 쓸 만하지.”

노인은 단장에게 팔찌를 보여 주며 말했다.

단장은 잠시 노인을 지켜보다가, 진심을 담아, 깊게 고개를 숙였다.

노인은 그 모습에 껄껄 웃었고, 단장은 기사들을 따라 몸을 날렸다.

그렇게 되니, 이곳에는 세 사람만 남게 되었다.

발레아와 나, 그리고 세우타 공작이었다.

나는 세우타 공작에게 왜 남아 있냐고 묻지 않았다.

발레아에게도 떠나라고 말하지 못했다.

세우타 공작은 이곳을 죽을 곳으로 여기는 듯했고, 발레아는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옆을 지킬 작정인 것으로 보였다.

두 사람 다 말릴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나도 모두를 위해 남은 것으로 보일 테니.

다만, 나는 기도를 할 뿐이었다.

내가 죽은 뒤 되살아나는 세계가 다른 세상이 아니라, 이 시간의 과거이기를.

내가 죽은 뒤에 이 세계가 그냥 흘러가지 않기를.

이제는 그런 믿음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사람들이 떠나고, 하늘로 솟구치던 화염도 가라앉았다.

우리 앞에는 열기에 이글거리는 큰 구멍만 남게 되었다.

그 구멍 아래에서 거대한 마나가 올라오고 있었다.

강대한 능력을 사용해서 마나가 줄어들었다지만, 줄어든 마나도 절대 작은 게 아니었다.

“왔어요.”

땅에 손을 올리고 있던 발레아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발레아의 말대로 구멍에서 마물 왕이 올라오고 있었다.

큰 구멍 아래에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마물 왕.

마물은 마치 보이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는 것처럼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이건 바람 능력을 이용한 기술이려나.

마물 왕이 모습을 보이자, 노인이 팔찌를 낀 팔에 힘을 주었다.

우우우우웅.

팔찌에 모여 있던 마나가 노인의 몸으로 흘러들었다.

구부정했던 몸이 바로 펴지고, 메마른 근육이 단단해졌다.

가득한 주름마저 줄어들어, 노인은 더는 노인이라 불리기 어려울 정도의 모습이 되었다.

공작은 검을 들어 구멍 위에 떠 있는 마물을 가리켰다.

“오랜만이야.”

공작은 마물에게 인사를 했지만, 마물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마물의 두 머리는 나를 보고 있었다.

“수십 년이 지났다고 하지만, 나를 버리고 딴 놈에게 시선을 주다니. 생각보다 지조가 없는 놈이군.”

공작은 마물 왕이 자신이 아니라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을 궁금해하는 대신에 재치 있는 농담을 건넸다.

그는 검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계속 말을 이었다.

“실전은 수십 년 만이라 잘 될지 모르겠군.”

공작 말대로 수십 년 만의 실전이긴 했지만, 마나를 회복한 공작은 잘 싸울 것이었다.

발레아도 임시로나마 영역을 펼친 것 같았고.

그리고, 나도 싸울 준비를 끝낸 상황이었다.

물론, 여기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도망치면서 시간을 버는 것도 생각해봤었다.

하지만, 이리저리 생각해 보아도 벌 수 있는 시간은 별로 차이가 나지 않을 듯했다.

더구나, 그렇게 도망치다 보면 피해가 커질 테고,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이곳에서 마물 왕의 능력을 좀 더 확인하는 게 나을 듯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건 핑계였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더 싸움을 이어가기에는 너무 지쳐있었다.

신검이 계속 회복시켜주어서 겉보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속은 지금 엉망이었다.

다 회복되지 않은 몸에 계속된 상처. 그리고, 고통.

내가 고통에 익숙해졌다고 해도, 그 고통이 이렇게 길어지면 버티기가 어려웠다.

어쨌거나 나도 정신은 평범한 인간이었다.

고통에 버틸 수 있는 한계가 있었다.

나는 이제 조금 쉬고 싶었다.

나는 신검을 다시 가슴 안에 집어넣고, 대검을 꺼냈다.

그리고, 반대편 손에는 단검을 쥐고, 공작과 발레아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굳은 공작의 얼굴과 미소를 지으며 진땀을 흘리는 발레아.

나는 싸우기 전, 공작에게 한 가지 물어보았다.

“저 마물이 갇혔던 유적에 대해 말해 주신 것 중에 빠진 것은 없죠?”

내 말에 공작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대로 내 말에는 대답해 주었다.

“확실히 전부 말해 주었어. 문을 여는 것부터, 폐쇄하는 법까지, 내가 아는 내용은 모두 말해 주었지.”

마물이 튀어나와 버려서 더는 비밀이 아니게 된 내용이었다.

좋아. 마지막 확인도 끝났다.

나는 마지막으로 발레아를 슬쩍 쳐다보았다.

발레아는 미소를 띤 채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발레아의 미소를 기억한 뒤에 입을 열었다.

“다음에 뵙죠.”

나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마물 왕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사망하셨습니다. 저장 시점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환한 빛을 보고 눈을 뜨니, 과거로 돌아와 있었다.

매번 과거로 돌아올 때마다 느낀 것이지만, 이번에도 주변 광경은 전에 한번 보았던 모습들이었다.

오래된 기사들의 숙소.

기사들은 막 짐을 싸고 있었다.

전에는 그들이 짐을 싸는 것을 도와주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밖으로 뛰쳐나가 사람들이 안 보이는 성벽 구석으로 향했다.

그리고, 허리를 굽히고 헛구역질을 했다.

“우엑!”

당연히 침 이외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 상태로 머리를 성벽에 기대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온갖 통증이 온몸을 휩쓸고 있었다.

살이 타들어 가는 뜨거운 감각과 얼어붙는 느낌, 거기다 온몸이 잘려 나가는 감각까지.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얻기 위해 날뛴 덕이었다.

덕분에 신검으로 어느 정도 치료되었던 고통까지 다시 느껴지는 것 같았다.

물론, 지금은 환상통일 뿐이었지만, 그동안 느꼈던 고통 중에서 제일 고통이 큰 것 같았다.

싸우는 도중, 발레아와 세우타 공작의 마나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죽음에서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과거로 돌아오면 없었던 일이 될 뿐이었다.

나 스스로 내 속을 들쑤실 필요는 없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역시, 마물 왕과의 전투는 만만치 않았다.

거기다, 사람을 회복시켜주는 신검은 뜻밖의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육체는 회복되는데, 정신이 버티질 못한다라…….”

마지막 싸움에서도 신검을 가지고 전투를 벌였다면, 지금쯤 고통의 지옥을 보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신검은 정신이 마모되면 마모될수록 쓸모가 있을 것 같지만, 솔직히 그 정도로 맛이 가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지친 가운데에서도 할 수 있는 한 정보는 모은 것 같았다.

거기다, 한동안 실전은 없을 것 같고.

나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확인했다.

역시 이곳은 공국의 북쪽 성벽 아래 있는 기사단 숙소였다.

시간은 제국군이 떠나고, 막 수도로 움직일 시간.

생각해 보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쩝, 돌아와서도 정신없이 움직여야 한다니…….”

맨날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내 신세에 한숨이 나왔지만, 그래도 당장 마물 왕과 싸울 일은 없었다.

당장은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정신을 차린 나는 바로 다른 기사들에게 말을 하고 숙소를 빠져나왔다.

전에는 기사들과 함께 수도로 향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여유롭게 움직이다가는 시간에 맞출 수가 없었다.

나는 바로 회의실로 달려갔다.

지금은 높은 분들이 모여 회의를 할 시간이었다.

그동안 위상이 높아진 것은 이럴 때 도움이 되었다.

특히, 공국에서는 내가 어디를 가든지 막는 사람이 없었다.

공국의 왕궁에서도 내가 회의실을 가려 하자, 안내해주려는 고용인과 하녀들이 줄을 설 정도였다.

귀족들이 이들의 십 분의 일이라도 나를 인정해 주면 좋을 텐데…….

하지만, 그 고지식한 인간들이 그럴 리가 없었다.

왕궁의 회의실에는 공주는 없고, 공국왕과 그레시아 공작이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은 나를 보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내가 오기 전에 나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던, 별 관심은 들지 않았다.

사실 당장 나에게는 마물 왕 말고 관심을 둘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다른 일들을 버려둘 수는 없는 일.

나는 차분히 두 사람에 저번 삶에서 수도에서 했었던 일, 그리고 앞으로 하려고 하는 왕실 기사단 회유에 관해 설명했다.

저번 삶에서는 군대와 함께 수도 앞에 도착한 뒤에 공주와 군 사령부에 계획을 설명했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왕실 기사단이 내부에서 도시를 장악한 뒤에 우리를 위해 성문을 열어 놓는다면 왕위 계승의 정당성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공성전이 필요 없게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일 테고요.”

내 말이 끝나자, 공국왕은 아쉬운 듯 혀를 찼고, 그레시아 공작은 뭔가 고심에 잠겨버렸다.

이상한 반응이었다.

내 이야기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아닌 것 같았는데…….

어쨌거나 그 일을 위해 먼저 움직이는 것은 두 사람에게 허락을 받을 수 있었고,

나는 공주에게 가서도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

공주도 뭔가 이상했다. 얼굴이 벌겋게 되어 내 시선을 외면하고 있었다.

“같이 움직이고 싶지만, 본대와 같이 가야 할 테니, 그러면 안 되겠죠. 어쩔 수 없네요.”

그래도 표정과 다르게 공주는 의연하게 허락해주었다.

나는 안심하고, 놓칠 뻔한 부탁을 공주에게 했다.

“발레아에게 이프로스 군이 떠나면 먼저 수도로 달려와달라고 말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나는 저번 삶에서 발레아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약속을 지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 부탁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공주를 화나게 한 모양이었다

“그런 사적인 부탁은 들어줄 수 없어요. 그런 이야기를 전하려면 직접 하세요.”

공주는 차갑게 말하고, 나를 방에서 내쫓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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