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306화 (306/563)

제306화

제6편 결투, 마물 왕 (2)

열기를 가득 머금은 회오리바람을 가르며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회오리바람 사이에서 튀어나오는 바람 칼날은 베어내고, 기름 먹은 불타는 장작도 부숴버렸다.

열기에 몸이 타오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몸속도 뜨거웠다. 숨을 쉬고 있으니, 내장도 허파도 뜨거워진 것이었다.

‘신검’이 없었다면 겉도 속도 불타버린 시체가 되어버렸을지도 몰랐다.

이런 열기는 내가 준비한 장작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물론 도움이 되긴 했지만, 분명 마물 왕은 화염 능력의 다른 쓰임새를 찾아낸 게 분명했다.

바람 칼날에, 이 열기까지.

아무래도 나는 마물 왕을 더 강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혹시나 이 마물이 여기를 빠져나가게 되면 무슨 소리를 듣게 될지 걱정이 되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걱정을 할 때가 아니었다.

나는 얼어붙어서 쩍쩍 달라붙는 발을 움직여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능력들을 헤쳐나가 결국, 마물 왕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결국, 마물 왕에게 검이 닿을 곳에 도착했지만, 이제 다시 시작일 뿐이었다.

여기서 싸우기 시작할 때, 준비한 물건들 덕분에 내가 더 유리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준비한 물건들 덕에 마물 왕의 능력들이 봉인된 그때에도, 나는 마물 왕의 몸에 상처를 입히지 못했었다.

그것은 바로 마물 왕의 검 때문이었다.

겉보기에는 낡은 검일 뿐이었지만, 마물 왕의 능력을 모두 버텨 내고, 내 공격을 모두 막아 내는 검이 평범한 검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검 자체가 아니었다.

마물 왕의 육체 능력과 마나, 그리고 검술 실력이 내가 마물의 몸에 상처를 입히지 못하게 만들었다.

내가 들고 있는 검은 마물의 방어를 뚫어버린다는 신검이었다.

육체에 검을 댈 수만 있어도 작지 않은 상처를 줄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결국 상처를 입히지 못했고, 지금은 이렇게 살아남기도 벅찬 상황이 된 것이었다.

하지만, 나도 숨겨 놓은 것이 있었다.

치명타가 되지 못할 공격이고, 한번 사용하면 다시 쓰기 어려운 공격이라 숨겨 놓았지만, 지금이라면 쓸 만한 공격이었다.

마물 왕 앞에 선 나는 힘껏 뛰어오르며 검을 휘둘렀다.

키가 4m나 되는 마물을 상대하려면 이럴 수밖에 없었다.

뛰어오른 나를 보고 마물 왕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더 징그러워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몇 번이나 저 얼굴을 본 나는 저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마물 왕은 나를 비웃고 있었다.

그동안 한 번도 상처를 입히지 못했으니, 비웃을 만도 했다.

하지만, 이번은 조금 다를 것이다.

내가 휘두른 검을 마물 왕은 검을 휘둘러 막아 냈다.

기교를 부려 흘려내기에는 너무 강한 검과 마나였다.

그래도 이번에는 각도를 잘 맞춰서 뛴 덕에 바로 아래에 처박히지 않았다.

대신 나는 멀리 광장 벽까지 튕겨 나가게 되었다.

퍽!

얼음이 덮인 벽에 다시 처박히니 기분이 더러웠다.

하지만, 더러워진 기분은 광장 중앙에 멈춰 선 마물을 보고 조금 개운해졌다.

마물은 가슴을 잡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이번에도 마물은 두 머리 전부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물론, 그 일그러짐은 조금 전과 다른 형태였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지만, 나는 그 모습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저건 통증, 고통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마물은 이번에도 내 검을 잘 막아냈지만, 내 공격은 전과 달랐다.

어차피 검이 막히게 된다면, 마물을 상대하는 것처럼 싸우지 않아도 될 터였다.

인간과 싸우는 식으로 싸운다면 이 신검을 활용할 방법이 있었다.

이 기술은, 내게 ‘피센의 신검’의 변형된 기술을 보여준 세르히오 기사단장 덕분이었다.

사람에게는 ‘마물의 방어를 관통하는 능력’을 쓰지 못하게 되자, 그는 그 능력을 변형해서 겉을 공격하는 것으로 내부에 타격을 입히는 기술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능력은 내가 곁눈질로 배워두었다.

거기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검은 ‘피센의 신검’의 상위 검인 용사의 신검이었다.

이 신검은 ‘피센의 신검’보다 훨씬 강한 충격을 상대에게 줄 수 있었다.

인간보다 훨씬 튼튼한 마물 왕에게는 큰 상처를 주기는 어렵겠지만, 저렇게 충격과 고통을 줄 수 있었다.

나는 바로 발레아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는 벽에 화살 형태의 표식을 남기는 것.

왜 그런 신호를 선택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검을 휘둘러 벽에 깊게 표식을 남겼다.

그리고, 바로 내가 처박힌 벽 옆에 숨겨져 있던 작은 동굴로 뛰어들었다.

벽과 비슷한 위장 천막으로 가려진, 인간 한 명이 지나갈 만한 작은 통로였다.

4m짜리 마물이 지나가기는 쉽지 않아 보였지만, 나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작은 통로를 달려갔다.

그르르르릉.

땅을 박차는 그 순간, 동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발레아가 내 표식을 본 모양이었다.

벽이 흔들리고, 갈라졌다.

아마, 우리가 들어왔던 통로의 나머지 부분도 여기와 비슷할 것이었다.

발레아에게는 지하 광장만 놔두고, 그 주위의 모든 통로를 묻어버리라고 이야기해두었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나는 발레아를 믿었다.

흔들림은 갈수록 심해지고, 뒤에서 마물의 괴성도 들려왔다.

크아아아앙!

땅이 흔들리는 바람에 충격에서 벗어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를 쫓기는 너무 늦었다.

이미 통로는 내 뒤로 전부 메워지고 있었다.

내가 달려가는 속도만큼 빨리 통로가 메워지는 중이었다.

이제 마물의 괴성도 들려오지 않았다.

발레아가 만드는 지진 말고도 몇 번 다른 충격이 느껴지긴 했지만, 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일행이 기다리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도착한 순간, 내 뒤의 통로도 모두 메워져 버렸다.

무사히 도착한 내 모습에 모두 반가워했지만, 밀톤은 곧 의아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엄청난 소리가 들리던데 의외로 괜찮네요.”

밀톤이 그렇게 말할 만했다.

열기와 냉기 덕에 입고 있던 옷은 엉망이 되어버렸지만, 겉보기에 내 몸은 멀쩡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단장도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발레아는 두 사람과 달랐다.

영역을 사용해서 내 싸움을 지켜본 그녀였다.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했겠지만, 내가 얼마나 다치며 싸웠는지는 충분히 보았을 게 분명했다.

내 싸움을 본 그녀였지만, 그녀는 화를 내지도, 울지도 않았다.

단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나와 했던 약속을 다시 꺼냈을 뿐이었다.

“난 분명 약속을 지켰어요. 알렉스 공자도 내게 약속한 것이 있어요. 그 약속을 지키기 전에는 절대 죽으면 안 돼요.”

평범한 말이었지만, 꽤나 아픈 말이었다.

더구나, 그녀의 말을 지킬 수 없으니, 그 말이 더 아팠다.

그래서 나는 다른 식으로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무슨 약속을 말씀하실지 모르겠지만, 그 말은 꼭 듣겠습니다.”

몇 번의 죽음 뒤에 듣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꺼내게 될 약속은 꼭 들어줄 생각이었다.

만족한 대답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내 대답에 발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발레아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단장이 헛기침을 했다.

“흠. 흠. 이제 이야기는 끝난 건가?”

밀톤도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둘의 이상한 행동이 의아하게 느껴졌지만, 곧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옆에서 볼 때는 발레아와 나 사이의 분위기가 묘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발레아의 성격 때문이었다.

나에게만은 직접적으로 말을 하는 그녀의 본성 때문에 나도 그녀에게는 말을 돌리기가 어려웠다.

결국, 둘 다 진지한 말을 해대니 사람들이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발레아의 명예에 누가 될 것 같아 한마디 할까 했지만, 발레아가 그들의 오해에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발레아다운 모습이었기에 나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것보다, 성공한 건가요?”

밀톤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저도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발레아를 보자, 그녀는 눈썹을 찡그렸다.

“통로가 모두 메워진 뒤에 마물은 움직임을 멈췄어요. 지금도 지하 광장 중앙에 가만히 앉아 있네요. 날뛰던 능력들도 모두 사라졌고요.”

“그럼, 포기한 걸까?”

단장의 물음에 나도 발레아도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유적에 수십 년간 갇혀 있었던 것을 봐서는 이렇게 봉인된 채로 있을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했고,

유적을 나온 뒤에 그렇게 날뛴 것을 보면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결국, 아직 확인하기에는 너무 일렀다.

“밖에 나가서 노인네와 함께 확인해보는 게 좋겠군.”

단장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마물은 세우타 공작이 전문이었다. 그에게 확인을 받는 게 제일 좋았다.

그의 말을 끝으로 우리는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여기서 계속 발레아가 마물을 감시하고 있는 것은 의미가 없는 짓이었기 때문이었다.

봉인에 성공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우리는 다음 준비를 해야 했다.

밀톤의 안내로 통로를 걸어가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되었건, 지금은 살아남았다.

그렇게 통로를 통해 버려진 광산 밖으로 나가자, 그곳에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몸을 피했던 왕실 기사들과 후작의 동생이자, 기사단장도 와 있었고.

세우타 공작도 늙은 몸을 이끌고 광산 입구에 와 있었다.

우리가 나가자, 기사들은 크게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

“대단해요!”

“정말 봉인에 성공한 겁니까?”

“어떻게 잡은 겁니까?”

기사들은 우리에게 칭찬과 질문을 쏟아냈다.

“그 많은 기사와 병사들을 죽인 마물 왕을 네 사람이 처리하다니. 그게 가능한 일일 줄 몰랐습니다!”

그건 세르히오 기사단장도 마찬가지였다.

그전에 1 왕자가 죽은 이야기는 아무도 하지 않았다.

내 예상대로 마물 왕을 봉인하는 도중에 1 왕자가 죽었다고 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을 듯했다.

세우타 공작도 밝은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정말 대단하이, 나도 그게 가능할 줄은 몰랐는데.”

공작의 말에 발레아와 나는 고개를 저었다.

공작은 의아한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았고, 발레아와 나는 지하 광장에서 있었던 일을 공작에게 설명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세우타 공작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봉인된 것은 아니야. 움직임을 멈춘 것은 마나를 모으기 위해서 일터. 마나가 채워지면 움직이기 시작할 거다.”

노인의 말에 환호성이 뚝 그쳤다. 모두 놀란 얼굴로 공작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깊은 광산 아래에서 나올 수는 없을 겁니다.”

기사 하나가 반대 의견을 내고,

“맞다, 통로들이 막혀서 공기도 금방 떨어질 겁니다.”

전에 광부였던 밀톤 용병도 의견을 추가했다.

하지만,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마물 왕은 그렇게 약하지 않아. 더구나 공기가 없으면 살기 위해 무리를 하겠지.”

노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르르.

이건 발레아가 만든 지진과 달랐다.

발레아가 급하게 바닥에 손을 짚었다.

잠시 뒤, 그녀의 표정이 변했고, 나도 그녀가 무엇을 보았는지 알게 되었다.

내 눈에, 내 감각에 거대한 마나가 아래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열기를 가득 담은 거대한 마나.

마물 왕의 마나였다.

지금, 마물 왕이 화염 능력을 사용해서, 위로 솟구치고 있었다.

마물 왕의 목표는 바로 나.

마물 왕의 마나는 나를 향해 똑바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주변을 향해 힘껏 소리쳤다.

“모두 피해!”

그 순간,

거대한 화염이 바닥을 뚫고 위로 솟구쳤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