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304화 (304/563)

제304화

제4편 광산을 내려가다 (3)

“후욱, 후욱.”

잠시 뒤, 입김을 내뱉으며 단장과 발레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발레아는 영역을 통해 내가 싸우는 상황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지만, 단장은 마물 왕과 나, 그리고 통로를 보고 눈이 커졌다.

버려진 광산이라 빛이 거의 없었지만, 다들 각성한 귀족들이라 시야는 지장이 없었다.

얼음이 덮인 통로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낡은 광산 흔적은 얼음에 덮여 보이지 않았고, 어느새 만들어진 고드름들이 그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었다.

거기다, 곳곳에 박혀 있는 검 위로 일렁이는 푸른 전류는 이 얼음동굴을 신비롭게 보이도록 만들고 있었다.

미칠듯한 추위가 아니라면 신비하고 아름다운 얼음동굴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아름다운 동굴을 심히 망가뜨리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나였다.

발레아와 단장이 모습을 드러낸 뒤에도 나는 열심히 벽에 처박혀 얼음동굴을 부수고 있었다.

예상한 대로 마물 왕은 단장과 발레아에게는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물론, 내가 죽은 뒤에는 그들을 죽이러 움직이겠지만, 아직 내가 살아있는 이상, 마물 왕의 우선순위는 나였다.

나는 통로 한쪽으로 싸움터를 옮겨, 발레아와 단장이 통과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물론, 그 와중에 몇 번이나 더 벽에 처박히게 되었지만, 발레아와 단장은 그사이에 내 뒤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내 뒤로 이동한 발레아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몸을 돌리고, 자신이 온 방향으로 손을 올렸다.

그녀가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영역을 펼쳐서 우리가 온 길을 막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서 마물 왕을 막아선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여기서부터 마물 왕을 가둬둘 지하 광장까지는 갈림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발레아가 계속 통로를 막아왔을 테니, 여기만 더 막으면, 우리가 온 방향으로 마물 왕이 빠져나가기는 불가능했다.

거기다, 우리가 빠져나가는 통로만 막아버리면 마물 왕을 이 광산 아래에 묻어둘 수 있었다.

평범한 흙으로 덮인 지하라면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광산은 암석으로 가득 찬 철광산이었다.

땅에 특화된 마물이 아니라면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 감각에 발레아의 마나가 퍼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영역이 다시 펼쳐지고, 발레아가 손을 움켜쥐자, 마나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르릉.

땅이 흔들리고, 멀리 통로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마나가 일그러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까? 아니면 땅이 흔들렸기 때문일까.

계속 나를 따라오던 마물의 두 머리 중 하나가 고개를 돌렸다.

그 머리는 정확히 발레아를 바라보았다.

나는 다시 마물 왕에게 몸을 날리며 단장을 향해 소리쳤다.

“발레아에게 공격이 갈 겁니다! 막아주세요!”

“걱정 마!”

마물은 달려드는 내게 검을 치켜들고, 다른 손을 발레아를 향해 펼쳤다.

세우타 공작의 말대로 두 머리 마물은 두 머리가 각자 한 손을 담당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검으로 나를 막아 내며 발레아에게 손을 펼치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마치 두 마리가 따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래도, 엔리케 단장은 마물 왕이 능력을 사용하기 전에 발레아 앞으로 막아설 수 있었다.

막지 못하면 안 되었다.

단장을 계획에 포함시킨 것도, 이곳에 같이 오게 한 것도, 모두 발레아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발레아는 내 계획에 있어, 가장 중요한 멤버였다.

나도 마물 왕과 싸워야 했기 때문에, 발레아를 따로 보호할 사람이 필요했고, 발레아의 호위를 단장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마물 왕에 대한 호승심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고맙게도 단장은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검을 쥐지 않은 마물의 반대편 손에서 회오리가 일기 시작했다.

‘바람 능력을 쓴다고?’

마나를 쓴다 해도, 공기가 움직이기 어려운 지하 동굴에서 바람을 만들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머리 좋은 마물이 공기를 회전시키는 회오리바람이라는 편법을 만들어 낸 모양이었지만…….

그걸로 할 수 있는 게 있나?

그런 의문은 바로 사라지고 말았다.

손 앞에서 만들어진 회오리가 점점 빨라졌다.

그리고, 그 회오리가 점점 압축되었다.

마치, 하나의 원반처럼 변한 회오리바람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바람 칼날이었다.

쐐에에에엑!

“이게 뭐야!”

놀란 단장이 날아오는 칼날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카아앙!

불꽃이 튀며 단장이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런 능력은 듣지 못했는데?”

단장만 못 들은 게 아니었다.

나도 이 바람 칼날은 세우타 공작에게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유적에 갇혔을 때 만들었거나, 지금 만들었다는 말이었다.

어느 쪽이 되었건 간에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바람 칼날을 만들 수 있으면 다른 것도 만들 수 있을 터.

뭔가 만들어내기 전에 일을 끝내야 했다.

캉! 카앙! 카앙!

내가 열심히 검을 휘둘러 마물이 공격하는 것을 막고, 단장이 날아오는 칼날을 미친 듯이 막아내는 사이,

발레아는 통로를 메우는 데 성공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는지, 발레아가 싸우는 우리보다 훨씬 힘들어 보였다.

“이제 지하 광장으로 먼저 가 있어요. 시간을 끌고 따라가겠습니다!”

내 말에 단장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발레아를 안아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마물 왕의 능력을 막아 내는 동안, 호승심이 모두 사라진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달려가는 단장의 손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마물이 쏘아낸 바람 칼날을 막아 내다가 손바닥이 다 벗겨진 것이었다.

마물 왕의 공격을 막아 낸 것만으로도 감탄할 만한 일이었지만, 단장은 자신감이 확 줄어든 모양이었다.

단장과 발레아가 떠났으니, 이제 내가 빠져나갈 차례였다.

하지만, 나는 쉽게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단장이 발레아를 안고 도망쳐버리니, 마물 왕의 공격은 내게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검은 물론이고, 반대편 손에서 튀어나오는 바람 칼날은 내가 도망치기는커녕, 막아 내는 것도 벅찰 정도였다.

더구나, 저 바람 칼날 덕에 벽에 처박히는 식으로 몸을 피하기도 어려워졌다.

벽에 처박히면 저 칼날이 날아올 게 뻔했고, 그럼 반으로 잘려 나갈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난감해하고 있을 때, 갑자기 마물 왕이 우뚝 멈춰, 두 머리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크르르르릉.”

“크릉.”

왼쪽 머리가 마구 고개를 흔들자, 다른 머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고, 이어서 오른손이 왼쪽 머리를 마구 두들겼다.

마물의 황당한 모습에 다시 공격하려는 순간, 내 발 앞에 얼음이 녹으며 문자가 만들어졌다.

[서둘러서 피하세요. 머리가 둘이라 환상이 오래가지 않을 거예요.]

누가 쓴 글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발레아가 쓴 글자였다.

그렇다면, 마물이 정신없어하는 것도 발레아가 마물에게 환상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많이 힘들어하던데, 괜찮으려나…….’

그런 생각이 먼저 떠올랐지만, 나는 먼저 몸을 움직였다.

발레아가 만들어준 기회를 날릴 수는 없었다.

거기다, 발레아의 말처럼 머리 하나는 멀쩡해 보였고, 다른 머리도 금방 정신을 차릴 것 같았다.

나는 정신을 차려가는 마물을 뒤에 두고, 계속 달려 나갔다.

크아아아앙!

잠시 뒤, 분노한 마물의 괴성이 뒤쪽에서 들려왔지만, 이미 거리는 꽤 벌어져 있었다.

잠시 뒤, 나는 단장과 발레아를 따라잡았다.

발레아는 단장에게 안긴 채로 반쯤 기절해 있었다.

마물 왕에게 능력을 썼기 때문이었다.

내가 걱정스럽게 바라보자, 발레아는 손을 흔들었다.

“괜, 괜찮아요. 단장님이 도와주셔서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그녀의 말대로 발레아는 표정이 좋아지고 있었다.

마나 고갈이 된 게 아닐까 했는데, 신기한 일이었다.

그런데, 발레아를 안고 있는 단장은 발레아가 회복되는 만큼, 힘들어하고 있었다.

거기다, 내 눈에는 단장에게서 발레아로 흘러 들어가는 마나가 보였다.

발레아는 단장의 마나로 고갈된 마나를 채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발레아의 새로운 능력인가?’

영역이 계속 성장하더니, 이제는 영역 안의 마나도 움직이게 된 모양이었다.

다행히 마나의 흐름은 단장도 충분히 막을 수 있어 보였다.

그런데 막지 않은 것을 보니, 단장도 허락한 듯했다.

‘남의 마나를 뺏어 먹는다라……. 마나 드레인인가.’

발레아는 뭔가, 겁이 나는 형태로 능력이 성장하는 것 같았다.

솔직히 조금 겁이 나기도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다행일 따름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과 합류한 뒤에 우리는 금방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사이, 발레아는 마나를 회복해서 바닥에 내려왔고, 단장은 지친 얼굴로 땀을 닦았다.

지하 광장을 처음 보는 단장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하 광장은 처음 우리가 답사했을 때와 달라져 있었다.

사방에 흩어져 있던 광산 도구들은 치워져 있었고, 대신 벽과 바닥에 일정 간격으로 꼬챙이가 박혀 있었다.

마물의 번개 공격을 대비한 피뢰침들이었다.

실제로 쓸모가 있는지 조금 전에 확인도 끝낸 상황.

저 피뢰침들은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거기다, 이 광장에는 사방에 불이 밝혀 있었다.

그냥 불이 아니라, 곳곳에 장작을 쌓아서 만든 불이었다.

기름도 잔뜩 먹여서 웬만한 한파에도 꺼지지 않게 했다.

이건, 냉기 공격을 막기 위한 준비였다.

물론, 화염 공격에는 취약하다 못해 공격을 더 키워줄 수도 있겠지만, 화염 공격은 쓸 수 없었다.

이 지하 광장이 그런 강한 공격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바람 능력은 지하에서 쓰지 못할 것 같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준비한 것이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밀톤 용병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밀톤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불을 피워서인지, 아니면 마물 왕과의 싸움에 참여한 것에 흥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잘 준비를 마쳐놓은 것을 보니, 얼굴이 달아오른 이유는 뭐가 되었건 상관이 없었다.

만족한 나는 모두에게 말했다.

“그럼, 계획대로 움직이죠.”

하지만, 다들 내 계획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다들 우물쭈물했고, 대표로 발레아가 입을 열었다.

“그러지 말고 같이 움직이는 게 어떻겠어요. 제가 늦지 않게 무너뜨릴 수 있을 거예요.”

발레아의 말에 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계획은 내가 이곳에서 마물 왕을 붙잡아 두는 사이, 최대한 멀리 이동한 발레아가 내 신호에 맞춰서 탈출로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통로가 무너지는 동안 내가 빠져나가는 것으로 마물 왕을 가둔다는 계획이었으니, 다들 내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물 왕이 나를 따라온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고, 세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숨겨진 탈출로를 통해 지하 광장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나는 광장 안에서 마물 왕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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