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1화
제1편 마물 왕 도착
거대한 마나가 다가오는 하늘.
그리고, 아래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조금 전처럼 작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무척이나 밝고 신나는 목소리였다.
“큭큭큭, 날 쫓아오더니 나를 흉내 내게 된 건가? 이렇게 빨리 따라오다니……. 다른 때 같았으면 화가 나서 방방 뛰었겠다니까.”
1 왕자도 나처럼 다가오는 마나를 보며 나를 비웃었다.
“너는 모르겠지만, 저기 마물 왕의 마나가 다가오고 있다니까. 금방 도착할 거야.”
그는 말을 하면서, 눈으로 성벽 너머 하늘을 가리켰다.
하지만, 그가 가리키기 전에 나는 이미 그 마나를 보고 있었다.
“아니, 설마 너도 보이는 거냐?”
내 모습을 보고 왕자는 구시렁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분명 이상했어. 마나의 증폭도 그렇고, 분명 왕가의 능력과 비슷한 마나였단 말이야. 아니, 그런데 빛이 안 났단 말이야. 설마 다른 건가?”
나는 왕자를 그냥 놔두었다. 지금 왕자에게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나는 바로 성벽을 향해 달려가 몸을 위로 띄워 올렸다.
휘익,
벽을 밟고 쭉쭉 올라간 나는 금방 성벽 위에 내려설 수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 난간 앞에 서서 멀리 마나가 다가오는 방향을 확인했다.
광산 도시 반대편의 서쪽 평야.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광산 도시의 대장간 연기와는 색부터 다른 연기였다.
불타는 집과 마을에서 나는 검은 연기.
그리고, 그 연기 아래 지평선 위로 마물 하나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공기가 맑고 마나로 시야를 강화한 덕에 겨우 보이게 된 마물이었다.
사람보다는 월등하게 컸지만, 마물치고는 특출나게 거대하지는 않은 마물.
거인이라고 불리는 단장과 크게 차이 나지 않을 것 같은 마물이었다.
그런 마물이 두 머리를 흔들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거리가 십 킬로 이상 떨어져 있는 것 같았지만, 그 거리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저게 마물 왕인가요?”
발레아도 올라와서 다가오는 마물을 구경했다.
내가 갑자기 성벽을 오르는 것을 보고 따라온 모양이었다.
발레아는 이번에도 쉽게 내 옆으로 왔다.
내가 오른 성벽은 육체 능력자가 아닌 귀족들은 오르기 쉽지 않은 성벽이었다.
하지만, 영역 안의 사물을 움직일 수 있는 발레아에게는 움직일 수 있는 또 하나의 사물에 불과했던 모양이었다.
“전에 봤던 마물 왕처럼 크지는 않네요?”
“마물 왕을 봤다고?”
뒤이어 올라온 기사단장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발레아까지 올라오니 단장도 궁금해져서 따라 올라온 모양이었다.
“네, 봉인지에서 봤었어요. 알렉스 공자가 그 마물 왕을…….”
발레아가 단장의 물음에 대답하려 하자, 나는 그녀에게만 보이게 손가락을 흔들었다.
그때는 여러 운 덕에 겨우 마물 왕을 물러나게 한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때 이야기를 하게 되면, 괜히 일만 복잡해질 뿐이었다.
“……마물 왕을 만났다가 겨우 도망쳐 왔었어요.”
발레아는 내 손짓을 눈치채고 바로 말을 바꾸었다.
“다른 마물 왕을 봤다는 건가…….”
단장의 목소리에서는 발레아가 봤다는 마물 왕에 대한 궁금증이 가득 느껴졌다.
“그건 나중에 묻기로 하고…….”
다만, 그는 당장 중요한 게 그 마물 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단장은 마나를 눈에 가득 밀어 넣고, 나와 발레아가 보고 있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도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마물을 보게 되었다.
“설마……. 저 마물이 1 왕자를 쫓는다는 그 마물 왕은 아니겠지?”
확실히 벌써 가까이 왔다는 것을 믿기는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이미 눈앞에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말로는 부정했지만, 단장도 그 마물 왕이라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1 왕자를 쫓는 다른 마물이 있을 리가 없었다. 거기다 생긴 것도 똑같았고.
단장은 바로 정신을 차렸다.
“저런 살기면, 다른 놈일 리가 없겠군.”
단장은 나와 왕자처럼 마나를 보지는 못했지만, 그 정도 경지가 되면, 마나를 기세나 살기 비슷한 방식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당연히 단장도 다가오는 마물의 강함을 알 수 있었다.
거기다, 다가올수록 마물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서둘러야겠습니다. 지금 속도라면 뭔가 다른 것을 할 시간이 없을 거 같습니다. 지금 작전을 진행해야 합니다.”
내 말에 단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와 기사단이 후작령에 도착했을 때, 마물 왕을 상대할 작전에 관해 설명해 놓긴 했지만, 단장은 그때도, 지금도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도 ‘만약’을 대비한 작전이라고 말을 했던 것이었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그 ‘만약’이 바로 지금이었다.
“분명, 나중에 말이 많이 나올 텐데……. 차라리 병력을 모아 상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단장은 슬쩍 물러서려고 했지만, 난 단호히 말했다.
“아직 병력이 다 모이지도 않았습니다. 이대로라면 수도가 위험합니다. 그리고, 1 왕자는 공주님의 적입니다. 일이 잘못되어도, 마물 왕을 봉인하다가 희생당했다고 하면 될 겁니다.”
1 왕자를 마물 왕의 유인물로 쓰는 것은 왕가의 명예를 생각하면 불가능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 1 왕자는 적이었다.
나중에 내전이 끝나게 되어서 복권이라도 되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 전에 죽으면 승자의 기록으로 남을 뿐이었다.
“그런가, 이 ‘작전’이란 게 공주님을 위해 필요한 일이었던 거였나……. 자네도 무서운 사람이군.”
내 말에 단장이 조금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공주님이 왕위에 오르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사고를 가장해서 죽일 생각이라고 들은 것은 아니겠지?
물론, 그런 오해를 해주었다면 감사할 따름이었다.
공주 핑계를 대서인지, 단장도 내 말을 따라주었다.
우리는 성벽을 내려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장은 바로 나머지 기사들도 철수시켰다.
어차피 평범한 기사들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왕실 기사들을 평범한 기사라고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마물 왕을 상대로 할 때는 그렇게 불려도 할 말이 없었다.
단장이 기사들을 철수시키는 사이, 나는 1 왕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바닥에 누운 채로 다가오는 나를 보며 비웃었다.
“클클클, 이제 어떻게 할 거지? 나를 죽이지 않은 것을 보니, 나를 이용해서 마물을 수도에서 먼 곳으로 유인할 생각이었던 모양인 것 같던데 말이야.”
확실히, 그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향할 생각이었다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답이 없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가 가려던 곳은 먼 곳이 아니었다.
더구나, 마물 왕이 일찍 와주어서 다행일지도 몰랐다.
우리 쪽 병력이 도착한 뒤에 왔더라면, 반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내 작전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나를 비웃는 왕자를 무시하고, 그를 둘러업으려 했다.
하지만, 그에게 손을 대기 전,
“놈이 이미 왔는데도 나를 이용해서 유인할 생각이라고? 큭큭큭. 그럼 내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왕자는 그런 말을 하며 인상을 가득 썼다.
동시에 그의 몸이 환하게 빛을 뿌렸다.
화아아아악!
조금 전과 같은 빛이었다.
동시에 폭주하는 마나.
나는 급하게 뒤로 물러섰다.
빛과 함께 왕자의 마나가 마구 증폭되고 있었다.
왕자는 다시 내가 가지고 있는 목걸이와 비슷한 물건으로 마나를 증폭시킨 것이었다.
왕자가 이럴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 물건은 이렇게 연달아 쓰는 물건이 아니었다.
더구나, 왕자가 가진 것은 내 목걸이보다 훨씬 불안해 보였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왕자의 몸을 뒤져 증폭시켜주는 물건을 찾아놓았을 걸 그랬다.
어쨌거나, 왕자는 다시 자신의 마나를 증폭시켰다.
“크아아아아아악!”
비명과 같은 고함과 함께 마나가 폭주에 가깝게 치솟아 올랐다.
그 마나는 평상시에 보아왔던 마나와 달랐다.
너무 거칠어 제어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마나였다.
조금 전에 보여주었던 증폭된 마나와도 다른 마나.
왕자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마나를 폭주시킨 것이었다.
이건 아무리 봐도 폭주가 끝난 뒤에 온전하게 돌아오기는 글러 보였다.
왕자도 그걸 알고 있었다.
“내가 직접 처리하지는 못하겠지만, 마물이 대신 처리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왕자는 그를 감고 있던 쇠사슬도 끊어버리고, 빛 속에 서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왕자의 말은 왕위에 욕심을 부리는 사람의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뭔가 그 만의 이유가 있을 것 같은 말이었다.
다만, 나는 그런 이유에 관심이 없었다.
왕자가 마나를 폭주시켰기 때문일까?
마물 왕이 벌써 성벽 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이족 보행 형태의 4m 크기의 괴물.
두 다리로 서 있었지만, 두 머리를 제외하고도 사람과 그 형태와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차라리, 파충류를 닮았다고 할까. 아니면 전생에 그림책에서 보았던 공룡 인간이 떠오를 정도였다.
인간과 닮지 않은 두 얼굴이 성벽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성벽 아래 거리에 남아 있는 사람은 총 넷.
발레아와 단장, 나와 왕자였다.
“제길……. 무슨 압력이…….”
마물을 보고 단장이 중얼거렸지만, 마물은 단장과 발레아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단지, 마물은 1 왕자 쪽만 바라보았다.
아니, 1 왕자가 맞나?
두 머리의 방향이 미묘하게 달랐다.
아무리 봐도 머리 하나는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마나가 가득 차서 세상이 멈춰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도, 나는 살짝 옆으로 움직여 보았다.
내 생각이 맞았다.
내 쪽을 보던 머리가 나를 따라 움직였다.
분명, 저 마물은 왕자와 함께 나를 보고 있었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나는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저 마물은 지금 저렇게 빛을 뿌리고 있는 1 왕자와 나를 동등하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왕이라도 되라는 소리냐.’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지만, 왕자는 달랐다.
“자, 여기 네 적이 있다. 이제 나를 죽이고, 이 왕국을 무너뜨려라!”
환하게 타오르는 빛 안에서 그는 양팔을 벌리고 마물에게 소리쳤다.
미친 것 같다는 말은 듣기는 했지만, 들은 것보다 1 왕자는 더 이상했다.
아무래도 폭주한 마나가 머리를 맛 가게 한 모양이었다.
마물 왕도 의아했는지 머리 하나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손을 들어 올렸다.
일렁이는 공기, 붉게 변하는 마물의 손.
그 손은 1 왕자를 정확하게 겨누고 있었다.
다음은 어떻게 될지 모를 리가 없었다.
거기다, 마물 왕이라면 나도 충분히 휩쓸릴 거리였다.
“제길……!”
나는 한껏 투덜거리며 몸을 날렸다.
반대로 몸을 피하는 것이 아닌, 1 왕자를 향해.
콰아아아아앙!
왕자를 잡고, 몸을 날리는 도중에 열기와 함께 큰 충격파가 몸을 덮쳤다.
대검으로 보이지 않는 방패를 펼쳤지만, 충격파는 방패를 깨고, 그 안에 펼쳐진 반지의 방어막까지 부숴버렸다.
왕자와 나는 열기 섞인 충격파에 휘말려 한쪽으로 튕겨 나갔다.
쾅! 콰광!
거리 옆에 있는 상점의 벽을 부수고, 그 뒤의 대장간까지 부순 뒤에 나와 왕자는 멈추어 설 수가 있었다.
역시, 마물 왕.
대충 쏜 능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내가 머리를 흔들며 고개를 들자, 내 손에 붙들려있던 왕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충격파에 날아갔는지, 빛나던 그의 몸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다.
아니, 점점 붉게 물드는 것을 보니,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망가져 가는 것 같았다.
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왜 날 살린 거지?”
나는 그의 말에 피식 웃으며 손을 풀었다.
풀썩. 바닥에 나뒹구는 왕자.
나는 붉게 달아오른 검을 흔들어보았다.
“살리다니요. 그럴 생각은 없는데요?”
내 말에 왕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