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0화
제25편 1 왕자를 잡다
마나가 증폭되자, 머리카락과 옷이 나부끼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왕자가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그는 ‘마나 감응력’을 가지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내 마나가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과 비슷한 방법으로, 비슷한 마나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당연히 놀랄 수밖에.
“넌, 넌 뭐냐. 어떻게…….”
하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떠들어대도록 놔둘 생각은 없었다.
쾅!
다시 한번 몸을 날려 왕자에게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도 한 사람이 쭉 밀려났다.
하지만, 이번에 밀려난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큭! 도대체가.”
뒤로 밀려나며 왕자는 신음을 흘렸다.
그 와중에도 왕자는 뭐라 중얼거렸다.
선동가라 생각했는데, 싸우는 도중에 말이 많아지는 타입인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젓고는 다시 밀려난 왕자를 향해 몸을 날렸다.
왕자가 이렇게 밀리고 있는데도 왕자를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전부 다른 기사들과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수가 부족했는데, 내가 더 수를 줄여버렸으니,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지금도 왕자 쪽 기사들은 계속 쓰러지고 있었다.
“이럴 리가 없어! 내가 질 리가 없다는 말이다! 내 복수는 신이 정해준 거다! 틀릴 리가 없어!”
왕자도 이제 엉뚱한 고함을 지르며 마구 검을 휘둘렀다.
아무래도 왕자가 가진 마나 증폭 장치는 내 목걸이와는 다른 것 같았다.
내 목걸이와 달리 상당히 불안했다.
마나 증폭도 들쭉날쭉했고, 헛소리를 하는 것을 보니 정신적으로도 불안정해 보였다.
캉! 카앙! 캉!
그 와중에도 왕자는 내 검을 생각보다 잘 막아냈다.
역시, 1 왕자가 가지고 있는 ‘마나 감응력’ 덕분이었다.
나도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적이 쓰니, 무척이나 성가셨다.
하지만, 마나양이 다시 뒤집히니, 왕자가 내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내 검을 막아냈지만, 그건 잠시뿐이었다.
검이 끌려오고, 박자를 빼앗기고, 결국, 검은 허공을 휘젓고 말았다.
나는 허공에 헤매는 검에 대검을 휘둘렀다.
카아아앙!
“크윽!”
옆에서 가해지는 강한 충격에 1 왕자는 결국 검을 놓치고 말았다.
나는 놀란 눈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는 1 왕자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그리고,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퍽!
갑옷을 우그러뜨리며 1 왕자의 배 깊숙이 주먹이 꽂혔다.
“컥!”
1 왕자는 입을 크게 벌리며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직 놀라기가 이를 텐데.
나는 그런 1 왕자를 보며 이번에는 검을 휘둘렀다.
퍼어억!
이번에는 칼등이 1 왕자의 머리를 두드렸다.
투구가 반쯤 우그러지며 1 왕자가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악!”
그래도 비명을 지르는 것을 보니, 아직 부족했다.
나는 다시 주먹을 휘두르고, 검을 휘둘렀다.
퍽! 퍽! 퍽! 퍽!
1 왕자가 바닥을 구르며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갑옷이 부서지고, 안쪽에 피멍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1 왕자의 비명이 점점 줄어들었다.
“제, 제발……. 멈춰…….”
결국, 그 말을 끝으로 비명이 멈추었다.
죽은 것은 아니었다.
마나를 보니, 기절한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정도로 멈추기로 했다.
주변의 시선이 만만찮았기 때문이었다.
기사들의 싸움은 이미 멈춰 있었다.
계속되는 왕자의 비명 때문에 하나둘 싸움을 멈추게 되었고, 왕자 쪽 기사들은 차례로 우리 쪽 기사들에게 제압을 당하게 된 것이다.
항복하거나 제압당한 기사들도, 동료를 제압한 기사들도 모두 황당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왕국의 왕자. 아니 왕세자를 이렇게 패버린 것이 어이가 없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아쉬웠다.
1 왕자에게서 목숨을 잃었는데, 이 정도 두드려 팬 것으로는 만족이 안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1 왕자를 죽일 수 없었다. 그는 아직 쓸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으윽.”
모두가 나를 보는 사이, 늦게나마 부단장도 쓰러졌다.
단장이 그를 쓰러뜨린 것이다.
그는 다른 기사들과 달리 단장에게 끝까지 달려들었다.
부단장은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달려든 것이 아니었다.
아들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죽을 각오로 단장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죽지도 못할 만큼 단장과의 실력 차이가 났었던 것이다.
부단장을 쓰러뜨린 뒤, 단장도 나를 황당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합류했다.
너무 강렬한 시선 덕에 나는 변명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항복을 안 하셔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흠. 흠.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지.”
단장은 헛기침하며 내 말을 받아주었다.
본인도 잘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지만, 죽이지 않고 잘 제압한 당사자에게 뭐라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단장은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기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제 싸움은 끝났다! 모두 예의를 갖추어 동료들을 압송하도록.”
단장의 말이 떨어지자, 제압당한 쪽도 제압한 쪽도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역시나 과거의 동료였던 것일까.
그런 것치고는 조금 전에는 둘 다 제대로 싸웠었다.
실력이 좋았던 기사들은 마지막까지 버티고, 큰 부상 없이 제압당했지만, 다른 이들은 죽거나, 크게 다친 상황이었다.
거기다, 길을 피해, 대장간이나 상점을 넘어가려고 했던 기사들은 예외 없이 건물에서 솟아 나온 무기들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발레아가 그들을 죽인 것이다.
기사들은 살아남은 동료, 아군과 적 모두에게 포션을 먹였다.
이제 싸움이 끝났으니, 최대한 많이 살릴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사방에 뿌려진 피는 조금 전의 험악한 싸움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품에서 쇠사슬을 꺼내 왕자를 칭칭 묶어버렸다.
마나를 쓰는 귀족이니, 평범한 밧줄이나 수갑을 쓸 수는 없었다.
분명 왕세자에게 할 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알게 뭔가.
전장에서는 전장의 법이 있는 것이다.
살아남은 다른 기사들도 전부 제압한 뒤에 기사 하나가 단장에게 물었다.
“이제, 신호를 보낼까요?”
당연하겠지만, 이 광산 도시에 우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피센 후작의 기사들이 도시 안쪽에 잠복해 있었다.
발레아가 잘 막지 못하거나, 우리 쪽 기사들이 밀리면 참전시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건 최후의 수단이었다.
늦게 합류한 피센 후작가를 믿기도 쉽지 않았고, 왕실 기사단끼리의 싸움에 다른 기사단을 참여시키는 것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우리가 이기고, 발레아도 잘 막아주어서 후작의 기사들이 끼어들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 싸움이 끝났으니, 후작가의 기사들을 불러들일 수 있었다.
단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기사 한 명이 하늘을 향해 화살 하나를 쏘아 올렸다.
발연통이 달린 화살이라 하늘로 가는 연기 하나가 솟구쳤다.
연기가 솟구치는 것을 보고 있자, 단장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칭칭 묶여있는 왕자를 보고 눈을 찡그렸다.
하지만, 단장은 내가 왕자를 감아 놓은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다른 것을 물었다.
“네 생각대로 되긴 했는데……. 네 생각대로 잘 될까?”
마물이 1 왕자를 쫓고 있으니, 1 왕자로 마물을 유인할 생각이었다.
“잘되면 마물을 봉인할 수 있을 테고, 잘못된다고 해도 다른 곳으로 보낼 수 있겠죠.”
아예 실패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둘 다 말하지 않았다.
단장으로서는 실패에 대해 말하는 것이 꺼려져서일 테고, 나는 한 번 더 도전해볼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둘이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후작 기사들이 달려왔다.
길을 막고 있던 창들은 이미 바닥 아래로 사라졌었고, 발레아는 언제부터인가 내 옆에 와 있었다.
이제는 나도 감각을 깨워놓지 않으면 영역 안에서의 발레아의 이동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어? 언제 여기에?”
덕분에 단장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마나 감응력’이 없었던 그는 발레아가 나타난 것을 아예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기사들을 이끌고 온 세르히오 기사단장이 거리를 둘러보았다.
피투성이가 된 거리에 왕자 쪽 기사들이 제압을 당한 채로 쓰러져 있었다.
물론, 그 가운데 쇠사슬로 칭칭 묶여있는 왕자도 보게 되었지만, 그는 애써 그 광경을 무시했다.
후작의 동생은 우리가 이긴 것을 보고 감탄을 토해냈다.
“정말 이겼군요. 이렇게 싸움이 끝날 줄이야.”
그의 칭찬에 단장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끝난 것은 아닙니다.”
단장 말대로였다. 아직 1 왕자의 군대와 마물 왕이 남아있었다.
여기서 마물 왕을 멈추지 못한다면, 수도는 물론, 왕국이 멸망할지도 몰랐다.
“우선 기사들을 옮겨 주십시오. 크게 다치고, 구속구로 제압해 놓기는 했지만, 주의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왕세자님은 어떻게 수도로 데려가실 겁니까? 그럼 저희가 모시면…….”
세르히오 기사단장이 1 왕자 쪽을 살피며 물었다.
1 왕자는 쇠사슬에 칭칭 감긴 채로 바닥을 처박혀 있었다.
그리고, 발레아는 조금 떨어져서 그 왕자를 곁눈질로 구경하고 있었고.
그녀가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작은 돌들이 1 왕자 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게 발레아는 장난을 치는 중이었다.
단장을 대신해서 내가 대답했다.
“왕세자님은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피센 후작에게 1 왕자를 넘길 수는 없었다.
수도로 데려갈 생각도 없었다.
왕세자는 우리, 아니 내가 써먹어야 했다.
단장 대신 내가 대답하자, 세르히오 기사단장의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단장과 내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고민이 되는 모양이었다.
“알렉스 경 말대로입니다. 저희가 모실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단장도 내 말을 두둔하자, 세르히오 기사단장은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단장은 세르히오 기사단장에게 감사를 표하고 왕실 기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우리도 부상자를 수습해서 움직인다!”
마물 왕이 오기 전에 임시 본부로 삼은 후작의 저택으로 가서 부상을 치료하고 다음 계획을 준비해야 했다.
나도 바닥에 처박혀 있는 왕세자에게로 향했다.
“큭, 큭, 그래봤자 두 머리 마물에게 다 죽을 뿐이야. 이 왕국도 끝장이고, 카를로스 왕가도 이 대에 끝나는 거야.”
1 왕자가 다시 떠들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떠드는 목소리는 나도 겨우 들을 정도로 무척이나 작았다.
증폭시킨 마나가 내게 맞는 동안 다 날아가 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왕자를 다시 한번 두들겨서 기절을 시키려다가,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부우우우우웅!
멀리, 부서진 성문 너머, 성벽 위로 마나가 일렁이는 게 보였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 내뿜는 마나가 아닌, 하나의 생명이 뿜어내는 마나.
하지만, 그 마나는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마나가 아니었다.
부우우우우우우웅!
그 마나는 여기서 보일 정도로 강대한 마나였다.
저런 마나는 단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봉인지에서, 마물 왕을 만났을 때.
그렇다면 저건 마물 왕의 마나였다.
적어도 이삼일은 더 있다가 나타나야 할 마물 왕이 도착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