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8화
제23편 왕실 기사단 vs 왕실 기사단 (1)
성벽 앞으로 다가가는 왕실 기사들.
그들은 가지고 있는 무기. 검과 창, 해머로 문을 부수기 시작했다.
쾅! 쾅!
덧댄 나무가 부서지고, 철판이 우그러졌다.
일반 병사들 수백이 달라붙어 부수려 해도 꿈쩍도 안 할 철문이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다.
하지만, 얼마나 철판이 두꺼운 것인지.
엉망이 되었다고, 그 두꺼운 철문이 바로 뚫리지는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왕자가 인상을 썼다.
이게 무슨 꼴인지.
지금 그의 주변에는 거지꼴인 수십 명의 기사만 남아있었다,
그런 모습의 기사들이 직접 철문을 두들기는 꼴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물론, 성벽 앞에 도착한 왕자와 기사들이 왕자의 모든 병력인 것은 아니었다.
마물 왕에게 큰 피해를 보았지만, 그의 군대는 아직 남아 있었다.
그 군대는 지금 멀리서 따라오는 중이었다.
왕자는 자신의 군대를 둘로 나누었다.
마물 왕이 따라붙었는데, 느린 군인들을 데리고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많은 병력을 가지고 있어도, 지금 옆에 있는 것은 수십 명의 기사뿐이었다.
문을 두들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1 왕자의 짜증이 점점 커졌다.
쾅! 쾅! 쾅!
같은 시각,
우리도 성벽 위에서 문을 부수려 하는 기사들을 보고 난감해하고 있었다.
“열심히 속일 준비를 했는데, 영 쓸데없는 짓이 되어버렸군.”
단장의 중얼거림에 나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옆에는 영지병처럼 입고 있는 기사들이 있었다.
원래는 이들이 연극을 해서 1 왕자를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그렇게 함정까지 준비해두었는데, 1 왕자가 시작부터 생각지도 못한 짓을 해버린 것이다.
“저런 녀석들이 아니었는데…….”
단장이 성문을 부수고 있는 기사들을 보고 혀를 찼다.
“확실히 참을성이 없어 보이는데요.”
“왕세자, 아니 1 왕자님은 확실히 참을성이 부족하기는 했었지. 하지만 왕실 기사라는 자들이 저 모양이라니…….”
마나를 이용하는 기사라 해도, 저렇게 두꺼운 철문을 한 번에 잘라내기는 무리였다.
거기다, 저렇게 엉망으로 우그러뜨려 버렸으니, 오히려 더 부수기 어려워 보였다.
1 왕자도 그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냥, 몇 명이 성벽을 넘어가서 문을 열어!”
성문을 박살 내고 있어도, 아무 반응이 없는 것을 보고, 남은 인내심도 다 날아간 모양이었다.
“설마 성을 비운 것일까요?”
“상관없어. 아무도 없으면 수도로 가면 그만이니까.”
기사 몇 명이 달려오고, 이어서 1 왕자와 부단장이 떠드는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귀에 들렸다.
1 왕자 쪽 기사들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 단장이 기사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기사들이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나도 1 왕자의 기사들이 올라오는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휙! 휙! 휙!
세 기사가 성벽을 밟고 위로 솟구쳤다.
거지꼴이 되었어도, 왕실 기사들이었다.
마치, 산양이 절벽을 뛰어오르는 것처럼 기사들은 수직에 가까운 성벽을 타고 올라 성벽 위에 내려섰다.
성벽 위에 내려선 순간, 그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성벽 뒤쪽에는 기사들이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래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물러서 있었던 기사들은, 성 위로 올라온 1 왕자쪽 기사들이 잘 아는 기사들이었다.
“이런……!”
퍽!
제일 먼저 올라온 기사가 단장의 검을 맞고 바닥에 쓰러졌다.
날이 없는 쪽으로 맞은 것이었지만, 단장의 거대한 검은 사람을 기절시키기에 충분했다.
퍼석!
또 다른 기사도 내가 쓰러뜨렸다.
나도 날이 없는 쪽으로 대검을 휘둘러 기사를 쓰러뜨렸다.
단장처럼 호쾌하게 날려버리지는 못했지만, 검까지 부숴버리고, 기사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올라온 기사는 두 기사가 달려들었다.
하지만, 먼저 올라온 두 기사처럼 바로 쓰러뜨리지 못했다.
왕실 기사들끼리의 싸움이었다. 두 기사가 제압을 목적으로 한 이상 금방 쓰러뜨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여기! 적……!”
하지만, 그 기사도 성 아래로 경고를 보낼 수가 없었다.
갑자기 날아온 마나의 선 때문이었다.
그가 고함을 치려는 순간, 흰 선 하나가 그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고함을 채 내뱉지 못하고, 목이 잘려 나가고 말았다.
모두 놀라 흰 선이 날아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검을 든 내가 서 있었다.
‘마나 방출’로 기사의 목을 날려버린 나는 아무런 변명을 하지 않았다.
상대방을 죽이지 않는 것은, 들키지 않고 제압할 수 있는 자신이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같은 왕실 기사단 소속이었다고 해도, 상대방을 제압하다가 들키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바보 같은 짓일 뿐이었다.
죽은 기사를 보고, 기사들이 나를 쳐다보았지만, 그들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단장이 와서 내 머리를 손으로 문질렀다.
“잘했다. 책임을 맡은 자는 그래야 해.”
뭔가 다른 뜻이 있는 듯한 말인 것 같았지만, 어쨌거나 내 편을 들어주는 말이었다.
단장의 말에 기사들의 시선이 흩어졌다.
단장은 바로 수신호로 지시를 내렸다.
기사 몇이 성벽 뒤쪽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우그러진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그그그긍.
성문은 반쯤 망가진 덕에 덜거덕거리며 겨우 열렸다.
“처음부터 성벽을 넘을 걸 그랬어. 성문이 열렸으니 들어가자고.”
1 왕자가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부단장이 그를 제지했다.
“기사 몇을 먼저 들여보내는 편이 어떻겠습니까? 성벽 위에서 들려온 소리도 그렇고…….”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성벽 위에서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었다.
성벽 위에는 사람이 있었다는 소리였다.
성문이 열린 것을 보니, 그 문제는 해결된 모양이었지만, 텅 비었다고 생각한 성벽 위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좀 더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아직 있는 거면 더 좋지. 함정이든 뭐든 전부 부숴버리면 그만이니까.”
“혹시 수도에서 지원이 왔을 수도 있습니다.”
“하, 아이샤가? 아니면 그레시아 공작이? 공국 왕자까지 왔는데 수도에서 협의가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해?”
왕국의 수도는 귀족들이 저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날뛰는 곳이었다.
그런 수도를 차지했는데, 그렇게 빨리 조율을 끝내고, 이곳으로 병력을 보낸다고?
솔직히 부단장도 왕자의 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여기 후작을 지원하기 위해 기사단 같은 것을 보낼 수 있을까? 후작을 어떻게 믿고?”
왕자의 말대로 수도를 점령한 적이 후작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걸림돌이 한둘이 아니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기사 몇 명을 먼저 보내는 정도는 문제가 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부단장은 더 말릴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결정을 내린 왕자의 말을 되돌리기는 힘들었다.
그동안 상식을 깨는 왕자의 행동이 얼마나 많은 승리를 가져왔는지를 옆에서 전부 지켜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왕자의 권위는 계속 올라갔고, 이제는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기사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부단장은 한숨을 쉬며, 옆으로 비켜섰다.
“가자!”
왕자와 기사들은 열린 성문 안으로 달려갔다.
성문 안.
성문을 통과해 말을 달리던 왕자와 기사들이 점점 속도를 줄였다.
히히잉.
그리고, 말을 멈춘 왕자.
왕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리 양옆으로 쭉 늘어선 상점과 대장간들.
그리고, 거리 양쪽 건물 위로 솟구치고 있는 연기.
도시의 겉모습은 예전의 광산 도시와 다르지 않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도시에 사람이 없었다.
상점을 지키는 사람도, 대장간에서 검을 두들기는 사람도 없었다.
거리는 텅 비어있었다.
아니, 이 도시 전체가 텅 비어있었다.
“하! 함정인가.”
1 왕자는 텅 빈 거리를 보고, 코웃음을 쳤다.
왕자는 고개를 돌려, 그들이 지나온 성문을 확인했다.
그가 성문을 본 그 순간, 성문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쿠루루루룽 쿵!
먼지를 가득 날리며 땅에 내리박힌 문.
아예 문을 올리는 쇠사슬을 끊어버린 것인지, 땅에 처박힌 문은 슬쩍 기울어져 있었다.
이제는 문이 아니라, 그냥 우그러진 철벽처럼 보였다.
왕자는 그런 철문을 비웃고는 기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대로 후작의 저택으로 향한다. 앞을 막는 것은 모두 부수고, 저택도 비어있으면 그대로 수도로 향한다!”
평범한 기사나 장군이었으면 함정인 것을 알고, 성벽을 넘던, 철문을 부수든 간에 물러섰겠지만, 왕자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이번에도 장애물을 돌파하기로 한 것이다.
이럇!
그들이 다시 말에 박차를 가했다.
히이이잉!
말들이 다시 앞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이번에는 더 나아가지 못했다.
푹! 푹! 푸푸푸푹!
길 한가운데서 창이 솟구쳤기 때문이었다.
마치, 땅을 뚫고 창이 솟아난 것처럼 수십, 수백 개의 창이 바닥을 뚫고 솟아올랐다.
길이 솟아오른 창의 밭으로 꽉 막혀버렸다.
기사들은 말들의 다리를 들어 올리며 멈춰 세웠지만, 몇몇 기사들은 창의 밭에 도착할 때까지 말들을 멈춰 세우지 못했다.
푹! 푸욱!
히이이이이이잉!
창에 찔린 말들이 비명을 질렀다.
기사들은 말들이 나뒹굴기 전에 뒤로 몸을 날릴 수 있었지만, 말들은 죽기까지 더 많은 창에 찔릴 수밖에 없었다.
왕자도 가까스로 창 바로 앞에서 말을 멈춰 세웠다.
그는 피가 튄 옷을 보며 눈을 찡그렸다.
“환상이 아니었나?”
흙을 움직인 것도 아니고, 진짜 창이라니.
이건 평범한 귀족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고위 귀족이 도와주러 온 건가?”
왕자로서는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맙소사.”
“제길. 여기서 만날 줄은…….”
왕자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주위에서 억눌린 신음이 들려왔다.
왕자가 소리가 들려온 곳을 쳐다보니, 그의 기사들이 성벽 위를 쳐다보며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왕자도 그들이 보는 곳은 쳐다보았다.
성벽 위에 기사들이 서 있었다.
다들 아는 얼굴들이었다.
왕궁에서 보았던 얼굴들.
그리고, 중앙에 우뚝 솟은 남자가 보였다.
기사들과 같이 서 있는데도 거인처럼 보이는 기사였다.
“왕실 기사단장……. 엔리케인가.”
그는 젊은, 아니 어려 보이는 기사와 같이 서 있었다.
그 젊은 기사도 어디서 본 것 같았지만, 그는 단장을 보느라 젊은 기사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결국, 방해하러 온 건가.”
중립을 지킨답시고 계속 딴지를 걸었던 기사단장이었다.
그런데 저기에 서 있다는 것은 그 중립을 어긴 게 분명했다.
1 왕자는 큰 목소리로 단장을 비웃었다.
“설마, 공주의 뒤에 붙은 것은 아니겠지? 중립이라는 말도 웃기긴 했지만, 그게 겨우 공주에게 붙으려고 한 말이라니. 배꼽이 다 도망가겠어!”
왕자가 한껏 비웃었지만, 단장도 성벽 위에 서 있는 기사들도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뭔가 재미가 없어진 왕자는 어깨를 으쓱였다.
“잘되었어. 드디어 왕실 기사단끼리 겨뤄볼 수 있겠군. 나는 어느 쪽이 더 강한지 정말 궁금했다니까!”
그는 다시 빙글거리며 부단장을 바라보았지만, 부단장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왜 그래. 항상 단장이나 남은 기사들은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했잖아. 숫자가 좀 줄고, 피곤하다고, 말을 뒤집는 것은 아니겠지?”
왕자의 말에 부단장은 고개를 저었다.
“변수가 생겨서 이기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왕자에게 대답하며, 그는 단장 옆에 서 있는 어린 기사를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