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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297화 (297/563)

제297화

제22편 광산 답사 (2)

광산 내부는 용병의 말대로였다.

과거에 지나갔던 도시 밖으로 나가는 통로는 그중에서도 제일 간단한 길에 속했다.

오랫동안 파 내려갔던 수많은 갈림길과 막힌 통로를 기억하는 것은 나도 발레아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똑똑한 공주였으면 가능했을까.

가짜 천재인 나에게는 불가능했다.

다행히 용병은 너무도 쉽게 길을 찾아냈다.

이상하게 생각되어 물어보니, 그가 과거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오래전 여기서 일했었죠. 그때는 평범한 광부였는데……. 괜히 마나 같은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어서 용병 짓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능력을 각성한 것은 아니었다.

오래 단련한 기사가 마나를 익히게 된 것처럼 그는 광부일 가운데 마나를 느끼게 된 것이었다.

마나심법을 익히지 않은 상황에서 마나를 익히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었지만, 그뿐이었다.

분명 남과 다른 힘이었지만,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냥 광부를 계속했다면 돈을 좀 더 버는 정도밖에 차이가 없을 테고,

아니면, 용병이나 군인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어렸을 때의 꿈이 떠오른 덕에 용병을 하게 되었죠. 바람이 들어버린 거죠.”

광산이 예상보다 깊어, 그의 말은 길게 이어졌다.

“하지만, 예상대로 용병질도 현실일 뿐이라, 이렇게 다른 사람 뒤치다꺼리만 하게 되었습니다.”

광부보다야 일은 더 쉽고, 돈은 더 벌 수 있을 테지만, 용병은 지금 생활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와 발레아는 그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모든 사람이 지닌 푸념일 뿐이었다.

다만, 그 때문에 조금 분위기가 애매해졌는데, 다행히 곧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용병은 횃불을 들어 주변을 밝혔다.

“제가 아는 바로는 이곳에 제일 깊고, 제일 넓은 곳입니다.”

그가 불을 밝히기 전에도 나는 이 작은 지하광장을 볼 수 있었다.

작은 광장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사방 수십 미터씩은 되는 지하광장이었다.

광산을 캐다가 멈추었는지, 곡괭이와 각종 도구가 곳곳에 버려져 있는 게 보였다.

그것들 때문에 조금 어수선했지만, 다행히 싸울 때 걸림돌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봐도 싸우기 좋은 장소였다.

지하광장의 입구도 크지 않아 입구를 막기도 어렵지 않아 보였고.

다행히 발레아도 만족해 보였다.

물론, 유적을 이용해서 겨우 봉인한 마물을 이런 광산에 묻어버린다는 생각이 얼마나 허술해 보일지는 잘 알고 있었다.

거기다, 마물을 잘 유인할 수 있을지, 빠져나가기 전에 묻을 수 있을지, 그리고, 묻은 뒤에도 못 빠져나올지, 우리는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지.

분명 곳곳에 함정이 가득한 계획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성공할 확률이 20%도 안 되어 보였다.

나도 다시 살 수 있는 보장이 없다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내 경우에는 해 볼 만한 계획이었다.

이제는 탈출구만 확인하면 되겠지만, 문제가 한 가지 남아 있었다.

처음에 말한 대로 길이 기억나지 않았던 것이다.

“역시, 기억이 안 나요.”

발레아도 기억을 떠올릴 수 없었다.

나는 예전에 포기해 버렸고.

이래서야 마물 왕을 제대로 유인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때는 유인하느라 더 정신이 없을 터였다.

‘벽에 기호를 새겨야 하나…….’

그런 생각으로 벽을 살펴보고 있는데, 용병이 입을 열었다.

“……길은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나는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보상이나 잘 쳐주십시오. 이래 봬도 생명을 건 일이니.”

“보상이야 최고로 드릴 수 있긴 하지만……. 갑자기 왜…….”

내게도 3층짜리 건물을 안겨줄 정도로 충분한 보상을 안겨줄 재력은 충분했고, 후작이나 다른 귀족, 아니 공주에게 이야기해서 금화를 부어줄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이해가 잘 안 갔다.

나야 죽어도 되살아날 자신이 있기에 하는 일이었지만, 용병이 이런 가능성 없는 일이 뛰어들다니…….

돈이 목적이라면 모를까, 그런 것 같지도 않고.

발레아도 이해하기 힘든 판에 그런 사람이 더 나타난 걸까?

다행히(?) 그런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가졌던 꿈은 용병을 하면서 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입니다. 영지를 공격하는 마물을 잡는다니……. 솔직히 제가 용병을 하고자 했던 이유도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돈도, 명예도, 객기도 아니었다.

단지, 그가 아직 어렸을 때의 꿈을 버리지 않은 피터 팬 같은 남자였을 뿐이었다.

“귀족 영애께서도 광산을 무너뜨릴 정도로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고, 앞에 계신 기사님도 여기까지 오면서 살펴봤지만, 실력을 전혀 알 수가 없더라고요. 나이에 맞지 않는 대단한 기사님인 걸 보니, 그냥 객기로 세운 계획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아직도 꿈을 꾸는 어른이었지만, 그래도 실력은 나쁘지 않았다. 나를 파악하는 눈썰미도 있었고.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이런 넝쿨이 다시 굴러들어오기는 어려울 것 같아, 정식으로 그를 고용했다.

“이런 기회가 올 줄 몰랐는데……. 다행입니다. 마틴이 있었으면, 저까지 오지 않을 일이었습니다.”

“마틴?”

이런, 갑자기 아는 이름이 들려와서 반문해버리고 말았다.

“혹시 아십니까? 쏘다니기를 좋아하는 용병이라 아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디서 뭘 하는 지 꽤 보이질 않네요.”

아는 이름이고 아는 사람이긴 했다.

이 광산에 대해 알게 된 것도 그 덕분이었고,

문제는 그가 내 손에 죽었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제국의 스파이여서 죽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을 여기서 이야기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다시 모른 척하기로 했다.

운 좋게 안내자를 구하게 되었으니, 우리는 바로 탈출구까지 확인하고 광산을 빠져나왔다.

저녁노을이 퍼져나가고 있는 도시는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이제야 사람들에게 알린 건가…….”

나는 짐을 싸는 사람들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이럴 거면 왜 여태 숨긴 것인지, 후작의 생각을 알 수 없었다.

“짐을 싸서 바로 후작님의 저택으로 가겠습니다.”

소란스러운 도시를 보고, 표정이 굳은 용병, 밀톤은 바로 우리가 머무는 곳으로 오기로 했다.

1 왕자와 마물 왕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데, 따로 떨어져 있을 수는 없었다.

밀톤이 용병 숙소로 떠나고, 우리는 후작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에 도착해 보니, 협상은 잘 끝난 것 같았다.

세우타 공작과 벤자민은 손님 방 응접실에서 늘어져 있었다.

“일을 던져 놓고, 어디를 갔다가 온 거야?”

차를 마시고 있던 세우타 공작이 안으로 들어오는 우리 두 사람을 보고 투덜거렸다.

하기야, 후작과의 협상은 내가 꺼낸 말이었으니, 세우타 공작이 투덜거릴 만했다.

벤자민 선배도 지쳐 보였다.

전권을 가져오고, 서로를 위한 협상이었지만, 협상이라는 게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빠져나간 것은 아니었지만…….

“만약을 대비한 준비를 좀 했습니다.”

“만약?”

“네, 그보다, 협상은 어떻게 결론이 났습니까?”

“뭐, 이리저리 힘겨루기하긴 했지만, 거의 예상대로지.”

“이곳에 오는 병력에 최대한 지원을 하고. 작전에 도움을 주고, 공주님이 왕위에 오르는 데 협력하고……. 결국, 공주님 쪽에 붙겠다는 이야기지.”

말을 갈아타겠다는 말을 길게 늘여 쓴 것뿐이라며 세우타 공작이 투덜거렸지만, 내가 보기에도 협상은 잘 끝난 것 같았다.

이로써 기본적인 준비는 끝난 것 같았다.

“그런데, 만약을 대비해서 조금 협상 내용을 바꾸어야 할 것 같은데요.”

“뭐?”

늘어져 있던 벤자민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얗게 질려있는 그에게는 조금 미안했지만, 기본적인 준비가 끝났으니 이제 본격적인 준비를 해야 할 때였다.

나는 두 사람에게 오늘 다녀온 이야기를 해 주었다.

두 사람은 내 이야기에 황당해했지만, 만약을 대비해야 한다는 내 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되었건 마물 왕을 수도로 보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만약’이 아니라, 이걸 목표로 온 것 같은데…….”

거기다, 세우타 공작은 내 생각을 금방 눈치챘다.

마물 왕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군대와 기사단으로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마물 왕을 상대해 본 세우타 공작과 나는 달랐다.

이 영지가 전장이 된다고 해도, 공주의 기사와 군대가 마물 왕을 쓰러뜨리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마물 왕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거나, 봉인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거기다, 마물 왕을 이끌고 다가오고 있는 1 왕자 문제도 있었다.

일이 어떻게 되든 간에, 결국, 내가 한 준비대로 일이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유적 같은 게 아니라서 불안하기는 하지만……. 이게 그나마 가능성이 있군.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어.”

세우타 공작도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내 계획의 허점도 파악해냈다.

다른 많은 함정들보다 더 큰 허점.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네, 어떻게 유인하냐죠.”

내 대답에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가야겠지. 솔직히 그러려고 온 거고.”

확실히 그가 노구를 이끌고 이곳까지 온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예전 마물 왕을 봉인했을 때는 그가 유인을 했었고.

하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있을 듯했다.

“한가지 생각해 놓은 게 더 있습니다. 잘하면 돌을 던져서 새 두 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내 말에 다들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 * *

이틀 뒤.

1 왕자가 수십 명의 왕실 기사들과 함께 광산 도시 앞에 도착했다.

겨우 알렉스와 이틀 반 차이.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물론, 그걸 1 왕자는 알 수 없었다.

그는 마물 왕을 피하느라 주변 소식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쉬지도 못했고, 그와 기사들의 꼴은 엉망이었다.

1 왕자는 개의치 않았다.

쉬는 거야 피센 후작과 만난 뒤나, 마물 왕이 후작 영지를 쑥밭으로 만들 때 해도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와 기사들이 열심히 달린 덕에, 이제 마물 왕과는 하루 이상 벌어져 있었다.

광산 도시의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바닥에도 사람들이 오간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도시를 비운 걸까요?”

왕실 부단장이 왕자에게 물었다.

그도 무척이나 지치고 지저분했다.

과거에 그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눈을 비비고 그를 쳐다볼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쳐 보이는 것은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중에는 1 왕자의 행동에 회의를 느끼고, 지금 상황에 좌절을 느끼고 있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건 아니야. 아직도 대장간 연기가 잘 올라오고 있잖아.”

왕자가 성벽 너머 하늘을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성벽 위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광산 도시의 전매특허인 대장간 연기였다.

연기는 흔들리지 않고, 색도 변하지 않고 하늘로 얌전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 도시에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연기들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겠지만, 왕자도 기사들도 연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제가 알리겠습니다.”

“그럴 것 없다! 부숴! 괜히 시간을 지체할 필요는 없겠지.”

“네…….”

전보다 더 과격해진 왕자의 말이었지만, 기사들도 포기했는지 그냥 그의 말을 따랐다.

그렇게 기사들이 무기를 들고 성문으로 다가가고 있을 때, 나는 성벽 위에서 1 왕자를 보고 있었다.

왕자의 생각과는 다르게 도시는 텅 비어 있었다. 사람들은 이미 반대쪽 문을 통해 피난 간 뒤였다.

그리고, 아직 우리 쪽 군대는 도착하지 못했지만, 왕실 기사단은 이미 도착해서 내 옆에 늘어서 있었다.

예전 동료들을 보는 왕실 기사들의 표정은 무척이나 착잡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오랜만에 보는 1 왕자였다.

내가 죽는 걸 즐겁게 보던 왕자.

나는 미소를 지었다.

오래 기다렸다.

드디어 복수할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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