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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296화 (296/563)

제296화

제21편 광산 답사 (1)

내게 있어 이 광산 도시는 총 세 번째 방문이었다.

첫 번째 왔을 때는 결국 죽게 되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방문이 되어버렸고, 두 번째는 시내에 나가 ‘피센의 신검’의 형제 검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첫 번째 방문 당시의 나는 도시에 남아 있는 광산을 가게 되었다.

제국의 첩자로 몰려, 유학생인 요하힘과 함께 광산을 통해 탈출했던 그때의 기억.

나는 이번에 그 기억을 써먹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안내원을 한 명 붙여 주었으면 합니다만.”

“아니, 도시 밖으로 통하는 버려진 광산이 있다니……. 저희는 그런 광산이 있다는 건 전혀 알지 못합니다!”

무시무시한 마물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까지 설명했지만, 눈앞의 늙은 남자, 피센 광부 조합장은 격렬하게 머리를 흔들어댔다.

피부나 손을 봐도 과거에는 광부로 고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나이 든 모습을 보니, 지금은 고집만 남은 늙은이라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거기다, 우리가 와 있는 이 조합장의 사무실은 귀족의 집무실만큼 좋아 보였다.

젊었을 때 현업을 뛴, 돈을 밝히는 고집불통의 늙은이라.

설득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긴 했다.

우리를 이곳까지 안내했던 후작의 젊은 집사도 옆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저 조합장의 권력이 작지 않은 모양이었다.

집사장은 아니겠지만, 영주, 후작의 집사라는 자리도 낮은 자리가 아니었다.

평범한 영지민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치인데, 여기서는 반대로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앞뒤 사정을 봐줄 상황이 아니었다.

1 왕자가, 마물 왕이 다가오고 있었다.

후작이 왜 피난 명령을 내리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눈앞의 늙은이가 유세를 떠는 것도 그런 이유일지도 몰랐다.

후작을 등에 업은 위세랄까.

물론, 전생이라면 젊은, 아니 어린 애들이 와서 늙은이에게 시비를 거는 모습처럼 보이겠지만,

이 세계에는 장유유서보다 더 중요한 계급이란 게 있었다.

“제가 할까요? 급하신 것 같은데.”

조합장이 계속 모른 척을 하자, 뒤에 서 있던 발레아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손이 슬쩍 움직이자, 조합장이 앉아 있던 의자가 꿈틀거리며 노인의 손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히익!”

“제가 하면 금방 입을 열 텐데.”

기겁한 조합장을 보며, 발레아가 부드럽게 웃었다.

발레아의 미소 때문이었을까.

오래 지나지 않아 비밀 통로가 있다는 것을 조합장이 시인했다.

서로의 예의를 위해 집사는 밖으로 내보낸 뒤였다.

넋을 놓고 바닥에 주저앉은 노인과 부서진 의자, 그리고 단도를 허리에 다시 차고 있는 나.

발레아는 부서진 의자를 보며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내가 봐도 상당히 고급스러운 의자였다.

나는 조합장에 감사를 표했다.

“시간이 없어서 좀 험하게 굴었습니다. 시인을 하셨으니, 안내할 사람을 붙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악마 같은…….”

노인은 내 말에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지만, 그 말은 제대로 끝마치지 못했다.

의자를 보던 발레아가 고개를 돌려 노인을 쳐다봤기 때문이었다.

히익!

발레아가 보자 마치 마녀가 쳐다본 것처럼 노인은 기겁했다.

의자를 변형해서 몸을 구속하고, 시야를 가린 정도였는데. 저렇게 기겁할 줄이야.

아니면 시야를 가리고 귀에 속삭인 말 때문이려나.

뭔가, 묻어버린다 어쩐다고 하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듣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일부러 안 들었는데, 잘한 일인듯했다.

비명을 질러대며 사실이라고 털어놓는 바람에 단도로 의자를 부숴야 했지만, 결과가 좋으니 의자가 부서진 정도는 괜찮았다.

내가 나섰으면, 저 노인의 몸이 이렇게 멀쩡했을 리가 없었다.

“그럼, 시인을 하셨으니, 안내자를 한 명 붙여 주셨으면 합니다. 버려진 광산을 지키는 병사도 괜찮고, 용병도 괜찮습니다.”

내 말에 노인은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정말, 전부 알고 있었군요.”

아무래도 노인은 내가 넘겨짚은 것으로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럼, 마물 왕 이야기도 믿지 않았던 걸까?

“그걸 알고 있다면 마물이 온다는 것도 거짓이 아니라는 말인데…….”

정말 믿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저렇게 버틴 걸까?

그렇게 중얼거리던 노인은 바로 몸을 일으켰다.

“끄응. 도대체 후작님은 무슨 생각이신지.”

확실히 험한 인생을 겪어 온 노인다웠다.

노인은 충격을 금방 회복했다.

다만, 그는 발레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제발, 내 앞에서는 웃지 말아 주십시오. 심장이 버티질 못할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전혀 다른 뜻일 텐데…….

아쉽게도 노인의 말은 조금의 비유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는 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빠르게 움직였다.

아니면, 이미 들켜버렸으니, 열심히 도와서 벌이라도 줄이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어찌 되었건, 알아서 움직여주니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일이라면 발이 빠른 용병이 좋겠군요.”

그는 용병대로 사람을 보내고, 버려진 광산을 지키는 병사들에게도 사람을 보냈다.

조합장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용병대로 보낸 직원과 함께 낡은 갑옷을 입은 남자가 찾아왔다.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분위기도 어수선한데 조합으로 직접 부르다니요.”

상처가 많지만, 평범해 보이는 남자였다.

“자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조합장은 그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진땀까지 흘리시고.”

조합장이 진땀을 흘리고 있는 것은 그 옆에서 싱글거리고 있는 발레아 때문이었다.

발레아가 웃을 때마다 정말 노인은 심장이 안 좋아 보였다.

“여기 두 분, 아니 이 기사님 요청이네.”

노인은 시간을 끌기 싫었는지 바로 나를 소개했다.

“네? 기사님요? 딱 봐도 집안 좋은 귀족 자제분이신데요?”

용병은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기사들과 같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서, 평범한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면 지금 입고 있는 가죽 갑옷은 그리 싼 옷이 아니었다.

거기다, 유물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고, 수도에 있을 때는 고용인들이 관리를 해 주어 항상 깨끗했고.

낡은 가죽 갑옷을 입고 있는 용병이 보기에는 귀족 도련님처럼 보일만 했다.

나는 속으로 고개를 젓고는, 그에게 내 소개를 했다.

“나는 알렉스 데 그레시아, 아이샤 공주님의 호위 기사이자, 피센 후작님의 손님이다. 버려진 광산의 안내자가 필요하다.”

재수 없는 귀족 행세였지만, 용병에게 일을 맡기려면 어쩔 수 없었다.

괜히 얕보였다가는 노인 때처럼 일이 지체될 수도 있었다.

휘익!

내 말에 용병은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생각보다 높으신 분이셨군요. 근데, 후작님의 손님이라니. 설마, 후작님에게 들킨 겁니까?”

“아니, 그게……. 그게 아니라,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잖은가!”

난감한 표정을 짓던 조합장이 벌컥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암튼 조합장이 꺼낸 말이니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들어 보죠.”

용병치고는 무척이나 담대한 자였다.

어린 나를 무시해서 아니고,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잘하면 수련 기사 정도일까?

몸속에서 마나가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보니, 그가 자신감을 가질만했다.

어디서 이런 용병이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꽤 쓸만해 보였다.

그냥 막무가내로 일을 진행하려다가, 제대로 설명하기로 했다.

무서운 마물이 다가온다는 것과 마물을 광산으로 유인할 생각이라는 것을.

내 설명이 이어지자, 그는 입을 딱 벌렸다.

“……그렇게 해서 두 가지를 해 주었으면 한다. 마물을 가둘만한 깊은 장소와 그곳에서 빠져나갈 길을 알려 주는 것.”

“미친 듯이 위험한 일이잖습니까?”

확실히 위험한 일이었지만, 그에게 그 위험한 일을 부탁할 생각은 없었다.

“마물이 오기 전에 위치와 길만 미리 알려 주면 된다. 미리 답사만 해 주면 된다는 이야기다.”

답사 없이 일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가는 길과 탈출할 길은 답사를 하면서 기억하면 그만이었고.

하지만, 내 말에 용병은 고개를 저었다.

“저도 거기서 일을 꽤 오래 했었는데, 그렇게 쉽게 기억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거기에 마물을 가둔다니……. 확실히 장소는 잘 선택했네요.”

내 생각보다 광산 깊숙한 곳은 더 복잡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계획을 물릴 생각은 없었다.

“기억하는 것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마라.”

“아니, 그것도 그렇지만, 그 마물을 끌어들여도 가두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잖습니까? 광산을 무너뜨릴 것도 아니고.”

“무너뜨릴 생각이다.”

나는 뒤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발레아를 가리켰다.

처음에는 내 관통검으로 벽 내부를 부술 생각이었지만, 발레아가 따라오게 되어서 그 생각은 접었다.

발레아라면 벽을 무너뜨릴 필요도 없었다.

“저분은 그런 쪽 능력을 가진 귀족이신 모양이군요.”

경험이 많은지 용병은 내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용병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방 안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는 얼굴빛이 안 좋은 조합장과 우리 두 사람을 쳐다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쩝, 어쩔 수 없네요. 따라오시죠. 시간이 없다니, 바로 보여드려야 할 것 같네.”

그는 먼저 방을 나섰고, 우리도 그의 뒤를 따랐다.

“빨리 짐 싸! 잠깐 피난 간다!”

뒤에서 조합장의 고함이 들려왔다.

발레아가 안 보이니 바로 기력을 되찾은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조합원들만 도망칠 생각 같지만, 영지민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영주도 있으니, 그걸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용병과 함께 우리는 도시와 붙어 있는 바위산으로 향했다.

나는 전에도 왔었던 바위산이었다.

용병은 인상을 쓰며 우리를 안내했지만, 발레아는 반대로 싱글벙글했다.

위험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걱정도 안 되는 모양이었다.

대신 그녀는 내가 어디서 광산 이야기를 들었는지를 더 궁금해했다.

“광산 이야기도 레스티에게서 들은 건가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발레아에게는 어설픈 거짓말은 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결국, 이럴 때는 입을 닫는 게 정답이었다.

다만, 그렇게 입을 닫자, 발레아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떨어져 있으니까, 모르는 게 늘어났어. 안 되겠어. 앞으로는 기필코 붙어 다녀야지.”

뭔가 소름이 돋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애써 무시했다.

빠르게 걸어 버려진 광산 앞에 도착해 보니, 전에 보았던 광산을 지키던 병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왜 광산에 사람을 보냈나 했더니, 병사들을 아예 빼내기 위해서였던 모양이었다.

“잔머리하고는…….”

용병도 혀를 차고는 발레아에게 물었다.

“기사님은 모르겠지만, 영애 님에게는 꽤 지저분한 곳일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왜 여기까지 와서 묻는지 모르겠지만, 발레아는 그의 말에 슬쩍 손을 흔들어 보였다.

휘이익.

바람이 불어 주변에 날리던 석탄 가루들이 사방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용병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광산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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