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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293화 (293/563)

제293화

제18편 두 머리 마물 (2)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고, 수도는 겨우 안정화되었다.

문을 닫아걸었던 사람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와 일상생활을 영유하기 시작했고,

활짝 열린 성문을 통해 상인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두 왕자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기에 서쪽의 영지들과는 교류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수도에서 가까운 피센 후작령 같은 몇 영지에서 상인이 오게 되어서 수도는 어느 정도 활기가 돌아오게 되었다.

우리도 이제 겨우 쉴 수 있게 되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다만, 모이게 된 장소는 평범한 곳이 아니었다.

우리가 모인 곳은 중요한 손님을 맞이할 때 쓰는 왕궁의 큰 응접실이었다.

모인 사람들은 수도에 남은 아카데미 학생들.

공주의 친구들이었다.

물론, 대공녀도 공국에 있기에 참석하지 못했고, 미리사도 집으로 돌아갔기에 참여하지 못했다.

공주의 이모이자, 아카데미 교수인 카트린도 참석하지 못했다.

우리가 없는 동안 왕비를 지켜왔던 그녀는 지금도 공주를 위해 수도의 귀족들과 싸우고 있었다.

총칼 대신 명분과 입으로 하는 싸움.

그녀와 어울리지 않은 싸움이었지만, 카트린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 대신 벤자민 선배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이런 곳에 오게 될 줄 몰랐는데…….”

벤자민 선배가 번쩍이는 실내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그도 근래에 여러 회의에 참여해서 좋은 시설들을 구경했지만, 이렇게 꾸미는 데 힘을 쏟은 응접실에는 들어와 본 적이 없었을 터였다.

그렇게 벤자민은 무척이나 어색해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단정한 자세로 차를 마시고 있는 공주는 말할 것도 없었고, 반대편 소파에 늘어져 있는 발레아도 내부 장식에는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나도 그리 관심이 없었고.

더구나, 발레아는 늘어진 채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만 남겨 둔 채로 그런 일들을 벌이다니. 다시 나를 빼놓는다면 다 팽개쳐버릴 거예요!”

그녀는 어제 수도에 도착했다.

이렇게 우리가 모인 것도, 발레아가 수도에 도착한 기념으로 모인 것이었다.

발레아는 왕국 동부, 이피로스 군 앞에 남아 계속 이피로스의 눈을 속였었다.

줄어드는 병력과 기사들 대신, 그녀의 능력으로 만든 인형들이 이피로스의 눈을 속인 것이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게 상대를 속였었다.

이피로스 군은 오랜 시간 우리 군이 줄어드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고, 결국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제국군이 물러선 뒤였다.

제국도 철수했는데, 이피로스군이 우리 왕국 안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피로스는 분해하며 물러갔고, 발레아는 남은 병사들과 함께 수도로 오게 된 것이었다.

군대를 이끌었던 이피로스의 왕자는 고국에 돌아가 처벌을 받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그쪽이 알아서 해결할 일이었다.

왕국을 침범한 적을 신경 써 줄 이유가 없었다.

“앞으로는 같이 다니죠. 앞으로 발레아 양을 따로 떼놓을 일은 없을 겁니다.”

“좋아요. 이것도 약속이에요.”

발레아의 말에 기억이 생각났다.

발레아에게 일을 맡길 때 분명 발레아가 원하는 것을 한가지 해 준다고 했었다.

그것도 털어버리지 못하고 또 빚을 걸게 되다니.

“네. 약속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에는 발레아의 도움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피로스 군을 멈춰 세우고, 대규모 병력을 움직인 것은 전적으로 그녀 덕분이었다.

그녀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었고,

더구나 그녀는 다른 이들과 달리, 나와 다니기 위해 일행에 합류한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약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도 같이 다니면…….”

“안 됩니다. 공주님은 수도를 지키셔야 합니다.”

내 대답에 공주도 슬쩍 손을 들어 올렸지만, 벤자민의 반대에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여야 했다.

수도를 얻게 된 이상, 공주는 다시 수도 밖으로 나가기 어려웠다.

수도를 얻게 된 공주는 명실상부한 차기 왕위에 제일 가깝게 다가간 왕족이었다.

그런 왕족을 싸움터 한가운데 보내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의미로 2 왕자를 잡으러 수도를 나선 1 왕자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었다.

공주는 이제 전쟁터가 아니라, 수도와 왕궁에서 싸움해야 했다.

그녀를 얕보고, 이용하려는 수많은 귀족과 검을 든 것 이상의 전투를 벌여야 했다.

그 싸움은 내가 도울 수도 없었다.

물론 그녀를 돕는 다른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들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것일 뿐이었다.

그래서 나도 남은 기간, 그녀를 도울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대화는 시시콜콜한 잡담으로 이어졌다.

평범한 주변 이야기부터, 문이 닫힌 아카데미에 관한 이야기까지.

“아카데미는 다시 열릴까요?”

“내전이 끝나면 열리겠죠. 빨라도 내후년일까?”

발레아가 푸념 삼아 늘어놓은 말에 벤자민은 날짜를 제대로 계산해서 대답했고,

나는 두 사람에게 현실을 일깨워주었다.

“열려도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시 다니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되나…….”

내 말에 다들 뭔가 깨달은 얼굴들이었다.

“난 올해 졸업이니 이미 끝났고,”

벤자민의 말에 발레아가 공주를 가리켰다.

“왕이 되셨는데, 아카데미에 다니실 수는 없죠.”

발레아의 말에 공주는 멍한 얼굴이 되었다.

아직, 공주는 실감이 안 나는 모양이었다.

벤자민이 발레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영지와 작위를 가진 귀족이 다니는 것도 이상하겠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와 왕비 사이에 맺은 약속을 알고 있었다.

그건 발레아도 마찬가지였다.

“저도 그때 알렉스 공자를 따라갈 거니까 아카데미는 못 다니겠네요.”

평범한 발레아의 말에 방 안의 분위기가 묘해졌다.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발레아는 오해를 풀어 줄 생각이 추호도 없어 보였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웃고 떠들었다.

우리는 모두 앞으로 이런 시간을 다시 가지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열심히 이 시간을 즐겼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여유로운 시간도 끝까지 즐길 수가 없었다.

벌컥.

응접실의 문이 활짝 열리고, 세우타 공작과 왕실 기사단장이 응접실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두 사람의 갑작스러운 난입에 검을 뽑아야 하나 생각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아니었다.

대신, 더 큰 일이 벌어졌다.

“두 머리 마물이 나타났습니다.”

세우타 공작이 공주에게 한 말에 우리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 들었던 이름인데, 바로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제가 싸웠던, 그리고 제 능력을 잃어버리게 했던 그 마물 왕이 봉인을 깨고 다시 나타났습니다.”

세우타 공작의 말에 모두 어리둥절했다.

이제는 무슨 말인지는 이해가 되었지만, 이번에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수십 년 전 쓰러뜨린 마물 왕이 다시 나타났다고? 거기다 그 마물이 죽인 게 아니라 봉인한 거라고?

“처음 2 왕자가 피했던 북쪽 산맥에서 나타났다고 합니다. 마물 왕은 1 왕자를 쫓아 수도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기사단장이 공작의 말을 이어갔다.

말이 이어질수록 더 황당해질 뿐이었다. 다들 어이가 없었지만, 이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쉬는 시간은 끝났다. 이제 일할 시간이었다.

* * *

1 왕자는 화려한 저택의 응접실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1 왕자의 성향과 어울리는 응접실이었지만, 1 왕자의 모습은 그 응접실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더러워진 전신 갑옷을 입은 채로 응접실 소파에 기대어 앉아, 아름다운 응접실을 더럽히고 있었다.

더러운 갑옷과 다르게 차를 마시는 1 왕자의 표정은 무척이나 여유로웠다.

하지만, 그 여유는 오래 가지 않았다.

그가 채 차를 다 마시기 전에 벌컥 안으로 들어오는 기사가 있었다.

그의 호위 기사. 다빗이었다.

“이제 움직이셔야 합니다.”

호위 기사의 말에 1 왕자는 아쉬운 얼굴로 들고 있던 차를 내려놓았다.

“벌써 따라온 거야?”

1 왕자의 물음에 다빗은 침착하게 밖의 상황을 설명했다.

“네! 외성이 파괴되었습니다. 마물은 영지병들을 학살하고 민가를 쑥밭으로 만들면서 다가오는 중입니다.”

말하는 다빗도 1 왕자를 심하게 재촉하지는 않았다. 그동안의 경험 때문이었다.

“내 참, 계속 쫓아오면서도 할 일은 꼬박꼬박한단 말이지. 덕분에 도망갈 시간을 벌 수 있으니 좋기는 하지만, 놀림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들 수 없단 말이야.”

두 머리의 마물이라 불리는 괴물은 산맥에서부터 계속 1 왕자를 쫓아왔다.

산맥에서부터 그가 몸을 피하던 요새와 영지까지.

1 왕자는 마물 왕을 피해 계속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마물 왕은 1 왕자를 쫓는 동안 눈에 들어오는 인간들은 모두 죽여나갔다.

병사들이 보이면 병사들을 죽였고, 기사들이 보이면 기사를, 귀족이 보이면 귀족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이것은 요새도 영지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마물 왕에게 무너진 요새 하나에 영지가 두 곳이었다.

어느새 벌써 수십 년 전의 피해에 다가가고 있었다.

“자, 이제 어디로 갈까.”

“다들, 꺼리는 기색이 심해서…….”

그동안 잘 도망쳐 왔기에 1 왕자의 수하 귀족들과 기사들은 큰 피해를 보지 않았지만,

그를 받아들인 영지와 요새는 멸망에 가까운 피해를 보게 되었다.

거기다, 1 왕자의 일반 병력은 협곡 입구에서 마물 왕에게 쓸려버렸으니,

영지들이 문을 닫아걸어버리면 아군 영지의 문을 싸워서 열어야 하는 곤란함이 생길 수도 있었다.

“뭐, 슬슬 다 와 가니,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필요 없겠지.”

여태 피해를 준 것도 하나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지만, 왕자는 생색을 내는 것처럼 다음 목적지를 말했다.

“이제, 피센 후작가를 거쳐서 왕궁으로 가면 되겠지? 바로 왕궁으로 가는 것보다 후작에게도 슬쩍 발을 뺀 대가는 치러주어야 할 테니.”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1 왕자는 그를 쫓고 있는 마물 왕이 카를로스 왕족을 추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고, 왕족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가정을 하게 되었다.

2 왕자가 마물 왕을 빼낸 것도, 자신을 쫓아오는 것도 그런 이유일 거라고 믿었다.

그렇다면 왕궁으로 가면, 공주에게 이 귀찮은 마물 왕을 건네줄 수 있을 것이다.

수도에 모여 있는 반란 분자도 겸사겸사 처리될 거고, 나중에 쓸어버릴 수도의 인간들도 미리 처리할 수 있을 듯했다.

그러다가 마물 왕이 죽거나 봉인되어 주면 만족이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별 상관없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1 왕자의 목적은 왕위를 이어 왕국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복수가 그의 진정한 목적이었다.

그의 아버지인 왕으로부터, 어머니를 유폐한 다른 귀족들, 그리고, 이 나라의 모든 인간에게, 그는 복수할 생각이었다.

“가자, 동생의 선물을 여동생에게 안겨주러.”

그는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을 들으며 방을 나섰다.

방문 옆에는 이 영지의 영주가 목이 잘려 쓰러져 있었지만, 1 왕자도 호위 기사도 그 영주에게는 관심도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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