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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278화 (278/563)

제278화

제3편 추적 (2)

콰아아앙!

높은 성의 벽 한쪽이 터져나가고 그곳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

피투성이가 된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이었다.

성 밖으로 튀어나온 남자는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요새 전체가 시끄러워졌다.

“적이다!”

“달아난다! 쫓아!”

“불을 더 키워! 안 보여!”

“분명 이쪽으로 갔는데…….”

“놓쳤어! 안 보인다!”

“모두 장비를 갖추고 주변을 수색해!”

조금 전까지 축제를 즐기던 병사와 기사들은 이곳에 없었다. 다들 억지로 술을 깨고는 사방을 뛰어다녔다.

동시에 벽이 터져나갔던 곳으로도 기사들이 달려갔다.

“괜찮으십…….”

급하게 위로 올라와 방안을 들여다본 기사들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난장판이 된 방안.

그곳에는 시체 된 귀족들이 쓰러져있었다.

하나같이 이름을 날리던 쟁쟁한 기사이자 귀족들이었다.

다행히 살아있는 사람이 있었다.

피투성이의 남자. 거대한 덩치를 가진 기사였다.

그는 벽에 기댄 채로 들어온 기사들에게 으르렁댔다.

“당장, 추적자를 데려와라. 조금이라도 늦으면 전부 죽여버릴 거다.”

남자의 말에 기사들이 바로 튀어 나갔다.

평상시에는 덩치와 다르게 점잖은 기사단장이었지만, 저런 상태가 되면 말릴 수 없었다.

거기다, 쟁쟁하던 귀족들의 시체를 보았기에 기사들도 정신이 없었다.

기사들이 방을 빠져나간 뒤, 홀로 남게 된 덩치, 루트비히 기사단장은 방안을 둘러보았다.

그동안 그와 함께 수많은 일을 해왔던 동료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공국을 공격하는 기사단을 지원하기 위해 온 귀족들이지만, 실제로는 조직에서 계속 손을 맞춰온 조직원들이자 동료들이었다.

동료의 시체를 보며 루트비히는 이를 악물었다.

생각보다 적이 너무 강했다.

분명 조직의 상부에서는 적대하는 곳이 일종의 세력으로 보고 있었는데…….

세력이라고 보기에는 그가 상대한 자가 너무 강했다.

“설마, 혼자 움직이는 것 아냐?”

적 세력이 이런 자가 또 있으리라는 것을 믿기 어려웠다.

제국 쪽 사람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강한 자를 여럿 데리고 있는 세력이라니.

그런 세력이 있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물론, 그도 적도 죽기 직전까지 상처를 입힐 수 있었고, 결국 도망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동료들은 모두 죽고 혼자 남게 되었다.

이건 이긴 게 아니었다.

실패, 대실패였다.

함정을 팠는데, 적을 놓치고, 함정을 판 자신들이 거의 괴멸되다니.

조직의 다른 사람들이 듣게 되면 믿지도 않을 이야기였다.

“분명 갑자기 강해진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으면 이렇게 상황이 개판이 되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의 머릿속에 문득 한 물건이 떠올랐지만, 금방 고개를 저었다.

적의 손에 있을 물건이 아니었다.

그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시체가 된 동료의 몸을 뒤졌다.

다행히 멀쩡한 포션이 있었다.

그는 포션을 들이키고, 부서진 벽 앞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횃불들이 사방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다들 열심히 찾는 모양이었지만, 여기까지 감시를 피해 들어온 적이었다.

저런 식으로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행히 기사들은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금방 추적자를 데려온 것이었다.

그는 기사들이 데려온 남자를 보고 혀를 찼다.

언제나 봐도 추적자는 귀족답지 않았다.

잔머리나 굴릴듯한 쥐 상의 얼굴과 사방으로 눈을 굴리는 모습이 언제나 그에게 혐오감을 주었다.

지금도 피투성이의 방을 보고 기절할듯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은가.

신은 왜 저런 인간에게 그런 능력은 준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저 인간의 능력이 꼭 필요했다.

그는 피 묻은 자신의 검을 쥐 상의 귀족에게 건네주었다.

“놈의 피가 묻어있다. 추적해라.”

“……네.”

그는 조심스럽게 검을 받아 피 묻은 검날을 혀로 핥았다.

루트비히도 기사들도 그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목표한 대상의 신체 일부를 혀로 맛을 봐야만 목표를 추적할 수 있었다.

추적자라고 불린 남자는 검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금 놀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굉장히 신기한 맛입니다. 대단한데요.”

“맛은 관심 없다. 어느 방향이지?”

귀족에게 하는 말치고는 무척이나 무례한 말이었지만, 아무도 무례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추적자라는 남자는 평민 출신이었다.

희박한 확률로 얻게 된 능력 덕분에 귀족이 되긴 했지만, 다른 왕국보다 더 전통을 중요시하는 제국에서 그를 제대로 대우해줄 리가 없었다.

추적자도 익숙한 대우였던 바였으니, 그는 손을 들어 방향을 가리켰다.

추적자가 가리킨 방향을 보고 루트비히는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예상과 다른 엉뚱한 방향이었기 때문이었다.

“제국 쪽으로 가고 있다고?”

루트비히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바로 치료한다고 해도 살아날 수 있을지 알기 어려울 정도의 상처를 입혀놓았었다.

그런데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니.

설마, 가다가 길에서 죽을 생각이란 말인가?

“아니면, 추적을 피해 돌아서 갈 생각인 건가?”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지만, 루트비히는 그런 생각들을 털어버렸다.

상대가 무슨 생각이든 상관없었다.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는지도 상관없었다.

루트비히는 자신의 몸을 점검했다.

상처도 많고 피는 꽤 흘렀지만, 다행히 움직이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모두 동료들이 죽어가면서 적을 상대해준 덕분이었다.

그런 동료들에게 보답해야 했다.

“가자, 놈을 쫓는다. 지옥 끝까지 따라가 놈을 잡는다.”

그는 시체가 된 동료의 몸을 뒤로 하고, 성을 빠져나갔다.

기사들이 그의 뒤를 따랐고, 울상이 된 추적자가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

* * *

요새에서 북쪽으로 2km 정도 올라간 울창한 숲.

나는 커다란 나무에 기대어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내 몸 위로는 신검이 얹어져 있었고, 상처들은 점점 아물어가고 있었다.

“크윽. 이것도 한도가 있는 걸까?”

다만, 상처가 낫는 속도가 예상보다 느렸다.

통증은 전보다 더 심해졌고.

신검도 만능이 아닌 모양이었다.

너무 자주 써서 그런 건지, 횟수가 늘어나면 효과가 줄어드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신검을 믿고 날뛰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래도, 결국 상처는 아물었다.

나는 어질거리는 정신을 붙잡고, 배낭에서 먹을거리를 꺼냈다.

말린 육포와 염소젖.

맛있는 식사는 아니었고, 이걸 먹을 장소와 시간도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요새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느라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거기다 치료를 하느라 영양분도 많이 써버렸고.

지금 나는 배가 고파서 죽을 것 같았다.

음식을 배 속에 꾸겨 넣으며 나는 먼지투성이가 된 배낭을 쳐다보았다.

다행히 배낭은 멀쩡했다.

그래도, 이 배낭을 가져온 것은 잘못이었다.

시체를 담기에는 좋았지만, 배낭을 메고 싸우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유물 배낭 말고도 유물 주머니도 있었으니, 지금은 이 배낭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을 듯했다.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 배낭을 땅에 묻었다.

위치를 기억하기 어려운 곳이었지만, 어차피 상관없었다.

요새에도 저렇게 무서운 함정을 깔아놓았는데, 대공녀가 있는 곳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함정을 판 자들의 실력을 보니, 대공녀를 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공작령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나와의 약속도 있었지만, 아직 확인해야 할 게 남아있었다.

“그래도 얼굴은 봐야겠지.”

대공녀도, 일을 벌인 놈들도.

이제 슬슬 놈들과 얼굴을 마주 볼 때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뒤를 돌아보았다.

멀리 요새 쪽에서 마나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마나는 이쪽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를 쫓는 자들이었다.

마나는 정확하게 내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저건 내가 있는 곳을 아는 움직임이었다.

“추적 능력자인가…….”

머릿속을 보는 능력자도 있으니, 사람을 추적하는 능력자도 있을 만했다.

“저것도 체크해둬야겠네.”

머릿속을 보는 능력자 정도는 아니었지만, 저 추적자도 위험한 능력자였다.

저런 능력자는 살려둘 수 없었다.

점점 다가오는 마나를 확인하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평범한 기사들이 말을 타고 이런 숲에서 나를 쫓을 수는 없었다.

뒤따라오던 마나가 점점 멀어졌다.

숲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숲이 끝나고 이어진 벌판.

이곳부터는 진정한 제국의 땅이었다.

다행히 벌판이 나온 덕분에 대공녀를 찾기가 쉬워졌다.

넓은 들판에 세워진 천막은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세운 천막일 수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다가가니 대공녀가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천막 안에서 대공녀의 마나가 흘러나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천막으로 다가갈 수가 없었다.

천막 안에는 대공녀 말고도 다른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마나를 뿜어대고 있는 기사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사들 이외에 희미한 마나를 뿌리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옅은 마나였다.

하지만, 나는 그 마나에 충격을 받았다.

저 희미한 마나는 내가 마나를 숨기는 것처럼, 일부러 숨긴 마나였다.

그것도 나보다 훨씬 더 잘 숨기고 있었다.

거기다, 그 희미하게 흘러나오고 있는 마나는 무척이나 정돈되고 깔끔했다.

마나를 볼 수 있는 나는 그 마나가 얼마나 노력하고 가공된 마나인지, 나는 알 수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아름다운 마나였다. 왕국 어디에서도 이런 마나를 본적이 없었다.

“괜한 마중인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아니었군.”

그리고, 천막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백 미터 이상 떨어진 천막이었지만, 바로 앞에서 들려온 것 같았다.

이것도 정교한 마나 운용술 덕분이었다.

천막이 열리며, 기사들이 뛰쳐나왔다.

그들은 사방을 둘러보다가 멀리 떨어져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놀란 표정의 기사들.

기사들은 표정을 굳히고, 천막 앞에 늘어섰다.

“정말 재미있어. 이런 일이라면 매번 도와줘야겠는걸.”

이어서 즐거운 목소리가 들려오고, 천막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중년의 귀족과 초췌한 모습의 대공녀.

그리고, 그가 밖으로 나왔다.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마나는 숨기고 있지만, 내 감각이 모두 내게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처음 보는 강한 사람이라고.

어쩌면 수련 검 속에 있는 20살 용사와 비견될 수 있는 강자.

그레시아 공작도, 왕실 기사단장도 저렇게 강하지 않았다.

왕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강자.

웃기는 일이었지만, 나는 그를 보고 웃고 말았다.

한참 동안 능력이 정체되어 있었는데, 저런 강자가 나타나 주다니.

다른 사람이라면 좌절했겠지만,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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