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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273화 (273/563)

제273화

제23편 확전 (1)

2 왕자가 떠난 뒤, 수도는 갈수록 피폐해져 갔다.

기사단장과 왕실 기사들까지 나서서 치안을 잡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원래 치안을 담당했던 치안대는 왕세자의 군대로 재편되었고, 지원을 온 귀족들의 영지병들과 용병은 수도의 분위기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물가는 오르고, 치안도 불안해진 덕에 거리는 갈수록 한가해져 갈 뿐이었다.

다만, 그런 황량한 분위기 가운데 활발하게 움직이는 곳이 있었다.

1 왕자의 병력이 모여있는 수도의 서문 앞이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온 부대들인 만큼 사고도 잦고, 협력도 안 되었지만, 그래도 활기는 차 보였다.

그 모습을 둘러보던 왕세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발대는 내일 출발한다. 그리고 바로 본대가 따라붙는다. 나도 본대와 같이 움직일 거고.”

왕세자의 뒤를 따르던 귀족들이 왕세자의 말에 깜짝 놀랐다.

“아직, 병력이 다 모이지도 않았습니다. 함께 훈련도 하지 않았는데…….”

“아직, 수도 안정화도, 주위 귀족들의 협력도 전부 받지 못했습니다. 지금 움직이면 후방이 불안합니다.”

“좀 더 정찰이 필요합니다. 2 왕자 쪽 사정을 좀 더 확인해 봐야 합니다.”

“공국도 그레시아 공작 쪽도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반대하는 의견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이제 도착해서 피곤이 풀리지 않았던 귀족도 있었고, 정말 걱정이 되어 왕세자를 말리던 귀족도 있었다.

그렇지만, 수도에서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귀족도 있었고, 괜히 움직여서 병력을 잃을까 봐 걱정하는 귀족도 있었다.

귀족들은 여러 가지 속셈이 있었지만, 의견은 모두 같았다.

아직 출발할 때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귀족들의 말에 왕세자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자신의 말에 반박하는 귀족들에게 차근차근 대답해주었다.

“벌써 며칠째인데, 그 모이는 병력은 언제 다 모이는 건데.”

“그리고, 수도 안정화는 가능하긴 한 거야? 내전이 끝나지 않은 한 시간이 지날수록 더 엉망이 될 뿐일걸?”

“거기다, 아직 협력하겠다고 연락 안 온 놈들은 계속 눈치 보겠다는 놈들이야. 내가 이겨버리면 바로 협력할 박쥐 같은 놈들일 뿐이야.”

“정찰 내용은 가면서 받으면 돼, 공국이나 공작 쪽은 신경 쓸 필요 없고.”

뒤로 갈수록 무신경한 대답이 되어갔지만, 이 정도면 왕세자치고는 친절하게 대답한 것이었다.

거기다, 나름 틀리지 않은 대답이었고.

“그건…….”

그래서였을까. 반박하던 귀족들의 말문이 한순간에 막혀버렸다.

“이 정도면 많이 기다려줬어. 서쪽 땅으로 도망간 동생 놈이 자리를 잡기 전에 끝내야 해.”

왕세자는 계속 성질을 죽이며 지금 움직여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했다.

결국,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던 귀족들은 다른 부분을 걸고넘어졌다.

“그럼 직접 나서지 마시고, 다른 사람에게 맡기시는 게…….”

그 말에 왕세자는 코웃음을 쳤다.

슬슬 참는 데 한계가 온 것인지 왕세자의 목청이 커졌다.

“누구한테 맡기라는 거야? 다니에르도 모레나 자작도 죽었어. 부단장 알바로는 왕실기사단장을 견제해야 할 테고, 설마 욕심만 가득한 귀족분들에게 맡기라는 것은 아니겠지?”

왕세자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뒤를 따르던 귀족들을 훑어봤다.

자신들을 무시하는 말이었지만, 귀족들은 서로 눈치를 볼 뿐이었다.

왕세자에게 무시를 당하는 편이 다른 귀족이 사령관으로 나서는 것보다 나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누군가 겨우 입을 열었지만, 왕세자는 손을 저었다.

“시끄럽고. 당장 출발해. 준비되지 않은 놈들은 뒤에 따르라고 하고. 제일 늦게 오는 놈들은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알아서 생각하면 될 테고.”

왕세자의 으르렁거리는 말에 다들 입을 닫았다.

성질이 나기 시작한 왕세자에게 반박했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결국, 수도에 모인 왕세자의 군대는 다음날부터 서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문은 순식간에 왕국 전체에 퍼져나갔다.

* * *

열심히 세력을 일구던 2 왕자도 금방 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쾅!

2 왕자가 힘껏 책상을 내려치자, 책상에 쌓여있던 서류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벌써 움직였다고?”

“네. 본대까지 서쪽으로 움직이고 있답니다.”

늙은 장군의 말에 2 왕자는 버럭 화를 냈다. 평상시 같으면 예의로 대했겠지만, 이런 소식을 듣고 본성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미친 건가! 제대로 병력도 모으지 않고 날 치러온다고?”

병력을 모으고, 진영이라도 갖추려면 한두 달은 금방 넘어갔다.

자신들도 이제야 병력을 재배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벌써 움직이다니.

분명, 1 왕자는 진영 훈련은커녕 귀족들을 데려온 그대로 병력을 이끌고 오고 있을 게 분명했다.

정상적인 통솔자라면 절대 하지 않을 미친 짓이었다.

“아니. 그 미친놈한테 물려서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거였지.”

2 왕자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미친 짓도 그게 성공하게 되면 기책이 되는 법이었다.

이번 일도 1 왕자의 기책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이번에는 그렇게 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름 대비도 했었다.

“당장 공국과 그레시아 공작에게 전령을 보내. 수도를 칠 기회라고.”

솔직히 상대로 여겨지지도 않고, 신경 쓰기도 귀찮은 대상들이었지만, 지금 같은 때에는 오히려 도움이 되는 세력들이었다.

“내가 최대한 붙들고 있을 테니, 먼저 수도를 점령해 달라고 해.”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멀찌감치 물러서 있던 참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차피 잠시 맡겨두는 거야. 그리고, 수도가 털릴 것 같으면 미친놈도 병력을 물리겠지. 우선 그때까지만 버티면 돼.”

2 왕자는 서류로 난장판이 된 회의실을 벗어나 밖으로 나갔다.

이곳은 목책으로 둘러싼 서부 왕국군의 한 요새였다.

크지 않은 요새가 영지병과 기사들로 가득했다.

사방에서 모여든 병력과 기사들이었다.

아직 배치가 다 끝나지 않았고, 왕국군과 귀족들이 다 모이지 않았지만, 시간은 그의 편이었다.

최대한 버티며 세력을 키우기만 해도 이 왕국은 2 왕자, 자신의 것이었다.

그날, 2 왕자의 병력은 배치를 중단하고, 1 왕자의 병력을 상대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두 왕자가 서로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 나는 막 공작령에 돌아왔다.

공작령에 도착해 보니, 출발 준비가 한창이었다.

수많은 깃발이 성문 밖 벌판에 휘날리고 있었고, 벌판에 펼쳐져 있던 숙영지들은 전부 사라진 뒤였다.

그 대신, 영지병과 용병, 기사들이 대열을 갖추고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성안 도시도 소란스러웠다.

성 밖으로 달려가는 용병도 보였고, 마지막까지 작별 인사를 나누는 연인과 가족들도 보였다.

그런 광경을 보며, 발레아와 나, 그리고 기사단은 저택으로 말을 달렸다.

공작가의 저택도 소란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공작가의 기사단은 이미 떠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귀족들이 저택 안마당에 모여있었다.

정원과 앞뜰을 가득 메운 귀족들. 그들은 모두 출발 준비를 마친 모습이었다.

고급스러운 갑옷을 입은 귀족도 보였고, 휘황찬란한 외출복을 입은 귀족도 있었다.

멋지게 장식된 말도, 튼튼하지만 화려하게 보이는 마차도 보였다.

성 밖에 있는 병력을 보다가, 여기서 겉멋이 가득한 귀족들을 보게 되니, 자기도 모르게 혀를 차게 되었다.

귀족들이 여기에 모여 있는 이유가 있었다.

한창 공작이 연설하고 있었다.

저택 문 앞에 작은 연단이 만들어져 있었고, 그 위에 사람들이 올라가 있었다.

지금은 공작 차례.

연단 옆에 서 있는 공주의 얼굴이 발갛게 변한 것을 보니, 이미 공주는 한차례 연설을 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이 왕국의 왕실을 수호하기 위해 수도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연단을 보니, 공작 다음에도 연설할 귀족들이 더 있는 것 같았다.

하여간 어느 시대, 어느 세상이든 이런 관습은 사라지지를 않는 모양이었다.

그나마 병사들과 기사들 앞에서 이런 행사를 하지 않는 것은 다행이었다.

우리는 정문 앞에서 예식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잠시 뒤, 출정 예식이 끝나고, 귀족들이 저택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옆으로 비켜선 우리들에게 신경도 쓰지 않았던 귀족들이었지만, 그들 중에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지나가던 귀족들이 나를 보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혐오스러운 눈으로 보는 귀족도 있었고, 호기심으로 쳐다보는 귀족도 있었다.

어떤 귀족은 꺼림직하게 여기는 모습이었고, 특이하게도 무서워하는 귀족도 있었다.

귀족들이 나가고, 저택에는 공주 일행과 이 저택의 가족들만 남게 되었다.

기사들은 전부 다른 기사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고, 나는 먼저 공주에게 인사를 했다.

“다녀왔습니다. 다행히 늦지 않았습니다.”

“고생하셨어요. 그런데 쉬지 못하고 바로 움직이게 되어서 어떻게 해요.”

공주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렇다고 다들 움직이는데 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죠.”

나는 어깨를 으쓱했고, 옆에서 발레아도 밝게 인사했다.

“저도 왔어요!”

“고생하셨어요.”

공주도 발레아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나는 공작 앞으로 걸어갔다.

이번 일은 공작의 지시로 한 일이었다. 미겔이 따로 보고하겠지만, 나도 공작에게 보고는 해야 했다.

“늦었군.”

확실히, 조금만 늦었어도 길이 어긋났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보자마자 질책이라니. 공작답다면 공작다웠다.

“목록에 적힌 영지는 모두 확인했습니다. 전부 공주님을 지지한다는 연판장에 서명했고, 영지 사정으로 지원이 어려운 영지를 제외하고, 전부 식량과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나도 담담히 그동안의 일을 보고했다.

“전부라…….”

공작은 내 말을 잠시 되뇄다.

그 뒤에, 공작은 그답지 않게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마리아는……. 어떻게 되었지?”

공작은 둘째 공작부인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하기야 기사단도 들리지 못했으니, 공작도 사정을 모를만했다.

“돌아가셨습니다. 무리하게 능력을 되살리는 바람에 정신적으로 무너져버렸고, 이비사 자작이 직접 정리하셨습니다.”

공작은 잠시 입을 다물고 서 있다가 겨우 대답했다.

“……결국, 그렇게 됐군.”

공작은 영지가 엉망이 된 것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기야, 공작이 아내를 돌려보내고 신경을 안 쓰고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그는 아내의 뒤처리를 나에게 맡긴 것과 다르지 않았다.

예상했지만, 역시 지독한 인간이었다.

예전부터 기대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닐뻔했다.

“알았다. 수고했다. 너도 부대에 합류하도록.”

“알겠습니다.”

부자간의 대화라고 여겨지지 않을 대화를 마치고, 나는 다시 공주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공주와 그레시아 공작의 군대는 영주령을 떠났다.

하지만, 그 부대는 수도로 향할 수 없었다.

부대는 황당하게도 서쪽이 아닌 동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동쪽에 있는 이피로스 왕국의 군대가 왕국을 침공했다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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