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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263화 (263/563)

제263화

제13편 만찬

무릎 꿇은 백작과 그것을 지켜보는 공주.

많은 사람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백작이 바로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지만, 공주는 모두가 듣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왕국의 군대가 왕국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녀는 무릎 꿇은 백작을 보는 대신, 이 광경을 지켜보는 병사와 영지민들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저희가 이 요새를 찾아온 것은 왕국을 지키는 병사들을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직 10대 초반의 소녀가 하는 말이라서 그런가? 공주의 말에는 가식이 느껴지지 않았다.

“먼저, 여러분이 저를 지원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습니다.”

공주가 힘있게 말을 이어가자, 벤자민 선배의 한숨이 들려왔다.

기껏 준비한 계획이 공주에 의해 틀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려나.

“왕국의 모든 왕국민과 왕실은 여러분이 이 요새와 왕국을 지켜주신 것에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은 요새를, 이 왕국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진심이든 아니든, 그녀의 말은 모두의 가슴을 울렸다.

“우리는 이 요새가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 언제라도 돕기 위해 찾아오겠습니다.”

공주는 모두를 보며 가슴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나도, 호위 기사들도, 기사단도 차례로 그녀의 뒤를 따라 가슴에 손을 올렸다.

기사의 맹세였다.

공주는 가슴에 손을 올린 채로 자신의 말을 마무리했다.

“왕국은 우리가 안정화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마물에게서 이 왕국을 지키는 것처럼 우리가 혼란스러운 이 왕국을 원래대로 돌리겠습니다.”

공주의 연설이 끝나고, 모두 가슴에서 손을 내리는 순간, 천지를 떠나갈듯한 함성이 울렸다.

“카를로스 왕국 만세!”

“아이샤 공주님 만세!”

“소로카 요새 만세!”

요새를 지키던 왕국군이, 요새에 갇혀 있었던 영지민들이 외치는 소리였다.

공주의 연설이 무척이나 훌륭하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이렇게 큰 함성을 끌어낼 수는 없었다.

다른 것보다 그 연설을 한 것이 이 나라의 왕족인 아이샤 공주라는 점 때문이었다.

이 요새의 오랜 설움을 공주가 드디어 풀어준 것이었다.

아마도 이 요새 사람들은 왕실의 감사와 사과를 한 번도 제대로 듣지 못했을 것이었다.

특히 2 왕자의 강압적인 철수 요구는 요새에 있는 사람들의 불만을 더 키웠을 터였다.

그 와중에 공주의 감사는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댕겼던 것이다.

함성은 오랫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도시 안쪽까지 이야기가 퍼져나가면서 더 커져 나가는 것 같았다.

이 함성이 시간이 지나면, 술자리의 이야기가 되고, 음유시인의 노래가 되는 거겠지.

함성이 사그라지기 전에 무릎을 꿇었던 백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작이 눈을 들자 그의 눈이 붉어진 것이 보였다.

백작마저도 공주의 말에 감동한 모양이었다.

미디어가 없어서였을까. 이 세상 사람들은 전생보다 쉽게 감동하는 듯했다.

그래서, 선동하기도 훨씬 쉬운 것 같고.

하기야, 이런 세상이어야 사람들이 따르는, 영웅이나 용사가 나올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런 세상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백작이 붉어진 눈으로 공주를 안내하고, 우리도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길 주변으로 함성이 끊이지 않았고, 어디서 구했는지 사방에서 꽃잎이 뿌려졌다.

대단한 환영 덕분에, 전쟁에서 승전한 기사단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공주의 뒤를 걷고 있으니, 벤자민 선배가 옆으로 다가왔다.

“이게 이렇게 풀릴 줄 몰랐군. 공주님의 말씀 때문에 간 떨어질 뻔했어.”

오히려 나보다 능구렁이 같은 부분도 있었던 벤자민이었지만, 사람의 감성을 움직이는 쪽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았다.

하기야, 전생에서도 제대로 된 군중 선동은 2차 세계대전쯤에 제대로 등장했었다.

미디어가 발달하지 못한 이 세계에서는 그쪽 분야는 약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백작과 같이 걸어가는 공주를 바라보았다.

공주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가식도 보이지 않았고, 얼굴이 조금 붉어지긴 했지만, 그것은 방금 꺼낸 말이 부끄러워서인 것 같았다.

공주님도 진심으로 한 이야기이고, 모두 기뻐하고 있으니, 선동이나, 심리 조작 같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 게 좋을 듯했다.

아쉽게도 전 왕실 기사단 부단장이 죽은 것만으로 포위하고 있던 병력이 물러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부대를 한참 뒤로 무른 것으로 보니, 바로 공격할 것 같지도 않았다.

우리는 먼저 그레시아 공작령에서 가져온 식량을 요새에 풀었다.

공작가에도 내 배낭보다는 작지만 유물 가방이 있었다.

그 가방에 가득 담아온 식량이 요새에 풀려나갔고, 포위망 때문에 식량 수급이 좋지 못했던 요새는 오랜만에 풍족한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백작의 저녁 식사에 초대되었다.

만찬이라고 부르기에는 검소한 식사였지만, 많은 사람이 모여 즐겁게 음식과 술을 먹고 마셨다.

공주도, 벤자민도, 다른 기사들과 호위 기사들도 요새의 귀족과 기사들과 즐겁게 식사했다.

공주의 호위 기사였던 나는 공주 가까운 곳에 앉아 있었다.

즐거운 모습들을 보며 음식을 먹고 있는데, 한참 공주와 이야기를 나누던 백작이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그는 내 잔에 술을 가득 담으며 말했다.

“전에 보았을 때도 느꼈지만, 정말 훌륭한 공주님이네. 어떻게 형제가 그렇게 다른지…….”

백작이자 요새 사령관은 공주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까 말씀 하셨을 때도 정말 감동했었지. 왕족, 그것도 계승 순위가 있으신 왕족께서 우리에게 감사하신 적이 있었는지……. 이건 감동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지.”

그는 술을 들이켜고는 말을 이었다.

“훌륭한 연설이고, 감동하기도 했지만, 그것 때문에 공주님 쪽에 서기로 한 것은 아닐세.”

왜, 나에게 와서 공주님 칭찬을 했나 했더니, 지금부터 할 이야기 때문이었나…….

“공주님에게 의탁하려고 한 것은 전부터 결정했던 일이네. 자네와 공주가 찾아왔을 때부터. 마물들을 제국 쪽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보았을 때부터 말일세.”

하긴, 공주님의 연설 전에도 백작은 조건을 대기는 했지만, 공주 쪽에 서겠다고 말을 했었다.

다행히 그 생각은 공주의 연설 뒤에도 달라지지 않은 듯했다.

그런데, 마물을 제국으로 밀어붙였다고?

그때는 분명 제국인들이 우연히 안 나타났다고 말한 것 같은데……. 안 통했었나?

“계약 때문인지, 아들에게 제대로 듣지는 못했지만, 내가 이 요새를 지킨 지 얼마인데, 그런 상황을 파악하지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때는 그냥 믿어주는 척을 했던 것일까?

역시, 옆에 있는 사람에게 계약하게 하더라도 비밀이 확실하게 지켜지기는 어려운 것 같았다.

“정확한 방법은 모르지만, 제국군들이 마물들을 막아내지 못한 것은 자네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네.”

그래도, 계약의 효과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거기다, 오늘 본 대결은 그냥 자네가 제국군을 다 죽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지.”

확실하게 사람들에게 각인을 시키기 위해 나선 일이었고, 백작을 보니, 그 효과가 확실했다.

백작을 진실에 근접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백작은 잔을 들어 올렸다.

“솔직히, 내가 공주님의 손을 들어준 것은 자네가 있고, 뒤에 있는 그레시아 공작과 그 세력 때문일세. 1 왕자 2 왕자 세력이 강대하다지만, 그레시아 공작도 쉽게 지지는 않을 테지.”

확실히, 어린 공주만으로 그런 결정을 내릴 리가 없었다.

내전에서는 중립이 있을 수 없으니, 최대한 피해가 적을 진영에 가담한 것일 뿐이었다.

“다만, 공주님의 연설을 듣는 동안에는 그런 계획들이 모두 머릿속에서 지워졌었네.”

“이 영지를 지키는 영주와 왕국군의 장군으로서는 이성적으로 공주의 진영에 들어가기로 했지만, 기사로서의 나는 그 순간 공주님에게 반했다네. 기사의 충성은 믿어도 좋을 걸세.”

그는 껄껄 웃더니,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백작이 내게 온 것은, 공주에게 말하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을 공주와 친한 내게 말하기 위한 것일 터였다.

예상치 못한 행동이었지만,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저녁 식사가 술자리로 변해가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소란스러운 자리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때마침, 좀 전에 시켰던 지시대로 고용인이 음식을 가져왔다.

큰 쟁반에 담겨진 식사.

“혹시 따로 드려야 할 분이 있으면 저희가 전달하겠습니다.”

고용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다른 이들이 보게 할 수는 없었다.

다른 이들이 봐도 상관없다면 저녁 식사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나는 쟁반을 들고, 식당을 빠져나갔다.

나는 큰 쟁반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가며 저택의 지하로 향했다.

계단을 내려가, 텅 빈 지하 창고를 지나, 오크통이 가득한 곳에 도착했다.

서늘한 지하실.

나는 입구에 있는 오크통을 두드려보았다.

통. 통.

과거에는 술이 가득 차 있었을 오크통이었지만, 지금은 텅 비어있었다.

슬쩍 마나를 뿌려 주위를 살피니 다른 오크통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서늘한 창고 중앙 바닥에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발레아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발레아 곁으로 다가갔다.

능력까지 사용해서 조심스럽게 움직였지만, 아쉽게도 옆에 서기 전에 발레아가 눈을 떴다.

“오셨어요?”

하기야, 영역을 만들고 있는 발레아의 눈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것도 안 드셨을 것 같아서, 먹을 것을 가져왔습니다.”

나는 그녀 앞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쟁반 위에 흘린 흔적은 없었다.

발달한 감각과 신체 능력 덕분이었다.

만족한 얼굴로 발레아를 바라보았지만, 발레아는 쟁반 위의 음식 대신,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여기에 있는 줄 알았어요?”

“아픈 것 같지도 않고, 자신의 할 일을 외면하는 사람도 아니니, 미리 영역을 만들 준비를 하려고 할 거라고 생각한 거죠. 영역을 만들기 제일 좋은 곳은 지하인 것 같았고…….”

이바나의 저택에 잠입했을 때도 발레아는 저택 지하실에 남았었다.

더구나, 발레아의 영역은 이제 익숙했다. 그 중심을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발레아가 내 대답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뭔가 다른 말을 꺼내야 했다.

“너무 어둡지 않나요?”

전에도 느꼈지만, 이 어두운 지하실에 발레아 혼자 남겨지는 것은 그리 마음에 드는 일이 아니었다.

내 말에 발레아는 미소를 지었다. 어둠 속에서 살짝 보이는 미소.

그 미소는 주변의 어둠처럼 무척이나 어두워 보였다.

발레아는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이렇게 지하에 앉아서 영역을 만드는 것은 저에게는 평범하고 당연한 일이었어요. 우리 집을 철옹성으로 만든 것도 그렇게 매일같이 제가 구축을 했기 때문이고.”

그 집의 무서움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뒤에 습격한 강도들 말고도, 나 자신도 그 집에서 죽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는 익숙해요. 식사는 감사히 받겠어요.”

발레아는 내게 고개를 숙이고, 다시 말했다.

“먼저 올라가세요. 너무 넓은 영역이라 시간이 오래 걸릴 거예요.”

설마, 저택을 중심으로 요새 전체에 영역을 만드는 걸까?

그 정도는 솔직히 무리일 것 같았지만, 어쨌거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니, 자리를 비워줘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발레아에 말에 나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차피, 저녁 식사는 술자리로 변해 있었고, 급하게 나를 찾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끝날 때까지 같이 있죠. 여성을 보호하는 것은 기사의 중요한 책무입니다.”

내 말에 발레아가 피식 웃었다.

다행히 이번 웃음은 좀 전처럼 어둡지 않았다.

발레아가 나를 바라보았다.

“아세요? 제가 영역을 만들 때 옆에 같이 있어 준 사람은 공자님이 처음이라는 걸.”

어둠 속에서 발레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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