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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262화 (262/563)

제262화

제12편 기사 알렉스 (3)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힘든 시절이 닥쳤을 때, 아이들의 동화책에서, 사람들이 소망으로 이야기하던 것이 ‘용사의 재림’이었다.

지금, 얼추 갖춰가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이게 이야기책에 나오던 ‘용사의 재림’인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글쎄요……. 그건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네요.”

나는 대검을 치켜들었다.

“안돼!”

“멈춰!”

포위하고 있던 병력 쪽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그리고, 앞에 서 있던 두 기사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앞에 있는 중년 기사와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기사들이었다.

‘제자 같은 건가?’

그들이 달려오자, 체념한 표정이었던 기사의 표정이 달라졌다.

“제발! 저들은 살려주길! 이런 곳에서 개죽음할 제자들이 아니네!”

정말 제자들이었던 모양이었다.

저들이 왕실 기사단을 떠나, 왕국군을 키우던 결과이려나.

스승이 죽을 것 같아서 달려 나오는 것은 이해가 되었다.

제자들이 죽을까 봐 걱정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쟁 중입니다.”

나는 그가 한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그런…….”

기사는 내 말에 멍하니 입을 벌렸고, 나는 대검을 휘둘렀다.

피가 솟구치고, 머리가 떨어졌다.

“스승님!”

비명 같은 목소리가 다가왔다.

나는 대검을 앞서 달려오는 기사에게 휘둘렀고, 이어서 작게 중얼거렸다.

“소환.”

단검이 손에 쥐어졌고, 그 단검을 뒤따라오던 기사의 목을 향해 던졌다.

서걱.

마나의 선이 앞서 달려오던 기사의 가슴을 베었다.

쓰러지는 기사 옆으로 쏘아지는 단검.

푹.

단검이 뒤따라오던 기사의 목에 박혔다.

기습이긴 했지만, 제자들은 스승과 달리, ‘마나 방출’도 내가 던진 단검도 막아내지 못했다.

두 기사는 스승이 죽은 자리까지 오지도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중년 기사가 쓰러지고, 두 제자가 죽는 동안, 주변은 조용했다.

우리 편도 적도, 요새도 모두 아무런 말도 없이 내 쪽을 보고 있었다.

나는 단검을 다시 소환한 뒤에 몸을 돌렸다.

구릉 위, 공주가 아직도 그 자리에서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피에 젖은 대검을 위로 치켜들었다.

“……와아아아아아!”

잠시 뒤, 구릉 위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

함성은 요새 쪽에서도 들려왔다. 잘 보이지도 않을 텐데, 용케 알아본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요새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대검을 땅에 박아 넣었다.

약속을 지키라는 시위였다.

요새를 포위했던 병력은 어쩔 줄 모르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구릉에서 말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벤자민 선배의 고함이 들려왔다.

“길을 비켜라! 결투의 결과를 무시할 생각인가!”

흥분한 모양인지, 목소리가 무척이나 들떠 있었다.

그의 외침이 먹힌 것인지, 적의 진영이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내 정면에 있던 병사들은 조금씩 좌우로 갈라졌다.

그리고, 기사단이 내려왔다.

“수고했어요.”

공주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자요. 피 닦아요.”

발레아가 수건을 건네주었다.

얼굴에도 피가 튀었나 보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감탄한 사람들과 의아해하는 사람들, 믿지 못하겠다는 눈을 하고 있는 귀족들까지.

나는 검을 뽑은 뒤, 공주 앞으로 걸어갔다.

말을 탄 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공주의 얼굴에는 감탄과 미안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다행히 공주는 아직 초심을 잃지 않고 있었다.

나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명령에 따라 적의 목을 베었습니다! 길이 열렸으니,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조금 오그라드는 말이었지만, 내 말에 모두의 기세가 확 살아났다.

“와아아아아!”

저 고함을 들으니, 이 정도 낯부끄러움은 참을 만했다.

나는 다시 일어나, 후안이 끌고 온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 공주 옆으로 말을 가져다 댔다.

이제 할 일은 다 했으니,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두고 볼 시간이었다.

“깃발 들고, 요새까지 행군합니다! 기사단 앞으로!”

“넵! 기사단 앞으로!”

공주의 명령을 미겔이 다시 기사단 전체에 전파했고, 기사단은 진형을 갖추고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술하게 벌어졌던 상대 진형이 다시 흔들렸다.

우리 앞에 있는 병사들은 이제 아예 옆으로 움직여 길을 만들었다.

통로가 점점 넓어졌다.

그렇게 포위망에 구멍이 났다.

적 진영에는 아직 기사들과 귀족 장교들이 남아 있었지만, 따로 명령을 내리지는 않고 있었다.

나에게 죽었던 기사가 제일 높은 장교였는지, 아니면 지휘부의 충격이 그만큼 큰 것이었는지…….

차라리 제대로 명령을 내려서 길을 비켜주었으면, 나름 명예로운 일이 될 수 있었을 터였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비켜주는 상황이 되어버리니, 공주의 이름만 높여주는 결과가 되어버릴 게 분명했다.

넓게 벌려선 채, 감탄하는 눈으로 기사들과 공주를 바라보는 병사들.

그 병사들을 통제하지 않고 우리를 지나가게 놔두는 장교들.

이 세상에서는 미담이 될 만한 멋진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마도 전생의 추악한 전쟁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테지.

다른 기사들과 달리, 조금은 씁쓸하게 말을 몰고 있을 때였다.

슈욱!

병사들 사이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내가 서 있는 곳과 반대 방향에서 날아온 녹색으로 빛나는 화살. 그 화살은 공주 얼굴을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검을 뽑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 다른 기사들의 반응도 너무 늦었다.

하지만, 그 화살은 공주에게 닿지 않았다.

터어엉!

공주를 감싼 반투명한 막에 막혀서 땅에 떨어진 것이었다.

그 막은 내가 펼친 것이었다. 전처럼 화살 하나만 막고 바로 사라져버린 막이었지만, 공주를 보호하는 데는 충분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화살이 날아온 곳을 바라보았다.

급하게 고개를 숙였지만, 내 눈, 감각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동안, 웃긴 일이 벌어졌다.

미로, 악셀 기사가 급하게 공주 옆으로 말을 붙이고, 기사들이 검을 뽑는 사이,

병사들 사이로 몸을 숨겼던 자가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어이없게도 그의 앞에 있던 다른 병사들이 옆으로 몸을 피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훤하게 드러나게 된 범인은 들고 있던 쇠뇌를 떨구고 뒤로 달아났다.

제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귀족 장교였던 것 같았다.

“성공했으면 나름 좋은 방법이었을 텐데, 아쉬웠겠어.”

어느새 다가온 벤자민 선배의 말에 급하게 마나를 둘러 방음벽을 펼쳤다.

여기는 적진 한가운데였다.

이런 곳에서 암습을 한 적을 칭찬하다니.

도대체 생각이 없는지, 답이 없는지 모를 사람이었다.

“그런데 실패하고 저렇게 달아나면 어쩌라는 건지. 실패했으면 자결을 하든지, 달려들어서 죽든지 해야 길을 막을 수 있을 거잖아. 저렇게 도망치면 공주님 명예만 더 올라갈 게 뻔하잖아.”

확실히 벤자민 선배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아니 나보다 더 현실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른 귀족들이었다면 명예를 모른다고 욕이나 먹을 만한 생각이었다.

“말을 조금 조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쓸모가 있는,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다. 괜한 말실수로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걱정하지 마. 네 앞에서만 하는 말이야. 이런 내 생각은 공주님 앞에서도 말을 안 하니까.”

내 앞에서는 왜?

내 얼굴에 의문이 다 드러난 모양이었다.

“내가 사람을 관찰하는 취미가 있었거든. 그래서 공주님을 선택한 거기도 하고. 공주님을 선택한 이유 중에 네가 반 이상을 차지해.”

설마, 내가 숨긴 비밀들을 들킨 걸까?

“서자라서 그런지, 명예를 우선시하는 귀족들과 달리, 실리를 볼 줄 알고, 그러면서도 주위 사람은 잘 챙기는 것을 보니까, 같이 해도 될 거로 생각했지.”

선배는 말 위에서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멀리, 구릉 중턱에 기사 셋이 누워있을 터였다.

“그런데, 이렇게 잘 싸울 줄이야……. 대단하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엄청날 줄 생각도 못 했단 말이지.”

다행히 내 비밀들을 들킨 것은 아니었다.

이제 슬슬 주변에 알릴 생각이긴 했지만, 전부 알릴 생각은 없었다.

‘사자 회귀’나 ‘마나 감응력’처럼 주위에 소란을 일으킬 만한 비밀들은 친한 동료에게도 알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거, 계획을 다시 짜야겠는데. 네가 너무 강해서 기존에 세웠던 계획이 다 엉클어졌어.”

벤자민 선배는 주위를 둘러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투덜거리고 있었지만, 표정은 밝은 것을 보니, 새로 세울 계획은 그전의 계획보다 좋을 듯했다.

벤자민 선배의 투덜거림이 끝난 것 같자, 나는 방음벽을 거뒀다.

때마침, 기사단은 적의 진영을 지났다.

이제 눈앞에 보이는 것은 단단해 보이는 요새의 성벽밖에 없었다.

그 성벽 중앙에는 단단해 보이는 성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벤자민 선배가 다시 한번 연설을 해야 하나 했는데, 다행히 그럴 필요는 없었다.

성벽 위에서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라!”

전에 들었던 목소리, 백작의 목소리였다.

우리가 요새 앞에 도착하기 전에 성문이 활짝 열렸다.

성벽 위에서 창을 들어 올리는 병사들과, 열린 성벽 양쪽에서 서서 검을 치켜든 기사들.

그리고, 길에 나와 환호하는 도시의 민간인들.

요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를 환영했다.

그것은 소로카 요새의 사령관이자, 이 요새 도시의 영주인 바로드 백작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성벽에서 내려와 말에서 내린 공주 앞에 멈춰 섰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공주에게 예를 올렸다.

전에 왔었을 때는 하지 않았던 예절이었고, 평범한 공주에게는 하지 않아도 되는 인사였다.

그 말은 바로드 백작은 공주를 왕국의 후계자 중 하나로 인정을 한다는 말이었다.

그건, 이곳까지 공회에서 벌어진 일이 알려졌다는 뜻이었고, 책략을 쓰지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억눌린 목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저희 소로카 요새의 병력은 봉인지에서 떠난 마물들을 왕국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수문장입니다. 그동안은 그 일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우리의 책임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공주도 나도 마물들과 싸우는 요새의 병사와 기사들을 보았었다.

그리고 공주는 그들과 같이 싸웠었다.

“하지만, 2 왕자는 요새의 병력을 빼내 자신들의 군대에 합류하라고 했습니다.”

“저런 XX이…….”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아무리 내전이 중요하다지만, 이건 현지 사정을 전혀 고려치 않는 명령이었다.

내전을 하자고, 전선을 지키고 있는 병력을 빼돌릴 생각을 하다니.

이건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저희는 수백 년 동안 내려온 책임, 그리고 영지민을 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거부를 한 것일 테고, 화난 2 왕자가 저렇게 병력을 보내 요새를 포위한 것일 터였다.

식량과 자원이 부족한 요새 사정을 알고 있었을 테니. 배고프게 만들어 말을 듣게 할 생각이었을까?

백작은 소녀에게 고개를 숙인 채로 목청을 높였다.

“저희가 이곳에 계속 머물게 해주신다면 저희 소로카 요새와 북동부 왕국군은 공식적으로 공주님을 지지하겠습니다.”

나쁘지 않게 들렸지만, 다르게 보자면, 왕족을 상대로 거래를 하겠다는 말이었다.

곱게 받아들일 수도, 화를 낼 수도 있는 말이었다.

공주를 봤다.

나도, 기사들도, 요새의 사람들도. 모두 공주를 쳐다보았다.

공주는 고개를 숙인 백작을 보고, 발레아를 보고, 벤자민을 보았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아무런 말도, 고갯짓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공주가 결정할 일이었다.

공주는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담대하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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