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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259화 (259/563)

제259화

제9편 다시 소로카 요새로

작은 키의 공주 주변에 판금 갑옷을 차려입은 백 명이 넘는 기사와 종자들이 말을 타고 서 있으니, 굉장한 박력이 느껴졌다.

기사 중에는 아는 얼굴도, 모르는 얼굴도 있었다.

그레시아 공작가의 기사들 외에도 다른 영지의 기사들이 함께 온 모양이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갑옷 대신에 고급스러운 여행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지원을 온 지방 귀족들인 것 같았다.

공주 옆에는 두 명의 기사가 호위를 서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아카데미 기사였던 악셀과 미로 기사였다.

그리고, 공주 옆에는 또 한 명 아는 사람이 있었다.

벤자민 선배였다. 다행히 늦지 않게 찾아온 모양이었다.

나는 먼저 공주에게 인사를 했다.

옆에서 발레아도 같이 인사를 했지만, 레스티는 이미 일행을 따라온 용병들 사이로 들어가 버렸다.

“다녀왔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전보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다행히 공주의 얼굴에는 공회 때 보여 주었던 의지가 남아 있었다.

다행히 공작가에서 잘 지낸 모양이었다.

“다들 친절했지만, 특히 아만다 공작부인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나에게 말하고 있어서인지, 공주는 내 어머니를 공작부인이라고 말해 주었다.

공주의 말을 듣게 된 젊은 귀족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한심한 자들이었다.

전 같았으면 그런 자들을 잘 기억해 두었겠지만, 지금은 관심도 가지 않았다.

대신, 나는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우선, 두 기사와 짧게 인사를 나누고, 벤자민 선배 앞으로 갔다.

“늦지 않게 오셨네요.”

내 말에 벤자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늦지는 않았지만, 하마터면 못 올 뻔했지.”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아카데미도 수도도 엉망이 되어 버려서도 뭐, 식구들이 수도에 있었으면 정말 못 왔을 수도 있었어.”

아카데미는 결국 휴업을 선언한 모양이었다.

공주와 내가 휴학을 한 뒤에, 다른 학생들도 차례로 휴학을 해 버렸고.

결국, 아카데미가 휴업을 선언했을 때는 남은 학생이 삼 분의 일도 안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거기다 수도는 치안도, 경제도 엉망이 되어 버린 듯했다.

고향과 영지로 내려간 사람들 때문에 많은 집들이 비어 버렸고, 병사들과 기사들이 곳곳에서 싸움을 벌여서 험악한 분위기가 가득하다는 이야기였다.

“수도에서는 두 왕자가 싸우지 않겠다고 했지만, 대규모 병력이 붙지 않는 것이지, 매일같이 싸움이 벌어지는 중이야.”

뭐라 했건, 왕궁이 있는 이 나라의 수도였다.

수도를 차지하는 자가 왕위에 더 가까워지는 게 당연했다.

두 왕자가 수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였고.

모두, 언젠가는 수도에서 큰 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더구나 수도 치안대가 제2 왕자 쪽에 붙는 바람에 검문이 심해져서, 빠져나오기 힘들었어.”

수도가 더 비어 버리면 곤란할 테니, 검문이 심해질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래도 빠져나올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어쨌거나 나도 귀족이니까.”

벤자민의 말은, 평민들은 마음대로 수도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우울한 이야기가 계속되는 것 같아, 나는 말을 돌렸다.

“와서 보니 어떻던가요. 영 어수선하죠?”

내 말에 벤자민은 쓰게 웃었다.

“뭐, 어디나 똑같지.”

표정을 보니, 말을 잘못 돌린 모양이었다.

벤자민은 이어 슬쩍 주변을 살폈고, 나는 바로 마나를 퍼트려서 우리 주변에 방음벽을 만들었다.

방음벽을 펼치자, 벤자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이 뭔 욕심들이 그렇게 많은지…….”

그는 머리가 아픈 듯, 손가락으로 머리를 꾹꾹 눌렀다.

“지금 공주님 주변에 모인 귀족은 그레시아 공작 파벌이 반이고, 혹시나 먹을 게 없을까 찾아온 영지 없는 귀족들이 반이야.”

확실히, 그레시아 공작이 아니었으면 공주 주변에 모일 만한 귀족은 없었다.

저 뜨내기 귀족들도 공주보다는 그레시아 공작을 보고 찾아왔을 가능성이 더 컸다.

“덕분에 회의는 그레시아 공작이 원하는 대로 진행되거나, 엉망이 되거나 둘 중 하나야.”

지친 벤자민의 모습에 그동안 회의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잘 알 것 같았다.

“그레시아 공작님은 그래도 공주님을 배려하는 것 같은데, 다른 귀족들은 공주님을 장식물처럼 여기는 것 같더라고.”

예상했던 대로였다. 그래서 내가 열심히 밖으로 뛰어다닌 거였고.

어쨌거나, 공주의 표정을 잘못 본 모양이었다.

다들 잘 배려해 주어서 공주가 버티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녀가 내 생각보다 더 단단했기 때문이었다.

아는 기사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나는 주변에 둘렀던 방음벽을 흩어 버렸다.

앞으로 이야기할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다. 지금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시간들도 아직 남아 있었다.

그리고, 충분히 바꿀 수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만나게 된 미겔의 팔목을 힘껏 잡았다.

30대 중반이 되어 있는 내 어린 시절 스승은 관록이 넘쳐 보였다.

그리고, 우고와 종자로 따라온 후안까지.

공작가에서 친했던 사람을 모두 다시 볼 수 있었다.

어머니를 보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이들과 같이 여행할 수 있어서 아쉬움을 떨쳐 버릴 수 있었다.

내가 친했던 기사들과 회포를 나누는 사이에, 발레아는 젊은 귀족들 무리에 섞여들었다.

기사들과도 거리를 두던 저 귀족들과 순식간에 친해지다니…….

발레아의 처세술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우리 세 사람이 합류한 일행은 다시 북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속보로 움직여서 우리 말들이 따라갈 수 있었다.

다시 달렸다가는 얼마 가지 못해 말들이 폐사했을지도 몰랐다.

이동하는 동안, 벤자민이 이번 일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레스티를 통해 어느 정도 들었던 이야기였지만, 공주 쪽 진영의 생각을 알기 위해 그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

벤자민은 우선 모두 아는 배경 이야기부터 늘어놓았다.

“제1 왕자가 대귀족들과 왕실 기사단 일부를 장악한 것처럼 제2 왕자는 수도 기사단과 군부를 장악했었지.”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제2 왕자의 선택은 정말 다시없을 좋은 선택이었다.

원래, 정통성이 있는 제1 왕자를 피하고자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군부였다.

하지만, 그 군부에는 영지가 없는 젊은 귀족 장교들과 중앙 정치에서 밀려난 늙은 장군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을 휘하에 넣으니, 제2 왕자는 낡은 기득권을 부수는 새로운 개혁 세력이 될 수가 있었다.

당연히 여기서 낡은 기득권은 대귀족과 왕실 기사단을 쥐고 있던 제1 왕자였고.

군부는 그렇게 제2 왕자의 기반이 되어 주었다.

제2 왕자가 지금 이렇게 제1 왕자와 팽팽하게 겨룰 수 있는 것도 전부 군부의 지원 때문이었다.

“많은 군부의 장군과 귀족 장교들은 제2 왕자를 따랐지만, 그렇지 않은 군인도 많았었거든.”

당연한 이야기였다.

모두가 제2 왕자를 좋아할 리도 없었고, 정치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왕국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 없을 리도 없었다.

“그동안 중립을 지키는 이들을 그냥 놔두었었지만, 내전이 시작된 지금은 그냥 놔둘 수 없게 된 것이지.”

내전이 시작된 이상, 중립은 존재하지 않았다.

내전에서 중립을 지키겠다는 말은, 하나도 피해 보지 않고 이기는 편에 붙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서로 목을 걸고 싸우는 당사자들이 당연히 그걸 좋게 볼 리가 없었다.

“그래서, 제2 왕자는 대표적인 중립 세력인 소로카 요새에 병력을 보내기로 한 거야. 소로카 요새만 손에 쥐게 되면, 군부 전체를 손에 쥔 것과 다를 바 없게 될 테니까.”

거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벤자민이 수통을 들어 물을 마셨다. 역시, 말 위에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까지는 레스티에게 들었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다만, 이런 정보만으로 이렇게 기사들을 움직였다는 게 무척이나 신기했다.

더구나, 소로카 요새를 방문했었던 공주를 직접 통솔자로 삼아 보낼 줄이야.

이건 쉽게 생각해 낼 계책이 아니었다.

벤자민이 말을 멈춘 사이, 말없이 따라오던 공주가 입을 열었다.

“원래는 기사와 병사들을 움직이는 데 다들 회의적이었어요.”

공주는 머리를 긁적이는 벤자민을 가리켰다.

“벤자민 경이 나서지 않았다면, 지금도 영지에 남아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을 거예요.”

“공주님이 제 의견을 지원해 주셔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좋은 의견에 손을 들어주는 것은 무척이나 당연한 일이에요.”

두 사람의 대화에 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이 원정은 공주와 벤자민, 두 사람이 힘을 합쳐서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귀족들 앞에서 의견을 낸 벤자민은 생각보다 담대한 참모였고, 그 의견에 손을 들어준 공주는 이미 훌륭한 지휘관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대단한 사람들과 손을 잡은 모양이었다.

무척이나 훈훈한 광경이었지만, 아직 물어볼 것이 남아 있었다.

“공주님이 나오시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요…….”

“공주님과 요새 사령관인 바도르 백작이 친하다는 이야기를 했어. 공주님이 요새의 병력을 이끌고 나가 마물들을 정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반대하던 말들이 많이 수그러들었지.”

“실제로 활약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지만요.”

벤자민의 말에 공주가 딴지를 걸었다.

하지만, 벤자민은 상관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상관없습니다. 결국, 어떻게 알려졌는지가 중요한 것이니까요.”

벤자민은 기사단을 가리켰다.

“그래도, 좀 말들이 많았는데 그레시아 공작님이 공주님의 편을 들어주셔서 이렇게 나오시게 된 거야.”

공작이 또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도움이 된 것은 확실했다.

벤자민은 공주를 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는 내게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니라 참모로서 공주에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누가 도와주었건 바도르 백작을 도와준 것은 맞을 테니, 그는 우리의 도움을 거절하지 않을 겁니다.”

내가 생각해도, 바도르 백작은 우리의 도움을 거절하지 않을 것 같았다.

벤자민 선배는 일이 끝난 뒤의 계획까지 계속 이야기했다.

“제2 왕자의 병력을 물러나게 한 뒤에 백작과 소로카 요새가 공주님의 세력 안에 들어오게 되면 제일 좋겠지만, 중립만 유지해도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의 계획은 충분히 가능할, 훌륭한 책략이었다.

“그들은 중립이라고 말하겠지만, 우리가 도와 제2 왕자를 물리치게 되면, 다른 이들이 볼 때는 그들을 공주님의 편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벤자민 선배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교활한 책사였다.

공주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소녀가 받아들이기에는 무척이나 치사한 계책이었지만, 이미 공주는 더한 계책이 난무하는 왕궁에서 생활했었다.

소녀가 아닌 공주는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계속 말을 달려, 오래지 않아 요새가 보이는 구릉에 올라설 수 있었다.

오랜만에 보게 된, 소로카 요새는 수많은 병력에 포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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