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253화 (253/563)

제253화

제3편 공국의 후계자 (2)

대련은 이틀 뒤로 정해졌다.

대련의 결과로 내 제안을 검토해보겠다는 말.

이건, 받아들일 생각인지 아닌지, 잘 파악이 되지 않았다.

공국왕이 대련 결과 따위로 결정을 바꾸는 사람일 것 같지도 않고.

공국 왕세자의 실력을 알아야 어느 정도 파악이 될 것 같았다.

작년에 공국을 떠날 때, 한번 보기는 했지만, 실력을 확인하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왕세자와 대련이라는 난감한 결과를 얻어낸 나는 기다리던 집사장을 따라, 대공녀의 응접실로 갔다.

응접실에는 발레아와 대공녀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어서 오세요.”

방에 들어서자 대공녀가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발레아도 손을 흔들어 주었고.

“아카데미로 돌아오지 않으셔서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으시네요.”

“어디 아픈 줄 알았나 보군요.”

확실히 처음에는 어디가 아픈 것 아니냐고 다들 걱정했었다.

시간이 지나 왕이 죽게 되자, 대단한 선견지명이라고 감탄들을 했지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대공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프기는 했어요.”

응? 아팠다고?

내가 놀라서 쳐다보자, 대공녀가 고개를 저었다.

“전에 아팠던 것이 재발한 것은 아니에요. 알고 보니 성장통이었어요.”

성장통이라니, 하지만 키는 더 커지지 않은 것 같은데…….

“몸이 아니에요! 상속 능력이 한 단계 더 성장했어요.”

내 시선이 이상했었나?

그녀는 정색하며 제대로 말해 주었다.

“그런데 성장하는 도중에, 능력을 과하게 쓸 때처럼 기절해 버려서…….”

혹시 병이 재발한 것이 아닌가 하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왕국의 사정이 급변해서 이렇게 눌러앉게 되어버렸다는 이야기였다.

“마나 고갈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예전의 병 때문인지, 다들 너무 과하게 걱정들을 하셨죠.”

‘공국 입장에서는 마침 잘된 것이려나.’

괜히 대공녀가 아카데미로 돌아갔다가 공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면, 공국도 곤란했을 터였다.

그래서, 더 열심히 막은 것일 테고.

대충 상황을 알 것 같지만, 그런 뒷사정은 말하지 않았다.

당장,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능력이 올랐다고요?”

“네, 이제 전에 못 고쳤던 유물들도 다 고칠 수 있어요.”

대공녀의 말에 내가 바로 대공녀와 나만 들을 수 있는 방음벽을 펼쳤다.

이어, 대공녀에게 주의를 주려고 했지만, 오히려 대공녀는 발레아를 가리켰다.

“발레아가 듣게 해 주셔도 돼요.”

나는 의아했지만, 대공녀 말대로 방음벽을 넓혀서, 발레아까지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방음벽 안에 들어오자, 발레아가 찻잔을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저도 대공녀님께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발레아라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저렇게 알려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그 능력 때문에 대공녀를 납치하려고 그 큰 제국이 움직였었다.

저렇게 아는 사람이 늘어나면 위험할 텐데…….

아니, 제국이나 조직은 이미 알고 있어서 상관이 없으려나.

“아버님이 허락하셨어요. 꼭 필요한 사람에게는 알려도 된다고. 공자님께 도움받은 것을 말씀드렸더니, 기뻐하시면서 허락하셨어요.”

공국왕이 허락한 일이라면 할 말이 없었다.

잠깐, 그렇게 되면 나는 공국왕의 허락 없이 알게 된 거잖아?

그걸 공국왕이 알게 된 거고.

생각해 보니, 접견실에서 건방진 표정을 지은 것 정도는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공국왕이 좋게 봐주지 않았으면, 대공녀의 비밀을 아는 것만으로도 목이 잘렸을 수도 있었다.

접견실에서의 일이 다시 떠오르자, 나는 대공녀에게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도대체 왕께 어떻게 말씀하신 겁니까?”

무슨 말을 했기에, 거래를 핑계로 왕세자와 대련하게 되었던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내 말에 대공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봉인지 일 같은 것은 숨기고, 말할 수 있는 것만 좋게 말했는데요?”

대공녀는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며 자신이 한 말을 다시 늘어놓았다.

“호위 기사 대전에서 승리하고, 아카데미에서 제일 강하고, 피센 후작 기사단장하고도 오래 대련 했다고…….”

틀린 말도 아니고, 숨길 이야기도 아니긴 한데…….

“봉인지에서 마물 왕과 싸워 마물 왕을 물러가게 했다는 말도 안 했고, 대단한 유물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말도 안 한걸요. 아, 성기사님의 검을 가지도 있다는 말도 안 했어요.”

그리고, 숨겨야 할 말도 잘 숨겨주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공녀는 잘못한 게 없었다.

문제는 남들이 알만한 이야기만으로도 대단한 이야기가 되어 버린 내 탓이었다.

내가 한숨을 쉬는 모습에 발레아가 물었다.

“왜요? 접견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말을 하는 발레아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뭔가 재미있는 일을 기대하는 어린아이의 눈 같았다.

무척 예쁜 눈이었지만, 이젠 겁부터 나는 눈이었다.

“공국왕께서 왕세자님과 대련을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도 제가 꼭 이겨야 할 제안까지 하셨습니다.”

“정말요? 안토니오 왕세자님과 대련을요?”

발레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기다, 그녀의 기대에 부응했는지,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신난 발레아와 달리, 대공녀는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앗, 죄송해요. 아버님이 그런 결정을 하실 줄 몰랐어요.”

대공녀는 난감한 내 처지를 잘 이해해 주었다.

이해해 준 것은 고맙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뒤였다.

우선 닥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나는 대공녀에게 물었다.

“왕세자님의 실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왕세자의 실력을 알아야, 그에게 맞게 상대할 수 있었다.

내 실력 전부를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나보다 강하지는 않을 터였다.

왕세자가 너무 강하지만 않으면, 실력을 숨기며 아슬아슬하게 이길 수 있을 것이었다.

내 물음에 대공녀가 어깨를 펴고 활짝 웃었다.

“제가 아파서 오빠의 실력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공국에서 제일 강하다는 말은 들었어요.”

아니, 잠깐. 공국에서 제일 강하다고? 분명, 평범한 20대 청년이었는데?

거기다, 그런 말을 그렇게 밝게 웃으면서 하다니.

가족, 오빠가 강한 거야 기쁜 일이 맞긴 하지만, 그 오빠와 싸울 사람이 바로 앞에 있는데. 저렇게 밝게 웃다니.

대공녀의 미소에 나는 괜스레 화가 나고 말았다.

하지만, 대공녀의 웃음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아버님이 다시 왕국을 욕심내게 된 것도 오빠의 능력 때문이에요.”

“아버님은 두 왕자보다 더 강한 ‘마나 감응력’을 지닌 오빠가 카를로스 왕국을 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셔요.”

그동안 한 명으로 이어오던 마나 감응력이 이번 대에서 너무 많아진 탓이었다.

두 왕자와 공주, 약하긴 했지만 공국왕도 가지고 있었고, 그 후계자까지 총 다섯 명.

아니, 나까지 여섯 명인가.

두 왕자를 떠올리면 공국왕이 저러는 게 이해가 될 정도였다.

공주가 아니었으면, 나도 공국왕 편을 들었을지도 몰랐다.

차라리, 오래전에 공국왕이 공국으로 내려앉지 않고, 카를로스 왕국을 차지했다면 훨씬 좋았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지금 두 왕자가 내전을 벌이지 않고, 공국의 왕세자가 편하게 왕위에 올랐을 터였다.

물론, 이미 지나간 일이니, 의미 없는 생각이었지만, 난리가 난 왕국을 보면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였다.

어쨌거나, 왕세자가 생각보다 강하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대련 계획을 다시 세워야 했다.

대공녀도 직접 보지 못하고 들은 이야기일 뿐이었다.

진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과하게 강하게 잡고, 대련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공국 최고의 실력자를 봐주면서 싸울 수는 없었다.

괜히 여유를 부렸다가 지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아니.

설마, 지는 것은 아니겠지?

나는 머리를 흔들어 괜한 생각을 털어버렸다.

그리고, 가슴에 손을 넣었다.

유물 주머니 깊이 들어간 손은 커다란 구슬 하나를 잡을 수 있었다.

나는 검은 구슬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검은색 구슬을 보고 발레아가 물었다.

“이게 뭐예요?”

“우연히 구한 유물입니다.”

처음에는 발레아를 떼어놓고 구슬을 꺼낼까도 생각해 보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신검이 있으니 비밀 계약도 가능했고, 이제 이 정도 유물은 내 힘으로도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지켜본 바로는 발레아는 어느 정도 믿을 수 있었다.

더구나, 수리하는 대공녀도 다 아는 것을 발레아에게만 비밀로 할 이유가 없었다.

“이제, 수리가 가능하겠습니까?”

대공녀의 능력이 성장했다는 말을 듣고 처음 떠오른 것이 이 구슬이었다.

그동안 대공녀의 능력을 키워온 것도 이 구슬을 살려내기 위해서였다.

“휴우……. 잠시만요.”

대공녀는 구슬을 보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대공녀가 구슬에 손을 올렸다.

부우우웅.

마나가 대공녀의 손을 타고, 구슬로 흘러 들어갔다.

잠시 뒤, 대공녀가 구슬에서 손을 뗐다.

“겨우……. 가능할 것 같아요.”

다행이었다. 언제 숨이 끊어질지 모르는 유물이었다.

더구나, 공국이 언제 적이 될지 모르는 상황.

지금밖에 기회가 없을지도 몰랐다.

다만, 수리가 되면 대공녀도 저 구슬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가능성이 컸다.

대공녀는 유물 수리 말고도 유물 감식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구슬이 망가진 덕분에 전에는 어떤 유물인지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이번에 전부 고치게 된다면, 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얼마 남지 않은 기회. 괜히 비밀로 한다고 유물을 망가뜨릴 수는 없었다.

대공녀는 구슬에 손을 올리다가, 움찔 멈추었다.

그녀는 잠시 그렇게 있다가, 나를 쳐다보았다.

대공녀의 눈은 전과는 조금 다른 눈이었다.

“이 구슬은 꼭 수리해야 하나요?”

가능하다고 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나 보다.

“지금 안된다면 어쩔 수 없죠.”

나는 입맛을 다시며, 구슬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대공녀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구슬에 손을 올렸다.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대공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잠시 고민하던 대공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구슬을 수리한 뒤에도 다시 찾아오실 건가요?”

내전이 끝나도 아카데미에 다시 복학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전 중에 공국과는 적이 될 수도 있고, 대공녀가 결혼을 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공국은 수도에서도 그레시아 공작령에서도 가깝지 않았다.

대공녀 말대로 이 구슬을 고치면 내가 대공녀를 찾아올 일은 없을 터였다.

나는 대공녀의 말에서 여러 생각이 떠올랐지만, 지금은, 우선 헤어지기 섭섭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편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아직, 수리할 것도 남아 있고, 비용도 다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봉인지에서 발견한 골렘들도 더 조사해봐야 합니다. 망가진 골렘들을 고칠 수 있는 것은 대공녀님뿐입니다.”

“아……. 맞다. 유적! 골렘들이 있었죠!”

고개를 든 대공녀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뭘 생각했기에, 골렘들도 떠올리지 못했는지.

정말 지금은 대공녀답지 않았다.

대공녀는 바로 정신을 차리고, 구슬에 손을 올렸다.

나도 구슬과 구슬에 놓인 손을 쳐다보았다.

구슬에 마나가 스며들기 시작하고.

옆자리에서 아쉽다는 듯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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