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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251화 (251/563)

제251화

제1편 공국의 진군

모레나 영지에서 공국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북서쪽으로 작은 영지 세 개만 건너면 되는 가까운 거리.

셀린 교단의 정보와 용병 경험이 많았던 레스티 덕에 우리는 기사들과 병사들을 맞닥뜨리지 않고, 그 영지들을 지나갈 수 있었다.

처음 지나간 영지는 다른 영지들처럼 어수선하고 삭막한 정도였지만, 두 번째 영지는 전쟁이 벌어지기 직전인 것처럼 소란스러웠다.

기사와 병사들이 북쪽으로 달려가고, 사람들은 짐을 싸 들고, 남동쪽으로 피난을 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영지는 주변 영지와 내전이 시작된 것도 아니었고, 공국과도 바로 맞닥뜨리지 않은 영지였다.

그런데도, 영지 전체가 전쟁 전날처럼 느껴졌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작은 영지.

나는 레스티에게 영지에 관해 물어보았다.

“여기는 어느 쪽 영지죠?”

“포르멘 영지는 제1 왕자 쪽에 가까울 겁니다. 하지만, 영지도 작고, 남작 작위의 소 귀족이라, 그냥 관례대로 왕세자를 지지하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제1 왕자는 이곳 영주를 알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제1 왕자가 구원하러 올 리도 없을 터였다.

옆을 지나가는 낡은 짐수레를 보며 발레아가 물었다.

짐수레에는 지쳐 보이는 일가족이 타고 있었다.

“공국 때문일까요?”

발레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마물들이 습격할 리도 없을 테고.

공국 외에는 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공국이 벌써 전쟁을 시작한 걸까요?”

발레아의 혼잣말에 레스티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직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셀린 교단의 신자들에게서 그런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내가 아는 제일 뛰어난 정보망이었으니,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병사와 기사들이 국경을 넘은 것 같습니다.”

발레아도 나도, 레스티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국경을 넘었는데, 싸움이 없었다고?

발레아와 나의 의문은 다음 영지에서 풀렸다.

공국과 맞닿은 영지.

그란메라 영지의 경계에는 엄청나게 많은 기사와 병사들이 모여 있었다.

분명, 여기는 공국과 맞닥뜨린 북쪽 국경이 아니었다.

영지의 남쪽 경계에 이렇게 많은 병사와 기사들이 모여 있었다.

더구나, 일부는 그란메라 영지의 영지병들이었지만, 대부분은 공국의 기사와 병사들이었다.

공국의 병사들은 그란메라 영지가 마치 자신의 땅인 양, 경계 안쪽에 숙영지를 펼치고 있었다.

우리는 병사들의 눈을 피해 겨우 영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영지 안도 마찬가지였다.

마을 여관에는 공국의 기사들과 용병들이 가득했고, 마을 밖에는 공국 병사들의 숙영지가 만들어져 있었다.

마치, 공국에 점령된 영지 같았다.

“하지만, 강제로 점령된 것으로 보기에는 영지민과 사이가 나쁘지 않은데요.”

얼굴을 가리던 로브를 뒤로 넘기며 발레아가 말했다.

그녀 말대로였다.

평민들은 지배자가 누구든지 별 상관이 없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이 영지는 공국 병사들과 너무 사이가 좋아 보였다.

거기다, 치안도 나쁘지 않고, 다들 여유로워서, 우리가 용병 차림으로 돌아다녀도 검문하는 병사가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이유는 마을 광장 게시판에 적혀 있었다.

[돌아가신 카를로스 국왕을 이을 적법한 왕은 동생이신 훌리안 데 카를로스 공국왕이다.

나 그란메라 영주는 훌리안 왕을 섬길 것을 맹세했고, 우리 영지는 훌리안 왕의 영토임을 선언한다.

…….

모든 영지민은 생업에 충실하고, 공국에서 찾아오는 병사와 기사들을 가족같이 맞아주도록.]

발레아와 나는 멍하니 게시판에 붙어 있는 발표문을 쳐다보았다.

“투항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협력했다고 해야 하나요?”

아무리 봐도, 항복도 투항도 아니었다.

쓰여 있는 내용을 보니, 예전부터 계획하던 일이 분명했다.

이곳 영주는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왕이 죽고 내전이 터지자, 바로 공국으로 갈아탄 것이었다.

그리고, 이 영지의 영주는 영지의 문을 활짝 열고, 공국의 병사와 기사들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래서 공국 병사들이 국경을 넘었는데도, 전투가 없었던 거였네요.”

국경을 넘었다고 보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이미 이 영지도 공국에 포함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왕국의 귀족들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때, 소식을 알아보러 떠났던 레스티가 다가왔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왜 여기에 공국 병사들이 가득한지 이유를 알아 왔습니다.”

레스티의 말에 발레아와 나는 서로 마주 보았고, 손을 들어 게시판을 가리켰다.

미안하지만, 레스티는 너무 늦었다.

“아…….”

레스티는 게시판을 보고 신음을 흘렸다.

왕국 어디에서나 셀린의 신도가 있어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지만, 그 신도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들 이외에는 어떤 종교도 인정하지 않는 교단.

교단을 피해 셀린의 신도들은 점조직으로 이어져 있었다.

이번에는 그 점으로 이어진 신도를 찾는 게 너무 늦었던 것이다.

우리는 조금 우울해진 레스티와 함께 광장을 벗어났다.

이유를 알았으니, 이제 공국으로 향할 때였다.

광장 밖에 묶어놓은 말을 타면서 발레아가 레스티에게 말을 걸었다.

“저, 신검 추적자님?”

발레아의 물음에 레스티의 표정이 밝아졌다.

어찌 되었건 예쁜 소녀가 그에게 말을 건 것이었다. 기분이 나쁠 리가 없었다.

설마, 레스티를 위로해주려는 걸까?

나도 발레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혹시 신검 추적자님은 우리가 공국은 왜 가는지 아시나요?”

레스티에게는 아쉽게도 위로가 아니었다. 그가 답을 알지 못하는 질문이었다.

레스티는 조금 난감한 얼굴로 대답을 했다.

“성기사님이 하셔야 하는 일이 있으니까요. 저는 성기사님을 돕고 있습니다.”

발레아는 레스티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말은 모른다는 거잖아요. 같이 가는 동료인데, 이유도 모르고 따라가는 거였어요?”

레스티가 눈썹을 찡그렸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역시, 발레아.

위로 같은 것을 할 리가 없었다.

“……발레아 영애는 이유를 아십니까?”

입을 뻥긋거리던 레스티가 나름 반격을 했다.

하지만, 그 공격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저도 모르죠. 알렉스 공자가 따로 간다고 해서 따라온 거였거든요. 그래서 아.무.것.도 몰라요.”

엉뚱하게 내가 유탄을 뒤집어썼을 뿐이었다.

아니, 유탄이 아니라, 원래부터 나를 향해 쏜 탄환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궁금했으면 그냥 물어보셨으면 되셨을 텐데…….”

우리를 태운 말들이 천천히 북쪽으로 움직였다.

내 뒤를 따르며 발레아가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나만 궁금한 것 같잖아요.”

그 말에 레스티도 한숨을 내쉬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휘말린 레스티가 불쌍할 따름이었다.

어차피 묻지 않아도, 말해 줄 생각이었다.

“우선, 공주님이 주신 편지를 대공녀님에게 전해야 합니다. 공국왕께도 편지를 쓰셨지만, 이건 상황에 따라 전할 수 있을 듯합니다.”

공주가 공국왕에게 쓴 편지는 전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두 왕자를 상대하기 위해 서로 힘을 합치자는 편지였으니,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듯했다.

“그리고, 저도 대공녀님과 만나 뵈어야 합니다. 저와 약속을 한 게 있었습니다.”

구슬을 고쳐주기로 한 약속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도와주었는데, 내전이라는 이유로 그냥 넘어가게 둘 수는 없었다.

내 말에 발레아가 손가락을 하나씩 뽑아가며 말했다.

“이바나 영애에게 약속하고, 대공녀에게도 약속하고, 공주에게도 약속하신 게 있죠?”

확실히, 공주와 왕비에게 작위와 영지를 약속받았었다.

“흠, 그런데 저하고는 약속하신 게 없었던 것 같은데…….”

발레아가 내 옆으로 다가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무척이나 불만스러운 얼굴.

하지만, 그 얼굴이 가식이라는 것에, 내 단검을 걸 수 있었다.

“저랑도 뭐하나 약속하죠.”

“안 합니다.”

발레아하고는 비밀 계약 말고 다른 약속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럼, 약속하지 않는 대신, 다른 것을 알려줘요.”

역시, 가식이었다. 원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뭐가 또 궁금한데요.”

“그때 모레나 자작을 죽인 거예요?”

그녀는 내가 전쟁에 참여해서 무엇을 했는지 알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여기에는 발레아와 레스티 밖에 없었다. 모두 비밀을 지키기로 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편하게 그때의 일을 늘어놓았다.

“아뇨.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음, 음. 죽이지는 않았다는 말이죠.”

발레아가 고개를 계속 끄덕였다.

“그럼, 물아센 영주는요?”

“글쎄요. 물아센 쪽 귀족들을 쓰러뜨리기는 했는데……. 영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내 이야기를 듣는 발레아의 모습은 마치 전생에 보았던 기자 같았다.

집중해서 듣는 모습 덕분에 말이 술술 나왔다.

“그건, 혼자서 영지전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말이잖아요.”

발레아는 진심으로 놀랐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혼자 영지전을 어그러뜨렸다라,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자작의 능력이 안 먹혔던 덕분입니다. 운이 좋았죠.”

“맞다. 그게 자작 능력이라고 했죠? 기사들이 막 풀로 베는 것처럼 상대방 기사들을 베어버리던데…….”

레스티도 발레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발레아와 레스티가 숨어 있던 반파된 집은 예상보다 더 전망이 좋았던 것 같았다.

각성한 귀족이라면 사람 얼굴도 볼 수 있을 거리였고.

그녀는 그 집에서 내 활약을 전부 지켜보았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궁금한 게 생긴 거였나?

“혼자서 자작의 능력을 막아 냈다라……. 혹시, 전날 받은 이바나의 능력 때문일까요?”

나는 속으로 놀라고 말았다.

나는 자작이 떠벌려준 덕분에 겨우 알아차렸는데, 발레아는 내 이야기만 듣고 추측을 해낸 것이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약화 능력을 막는 능력이라……. 좋은 능력을 얻은 거네요. 모레나 영지를 거쳐올 만했네요.”

발레아는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바나는 죽이면, 아니 죽으면 안 되겠네요.”

다만, 이어진 말실수에 나와 레스티가 움찔 놀랐다.

평범한 말실수지만, 발레아가 하면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말실수가 맞겠지?

* * *

공국으로 넘어가는 것은 그란메라 영지로 들어가기보다 훨씬 쉬웠다.

검문도 없었고, 국경을 넘는 것이, 평범한 영지를 넘어가는 것 같았다.

다만, 우리가 가는 반대 방향. 남쪽으로 병사들이 계속 지나가고 있었다.

영지병 뿐만 아니라, 징집병이 분명한 병사들까지.

공국 옆에 붙어 있는 영지들을 흡수하기 위해 보내는 병사들로 보기에는 너무 많았다.

거기다, 공국인들도 전쟁을 각오한 얼굴들이었다.

징집이 되는 것도, 병사들을 왕국으로 보내는 것도 당연하게 여기는 얼굴들.

모두 1, 2년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공국은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공국왕은 진심으로 카를로스 왕국의 왕이 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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