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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246화 (246/563)

제246화

제21편 영지전 속의 마을 (1)

셀린 교단의 마지막 신관, 레스티아도가 우리 앞에서 말을 멈춰 세웠다.

그는 내 옆에 발레아가 있는 것을 보고, 나를 다르게 불렀다.

“알렉스 님, 늦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알렉스 님이라고 부르니 더 이상했다.

어차피 발레아와는 앞으로 같이 다녀야 했다.

거기다, 발레아는 내가 신검을 얻는 것도 보았고.

발레아와는 다시 계약할 작정이니, 비밀이 새어 나갈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계약을 하면 되니까, 그냥 하던 대로 말씀하셔도 됩니다.”

더는, 발레아에게는 신분을 감출 필요가 없었다.

내 말에 레스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성기사님.”

레스티의 말에 발레아가 입을 동그랗게 말았다.

“오! 성기사!”

반쯤 놀란 듯한 감탄사였지만, 놀리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나는 발레아의 감탄사를 무시하고, 레스티의 처음 질문에 대답했다.

“늦지 않았습니다. 알맞게 왔습니다.”

레스티는 딱 맞게 도착했다.

먼저 떠난 공작 일행에게 들키지도 않았고, 우리가 너무 오래 기다리지도 않았다.

더구나, 공작 일행이 떠났다고 내가 따로 알려줄 필요도 없었다.

공작 일행, 공작가의 고용인 중에도 셀린의 신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레스티아도는 알맞은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 다시 확신할 수 있었다.

내전이 시작된 이 왕국에서 가장 뛰어난 정보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나, 알렉스라는 것을.

제1 왕자의 파벌 안에도, 제2 왕자 안에도, 왕궁에도, 그레시아 공작가 안에도, 셀린의 신자가 있었다.

그리고, 성기사라는 위치 덕분에 나는 그 신도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중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정보였다.

고급 정도는 얻기 어렵겠지만, 쓸 만한 정보 정도는 누구보다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지금도, 셀린 교단의 신자들이 없었다면 이렇게 공주와 어머니와 떨어질 생각을 하기 어려웠을 터였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내 능력과 셀린 교단의 빠른 정보라면 멀리 떨어져서도 어머니와 공주를 지킬 수 있었다.

발레아는 성기사라는 말에 묘한 미소를 지었지만, 언제나처럼 따로 묻지는 않았다.

그녀는 레스티가 가져온 말에 올라탔을 뿐이었다.

언제 또 말은 배웠는지, 발레아가 말을 타는 모습은 용병인 레스티보다 떨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나도 다른 말에 올라탔다.

목적지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공국으로 가는 길에 영지전이 벌어진다는 모레나 영지도 들려봐야 했다.

“처음에는 모레나 영지였나요?”

발레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북쪽으로 말을 달렸다.

첫 번째 목적지는 모레나 영지.

나는 제1 왕자의 여동생. 이바나에게 늦기 전에 받아야 할 게 있었다.

* * *

모레나 영지로 향하면서도, 나는 일이 다 끝난 뒤에 도착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2 왕자는, 영지전 신청이 공회 전날에 이루어졌다고 했다.

대부분 영지전은 영지 경계에 병력을 모아놓고, 신청 다음 날부터 상대 영지로 진격을 시작한다.

모레나 영지는 크지 않은 영지였으니,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전쟁이 끝난 뒤가 될 터였다.

솔직히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공국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으니, 혹시나 해서 들려보기로 한 것이었다.

이바나가 살아 있다면 빚을 받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영지전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책에서 보고, 수업을 듣기도 했지만, 눈으로 보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열심히 말을 달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레나 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영지의 경계를 넘자, 금방, 싸움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길과 벌판에 남아 있는 수많은 말발굽 자국들과 수레바퀴 자국들.

그리고, 곳곳에 부서진 집들.

모두 병력이 쓸고 간 흔적들이었다.

아무래도, 병력의 진행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게 된 모양이었다.

바닥에 남아 있는 흔적을 보니, 병력은 다른 곳을 약탈하지 않고, 영주의 저택이 있는 중앙 마을로 계속 진격한 것 같았다.

우리도, 병력이 남긴 흔적을 따라, 길을 달렸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반쯤 부서진 목책에 둘러싸인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목책 밖은 예상대로 싸웠던 흔적이 가득 남아 있었다.

시체들과 바닥에 꽂혀있는 무기와 화살들.

병사도, 기사도 가릴 것 없이 시체가 되어 벌판에 흩어져 있었다.

목책도 반 이상 부서져 있었다.

이곳도 철목은 아니었지만, 단단한 통나무로 되어있는 목책이었는데, 저렇게 부서지다니.

마나를 사용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목책 뒤 마을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연기도 한군데에서 피어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집을 태운 것처럼 보이는 검은 연기가 여러 곳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영지전은 끝난 게 아니었다.

“아직, 버티고 있는 건가?”

아직 남아 있는 목책 위에는 영지병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고, 중간마다 기사도 보였다.

그러고 보니, 방책에서 멀리 떨어진 숲 어귀에 병력이 모여 있었다.

적은 수가 아니었다.

거의 천은 되어 보이는 병사들과 수십 명의 기사.

그들은 숲 옆에 넓게 숙영지를 펼치고, 경계를 서고 있었다.

“대치 중인 것 같죠?”

발레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승부를 내지 못하고 대치 중인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싸움 없이 대치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사방에 널린 시체를 보니, 한바탕 싸운 게 분명했다.

널린 시체를 보면 공격한 쪽이 손해를 본 것 같긴 했지만, 그렇다고 방어한 쪽도 무사한 것은 아니었다.

목책도 부서졌고, 마을의 집들도 불타고 있었다.

그렇다면, 안까지 밀렸었다는 말인데…….

어떻게 다시 밀어낸 것일까?

레스티가 고민하는 나를 보고 입을 열었다.

“이렇게 봐서는 상황을 알기 어렵겠습니다. 제가 정보를 좀 알아 올까요?”

레스티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의 말은 마을이나, 병사들 가운데 숨어 있는 신자들에게 물어보겠다는 이야기였다.

나쁘지 않은 이야기처럼 들렸지만, 따지고 보면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신자들을 만나려면 마을로 숨어들어 가거나, 병사들 사이로 숨어들어 신자들을 찾아야 했다.

그럴 바에는 밤에 몰래 목책을 넘는 편이 안전했다.

거기다, 방금 우리에게 사정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길에서 조금 떨어진, 반쯤 부서진 집에서 병사들과 기사가 밖으로 나왔다.

“세 사람 움직이지 마라! 도망가는 기미만 보이면, 전부 죽을 것이다!”

선두에 선 기사가 우리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50m 정도라.

확실히, 기사라면 용병들이 도망쳐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거리였다.

집에서 나온 기사와 병사들을 보고 레스티가 고개를 끄덕였다.

“길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이 없어서 이상했는데. 저런 집에 숨어있었군요.”

일종의 함정을 파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저들은 숨어있기보다는 딴짓을 하고 있었다.

다가오는 병사들의 양 손가락에는 손가락마다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거기다, 판금 갑옷을 입은 기사의 목에는 황당하게도 목걸이가 여러 개 걸려 있었다.

아마, 저 기사는 집안에서 병사들과 함께 반지와 목걸이를 갑옷 위에 걸어보며 희희낙락하고 있었을 터였다.

그러다가 우리를 보고 물건도 숨기지 못하고 바로 튀어나온 것일 테고.

저들은 레스티 말대로 길을 지키기 위한 병력이었다.

하지만, 부업으로 시체에 남은 물건들을 빼돌리는 스캐빈저이기도 했다.

거기다, 그걸 들켰으니, 우리를 곱게 돌려보낼 리가 없었다.

“그래, 도망가지 않은 건 잘했어. 괜히 힘 빼기 싫거든.”

역시, 예상대로였다.

기사는 설렁설렁 다가오더니 이제야 검을 뽑았다.

그리고, 우리를 보지도 않고,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애들아, 전부 죽여라. 나름 돈이 있는……. 아니 잠깐, 여자잖아!”

다만, 그 지시는 발레아를 보게 된 순간, 멈춰버렸다.

“시발! 최고잖아! 여기서 이런 여자를 볼 줄을 몰랐는데. 전부 죽이라는 것 취소. 우선 확인 좀 하고 죽일지 결정하자.”

큰 덩치에 험상궂은 모습. 거기다 피 묻은 갑옷까지 더해지니, 그의 말은 상당히 무섭게 들렸다.

다만, 발레아도 나도 전혀 무섭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검을 잡았다. 기사답지 않은 기사가 토해내는 더러운 말을 더 듣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검을 휘두르기 전, 발레아가 한 걸음 걸어 나가, 등 뒤로 손을 흔들었다.

잠시, 기다려달라는 신호였다.

나는 다시 손을 거두었다.

발레아가 신호를 보내는 사이, 기사는 발레아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오, 파릇파릇한 게 딱 좋아. 거기다 엄청 이쁘잖아! 저렇게 깨끗한 피부는 정말 오랜만이야!”

기사는 기쁜 얼굴로 으르렁댔지만, 같이 온 병사들은 조금 걱정되는 표정들이었다.

“귀족이 아닐까요?”

일반인으로 보기에는 발레아의 미모가 너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의 말에 기사가 버럭 화를 냈다.

“귀족이 왜 여길 와! 아니 귀족이라도 상관없어. 시종 둘 데리고 이런 길을 여행하는 귀족 영애라면 없어져도 괜찮다는 말과 다를 바 없지!”

말을 하면서도 기사는 슬금슬금 발레아의 눈치를 보았다.

귀족이라는 말에 긴장한 눈치였다.

기사의 말에 발레아가 분노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주인의 명예를 걸고, 기사가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건가요?”

평상시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진짜 화가 나서 소리친 것으로 보이겠지만, 나는 지금 그녀의 모습이 연기라는데 내 능력을 걸 수도 있었다.

확실히, 기사는 그녀의 연기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기사는 발레아가 화난 모습을 보고 씩 웃었다.

약해 보이는 발레아의 모습에 긴장이 풀린 모양이었다.

“흠. 정말 귀족 영애신가.”

그는 검을 어깨에 걸치고,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뭐 어때. 여기서는 그래도 돼. 한창 영지전 중이거든. 여행하던 귀족 영애가 싸움에 휘말려서 죽는 것은 이야기 축에도 못 드는 곳이지.”

“그런…….”

발레아는 충격을 받은 것처럼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발레아는 손을 꽉 쥐고,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만일 제가 시키는 대로 하면 우리를 살려 주실 수 있나요?”

발레아의 말에 기사는 씩 웃었다.

“그럼, 그럼. 반항도 안 하는데, 죽이기는 왜 죽이겠어.”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나는 궁금했다.

발레아의 연기는 정말 대단했지만, 왜 이렇게 귀찮은 짓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바로 죽이거나 제압을 해버리면 될 텐데.

“그럼, 자리를 옮기게 해주세요. 여기 대로에서는 차마…….”

발레아는 슬픈 얼굴로 도로 반대쪽 숲을 가리켰다.

그제야 나는 발레아가 왜 이런 귀찮은 짓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하, 걱정하지 마. 내가 그런 무뢰배는 아니니까. 기사의 도리가 있지. 목책 위에서도 보이는 이런 길에서 일을 벌일까.”

웃기지도 않는 대답이었지만, 기사의 말대로 여기는 사방이 탁 트인 길 위였다.

마을의 목책에서도 보이는 길 위였고, 기사라면 멀리 숙영지에서도 이 길 위의 인영이 희미하게 보일 터였다.

‘과연. 여기서 죽이거나 제압하면 다들 알아차리겠어.’

“이놈들아! 남자 놈들 데리고 따라와! 공주님이 수줍어하신다! 으하하”

처량한 모습으로 숲으로 걸음을 옮기는 발레아 뒤를 기사가 신나게 따라갔다.

그리고, 병사들은 레스티와 나에게 창을 들이밀어 움직이게 했다.

나는 오늘 발레아를 보고, 진짜 사람을 유혹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기사와 병사들은 발레아의 말에 홀려있었다.

그녀의 말에 따라, 숲으로 걸음을 옮기면서도, 나와 레스티의 무장도 해제하지 않고 있었다.

능력도 아닌데 저렇게 사람을 움직이다니.

발레아의 매력은 나조차 무서울 정도였다.

모두 숲 안으로 들어간 뒤, 숲 안에서 낮은 비명이 울렸다.

그리고, 억눌린 비명이 계속 이어졌고, 한참 뒤에 우리는 다시 숲 밖으로 나왔다.

필요한 정보는 다 구했다. 싸움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리고 찾는 사람들은 마을에 있는 지도.

다행히, 이바나는 저 마을에 있었다.

그리고, 저 마을 안에는 그녀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달려온 그녀의 아버지인 모레나 자작이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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