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243화 (243/563)

제243화

제18편 공회 (1)

문을 활짝 열고 홀 안으로 들어온 왕세자는 언제나처럼 귀찮은 얼굴이었다.

그는 털래털래 홀을 가로질러, 제일 안쪽의 중앙 석, 왕세자의 자리에 앉았다.

“난 도대체 이런 회의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어. 전대 왕이 죽으면 왕세자가 새로운 왕이 되는 게 당연하잖아. 그냥 즉위식 하면 되는 거 아냐?”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지만, 목소리에 마나를 실어서인지, 홀에 있는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었다.

다들, 표정이 좋지 않았다. 왕세자라 해도, 저렇게 안하무인이면 사람들이 좋아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제2 왕자만은 왕세자를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왕세자가 사회를 보는 왕실 서기관에게 손을 흔들었다.

“형식적인 일이지만, 시작하도록 하지.”

나이가 지긋한 관리가 일어나 왕세자에게 인사를 한 뒤에 순서지를 읽기 시작했다.

드디어, 공회가 시작된 것이다.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바로 가라앉았다.

조용해진 홀 안에 사회자의 목소리만 퍼져나갔다.

“그럼, 새로운 왕을 추대하기 위한 카를로스 왕국 공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돌아가신 왕의 추모를…….”

하지만, 사회자는 첫 문장을 채 마무리 짓지 못했다. 시작부터 왕세자가 진행에 초를 쳐버린 것이다.

“귀찮은 순서는 빼자고, 이미 이 주 동안 추모했으면 됐잖아, 필요한 것만 쭉쭉 진행해.”

“아……. 그럼, 반대하시는 분이…….”

늙은 관리는 말을 하면서 왕족과 고위 귀족들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반대하는 분이 없으니, 바로 본 안건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는 우울한 얼굴로 순서지를 넘겼다.

“그럼, 본 안건인 왕세자이신 세르지 데 카를로스 왕자를 새로운 국왕으로 추대하는 건을 진행하겠습니다. 먼저 당사자인 왕세자께서 발언이 있으시겠습니다.”

왕세자는 지겨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홀에 모인 수백의 귀족을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멈춘 곳은 동생, 제2 왕자가 있는 곳이었다.

“솔직히, 내가 여기서 무슨 말을 해도, 이미 결정을 내린 인간들은 이 나라를 박살 낼 생각으로 내전을 일으키겠지.”

왕세자는 제2 왕자를 보며 말했고, 제2 왕자도 왕세자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만, 이 나라를 생각한다면, 좀 쉽게 가자고.”

왕세자는 제2 왕자에게서 시선을 떼고, 손을 휘둘러 귀족들을 베어내는 시늉을 했다.

“반대하는 귀족들을 쓸어버리고, 빈 영지에 새로운 귀족을 꽂아 넣는 건, 나도 별로 반대하지는 않아.”

왕세자는 귀족들을 보며 씩 웃었다.

“그동안 쌓인 고인물들도 해결하고, 새로운 피도 수혈할 수 있잖아. 새로운 왕과 함께 새로운 나라의 시작이라니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이야.”

왕세자의 말에서 느껴지는 피 냄새에 귀족들이 움찔거렸다.

미소를 짓던 왕세자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러면 왕국 꼴이 어떻게 될지 다들 너무 잘 알고 있잖아. 내전이 끝나면, 그걸 수습하느라 오랫동안 아무것도 못 할 거야.”

왕세자는 연극을 마치겠다는 듯이 몸을 돌려, 벽에 걸린 기사의 검을 가리켰다.

“모두 이 왕국을 사랑할 테니, 기사의 검을 보고 있는 이곳에서 끝을 내자고.”

다들, 자기도 모르게 기사의 검을 쳐다보았다.

초대 왕이 저 검을 땅에 박아넣으며 이 왕국의 개국을 선언했었다.

수백 년이 지났지만, 저 검에 대한 경외는 모두의 가슴속에 남아 있었다.

“대단하네요.”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게 되었다.

기사단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역대 최악의 왕세자인데도 여태 자리를 유지하고,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저거지.”

왕세자는 확실히 카리스마가 있었다.

왕세자의 성격이 어찌 되었건, 품행이 문제건 간에, 이번 연설은 모두의 마음에 와닿았다.

그건 많은 귀족이 손뼉을 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연설을 했다고, 그냥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회자가 일어나 난감한 표정으로 다음 순서를 이야기했다.

자,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원래, 이다음은 왕족과 계승 순위에 있는 대귀족들께서 거수로 확인을 받고 새로운 왕을 선포해야 하는데…….”

초대 왕 이후 여태껏 그래왔고, 그동안은 문제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초대 왕이 만든, 사문화된 규정 때문이었다.

마나 감응력을 가진 후계자가 둘 이상이면 왕을 세우기전 마지막으로 발언권을 주어야 한다는 규정.

같은 능력을 갖추고도 왕이 되지 못하는 형제에게 위로를 주기 위한 규정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능력을 가진 다른 후계자가 새로운 왕에 거부권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거부권을 가졌다고, 왕세자를 제치고 그가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세계 귀족에게는 명분이라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이었다.

“그럼, 거수 전에 먼저 제2 왕자이신 두아르도 데 카를로스 님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제2 왕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귀족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인사를 끝낸 그는, 왕세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동생으로서 형님이 새로운 왕이 되는 것을 축하하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그가 처음 꺼낸 말은 모두의 예상과 다른 말이었지만, 모두 왕자가 이대로 이야기를 끝내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모두의 생각대로 왕자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러 유언비어가 왕국을 시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 유언비어들을 잠재우고 왕위에 오르시는 게 형님을 위해서도 좋을 듯합니다.”

많은 귀족이 제2 왕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모두가 제2 왕자의 파벌은 아니었다. 중립을 지키고 있는 귀족도, 제1 왕자 파벌도 있었다.

그만큼 왕세자에 대한 소문이 왕국 전체에 퍼져나간 것이다.

큭큭큭큭.

제2 왕자의 말에 왕세자가 실소했다.

억눌린 웃음소리가 홀을 울렸다.

하지만, 제2 왕자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다른 것보다 돌아가신 첫 번째 왕비에 대한 여러 소문이 문제죠. 병을 핑계로 수도를 떠난 뒤 다른 남자들을 주변에 두고, 아이까지 낳았다는 말도 안 되는 소문 말이죠.”

홀이 차가워진 것 같았다.

모두 조용한 가운데, 제1 왕자의 억눌린 웃음소리만 들려왔다.

“이런 유언비어들을 정리 안 하니, 형님까지 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감히 형님을 왕의 핏줄이 아니라고 하다니요.”

제1 왕자를 옹호하는 듯이 말을 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왕세자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왕세자는 조용히 동생을 노려보고 있었다.

단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렇게 되면 누구도 뒤로 물러설 수 없겠군. 결국, 내전인가.”

제2 왕자가 방금 화해할 수 있는 마지막 다리를 끊은 것이다.

왕의 핏줄을 의심하다니. 이 자리에서 결투를 신청해도 이해할만한 말이었다.

결국, 제1 왕자는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원래 끼어들면 안 되는 거지만, 사회자는 감히 막을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내가 ‘마나 감응력’을 가졌다는 것을 알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냐!”

분노한 것 치고는 무척이나 논리적인 말이었지만, 제2 왕자는 제1 왕자의 분노를 여유 있게 받아넘겼다.

“그러니까요. 그래서 유언비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제2 왕자는 시선을 돌려, 귀족들을 바라보았다.

“이런, 유언비어가 더 퍼지기 전에 바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해서, 나름 유언비어를 조사했습니다.”

조사를 했다는 말에도 제1 왕자는 코웃음을 쳤다.

그만큼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제2 왕자의 다음 말에 바로 사라졌다.

“확실히 너무 오랜 일이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만, 어디서 벌어진 일인지는 알아냈고, 어떻게 된 일인지 알기 위해 그 영지에 영지전을 신청했습니다.”

나도 놀라고 말았다.

설마 알아냈다고? 그걸 추적해서?

나는 놀랐지만, 제1 왕자는 분노했다.

“뭐라고?”

“어쩔 수 없었습니다. 모레나 자작이 계속 숨기기만 하셔서요. 영지전을 통해서 강제로 확인을 해봐야지요.”

제2 왕자는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것인지, 싱글거리며 말을 이었다.

“어제, 모레나 영지에 영지 전을 신청했습니다. 모레나 영지와 붙어 있는 물아센 영지의 영주이신 자작님께서 고생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물아센 자작이 보이지 않았다. 제2 왕자를 따르던 몇몇 귀족도 보이지 않았고.

설마, 벌써 시작된 거였나?

“감히!”

“형님께서 그렇게 화를 내실 이유는 없으실 텐데요. 요새 모레나 자작과 같이 다니신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지 않습니까?”

제1 왕자의 연설도 놀랐지만, 제2 왕자의 계책도 장난이 아니었다.

제1 왕자의 약점을 완전히 알아내지 못한 것을 영지전을 걸어서 뒤집어버리다니.

보통 사람이라면 생각도 못 할 계책이었다.

“영지전이 끝날 때까지, 공회는 정지시켜주셨으면 합니다. 형님께서 흠 없이 깨끗한 상태로 왕위에 오르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2 왕자는 자리에 앉았다.

제2 왕자는 끝까지 제1 왕자를 왕세자라 부르지 않았다. 결국, 제1 왕자의 원래 지위마저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제1 왕자는 이를 갈며 제2 왕자를 노려보았고, 귀족 몇 명이 홀을 빠져나갔다.

제1 왕자 쪽 귀족들이었다. 급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제1 왕자가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제삼자여서 그런지, 두 왕자 간의 싸움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이건, 전생에 보았던 주주총회보다 훨씬 흥미진진했다.

더구나, 아직 하이라이트가 남아 있었다.

“이렇게 되면……. 우선 제2 왕자님이 말씀하신 공회를 연기하는 건에 대해 가부간에 결정하는 것으로…….”

“잠시만요. 거수를 하기 전에 질문이 있습니다.”

뜻밖의 상황에 사회자가 더듬거리면 이야기를 진행하려 했지만, 또 말을 막는 사람이 있었다.

이번에는 두 왕자가 아니었다.

물론, 보통 귀족이라면 무시하고 진행했겠지만, 손을 든 것은 평범한 귀족이 아니었다.

그레시아 공작이 손을 든 것이다.

드디어, 본 막이 시작되었다.

“공회를 연기한 뒤에 왕세자께서 흠이 있다는 결과가 나오면, 다음 왕은 두아르도 왕자가 되는 겁니까?”

공작은 다들, 차마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제1 왕자도, 제2 왕자도 눈을 가늘게 뜨고, 공작을 바라보았다.

예전부터 왕가를 위해 움직이는 공작이었다.

그래서인지 중립이긴 하지만, 왕세자인 제1 왕자 편이라고 생각했던 공작이었는데…….

그런 공작이 꺼낸 말이었으니, 쉽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게…….‘마나 감응력’을 가지신 분이 두 왕자밖에 없으시니, 관례에 따라…….”

사회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겨우 공작의 말에 대답했다.

평범하고, 문제없는 대답이었지만, 공작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다시 반문했다.

조금만 생각해도, 무서운 반문이었다.

“장자 승계가 깨졌으니, 제2 왕자 이외에도 다른 사람이 승계할 수도 있는 거잖습니까?”

대귀족들도, 왕족들도 표정이 달라졌다.

저 말은 조금만 다르게 해석하면 왕국의 근간을 흔드는 말이었다.

“하, 카를로스의 국왕 자리가 이렇게 바닥으로 추락하다니, 이제는 그레시아 공작까지 왕위를 노리는 건가!”

제1 왕자도 그렇게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레시아 공작은 손을 흔들었다.

“그럴 리가요. 정당한 후계자가 한 명 더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드린 것뿐입니다.”

공작은 손을 들어, 아이샤 공주를 가리켰다.

“하……. 마나 감응력도 없는 꼬맹이가 무슨…….”

제1 왕자가 헛웃음을 짓고, 제2 왕자가 고개를 저을 때,

공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긴장으로 굳은 얼굴.

창백한 손.

그녀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앉지 않았다.

공주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그리고,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모두 어리둥절했지만, 다음 순간 그 표정은 경악으로 바뀌었다.

검과 그녀의 몸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한 것이다.

화아아아악!

마나 감응력으로 피어난 빛이 홀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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